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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ER

 

 

 

우리 사이에 거짓은 없었다. 우리는 서로 거짓말을 싫어했고, 진실만을 말하였다. 그건 일종의 약속이자 우리가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이글은 처음으로 ‘환각’이라는 거짓을 마주했을 때, 그 환각이 사라지지 않음을 느꼈을 때 그만 울음을 터뜨려버리고 말았다. 마치 엄마를 잃어버린 어린 아이가 울 듯이. 그렇게 서러운 울음을 터뜨리고 만 것이다.

‘사랑해, 이글.’

허나 그 환각은 며칠이고, 몇 주고 사라지지 않았다. 차라리 금방 사라져버렸다면. 금방 지워져 나타나지 않았다면 좋았을텐데. 그랬다면 차라리 마음 정리가 쉬웠을까. 생각해보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비록 숨만 겨우 붙어있더라도, 살아 숨쉬는 널 내가 어떻게 포기할까.

“이걸 원한거야, 타샤?”

그럼에도 이글은 그 환각조차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목숨이 다하는 순간에, 발악하듯이 네가 남긴 것이었기 때문에. 이글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기꺼이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 날은 유난히도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안타리우스는 끈질기게도 붙어왔고, 그래서 이글은 그 날 어쩌면 영영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기까지 했었다. 그래도 돌아가야지, 제 사랑스러운 연인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가야지. 그리 정신을 차리고 있다가, 적의 공격을 눈치채지 못한 건 한순간이었다.

 

...날카로운 창이 작은 인영의 가슴을 꿰뚫었다. 이글은 잠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피가 흩뿌려졌고, 세상이 암흑에 감싸였다. 자신의 온 힘을 짜내 만들어낸 환각에 적들은 당황했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가만히 남아있던 것은 이글과 겨우 숨을 쉬는 타샤, 그리고 그런 타샤의 환영뿐이었다.

 

타샤는 마치 죽음을 예감한 듯 했다. 다급히 그녀를 안아든 이글에게 조용히 웃어보이며, “사랑해, 이글.” 하고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그건 마치 낙인과도 같았다. 영영 지워지지 않는 그런 낙인. 너 때문에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깊은 잠에 빠졌다고 비웃는 낙인. 그런 이글의 옆에는 이글에게만 보이는 환영이 그를 가만히 껴안았다. 당연하게도 온기는 없었다.

이게 거짓이 아니면 무엇이 거짓일까.

이글은 처음 타샤를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환각들 속에서 그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만 있던 작은 꼬마였던 타샤를. 자신만만하게 그런 그녀를 현실로 끌고 오겠다, 다짐했었는데. 타샤, 너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이글은 조용히 긴 잠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는 제 연인을 바라보았다. 그런 이글의 옆에 환상으로 만들어진 제 연인이 가만히 서서 손을 잡아왔다. 잡히지 않을 손을.

 

“...타샤, 제발. 부탁이니까.”

“내가 너의 거짓 속에 살아가지 않게 해줘.”

그것은 간절한 부탁이었다. 간절한 호소였고,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는 간절한 눈물이었다. 달님에게 빌면 들어줄까, 아니, 달님은 짓궂으니까 햇님께 빌면 들어줄까. 누구든 좋으니 이글은 들어달라며 제발 제 연인을 돌려달라며 움직임조차 없는 연인의 손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했다.

시간은 잔인하게도 계속해서 흘러갔다. 몇 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이글이 보는 타샤의 환영은 계속되었다. 이젠 이게 그녀가 남긴 힘인지 아니면 제가 보고싶어서 보는 환각인지 이글은 알지 못했다. 그저 늘 그렇듯 발걸음을 옮기면, 어느새 타샤의 옆이었다. 이글은 오늘도 누군가에게 비는지 모를 기도를 했다. 타샤의 손을 꼭 잡고.

우리 같이 햇님에게 빌었었잖아. 기억해, 타샤?

절박한 기도를 듣기라도 한 걸까, 손가락 끝이 움직인 건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글이 그를 놓칠 리 없었다. 이글은 깜짝 놀라며 누워있는 타샤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따스한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꿈 속에서, 너를 찾았어.”

“..타샤...!”

“그런데, 찾을 수가 없어서... 아, 일어나야지. 했는데.”

“...네가 보이는거야. 너를 따라왔어.”

 

“...다시 한 번, 이글이 나를 꿈에서 데려와줬어-”

 

이글은 이번에도, 울음을 터뜨렸다. 어느새 환영은 사라진 후였다. 그래, 우리 사이에 거짓은 없었다. 애초에 환영이 너를 대신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두 번 다시, 너를 혼자 두는 일은 없을거야, 타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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