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리주(드림주) 외 오리지널 캐릭터가 나옵니다(캐릭터명: 이얀).
우리 사이에 거짓은 없었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중앙청 지휘사 위련은 제 휘하에 있는 신기사 안화를 좋아한다. 과장 조금 보태서 중앙청 전체가 안다고 할 수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심지어 당사자인 안화도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아니, 애초에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람이 안화였다. 뛰어난 관찰력을 지닌 그가 호감을 갖고 있는 상대의 의중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는가.
안화가 위련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그건 바로 위련의 안위 때문이었다. 중앙청의 주축으로썬 부적절한 생각이지만 안화는 위련이 흑문 같은 위험한 일에서 손 떼길 바랐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라도 저와 엮이면 위련이 떠나고 싶을 때 떠나지 못할까봐, 단지 그 이유 하나로 그를 거절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위련은 중앙청에 남아있고, 안화는 그 곁을 지켰다. 서로의 곁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은 만족했다.
“뻥치네.”
신기사 이얀은 그리 운을 뗐다. 제 앞에 놓인 잔에 흘러넘치도록 술을 콸콸 들이부은 그는 비소를 감추지 않고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이야 좋겠지, 근데 나중에 가면 미치고 팔짝 뛴다. 나도 쟬 좋아하고, 쟤도 날 좋아하는 걸 뻔히 아는데 아무 사이도 아니야. 이게 무슨 뜻인 줄 알어? 다른 사람이 대시해도 막을 명분이 없단 말이야.”
알고는 있어? 이얀은 제 앞에 앉아있는 안화에서 삿대질했다. 다소 예의 없는 언행쯤은 익숙하다는 듯 안화는 별다른 지적 없이 제 잔을 들었다. 가볍게 한 모금 넘긴 안화는 여전히 성내고 있는 상대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위련이 다른 사람에게 흔들릴 거라 생각하지 않는데.”
“그건 모르는 법이지. 걔도 사람이야, 안화. 감질맛만 나는 관계엔 쉽게 지칠 수밖에 없어.”
“그럼 겨우 그 정도뿐인 감정인 거지.”
“그리고 너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고.”
그 때 되면 위로주나 한 잔 사줄게. 이얀은 어느새 비워진 제 잔을 안화에게 들이밀었다. 적당히 좀 마시지. 안화가 잔에 술을 가득 채워주자 이번엔 이얀이 술병을 건네받아 안화의 잔에 부었다. 졸졸 채워지는 잔을 보며 안화가 말했다.
“딱히. 위련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지. 그건 내가 막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니까.”
“진짜로?”
이얀은 한쪽 손으로 턱을 괴곤 삐딱하게 안화를 바라봤다.
“너, 위련이 찬 이유가 너랑 사귀면 나중에 접경도시 떠나고 싶을 때 떠나지 못할까봐 그런 거라며. 그런데 위련이 다른 사람이 사귀어도 괜찮다고? 네가 잘도 잠자코 보고 있겠다.”
“생각이 달라졌어.”
응? 이얀은 손에서 턱을 떼 몸을 똑바로 세웠다. 안화는 괜히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다 말했다.
“위련은 거대 흑문 사건 이후에 중앙청을 떠날 거라 생각했다. 줄곧 그렇게 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까지도 남아있지. 나는 그게 순전히 나 하나 때문에 그런 거라 생각했다.”
이얀은 별다른 추임새 대신 묵묵히 그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보일 수 있는 발언이었지만 그 안화가 저렇게 판단한데엔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얀이 딱히 지적할 필요는 없었다.
안화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금방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카지나 이자크, 와타리… 그 외에도 이곳에 남아있을 이유가 생겼어. 겨우 연인이 하나 더 생긴다고 달라질 건 없지.”
“근데 왜 고백을 안 해? 그 연인 자리를 꿰차고 싶지 않아?”
이얀은 흥미로운 듯 상체를 들이밀었다. 안화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평소에는 눈싸움이라도 하자는 듯 물러서지 않았는데 저리 쉽게 고개를 돌리다니… 뭐가 있는데? 이얀이 집요하게 파고들자 안화는 끝내 입을 열었다.
“했었다.”
“응?”
“근데 거절당했어.”
“으응?”
덤덤히 말하는 안화를 보고 이얀은 제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의아했다. ①안화가 이미 고백을 했는데 ②위련이 찼다고? 황당함에 게슴츠레 뜬 이얀의 눈을 미처 읽지 못한 안화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 후로 쭉 생각해보니, 애초에 위련이 나를 좋아하는 게 맞는지 의구심이 들더군.”
“너무 생각한 거 아냐? 그러면 깔끔하게 직장 동료, 친구 관계로 정리했겠지 위련이 뭐하러 좋아하는 척을 하겠어?”
“본인도 거짓인지 모르겠지. 아마 위련은 타인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다.”
말을 마친 안화는 속이 타들어 갔는지 단 한 모금에 잔을 비었다. 텅 비어진 안화의 잔을 본 이얀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지금까진 괜찮다고 말해도 위련 쪽에선 마음이 타들어가는, 그런 답답한 상황인 줄 알았는데 정반대인 모양이었다. 무슨 작정하고 꼬아놓은 아침 드라마도 아니고 이런 관계가 다 있지?
이얀은 머리를 손으로 짚었다.
“그래서? 맘 정리 끝냈다, 이거야? 아니면 맘 정리 하려고 같이 술 좀 마셔달라고 부른 거야?”
