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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에 나오는 ‘나’는 암흑기사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여성 아우라입니다. 3.0 스토리의 중요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으니 열람에 주의 부탁드립니다.

 

우리 사이에 거짓은 없었다. 언약으로 미래를 약속한 사이도, 사랑하는 사이도 아닌 그저 맹우인 우리이기에 우리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전투를 치르고 돌아가는 길에 숙련도가 높지 않은 직업으로 바꿨던 것이 문제였다. 몬스터들은 내가 쥐고 있는 무기에 따라 본능적으로 나를 상대할 수 있는가를 가늠한다. 탈것에도 타서 안심하고 원래 하려던 일을 하려 제작 도구를 들었던 순간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닉스의 입속으로 머리가 들어갔다.

빛의 전사의 몸이라는 것은 평범한 정신이 머무르기에는 무리인 육체다. 어떤 경우에서든 죽게 될 경우 몸이 에테르로 흩어져 부활 지점으로 등록해놓았던 에테라이트 앞에서 다시 합쳐진다. 살아날 수 있다고 한들 그 과정에서의 죽음의 고통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나라 해도 하루 정도는 마을 밖을 나갈 마음이 사라진다. 내가 등록해놓은 부활 지점은 커르다스 중앙고지의 용머리 전진기지. 일어나자마자 느끼는 것이 뼛속까지 얼어붙을 한기인지라 다리가 움직이는지 먼저 확인하고 가장 가까이 있는 불에 몸을 조금씩 녹였다. 최근 제작 중의 옷을 긴 팔로 바꿔서 다행이지, 아니면 불로도 추위를 녹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것을 실감시켜주는 낮은 체온을 서서히 높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늘도 성실히 보초를 서는 병사들과 상인을 제외하고는 보이지 않는다. 이전에 일을 맡겨줬던 병사 하나와 시선이 마주쳐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병사의 시선이 왼쪽 아래로 이동했다가 다시 마주쳤다. 근무 중이라 큰 소리를 내지는 못하겠지만 안에 들어가서 쉬지 않겠냐는 말을 한 것이다. 대충 알아들었다고 손을 두어 번 흔들고 아까보다는 나아진 몸을 움직였다. 내 키와 가까운 대검을 등에 메고 전투용 옷을 다듬었다. 그라면 아까의 제작용 차림으로도 온갖 소란을 떨어주며 칭송해줄 것이 뻔하지만 이왕 칭찬을 받을 거라면 가장 자신 있는 차림이 좋았다. 허리를 펴고 자세를 바르게 한 뒤 시선은 정면으로, 문 한쪽을 가볍게 밀어 열었다.

 

“오랜만이야 오르슈팡.”

“맹우여!”

귀가 간질거리는 호칭에 괜히 뿔 끝을 매만졌다. 나보다 한참은 더 큰 키가 시야를 순식간에 덮어버렸다. 처음에 봤을 땐 저 덩치로 동작이 큰 제스쳐를 마구 하는 것이 참 별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정적인 동작이 더 어색할 지경이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팔을 양쪽으로 벌리고 위로 올리고, 쉴 틈 없이 움직이며 오늘도 낯간지러운 말들을 쏟아냈다.

“너의 육체는 언제봐도 빛나는구나, 네가 들어오니 이곳이 너의 기운에 열기로 더 가득 찬 것 같아. 오늘은 병사들에게 그 멋진 기운을 전해주러 온 것인가? 그렇다면 이미 성공했구나! 나는 이미 밖의 호수에서 단련할 만큼 전달받았으니!”

“아니, 아니 이 추위에 무슨 호수야. 오르슈팡은 여기 있어야지.”

지휘관의 의자 뒤쪽에 서 있던 코랑티오의 표정이 구겨진 것을 보고 얼른 말렸다. 책상 위에 쌓여있는 서류는 오늘도 많으니 그런 쓸모없는 일을 해서 시간을 소비하게 만들 수는 없지. 오르슈팡은 조금 실망한 눈치였지만 같이 따뜻한 안에서 쉬자는 내 제안에 금방 다시 기운을 되찾았다.

“그래서 오늘은 정말 무슨 일로 온 거야? 가볍게 쉬러 온 차림은 아닌데.”

뭔가 심각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속뜻이 담겨있는 말과 눈빛에 나는 가볍게 대답했다.

“아냐 정말로 가볍게 쉬러 온 거야. 오늘은 내내 여기 있으려고. 차림이 이런건..”

