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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X-Japan - 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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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기

저팔계X염산옥

*합작 두 가지가 하나로 이어집니다. 스토리가 극과 극이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약간의 삼각관계 묘사 있습니다.

 

숨이 턱 막혀 오는 감각이 산옥을 잡아끌고 있었다. 괴로웠지만 울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이가 눈물을 막았다. 말로써 그리 한 것은 아니다. 그저, 그 자체가 산옥이 감정을 터뜨리는 걸 막을 뿐. 헉헉대는 숨을 뱉었다. 주저앉았다. 놀란 일행들이 그를 붙들었다.

 

“됐어요.”

“산옥, 식은땀이 나. 정말 괜찮아?”

“걱정하지 마세요. 별 일 아니에요.”

 

산옥이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바들거리는 그것을 보고 오공이 더욱 놀라 산옥을 붙들었지만 그는 천천히 걸음을 뗐다. 갈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옥이 간 곳은 팔계가 있는 방 안이었다. 그는 다친 몸으로 쥐 죽은 듯 고요히 자고 있었다. 옆에 가까이 간 산옥이 입술을 꾹 물었다. 잇새로 괴로운 신음이 흘렀다.

 

“어째서.”

 

운을 떼었지만 대답할 이는 고요하기만 했다. 산옥은 필사적으로 입술을 짓물었다. 울 수 없다. 울어서는 안 된다.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팔계 옆에 모로 누웠다. 잘 기분도, 상황도 아니었지만 차라리 이렇게 있어야 했다. 그게 그에게 합당한 일이었다. 현재로써는 그랬다.

한 시간 남짓 잠들었을까. 제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있었다. 산옥이 눈을 떴다. 그러자 팔계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미안해요.”

“사과하지 마세요, 제발.”

 

목구멍에 울음이 차올랐음을 감지했다. 산옥은 바짝 몸을 웅크렸다. 그 모습에 팔계가 손을 내려 등을 가만히 토닥였다.

 

“나는 산옥을 매번 아프게만 하네요.”

“차라리 저를 비난하세요. 봐 주지 않는 상대에게 이토록 매달려 조금이라도 온기를 받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이 꼴을, 그냥 저 자체를 비난하시라고요.”

 

숨조차 쉬어지지 않을 만큼 지독한 슬픔이 있다. 그것은 종종 한 존재에게만 다가와 목을 조르곤 한다.

결국 산옥이 제대로 자고 일어난 곳은 자기 방이었다. 억눌린 하소연을 뱉고 제 방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온전히, 편안히 잠든 건 아니었는지 눈가에는 발간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팔계 방으로 들어갔다. 팔계는 없었다. 한참 방 안을 망연히 바라보던 산옥이 문 앞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그 앞에 누군가 다가왔다. 산옥이 고개를 들었다.

 

“괜찮냐?”

“괜찮겠냐?”

 

오정이었다. 그는 손에 손수건을 들고 있었다. 무어냐는 듯 산옥이 응시하자, 그가 말했다.

 

“갖다 주래.”

“누가.”

“누구겠냐.”

 

팔계임을 짐작케 하는 말에 산옥이 빼앗듯 손수건을 들었다. 눈가를 꾹 누른 그를 바라본 오정이 말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데.”

“몰라.”

“그 와중에도 그게 갖고 싶냐?”

“몰라.”

“야.”

“그만 이야기 해. 나도 알아. 하지만 탐내지 않을 수 없잖아.”

 

한심하다는 듯 오정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만 산옥은 고집스러운 이였다. 분명 이렇게 말했으니 이 이상 입을 열지 않을 게 자명했다. 그가 번잡하게 산옥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하지 마라.”

“인상이나 펴.”

“내가 알아서 해.”

“꼬맹이 말하는 꼬라지 봐라.”

“죽인다.”

 

실연당한 주제에 말하는 모양새가 어쩜 그리 고슴도치의 가시를 닮았는지. 날카롭게 찌르는 투였지만 오정은 불쾌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산옥을 두고 미련하다고 책망한다면 모를까. 손이 거둬지고 산옥이 눈을 흘겼다. 하지만 그것쯤 오정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어디론가 가 버리고 산옥 혼자 남았다. 그는 손에 손수건을 꼭 쥐고 있었다.

팔계는 오늘도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러 갈 터였다. 그가 그것을 완전히 상실한 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또렷해서 묻어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며칠 전, 예상치 못하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회중시계와 유난히 비슷하게 보이는 시계를 발견했다. 그 때부터였다. 팔계 머릿속에 떠오르는 잔상이 있었던 것은. 그를 찾기 위해 며칠을 소비했다. 알고 있었다. 옛 정은 결코 제게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럼에도 잔상은 여전히 팔계를 휘어잡고 있었고, 과거로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팔계는 다시 걸었다. 한 조각이라도 그를, 화남을 찾을 수만 있다면. 정말 그가 살아서 돌아온다면. 그 생각에 이르렀을 때, 팔계는 우뚝 자리에 멈췄다.

 

“잘라 주지 않으실래요?”

 

언젠가 산옥이 그렇게 말했다. 그는 드물게 차갑고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팔계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가 이내 들려온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알고 계실 테니, 제 마음을 잘라 주셨으면 해서요.”

 

손가락이 떨리는 걸 모르는 걸까. 애써 침착해지려 산옥은 기를 쓰고 있었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찻잔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천천히 팔계에게서 돌아섰다. 알고 있었지만, 산옥이 자신을 사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제 욕심이 컸다. 소위 말하는 사랑받는 기분이 좋아 차마 그를 밀어낼 수 없었다. 아니, 밀어내지 않았다. 그로 인해 산옥으로 하여금 자신을 차라리 비난하라는 소리까지 하게 만들었다. 후회스러웠다. 정말 그가 말했던 것처럼 잘라냈더라면 상처 주는 일이 줄었을 텐데. 잠이며 식사며 다 마다하고 화남을 찾아다니던 팔계가 미웠을 법 해도 산옥은 끝내 팔계를 품었다. 그가 홀로 잠들다 괴로워할까봐 곁에 있었다. 산옥은 그런 이였다. 그렇기에 팔계도 선뜻 그를 잘라내지 못했던 것이다. 손수건까지 오정을 통해 줄 정도로 미묘한 집착-표현이 적합한지는 그 역시 확신하지 못했다.-을 보이지 않았던가. 산옥이라는 존재는 팔계에게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하나는 명백했다. 팔계는 결코 산옥을 떼어 놓을 수 없다. 산옥마저 잃을 수는 없다.

 

“머리 아파.”

 

산옥은 팔계가 가고 나서도 울었는지 목이 잠긴 듯했다. 나직하게 몇 번 목소리를 낸 그가 헛기침을 했다. 어찌나 울었는지 사례가 들러서 괴로울 지경이었다. 왠지 목구멍에서 피비린내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물이라도 마시려 방 안에서 나오려 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생경한 온기가 번져왔다.

 

“뭐.”
“미안해요.”

 

익숙하고도 낯선 목소리에 산옥 몸이 크게 떨렸다. 팔계는 일있다. 그가 자신에게 지독하리만큼 잔인하다는 사실을. 게다가 산옥에게 비겁하게 굴고 있었다. 그게 그를 아프게 했다. 미안하다는 말이 폐부를 지나 심장까지 찌르고 있었다. 온기를 마주하고 있는데도 시렸다. 산옥은 다시 울컥 눈물이 났다.

 

“잔인하디 잔인한 분.”

그래도 그는 온기를 놓지 못했다. 그에게 있는 선택지는 오로지 팔계 뿐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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