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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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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해

시화X선유

하루

 

 

 

 

※ 드림주의 사망 이후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망소재가 거북하신 분은 보시는 것을 지양합니다.

 

 

사박사박. 천천히 수풀 사이를 지나간다. 흔들흔들. 수풀을 지나면, 하이얀 국화꽃 밭이 저를 반긴다. 그 뒤편에는 낡은 집 하나가 보인다. 긴 세월 동안 지내는 사람 없이 홀로 있던 것을 보여주듯 낡은 집의 나무들은 상처가 하나 둘 나있다. 전에 누군가 물어본 적이 있었지. 이 집을 허물지 않는 이유가 있느냐고. 있다마다. 이 집은…….

 

‘여기 이 집이 내가 어릴 적에 살던 집이에요.’

 

‘이 국화꽃밭은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했던 꽃밭이에요.’

 

……. 그래, 당신의 집이니까요. 그러니 허물지 못하겠어요. 선유. 국화꽃밭에 있던 황룡 하나가 그 꽃밭을 좋아하던 은빛 범을 떠올린다. 국화꽃밭에서 느긋하게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였고, 내게 꽃밭 뒤편에 있는 집을 소개해주던 그 모습을 떠올린다. ……아, 나는 또 당신을 떠올리고 있구나. 시화는 한참 집을 바라보다가 바람에 실려 은은하게 나는 국화 향을 양껏 들이마신다. 그래, 이 향이다. 그녀에게서 나던 향. 국화 향.

 

“……. 하하, 이렇게나 선명한데.”

 

이렇게나, 나는 당신을 잊지 못한 채로, 기다리는데. ……. 왜, 왜 보이질 않아요, 선유. 힘없이 웃음을 뱉어낸 시화는 입술을 꾹 깨문다.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기분에 온 몸에 힘이 들어간다. 너무하네요, 정말. 이렇게 사라져버리고. 닿지 않을 원망을 내뱉어본다. 이렇게라도 하면 나와 주지 않을까. 이렇게라도 하면, 내 욕이라도 했나요? 하며, 뒤에서 나타나 주지 않을까. 기약 없는 기다림이자 바람이었다.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시화는 더욱이 절망스러웠다.

 

그 때로부터 시간이 꽤 많이 지났다. 그래, 선유가 죽은 날부터. ……. 죽었다? 여기에 있던 시체가 없어졌는데, ……. 과연 죽은 것이 맞을까. 끝도 없는 고민의 시작이었다. 시화는 잠시 입을 달싹인다. 후우, 숨을 크게 내쉰다. 파고 들어봤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야! 그렇게 파고들면 시체가 다시 돌아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애를 어디서 어떻게 찾을 건데!? 너 미쳤어? 여명이 제게 했던 소리다. 분하지만, 인정하기 싫지만. 여명이 한 말은 옳은 말이었다. 갑작스럽게 한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찾기엔 어렵지 않을까. 게다가, 생사조차 확실하게 파악 되지 않았으니. 그렇기에 시화는, 오방신은, 선유를 알고 있는 자들은 살아있다고 생각하기 보단, 죽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최악을 생각하면, 기대를 안 하게 되니까. 거기까지 회상한 시화는 씁쓸하게 미소를 띤다.

 

지금, 당신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나요. 선유. 난, 당신이 좋아하던 그 꽃밭에 와 있어요. 당신이 알려주고, 당신과 늘 둘이서 왔던 그 곳이요. ……. 혼자 오니까 쓸쓸하네요.

 

“…….”

 

있잖아요, 선유. ……. 보고 싶어요, 많이. 당신을 그렇게 보낸 뒤로, 한 번도 잊은 적 없어요. 당신을, 그 광경을, 그리고 우리가 했었던 약속을. 늘 내 동반자로 있겠다고 그랬잖아요. 내 옆에 있어주겠다고, 나란히 빛의 길을 걸어주겠다고 했었잖아요. 이렇게 두고 가면 어떡하나요. 이럴 거면, …… ……. 애써 원망을 삼킨다. 아니, 원망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당신한테 이럴 거면 차라리 나타나지 말지 그랬어요. 라고 말해요. 내가 어떻게 그래요.

 

시화는 잠시 가만히 주변을 바라본다. 전립을 고쳐 쓴다. 하얀 천이 얼굴을 가린다. 바람이 분다. 바람과 함께 은은한 국화향이 시화의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옅게 미소를 지어본다. 당신이 생각나서 괴로운데. 당신이 생각나서 괜히 반갑고, 행복해지네요.

 

선유, 나는 당신이 죽었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살아있길 바라고,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네요. 그러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줘요. 언제까지고 기다릴 테니까. 반드시 와줘요. 그 때까지, 나. 버텨낼 테니까요. 우리 다시 만나요. 그 때처럼.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만일 우리,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나를.

 

 

 

반겨줄래요, 시화님?

 

 

 

“……. 반겨 줄 테니까, 우리 얼른 다시 만나요. 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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