속에서 작은 조소가 이어졌다.

“여긴 춥잖아. 입을만한 건 이게 최고더라고.”

“그렇구나. 어떤 차림이든 너는 멋지지만 내 눈에는 그 옷이 가장 멋있는 것 같기는 해. 아 물론 네가 전투를 멋으로 하는 것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네가 전투에 임하는 최고의 옷이라고 생각하면 네가 용맹하게 싸우는 걸 같이 생각하게 되는구나. 상상만해도 몸에 피가 끓는 느낌이야!”

어쩌면 저렇게 말을 길게 할 수 있을까 싶은 그의 말은 언제나 듣기 좋다. 그의 모든 말에 거짓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언제나 웃음을 자아낸다. 키우는 초코보와 눈이 마주쳤을 때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자꾸 올라온다 했던 말과 비슷한 느낌이다. 순수한 존재를 보면 미소짓게 되는 건 어느 종족이나 똑같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항상 너를 보면서 웃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오늘은 여기 머무를 예정이란 소리지? 그렇다면 눈의 집에서 쉬면 되겠구나. 너에게는 언제나 열어놓으라 해놓았으니 별말 없이 통과시켜줄 거야.”

“항상 고마워. 거기서 좀 쉬고 있다가 저녁에 다시 올게. 지금은 너도 바빠 보이고.”

주인의 뒤통수에 마도포라도 꺼림 없이 쏠 것 같은 눈빛의 코랑티오를 보니 더욱 빨리 일어나고 싶었다. 아쉬움이 가득 묻어나는 인사를 받아주고 눈의 집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급하게 움직였던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부활하고 난 뒤의 몸의 상태는 체온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정상이다. 문제는 영혼에 있다. 혼이 받은 충격은 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끊임없이 알려댄다. 두려움에, 그리고 나아지지 않는 한기에 팔다리가 삐걱거리고 무리하면 완전히 굳어버린다. 상처하나 없는 몸에 근육들이 움츠러들어 있는 상황은 언제 겪어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30분 정도 쉬면 사그라들어 다시 문제없는 몸이 되지만 항상 그보다 일찍 오르슈팡을 보러 가는 것이 문제다. 언제나 몸을 추스르지 않고 그를 보러 갔다. 막을 수는 없다. 이유는 옛날부터 알고 있었고 알고 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부정한 적이 없다.

삐걱거리는 몸으로 겨우 의자까지 기어가 앉았다. 용을 쓰고 난 후의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 시간을 보았다. 부활 후 길면 20분까지 이 상태를 지속하니 앞으로 10분 정도. 눈을 감고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에 다시 눈을 떴다. 들어와도 괜찮다고 말하니 시선 안에 오르슈팡이 들어왔다. 놀라서 자세를 바로 하니 긴장을 풀라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무슨 일로 왔어?”

내 물음에 오르슈팡은 손에 들린 컵을 책상에 내려놓는 것과 함께 대답했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생강차야.”

“한 기지의 대장이 이렇게 직접 가져다줘도 되는 거야?”

“너는 우리 모두에게 은인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지 않나. 이 정도는 봐줄 거다.”

이 안에서는 다른 사람도 없으니 없는 눈치를 보지도 보이지 않을 것이고 말이야. 이런, 내가 너무 눈치를 본 모양이다. 이런 편의를 봐주는 점까지 참 그답다고 해야 할까.

“꿀은 잔뜩 타줬어?”

“그럼. 네가 처음 이 차를 마셨을 때 표정을 잊을 리가 없지.”

오르슈팡의 생강차는 눈의 집이 만들어졌을 때 마셔봤다. 그때는 분위기를 깰 수가 없어서 표정만 찌푸리는 것으로 끝냈지만 그 표정을 본 오르슈팡이 몰래 꿀을 잔뜩 넣어줘서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너무 매워서 큰일 나는 줄 알았지. 그때 알피노네가 없었다면 뱉었을지도 몰라 정말로.”

“하하하 그럼 그게 뱉고 싶었던 표정이었던 건가? 너도 참 아이 같은 부분이 있다니까.”

키득거리며 웃고 생강차가 담긴 컵을 들어 조금 마셨다. 바깥과 다름없는 체온의 몸에 따스함이 들어왔다. 꿀을 잔뜩 타도 혀와 목에 남는 매운맛은 여전히 좋아할 수 없지만, 그 따스함이 좋아 계속 홀짝거리며 마셨다. 그 따스함은 코랑티오의 호통을 들은 오르슈팡이 급하게 방 밖을 나가서도 쭉 이어졌다.

