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타니님.png

첫문장 드림 합작

삼국지톡 연인드림

주유X이소효

지은이 타니

 

  우리 사이에 거짓은 없었다. 그 사실은 악재였다. 그리고 그는 도톰하게 부서지는 이빨들을 상상한다. 소중한 사람이 죽어 나갈 흉몽이라고 했다. 아무렴 괜찮았다. 그가 이러하다는, 괜찮다고 은연중 넘기는 성정인 것을 그의 연인이 알았다. 마음 아파하는 연인의 낯은 자애로워서 그로 하여금 가증스러움이 치밀어오르게 했다. 더욱더 끔찍한 점은, 사실 그 측은해하는 마음이 한 치의 위선도 없는 진실이라는 바였다. 결국 가증스러워함에는 뼛속 깊게 배인 자기혐오가 있었고, 공격성이라는 표출이 따라붙었다. 애꿎은 증오와 더는 내게 오지 말아 달라는 심리 기전. 그것을 자학으로 내면화했더라면 당신은 좀 더 좋은 연인을 만나야지, 하는 가식적인 도덕심이 생겨날 수도 있었겠으나 거기까지 가기에는 착함이라는 것과 궁합이 맞지 않았다, 그는.

 

  그의, 이소효의 방어적인 심장은 잘 꾸며진 원림(園林)에서 구덩이를 파 만든 연못에 맨발을 담그고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을 보면서도 눈물이 생겨나지 않게 만들었다. 거짓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상복을 입고 앉아 불경하게도 벗어던진 신과 버선을 곁에 두고 이소효는 그런 마음을 품는다. 진짜 염원하는 갈망은 아니었다. 그런 것을 가질 정도로 충만한 영혼을 지닌 인간이 애초에 아니었다. 내가 조금만 더 당신에게 잘 보이려고 했다면, 좀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을까요. 공근. 난 지금 사 년 전의 꿈을 떠올리고 있어요. 그 흉몽이 당신이 죽는 꿈이었다고 연결 짓는 것도 어처구니없지만 그렇게 용을 쓰다가 죽었네요, 당신은. 그나마 온전히 전사한 것이 아니라서 덜 억울하다고 생각해요. 인간인 이상 아무리 염세적이고 허무한들, 치솟는 복수심과 한은 있을 테니까요. 나는 그런 것을 이겨내고 당신의 원수를 갚을 자신이 없어요. 결국 파멸하겠지요.

 

  그는 하릴없이 생각을 이어가다가, 이윽고 잠긴 흰 발이 일렁이는 투명한 물에 비하면 한없이 보잘것없는 몸뚱아리요, 떨어져 나갈 물성의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주공근은 물과 같았다. 그의 주변에는 지금 이소효의 발에 아무 물고기가 다가오지 않는 것과는 대조되게도,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맑은 자연의 경관을 그는 만들어냈다. 그리고 홀로 하늘이 되어 서려 하지 않았다. 오직 연못의 수면으로서, 하늘을 비췄다. 손씨 일가를 그리도 섬겼다. 책과 권을 하늘로 받들면서. 아무튼, 거짓이 있었으면 그 환상을 위해서라도 나는 애썼을 것이고, 그럼 당신에게 어울리는 연인이 되었을 텐데. 거짓된 나를 보았더라면, 당신은 나를 덜 연민하고 힘을 불어넣으려는 노력을 그만하였을 터 아닙니까. 나는 사실대로 당신 앞에 흐트러진 의관으로, 퀭한 눈으로 서면 당신이 나를 그만 버리고 경멸할 줄로만 알았지. 오히려 다가올 줄 알았겠습니까. 내가 당신을 너무 얕봤어요. 이제는 다 그저 부질없지만. 조금 경이로운 사실이 있다면, 당신의 진실은 보통 사람들의 진실답지 않았다는 점. 인간다워야 하는데, 추해야 하는데 조금도 추하지가 않아서…. 나는 당신과 멀어지려고 했던 것 같네요.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잖아요. 당신이 나를 일차적으로 버리지 않았기에, 이제 기대할 것은 당신과 알아갈수록 당신 역시도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 그거 하나라고 믿었거늘. 나에게 베풂으로써, 우월함이라도 느끼려나 그리 생각했는데.

 

  이소효는 병상에서 자신을 쓰다듬던 주공근의 여전히 기품 있던 음성을 기억한다. 진저리가 쳐진다. 충분했다고? 내가 당신에게 충분했다고? 바보 같은 사람이 아닌가. 세상이 나를 다 떠났다. 나는 피와 살로 된 쓸모없는 것이었다. 젊은 날의 한때는 나를 숨기고 악취를 가려보고자 하였지만, 그것은 쉽게 탄로 났다. 그래서 결국은 내가 이리도 더렵다며, 흉한 본연을 떨치며 군중들 사이를 마구 헤집고 다녔다. 기대가 없으니 상처받을 것도 없었고, 자신을 속이는 기분도 더 나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사랑해주지 않는 점이 이소효에게는, 딱 자신에게 맞는 형벌 같아서 정말 좋았다. 혜안과 능력이 모자라 세상을 바꾸지도 못하는 계집, 그저 눈만 높은 계집이 어딜 감히 천하에 이름 석 자를 남기려 하는지.

