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사이에 거짓은 없었다. 그것은 서로가 원해서 얻은 진솔함이 아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강제성 가까운 결백에 가까웠다.
눈을 마주보고 있으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손짓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모든 것들. 무얼 생각하는지, 무얼 말하고 싶은지, 지금 기분은 어떠한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불순물 하나 없는 맑은 연못의 바닥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그 감각을, 분명 너도 느끼고 있을 테지. 우리는 지나치게 닮아있고, 그런 와중에도 ‘같다’고 말하기에는 분명이 차이점이 있는 존재들이었으니까.
“자. 조금 손봐놨어. 이젠 예전보다 체력소모도 덜 되고 보관도 간편할 거야.”
3일 만에 돌려받은 나의 생체보패는 자그마한 구슬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대체 무슨 기술을 써야 살아있는 보패를 물건의 형태로 바꿀 수 있는 걸까. 곤륜 최고의 보패제작자의 실력이란 이 정도는 되는 건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쓸데없이 조잘거리는 건 좋지 않다고 배운 나는 그저 고개를 꾸벅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할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태을진인 님.”
“뭘~, 나는 원래 보패를 손보는 걸 좋아하니까 이런 일은 부담가질 거 없이 부탁해줘도 돼.”
“네….”
말은 저렇게 하시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나를 신경 써 주시는 건 분명 스승님을 의식하고 있어서겠지. 나는 바보가 아니다. 아직은 어리긴 해도, 내 나름 눈치라는 게 있고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 같은 것도 다 읽을 줄 알았으니까.
“그럼, 혹시 문제생기면 언제든 또 맡겨줘! 비렴에게 안부 전해주고.”
“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나를 도와준 분이니 웃어야 한다. 아니, 스승님의 지인이기도 하고 이 곤륜의 동료이기도 하니까 밉보이지 않게 굴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최대한 상냥한 미소로 대꾸한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연구실을 나섰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원래 모습으로 돌리면 되는지 방법을 물어보지 않았네.’
엄지와 검지로 구슬을 굴린 나는 이 안에 들어있을 커다란 새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따로 비행용 보패가 있는 것도 아니고 황건 역사가 있는 것도 아닌 내가 이동할 방법은 거대한 새의 모양새를 한 이 생체보패에 타는 것뿐인데, 원형으로 되돌리는 방법을 모르니 어디로도 갈 수 없게 되었다.
다시 가서 묻기엔 민망한데. 괜히 바보같이 보이기도 하고. 시간만 있다면 혼자서 알아내겠지만, 얼른 돌아가지 않으면 스승님이….
“양랑?”
“아.”
이런, 꼭 너는 이렇게 가장 마주하기 싫은 순간에 나타나 나를 곤란하게 한다.
머리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효천견을 타고 가다가 멈춰 서서 날 바라보는 양전이 보였다.
“양전, 어디 가는 길이야?”
“비렴진인 님께. 스승님이 그쪽에 계신 것 같아서.”
“…아.”
스승님께선 인기도 좋으시지. 그러고 보니 아까 손님이 오신다는 이야기를 하셨던 것도 같은데, 그게 옥정진인 님이였구나. 생각해 보면 두 분은 유난히도 친해서 자주 서로의 거처에 오가셨으니, 오늘의 손님이 옥정진인 님이라 해도 별로 놀라울 것도 없었다.
“너는 왜 여기…, 아. 연구실에 다녀오는 길인가?”
“정답이야. 그래서 말인데, 나 좀 태워줄 수 있어?”
“…효천견에? 수성오조는 어쩌고?”
“이런 모습이 되어서 말이야.”
내가 구슬이 된 수성오조를 내밀자, 양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기웃거리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왕!’ 제 주인과는 다르게 살갑게 날 반기는 효천견은 가벼운 목소리로 짖더니 몸을 숙여주었고, 양전은 자세를 고쳐 앉아 내가 앉을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마침 가는 길이니까 태워주는 거야.”
가벼운 농담을 하며 미소 짓는 얼굴이 참으로 아름답다. 물론 그 잘생긴 얼굴위에 그려지는 웃음은 너무나도 완벽해 되레 인공적이게 느껴지지만…, 어차피 다른 사람들은 그런 묘한 이질감 같은 건 신경도 안 쓰고 그저 잘생겼다는 말만 하겠지.
옥정진인의 문하생, 천재도사 양전. 그 실력만큼이나 얼굴도 곱고 예의 또한 바르다.
그것이 그의 대외적 이미지겠지만, 나는 다 알고 있다. 사실 이 녀석은 굉장히 재수 없고, 스승인 옥정진인 님 외에는 아무도 안 믿고, 진심 같은 건 보여주지 않는 엄청나게 방어적인 사람이라는 걸.
“그 모양새는 개조의 결과인 거야?”
“어? 아…, 응.”
이런. 다른 생각 하고 있는 걸 들켰다. 분명 내가 속으로 본인을 흉보고 있다는 걸 다 눈치 챘겠지. 우리 사이에 숨길 수 있는 건 없었으니까.
뒷담을 하다가 들킨 것만큼 어색한 상황이 어디 있을까. 이 민망함을 수습하기 위해 나는 자발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양전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스승님께 ‘수성오조를 사용하는데 너무 에너지 소모가 많이 되어 힘들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걸 기억한 스승님이 태을진인 님께 부탁해서 조금 더 사용하기 편하게 보패를 개조해 주셨어.”
“아하.”
“…더불어서 수납도 편하게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 주셨는데, 어떻게 원래대로 돌리는지 안 듣고 나와 버려서 어째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어.”
“흐음, 결국 미련한 짓을 했다는 거구나.”
아아. 저 얄미운 주둥이. 하지만 반박할 수 없어서 뭐라 말할 수도 없다.
내 일그러진 표정을 본 양전은 소리죽여 웃더니, 고개를 돌리며 흘리듯 중얼거렸다.
“그냥 던져보지 그래? 깨지면서 나올 수도 있잖아.”
“그러다 정말 와장창 깨지기만 하고 수리해야 되는 상황이 오면 네가 책임 져 주는 거지?”
“그 정도로 깨질까? 곤륜 제일의 보패 제작가의 손을 거친 보패가?”
“…돌아가서 해 볼까.”
사실 제일 정확한 방법은 돌아가서 물어보고 오는 거겠지만, 그게 가능할 것 같았으면 아까 양전을 만나기 전 가서 물어봤겠지. 양전도 분명 내가 왜 굳이 물어보러가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기에 ‘미련한 짓을 했다’고 한 것일 테고, 그 이상의 핀잔도 주지 않은 게 분명하다.
양전도 나만큼, 혹은 나보다 더…, 바깥에 보이는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으니까.
“침묵은 미덕이지만, 입 다물고 있는 걸로 해결되는 문제는 적어.”
“…그래서 너한테 말했잖아?”
“나 외의 사람에게 말하지는 않잖아.”
“너도 나 외의 사람에겐 신경을 긁는 소리는 하지도 않잖아. 모범생 흉내 내기 바쁘지.”
‘한 마디도 안 진다니까.’ 기가 차다는 듯, 혹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중얼거린 양전이 효천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개를 돌리고 있어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아마도 양전은 지금 웃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조각가가 새겨놓은 것 같은 완벽한 미소가 아니라, 독약이라도 들이마신 것 같은 쓴 미소를 말이다.
사실 ‘아마’라는 수식어는 필요 없다. 그래. 안 봐도 알 수 있다. 그거야…, 말하지 않았나. 우리 사이에 거짓은 없다고.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사이엔 안전거리도 방어벽도 없었으니까.
그러니,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너도, 나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