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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민현

헤이즈 - 비가 오는 날엔(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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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방시리즈

허강민 네임리스 드림

*유혈묘사 있습니다.

 

맑았던 조금 전과는 다르게 점차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는다.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 한두 방울 물방울은 소리 없이 내리다 경쟁이 붙어 결국 소리 내어 내리기 시작한다. 오래되어 썩은 나무판자 사이로 작은 구멍에선 밖의 상황을 알려주고 있지만 낡아 주저앉은 소파에 몸을 맡긴 채 멍히 바라만 보고 있다. 

 

“왜 온 거야?”
“그야 강민씨 보러 왔죠.”
“위에서 시킨 거겠지.”

제 대답에 웃는 게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이자 손을 내밀어 잡았다. 공구를 잡고 있던 탓일까 밖에서 내리는 비 때문에 서늘해진 건물 안 때문일까. 차가운 손끝에 제 손으로 그것도 모자라 살짝 숨을 불어 녹이려 하자 빠르게 손을 빼왔다. 잔뜩 찌푸린 얼굴이 마주 해온다.

“제가 언제 어르신이 시킨 일 하는 거 봤어요? 강민씨가 보고 싶어서 왔죠.”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사랑받는다고?”
“그야……. 하하. 한방 먹었네요. 하지만 진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제 대답에 얼굴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는 걸 보니 분명했다. 나도 모르게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구나. 그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농담이었다고 빠르게 덧붙었다면 달라졌을까 하고. 빗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니 감았던 눈을 떴다. 저를 향해 대답하는 모습이 마치 꿈과 같았다. 아니 지금이 현실이었다. 지독하게도. 아까보다 더 강하게 내리는 비를 보기 위해 나무판자의 구멍이 난 곳을 잡아당겼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뜯어지던 나무판자에 더 강하게 당겼다. 작은 구멍은 하나의 선을 만들었다. 바르지 않고 엉망인 하나의 선이.

 

“뭐 하는 거야!”
“네? ”

느껴지는 통증에 손바닥을 확인하니 손바닥 안으로 찢어진 상처 밖으로 붉은 액체가 비집고 나온다. 그걸 다 받치지 못해 손가락 사이로 흘려 내려 바닥으로 떨어지자 스며들지 못하고 더럽게 얼룩만 만들어낸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니 제 옆에 있던 수건을 얼굴쪽으로 집어던진다. 얻어맞은 수건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잡아 대충 꾹꾹 누르다 통증에 다시 상처를 확인한다. 무식하게 행동 하긴 했다. 나무판자의 파편이 손바닥에 박혀있었다. 일단 보이는 것만 손가락으로 뽑아내고는 수건으로 둘둘 만다.

“그래도 저 덕분에 밖으로 나올 수 있었잖아요? 아니 애초에 강민씨가 잘 만들었어야죠. 어떻게 자기가 만든 방에 갇히나?”
“아직 제작 중이니 문을 닫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앞으론 반에 들어가지… 아니 다신 여기에 오지 마.”
“강민씨도 참. 제가 안 오면 울 거잖아요?”
“내가 언제 울었다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 시선이 한쪽을 향해있는 걸 보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려는 걸 참았다.

“걱정 말아요. 임무 도중에 다쳤다고 하면 되니까요.”
“누가 걱정했다고.”
“아. 그거 좀 상처인데.”
“상처 받을 줄도 아나?”

그 대답에 결국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화내다 말고 다시 제 일을 시작하는 행동에 그러지 말라며 달래는 투로 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고 결국 밖으로 쫓겨났다. 제가 다칠까봐 걱정돼서 그런 거죠? 그 질문의 대답은 들을 수 없었지만.

그도 분명 그랬을 거다. 그때와는 다르게 아무것도 없는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와 같은 상처와 그때와는 다른 상태. 손가락을 움직이다 주먹을 꽉 쥐었다. 손가락 끝에 묻은 붉은 액체는 밖에서 내리는 비와 같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마지막까지 함께 했다면…”

저도 모르게 뱉은 말에 이어 말하지 못하고 가만히 내리는 비만 바라보았다. 현재를 인정하지 못하고 비만 내리면 바보같이 이곳에 와 조금이라도 흔적을 찾아내려는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하는 자신이 너무나 싫었다. 싫지만 이 행동을 멈출 수는 없을 거다. 비라는 날씨가 사라지기 전까진 계속 반복될 거라는 걸 알기에.

 

그 얼굴이, 상황이, 마지막 모습이. 떠오르기 전에 다른 것들로 가득 채워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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