 

“맹우여. 들어가도 되겠나?”

몸도 정상으로 돌아왔고 못 했던 재봉 작업을 하고 있던 밤 시간에 오르슈팡이 찾아왔다. 급하게 작업을 마치고 작업복이 아닌 전투복을 다시 입은 뒤에 들어오라 말했다. 들어오는 오르슈팡의 얼굴이 평소보다 들떠 보였다.

“이런, 지금 시간엔 편한 옷으로 입고 있어도 될 텐데. 아니면 내가 방해한 건가?”

“아, 아냐. 커르다스 구역은 아무래도 드래곤을 경계하는 구역이니까. 돌발상황이 벌어지면 바로 전투에 들어가야 하니까 그래서…”

“이곳에 있는데? 이 기지에서 네가 굳이 싸워야 할 상황은 오지 않을 거야. 만일 온다고 해도 그때는 이 오르슈팡이 먼저 나가 상대하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에이 아니야. 여기서 신세 지는 게 있는데. 이 기지의 병사들도 충분히 괜찮은 건 알지만 내가 도우면 좀 더 수월하게 끝날 전투가 더 많을 테니까.”

아까까지 재봉질하고 있었지만. 조금 찔려서 그의 얼굴을 보던 시선을 재봉틀 쪽으로 던졌다. 하지만 내게서 나오는 말이 전부 거짓은 아니었다. 정말로 전투가 일어난다면 기꺼이 나가 도울 생각이었고 오늘과 같은 실수만 아니라면 내가 이 근방에서 일어나는 전투에서 질 일은 없을 테니까. 물론 죽었던 게 오늘의 일이라 나가려면 평소보다는 조금 더 용기가 필요하긴 했다.

“너는 언제나 남을 생각해주는구나.”

불리한 것은 다 빼고 승리의 확신만을 말해준 것인데 왜인지 오르슈팡의 목소리가 가라앉아있는 것처럼 들렸다. 내가 걱정이라도 시킨 걸까? 돌렸던 시선을 그의 얼굴에 다시 돌려놓았더니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거리는 시선과 마주쳤다.

“역시 영웅이라 불릴만한 자의 마음 씀씀이야! 게다가 수월하게 전투를 끝낼 수 있다고 확신하는 그 자신감까지! 역시 완벽하지 않은 곳이 없구나! 그런 네가 매번 내 마음에 불을 지펴주는 것을 너는 알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모른다면 지금 알아줘! 아까보다 더 극한의 단련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니 갔다가… 아. 그렇지. 오늘은 내가 너를 즐겁게 해주고 싶어서 트리플 트라이어드를 익혀왔었다. 소문으로 듣자 하니 에오르제아에서는 이미 네 상대가 없다고 하던데 그 실력을 구경해도 될까?”

마음에 불이 지펴졌다는 것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없을 정도로 말을 쏟아낸 오르슈팡이 내민 트리플 트라이어드 카드에 예상치 못한 웃음이 터졌다. 정말 엉뚱하다니까. 웃음을 정리해가며 가방에서 카드덱을 꺼내 쓸 카드를 골라냈다.

“실력을 구경 하고 싶은 거면 안 봐준다?”

“음! 그런 강한 네가 보고 싶은 것이니 봐주지 말고 해다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생각하고 가장 유리한 카드를 골라내다 문득 손이 멈췄다. 애써 배운 게임인데 한 번도 못 이기고 내내 지고나면 기분이 나빠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실수한 척하며 한 번 정도는 져줄까 라는 생각이 들며 두 번째 카드 세트로서 쓸 카드를 따로 골라내려다 오르슈팡과 눈이 마주쳤다. 올곧고 진실만을 이야기하고 있는듯한 그 눈에 방금 들었던 생각이 전부 날아가버렸다. 오르슈팡만은 의심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처음에 골랐던 카드들만을 들었다.

“좋아. 시작하자.”

 

결과만 말하자면 오르슈팡의 대패였다. 규칙을 정하며 그때마다 패를 바꾸기는 했으나 모든 수에 전부 대항해본 실력의 내가 질 수가 없었다. 진지하게 카드를 골라내는 모습이 매번 귀엽기도 해서 한 번씩 웃고 말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 너는 강하 구나. 좋은 승부였어.”