“….”
둘 다 아닌가봐. 한참이나 입을 다문 안화의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이얀은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푸하! 시원한 감탄사와 함께 일부러 술잔을 탁 소리나게 내려놓은 이얀이 말했다.
“그럼 널 좋아하게 만들면 되잖아.”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지.”
“그래도 해보지도 않고 놓치는 건 아쉽잖아. 보아하니 너, 위련을 놓아줄 마음이 일도 없는 거 같고.”
말을 마친 이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에 걸려있던 가방을 집어든 이얀은 안화에게 입구를 향해 고갯짓했다.
“야, 일어나. 가자.”
“어딜?”
어디긴 어디야. 이얀은 씨익 웃었다.
“이얀, 이쪽이에요. 아, 안화랑 같이 왔네요?”
앙투아네트가 이얀 뒤에 멀뚱히 서있던 안화에게 손을 들었다. 그들이 들어온, 손님들로 복작복작한 가게는 가리에가 일하고 있는 선술집이었다. 안화는 테이블에 올려져있는 술병들을 슬쩍 훑어봤다. 이미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는지 웬시는 이미 테이블에 엎드려있었다.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이얀은 앙투아네트와 웬시를 번갈아 보다가 한 사람이 부족한 걸 보고 입을 열었다.
“앙투, 위련은?”
“잠시 통화하러 밖에 나갔는데 못 만났나요?”
“엇갈려는갑네. 뭐, 잘됐지.”
곧바로 몸을 돌린 이얀은 안화를 꾸역꾸역 밀어냈다. 별다른 저항 없이 가게 밖으로 내보내진 안화는 양손으로 각각 미닫이문과 벽을 짚어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이얀을 보았다.
“썸이든 러브라인이든 뭐든 썸씽을 만들려면 일단 두 사람을 붙이고보는 게 답이지. 그러니까 위련이 픽업해서 잘 가라.”
그리곤 쌩하니 문을 닫았다.
시야를 꽉 채운 동양풍 문을 보며 안화는 한숨을 쉬었다. 정말 하나부터 열 끝까지 제멋대로인 녀석. 나름 위해준다고 하는 행동이긴 한데 말이야. 다만 이얀에게 미처 말하지 못한 점은 바로 차인 날이 어제였다는 것이다. 말했으면 분명 놀리기 바빴겠지…. 안화 본인은 괜찮지만 위련이 난감해 할까봐 일부러 오늘 하루 종일 그를 피해 다니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그냥 혼자 돌아가기엔 가게 주변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는 위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일단 찾아보고 멀찍이 떨어져서 괜찮은지만 확인할까. 그가 고민하고 있을 때 뒤편에서 기분 좋게 취한 주정뱅이의 콧노래 같이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안화다. 안화~”
술 탓인지 아니면 그냥 평소처럼 그런 건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위련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비틀 거리는 모양새가 위태로워보였지만 본인은 꽤 기분 좋아보였다.
“보고 싶었어, 안화. 되게 오랜만에 보는 거 같아.”
흐물거리던 위련이 균형을 잃자 안화는 급히 그를 붙잡았다. 이 상태면 이대로 다시 가게 안으로 들여보낼 수도, 혼자 집에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가자. 집에 데려다줄게.”
“응? 하지만 앙투아네트랑 웬시한테 얘기는 하고 가야….”
“이얀이 말했을 테니 걱정마.”
응, 알았어. 위련은 꽤 순순히 안화의 뒤를 따랐다. 어제 일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아닌지 안화의 옆에 착 달라붙은 걸음걸이엔 망설임이 없었다. 술의 힘일까? 저를 향해 배시시 웃는 위련을 보고 안화는 끝내 입을 열었다.
“위련, 어제 일 말인데….”
“잘 모르겠어.”
순간 위련의 걸음이 뚝 멈췄다. 몇 발자국 앞에서 안화가 뒤돌아보자 위련은 애꿏은 제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지금까진 안화가 나를 좋아한다고하면 그냥 기쁠 줄 알았는데… 막상 그러니까 잘 모르겠어.”
그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리 덧붙였다.
“그래도 대답 안하고 도망간 건 미안해.”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어.”
사실 안화는 고백하기 전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완벽하게 예상하고 있었다. 다만 그가 놓친 점이라면 안화의 말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위련이 도망 가버린 것이겠지.
안화의 눈치를 슬쩍 살핀 위련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만약에 알고 보니 내가 안화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어떡해?”
“그러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안화는 그래도 괜찮아?”
“그렇진 않아.”
대답하는 와중에 “그럼 널 좋아하게 만들면 되잖아.” 라고 말하던 이얀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정말 말은 쉽지…. 안화는 눈을 감았다.
“내 감정을 네게 강요할 수 없으니까. 네가 마음을 다 잡을 수 있도록 내가 노력하는 수밖에.”
다시 천천히 눈을 뜨면서 안화는 위련과 눈을 마주했다. 티끌 하나 없는 맑은 금색 눈동자를 한껏 눈에 담은 안화는 잔잔하게 말을 이었다.
“기다릴게. 네가 기다렸던 만큼, 아니, 그보다 더.”
푸른 눈동자엔 한 치 흔들림도 없었다. 그리 말하면서도 그는 위련이 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고 있으리라. 그 자신만만한 여유를 마주하고 있자니,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위련은 생각했다.
그야 우리 사이에 거짓은 없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