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암화님.png

 우리 사이에, 거짓은 없었다. 거짓이라니. 고개를 숙인 에즈메이는 소리 내어 쿡쿡 웃었다. 진실을 고하기도 바쁜 사랑이었고, 하루 내내 사랑한다 매달리며 울어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에즈메이는 머리를 쓸어올리곤 하이드를 떠올렸다. 그는 거짓을 고한 적이 있을까.

 

눈을 굳게 닫았다. 같잖게 날 희롱하는 생각들이 귀를 파고들 듯 시끄럽게 굴었다. 그는 널 사랑하지 않아, 그는 네게 진실을 말하지 않아, 네 감정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흔들리는, 거기까지. 에즈메이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이 이상 복잡한 생각들은 논리적으로 할 테니, 여기선 조용히 구경이나 하고 싶어. 누구도 듣지 못할 목소리로 본인에게 속삭이곤 앞에 놓인 차를 홀짝였다. 하이드는, 언제 들어올까?

 

오래간만에 생각도 이성도 없이 무턱대고 하이드를 기다렸다. 밤에 찾아올 그의 모습이 두려워 평소에는 꾸역꾸역 먼저 자러 갔는데, 오늘은 그가 무슨 모습을 하고 있든 에즈메이는 하이드를 봐야만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두컴컴한 창문 밖, 의자에 몸을 둥글게 말아 앉아있던 에즈메이의 귀가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쫑긋거렸다.

 

“에드워드.”

 

보고 싶었어요, 애써 옅게 웃으며 벌떡 일어나 하이드의 목에 팔을 감았다. 제가 오늘도 에드워드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게요, 네? 축 처진 눈이 에즈메이의 분위기를 가라앉게 만들었다.

 

“페리, 그 사납던 눈이 오늘은 무슨 일로 이런지요.”

 

하이드가 에즈메이의 눈가를 손으로 달콤하게 쓸며 물었다.

 

“사납다뇨, 평소 그렇게 보였다니…”

 

웅얼거리며 말을 잇지 않는 에즈메이에 하이드는 낄낄 웃었다. 압니다, 왜 모르겠어. 우리 겁쟁이. 나름 애칭이랍시고 만든 호칭이었다, 에즈메이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애칭이었다. 사랑이 담긴 별명. 에즈메이는 무겁지 않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러고는, 하이드의 손을 잡고, 의자에 나란히 앉아 어깨에 꾹 기대었다.

 

“에드워드”

“응, 페리.”

“에드워드 하이드.”

“에즈메이, 왜 자꾸.”

 

저 본 적이 있어요.

 

짧은 말 하나에 나름 크다고 생각했던 집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하이드는 에즈메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걸 멈추지 않았고, 에즈메이는 하이드의 어깨에서 머리를 떼려고 하지 않았다.

 

“뭘, 본 적이 있는데?”

 

드디어 하이드의 손이 멈췄다. 그래도 에즈메이는 꿋꿋하게 하이드의 한쪽 어깨를 빌려 편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에드워드가 사람을 죽이는 거요.”

 

비 오는 골목 바닥에 흐르던 물들을 기억해요. 빗물이랑, … 긴장감이 맴돌았지만 에즈메이는 말을 이었다.

 

“에드워드에게 저는 뭐죠?”

“알면서 왜 여태 말을 안 했지?”

 

“제가 먼저, 물었어요 에드워드.”

 

... 뭐겠어, 그냥 겁쟁이인데. 의기소침한 목소리에 에즈메이가 코웃음 쳤다. 에드워드는 겁쟁이를 참 다정한 눈으로 쳐다보는군요.

 

“왜 여태 말하지 않은 거야?”

 

이번엔 에즈메이가 답을 해야 할 차례였다.

 

“에드워드가 저를 사랑하는 게 불쌍해서요. 어쩔 수 없다는 눈빛으로 절 바라보는 게 아쉬워서요. 절 어여삐 여기는 게 빤히 보이는 표정이, 우스워서요.”

 

저는 그날 겁을 먹고 떠났죠. 그곳에 남아있음 죽을 게 분명하니까. 제 오판이었네요. 차라리 손에 죽을 걸 그랬어요. 알게 모르게 에즈메이는 발을 덜덜 떨고 있었다.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살인마의 앞이었다. 에즈메이는 본인이 입을 다물어야 한단 걸 인지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었고.

 

 

“내가 널 사랑해?”

 

하이드의 목소리가 그르렁 거렸다.

 

“네, 절 사랑하시잖아요.”

 

無知가 우리 사이에 있었다. 에즈메이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에드워드, 보통 사람들은. 본인을 겁내는 구경거리에 그리 다정하지 않아요. 하이드는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본인도 본인의 감정도 이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엿보였다.

 

“… 아시겠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오늘은 자리를 비울 테니, 혼자 남아 생각 좀 하시는 게 좋겠어요.

 

침울한 표정의 에즈메이는 자리에서 조심스레 일어나 문으로 다가가 슬쩍 열었다. 비가 오기 시작한 건지 투둑거리는 소리가 집안에 울렸다. 이어 들리는 문이 닫히는 묵직한 소리. 하이드는 끔찍했다. 본인도 보통의 것들과 크게 다름없음을 이제서야 눈치챘다.

 

열지 말걸, 이 찻집의 문을 열지 말걸, 차를 마시지 말걸, 찻잎의 향을 맡지 말걸. 후회로 그득한 하이드의 머릿속이 그날을 그렸다. 오늘과 크게 다를 것 없던 런던 길거리, 추적거리는 비가 거슬려 머리를 몇 번이나 쓸어올린 때였다. 앞에 누워있는 사람을 밟다가도 사람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고, 돌아보고, 또 돌아봤던. 하이드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찻집의 문을 연 순간의 에즈메이의 표정을 기억해냈다. 손짓을, 손가락을, 숨결을.

 

작은 장난이었다. 정말로. 장난과도 같은, 그런…

대체 언제부터 장난이 아니게 된 거지. 하이드는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수렁 같아서 별 수 없다밖에 서술이 되질 않았다.

 

뭔가를 깨닫는 건 언제 해도 늦은 것이다.

00:00 / 04:02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