 

  그 얘기를 한 번은 술김에 한 적이 있었다. 금을 타던 주유의 손은 멎었고, 그것이 이소효는 못내 짜증이 났다. 그리고 그가 해오는 다정한 말을 또다시 비웃고, 조금이라도 싹트려는 치유의 감정을 짓눌렀다. 너는 명성을 얻고자 한 것이 아니구나, 그저 사람을 구하고 싶었던 것이지. 어쨌거나, 결과는 같지 않은가. 그럴 바에야 차라리 자신의 무능함에서 느끼는 좌절을 허영으로 돌려 슬픔을 내쫓는 편이 낫다. 그렇게 이소효는 거짓이란 돌덩어리를 자신을 들여다보는 자신에게도 연결고리로 두었고, 세상과의 관계 설정에서 역시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였다. 오직 주유에게만 까발려졌다. 그런데도 이해받는 기분이란. 이제까지 축적해온 장벽들의 돌을 하나하나 빼내 허물고 세상에 다시 용기를 내 다가가야만 할 것만 같아 이소효는 그것이 싫었다. 세상에 기대를 더 품고 싶지 않았고, 자신이 자신의 모습으로서 긍정될 수 있단 것도 그저 부조리하게만 느껴졌다. 주유가 내밀어오는 이해의 감정에서 아무리 눈을 비비고 보아도 음험함이, 내려다보는 시선이 없어서 더 낭패감을 느꼈다. 이 정도나 되는 사내가 정말, 이런 여인을 사랑하여도 되는가. 그런데도 결국 그의 곁에 붙어 있는 자신이란. 이소효는 마침내 무딤을 표방하는 한 가운데에서, 찰나 얇은 천을 걷고 나오듯, 발끝으로 거세게 수면을 때렸다. 부드럽기만 했다. 물이 찰랑거렸고, 튀어 오르는 물방울마저도 그저 시원하고 해를 주는 것이 없었다. 우리 사이에 거짓은 없었다. 이소효는 다시금 생각한다.

 

  내가 바로 거짓이 뭉치고 구른 응어리였다. 당신은 그것을 간곡하게도 녹였다. 그래서 과연 남은 이소효는 무엇인가?

 

  그는 한기가 슬슬 오르는 것을 느끼고 발을 빼낸다. 개과천선이라도 하여, 세상과 나 사이의 거짓을 없애리? 그것이 당신이 이 세상에 남기고 가는 유산인가? 답을 바라는 것처럼 그는 하늘을 고집스럽게 응시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해주지, 같은 배짱을 발휘하기에는 그는 너무 한심했다. 하지만 알아버렸다. 이제부터는 평생토록 자신은 앞으로 살아갈 방향이란 주제에 대해 번뇌할 것임을. 악재였다, 참으로. 당신은 내게서 거짓을 걷어냈기에, 온당히 당신이 누려야 할 낭만적이고 고운 연인의 존재라는 것을 갖지 못했고 그로 인해 열심히 살던 삶에 완벽성을 더하지 못하고 죽었다. 나는 당신이 나를 다 안다는 이유로, 조금이라도 나의 본연을 숨기고 군자가 되는 데에 급급해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살아버렸다. 악과 무심함을 세상에 보탰다.

 

  그리고 이제는 죽은 당신이 나를 뒤흔들어놓는다. 기이한 희망을 줘버리지 않았는가. 당신 같은 타인이, 세상에 또 있을 것이라는. 그 어느 것도 그다지 당신같진 않겠지만 적어도 현세에 나의 거짓을 바라지 않을 이들도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상상을 주어, 나를 자꾸 흔들지 않는가. 나는 나를 고칠 만큼 굳세지 못한데. 결심을 해봤자 끝에는 용렬함 때문에 성공을 못 하고 주위를 실망하게 할 따름인데. 그런데도 쉽사리 체념하지 못하고, 이제는 평생을 동요하겠구나. 정말이지, 악재예요. 거짓도 한 톨 품지 않고, 세상에 희망을 주고 가다니 참으로,

 

“무서운 사람 같으니라고.”

 

  이소효는 그렇게 중얼거려본다. 그리고 곧 신을 발에 끼우고는, 옷을 털지도 않고 머물렀던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득 품었던 복잡한 심사가 소복이 쌓여서 머리를 달구고, 가슴을 저리게 한다. 그는 이 감정을 안다. 오랫동안 결국에 품어왔던 감정에 일부로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다. 진저리치면서도 곁에 있었던 까닭은, 불퉁한 소리를 해대면서도 이렇게 상복을 입고 멍하니 후원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하지만 거짓이 없는 건, 우리 사이였지 나와 나의 사이가 아니야.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터져 나오려는 언어들을 감추며 이소효는 그만 본당으로 돌아간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에만, 거짓이 그나마 옅었다.

00:00 / 04:02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