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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에 거짓은 없었다.’라고 나는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예상치 못한 산옥의 발언에 오정이 ‘엉?’하고 되물었다. 그는 태연한 투로 이야기하며 차를 마셨다. 마치 이런 답을 예상한 것 아니었냐는 말을 대신하는 몸짓이었다.

“뭐야, 그 반응. 설마 순정만화 속 주인공 같은 사고방식이라도 갖고 있는 줄 알았어?”

“워낙 질질 짜기에 그런 줄 알았더니.”

“진짜 죽고 싶지?”

“내가 설마 너한테 죽겠냐?”

저걸 그냥. 하는 소리와 함께 주먹을 치켜드려던 산옥은 빨래를 구김 없이 펴서 너는 팔계를 보고 주먹을 내렸다. 징글징글한 팔불출. 오정의 한 마디에 슬쩍 그를 노려본 산옥이 다시 차를 마셨다.

“아무튼 나는 어느 정도 팔계 씨한테 거짓말 많이 했어. 팔계 씨가 나한테 얼마나 거짓을 말했는지 모르지만.”

“예를 들면?”

“뭐.”

운을 띄운 산옥이 다시 한 번 팔계를 보더니 말했다.

“팔계 씨가 생각하는 것만큼 깊은 감정 아니라고.”

“그 말을 퍽이나 믿었겠다.”

“그건 그렇지. 그리고 팔계 씨도 생각해 보면 나한테 어느 정도 거짓은 있었잖아.”

“어떤 거?”

“내가 연심을 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모른 척 한 거. 아, 그건 거짓이라고 말할 수 없는 건가?.”

“알고 있었냐?”

“몰랐을 리가.”

“티 안 내고 숨기는 것도 재주다, 재주야.”

아작, 하고 과자를 깨물어 먹은 산옥은 다 씹어 삼킬 때까지 말이 없었다. 차를 또 마시고 난 뒤에야 겨우 입을 연 그는 의문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그런 표정이냐?”

“뭐 진지한 소리를 하고 싶긴 한데, 네가 이해 못 할 것 같아서.”

“이게 진짜.”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진지하게 하고 있어요?”

빨래를 다 넌 팔계가 둘에게 다가왔다. 산옥은 팔계에게 과자를 건넸고, 그는 자연스레 그것을 받아먹었다. 놀랄 것도 없는 상황이지만 징글징글하다는 걸 차마 숨기지 못한 표정으로 오정은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냥 너희 서로 거짓말 한 거 있는지 얘기하던 중이었는데.”

“거짓말이요?”

“정확히는 우리 사이에 거짓이 없었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요.”

“오히려 진실만이 있었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을까요?”

팔계는 과자를 다 먹었는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산옥과 오정을 번갈아 보았다.

“애초에 어떤 게 진실이고 거짓인지 판단하는 기준도 모호하지 않나요?”

“맞아요. 애초에 우리는 서역에 가서 옥면공주 일당을 무찌르러 가지만 여태까지 우리가 했던 일들이 옳았다고 말할 수 없잖아요. 참과 거짓도 그런 거죠. 다 그냥 판단이지.”

“그리고 거짓이라는 게 생각보다 나쁜 건 아니에요. 진실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많으니까.”

그렇게 말한 팔계가 산옥에게 과자를 내밀었다. 산옥은 팔계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이미 그가 제 입에 과자를 물려주었다. 입 안에 가득찬 과자를 우물거린 산옥이 붉어진 얼굴로 차를 홀짝였다. 그 모습에 오정이 혀를 찼다.

“연애한 지 꽤 됐는데도 그 모양이냐?”

“몰라.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이런 게 좋아요.”

갑작스러운 팔계의 발언에 오정과 산옥이 그를 동시에 바라보았다. 저게 무슨 말일까, 하는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팔계가 덧붙였다.

 

“말은 이따금씩 거짓일 수 있지만, 행동에는 어느 정도 진실이 담겨 있으니까요. 지금 산옥의 행동에도 진심이 담겨 있고.”

“하긴 그렇네. 누가 봐도 절대 못 속이는 게.”

“무슨 말들을 하는 거예요, 둘 다!”

얼굴이 시뻘개진 산옥이 결국 소리를 빽 지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가 버렸다. 귀여워라. 작게 중얼거린 소리에 오정이 기겁하며 뇌까렸다.

“징글징글한 망할 커플, 빨리 꺼져!”

오정의 반응에 팔계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다 결국 크게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라진 산옥을 찾으러 가는 팔계의 발걸음이 유난히도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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