“오르슈팡도 엄청나게 힘냈지. 중간에 위험한 순간이 많았다고?”

한순간 져주기로 할뻔했던 마음은 모험가의 승부욕으로 존재조차 없어져 버렸다. 게임이 다 끝난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치사했던가 생각마저 들 정도다. 그래도 승패에 상관없이 오르슈팡도 나도 기분 좋게 웃으며 놀았기에 어떤 후회든 오래 이어지진 못했다.

“이런 시간이 꽤 늦었구나. 너도 이제 오늘은 쉬어야겠지. 휴식도 영웅에겐 중요한 일 중 하나니까.”

카드를 같이 정리하고 날씨가 좋지 않으니 문 앞까지만 배웅을 나가기로 했다. 문 앞에 도착하자 오르슈팡은 몸을 돌려 나를 내려다보았다. 시선을 맞추려 올려다보자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이 떼어졌다가 금방 다물린다.

“오르슈팡?”

이름을 부르자 그의 표정이 조금 찌푸려졌다. 기지에 큰일이 있는데 내 힘을 빌리고 싶어 망설이는 것일까? 그는 내게 부탁을 할때면 언제나 망설이고 미안해했다. 모험가니까 당연한 듯 일을 시키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그런 그의 모습은 매번 신선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거면 말해줘.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도와줄 테니까. 모험가를 하며 온갖 부탁은 다 받아봤으니 미안해하지 말고. 말해준다면…”

“아니.”

오르슈팡이 내 말을 끊고 말했다. 고개를 젓고선 표정을 풀었다.

“오히려 네가 내게…아니, 아니야. 네가 원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도리겠지…오늘 같은 날을 보내고 싶다면 언제든 나를 불러다오. 맹우여.”

그리고는 악수라도 하자는 듯 손이 내밀어졌다. ‘오늘 같은 날’이라… 오르슈팡이 했던 말을 중얼거려보았다. 다음에도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면, 나는 웃으며 그 손을 잡았다.

“그럴게. 오늘은 즐거웠어.”

그 말을 듣자 오르슈팡은 언제나와 같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네가 지켜봐 주고 있었다. 앞만 보며 뛰어가고 있는 나를, 이슈가르드의 평화를 위해 싸우는 모험가인 나를, 맹우라, 영웅이라 불러준 나를, 네가 지켜봐 주고 있었다. 내가 나아가는 길에는 그 무엇도 방해가 될 것이 없었다. 빛의 가호 아래에서 살아 움직이는 시체나 다름없는 몸을 몇 번이고 일으켜서 결국 승리를 거머쥐는 모험가의 삶은 죽음을 둔감하게 느꼈다. 쓰러진다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 죽는다면 부활 지점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런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준다면 꺼림직하게 생각할 것이 틀림없어서 알리지 않았다. 적어도, 아주 적어도 내가 사랑한 너에게만은 알렸어야 했는데. 내 뒤를 봐주는, 필요 없다고 해도 방패를 들고 나를 지켜주는 너에게만은 그 사실을 알렸어야 했는데. 노을이 지는 이 순간에 너의 배를 꿰뚫은 빛의 창을 보고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냐, 안돼, 안돼 오르슈팡.”

대검을 던져놓고 무찌를 적을 쫓지 않았다. 전투에 민감해진 귀가 비공정이 떠나는 소리를 듣고 있음에도 오르슈팡만 보았다. 입에서 피가 역류하고 상처에서 나오는 피도 멎지 않았다. 값싼 포션은 이 순간 도움이 될 수 없었다. 모험가로서 알 수 있었다 그의 상처는 살아남을 수 없는 상처였다. 나라면 부활 지점에서 살아나면 그만일 그런 상처를 그가 입었다. 그는 빛의 가호가 없는 평범한 병사였다. 이 저주 같은 힘은 타인을 살릴 때 쓸 수 없었다. 아무런 힘도 없이 그가 죽어가는 걸 지켜보며 후회만을 곱씹었다. 언제라도, 그때가 아닌 언제라도 네게 나에 관해 이야기 해 줄 때가 있었을 텐데. 나의 맹우, 사랑하는 네가 죽어가는 모습에 당연히 떠오를 수 밖에 없는 울상을 지었더니 네가 손을 들었다. 급하게 두 손으로 그 손을 잡았다.

