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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에 거짓은 없었다. 주영은 어찌 생각할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도무지 유지될 수 없는 게 우리의 관계인데, 내가 어찌 그것에 의문을 품겠는가. ‘아만’이라 불리며 자라온 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한 진심이고 진실이라 말할 수 있다. 나는 그를 믿고 있고, 이 관계의 결속력을 믿고 있노라고 말이다.

 

주영은 내게 충성을 보이고, 나는 그런 주영에게 신뢰와 확신을 준다.

 

자(字)를 받지도 않았을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그 법칙은 황제가 두어 번 바뀔 동안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이어져왔고, 결국 지금의 형태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군(君) 주영은 신(臣). 같은 군복을 입고 있어도 눈높이가 다른, 그런 관계 말이다.

 

‘도련님, 저는 언젠가 도련님께서 큰일을 해낼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어르신 말씀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사실, 아만이라는 이름도 멋있지 않습니까? 전 언제든 도련님의 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놓겠습니다.’

 

아아. 그게 정녕 10살짜리 입에서 나올 말이란 말인가. 그 당시엔 뭐가 이상한지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다. 물론 나 또한 그 정도 나이밖에 안되었기에 좋다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나는 그냥 맞장구를 친 게 다이지 않은가. 어찌 어린것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올 수 있었는지, 이 나이를 먹고 생각해봐도 놀라울 따름이다.

 

주영은 예부터 제 분수파악이 빠르고 살아갈 길을 찾는 것에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은 가문의 서자라서, 게다가 아들도 아닌 딸이라서, 정말로 아무 쓸모가 없어서’ 그래서 우리 집으로 보내진 것이니 나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잘 보여야 했을 거란 건 이해하지만, 어떻게 그리 어린 나이에 내게 가볍게 충성을 맹세할 수 있었을까. 그건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 눈칫밥을 먹으며 자란 어린아이의 처세술도, 낭만적인 일을 좋아하는 소녀의 가벼운 장난도 아니었다. 그건 그야말로, 장수가 주군에게 바치는 충의 그 자체였지.

 

“주영.”

“네, 도련님.”

 

어린 것들의 진지한 맹세는, 내가 ‘맹덕’이라는 자를 받고 주영이 ‘강소’라는 자를 받게 된 날 다시 한 번 확실한 형태로 굳어지게 되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질문으로 말이다.

 

“언제까지고 나를 따르겠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나를 따른다는 건, 내게 충성하겠다는 거고 말이야.”

“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내겐 그 어떤 거짓도 고해서는 안 돼. 그게 가능하겠나?”

 

그렇게 말하는 나를 보던 주영의 표정은 어땠던가. 지금은 세월 탓에 기억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확실한 걸 말하자면…. 그 녀석은 웃고 있었다. 마치 이런 질문을 해주어서 기쁘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이 상징이나 다름없던 그 치고는 드물게도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이리 대답했었지.

 

“전 이 집에 온 이후로,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 정도는 어렵지도 않죠.”

“…진짜인가, 그거?”

“네. 그리고…, 도련님도 딱히 제게 거짓말을 한 적은 없지 않으셨지 않습니까? 비록, 다른 분들 앞에서는 그렇지 못하셨던 탓에 ‘아만’이라고 불리게 되셨지만 말입니다.”

“그건 말 안 해도 되잖아?”

“아하하.”

 

그때 제법 진심으로 발끈한 나를 보며 결국 웃음을 터뜨린 너는, 검술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 무인이라기보다는 그냥 그 나이대의 처녀 그 자체였는데. 나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너는 그냥 평범한 여식으로 자라 조가의 며느리가 되거나 하후가로 시집을 갔겠지. 그리 생각하면, 역시 묘한 기분이 든다. 우리의 관계는 결코 수평적이지 못하지만, 만약 동등한 위치에 섰다면 절대 함께할 수는 없었을 것만 같아서.

 

‘녀석은 그걸 알고 내게 처음부터 신하의 자세를 보인 건가.’

 

그런 생각도 해봤었지만, 아마도 그건 아닐 것이다. 만약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이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우리 사이엔 거짓이란 없었으니까, 분명 그런 생각으로 바친 충성이라면 머리가 크기도 전에 눈치 챘을 터.

그러니 나는 언제나 그를 믿을 수 있었고, 주영도 나를 믿는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아, 그래도 역시.

‘아만’이라는 이름도 멋있지 않냐 물은 건, 거짓말같이 느껴질 때가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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