“오르슈팡, 내가, 내가, 나는,”

네가 지켜주지 않아도 괜찮았을 거야. 너에게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 내뱉으려던 말이 너의 말에 막힌다.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말을 끊은 너는 말했다. 영웅에겐 슬픈 표정은 어울리지 않아. 그의 마지막 말에 애써 웃어주었더니 그는 그날처럼 같이 웃어주었다. 꽉 잡고 있었던 큰 손이 내 손 사이에서 미끄러졌다.

 

기지의 사람들을 볼 낯이 없었다. 사생아임에도 아들의 죽음에 슬퍼해 주는 포르탕가의 사람들을 보며 더욱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내 책임이다. 무슨 일을 하든 그가 돌아올 수는 없겠지만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 책임을 다해야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의 죽음을 조용히 전달했다. 내가 오기 전 소식을 들은 자들도 있으나 아직 소식을 듣지 못했던 자들은 그 자리에서 조용히 슬픔에 잠겼다. 그와 가장 가까웠던 보좌관 코랑티오에게 마지막으로 말을 건넸다. 그는 알고 있었다고 답하며 그의 빈자리를 보았다.

“얼굴이 엉망이네 코랑티오.”

“…영웅님께서도 그렇습니다.”

그 짧은 대화 이후 코랑티오는 나를 자리에 앉히고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무언가 필요한 것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는 오르슈팡이 언제나 건네주었던 생강차와 함께 돌아왔다. 오르슈팡. 생각만 해도 목까지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느라 마시지 못하고 있자 코랑티오가 말을 꺼냈다.

“당신은 죽음에서도 부활 할 수 있지요?”

슬픔에 잠겨있던 정신이 번쩍 깨는 소리에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할 말을 그가 먼저 꺼내어 놀란 감정이 반, 그가 원래 알고 있어 놀랐던 감정이 반으로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다 해도 결과가 달라지진 않았다. 나는 내가 해야 할 말을 꺼냈다.

“그래.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 오르슈팡에게도… 말했다면 오르슈팡은…”

“주인께선 알고 계셨습니다.”

어? 멍청한 소리가 입 밖으로 나갔다. 생각해보면 보좌관이 그가 알고 있었다는 것은 당연히 오르슈팡도 알 수 있었다는 것이 된다.

 

“무슨 소리야. 오르슈팡이 알고 있었다니, 그런, 그럼 오르슈팡은.”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고? 그런 말은 차마 하지 못했으나 코랑티오는 하고 싶은 말을 알아들었다.

“이 차는 주인께서 당신이 살아날 때마다 끓였던 차입니다. 당신이 살아서 이곳에 걸어오실 때마다 직접 차를 끓이셨어요.”

그의 마음은 지금의 나와 같았을까. 내 죽음을 몇 번이고 봐온 오르슈팡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나와 이야기를 했던 것일까. 별거 아니라고 여겼던 그 날의 목숨을 그는 얼마나 소중히 생각해주고 있었던 것일까. 참아왔던 눈물이 결국에는 흘러넘쳤다. 내가 얼마나 거짓을 말해왔든 그는 모든 진실을 알고 있었고 말해주기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타왔던 차도, 같이 했던 게임도, 눈의 집도 그 모든 것이 나를 위하는 그의 진심이었다. 나는 이제야 그의 진심을, 너무나도 늦게 알아버렸다.

 

맹우여. 네가 나를 부르던 그 호칭은 무슨 의미였을까. 너는 항상 진심이었으니 이것조차 그저 단어 본뜻의 의미로 불렀겠지.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깊이 캐묻지 않았을 거야. 만약 연인이었다면 너는 거짓을 캐내어 내게 물었겠지만 우리는 고작 맹우인 사이었으니, 선을 넘는 일은 하지 못했을 거야. 그렇기에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같이 거짓말을 도왔던 거겠지.

“정직한 너에겐 힘든 일이었겠구나.”

위령비에 기대어 몇 번이고 후회했던 지난날과 같은 후회를 반복한다. 결국엔 전부 알고 있어 거짓이 없던, 진실밖에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거짓을 반복해가던 그 날들을 후회한다.

“이번에도 죽지 않고 다녀올게.”

너를 한 번 더 만날 수만 있다면 그때는 내 진심을 말할 수 있을 텐데. 이뤄지지 않을 소원을 바라며 사룡과의 마지막 결투를 위해 고지 드라바니아로의 텔레포를 실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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