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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에 거짓은 없었다.

 

 

 

 

 

"…안녕, 미안해, 좋아했어, 나의 황룡님."

 

 

익숙한 목소리가 시화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넘긴다. 일에 집중해야 하는데, 어째서 지난 일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도는지. 그는 미칠 지경이었다.

 

 

몇 년쯤 되었지? 그래, 한 십 년 전쯤 이랬지. 이른 새벽부터 다급히 달려와선 문을 쾅쾅 두드려대더니, 자던 사람을 깨우더니, 붙잡고 하는 말은 고작 그것이었다. 좋아했어. 안녕. 그에 놀랄 새도 없이 너는 꽃이 되어 흩어져서, 언젠가 내가 선물했던 옷가지와, 언젠가 내가 어울린다 해줬던 메리골드 모형이 달린 귀걸이만을 남겼다. 

 

 

시화가 초빈이 남긴 흔적만을 잡고 계절이 변할 동안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는 것은 그와 가까운 사람이라면 전부 아는 사실이었다. 그만큼 시화의 상태는 불안정했다. 황룡이라는 책임감 하나로 그마저도 딛고 일어섰지만,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초빈은 시화의 곁을 맴돌고 있었다.

 

시화는 초빈을 사랑했다. 초빈은 시화가 아닌 다른 이를 사랑했지만, 시화는 그걸로도 만족했다. 둘 사이에 거짓이 없었기 때문에. 

 

 

초빈은 시화에게 숨기는 것이 없었다. 바위산의 주인을 연모하게 된 그날, 초빈은 가장 먼저 시화에게 털어놓았고, 알고 있는 이가 극히 적은 초빈의 과거에 대해서도, 초빈은 망설임 없이 시화에게 털어놓았다. 그렇기에 시화는 초빈이 저를 믿는 줄로만 알았다. 가장 중요한 것을 알려주지 않을 줄은 꿈에도 몰랐고, 그렇기에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초빈의 몸에서 나는 옅은 메리골드 향을 그저 체향으로만 생각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한 번쯤은, 의심을 했어야 했다. 의심을 했더라면, 네가 조금 더 내 곁에 있을 수 있었을 텐데. 그랬을 텐데. 

 

 

이제 와서 의심을 해봤자 남는 것은 없다. 너는 이미 사라져서, 내 곁을 떠나고, 난 하루하루 널 그리며 잊지 못하고…….

아, 정말 큰일 났다. 탁자 위에 쌓인 서류, 저번 일에 대한 보고서. 처리해야 할 일이 수두룩한데 네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내가 널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너를 잊을 수 없어서, 일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너만 그리며 살고 있나 보다.

 

 

초빈이 죽은 그날, 시화는 그 길로 노을에게 달려갔다. 자네, 이른 시간부터 어인 일인가? 노을의 물음에 시화는 초빈이 사라지며 떨군 옷가지를 보여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상황을 파악한 노을이 침묵을 지켰을 때, 시화는 미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노을은 알고 있었어요? 그래, 난 알고 있었지. 초빈이 원하지 않아 부러 말은 하지 않았네.

 

 

대답을 듣곤 시화는 집으로 돌아왔다. 무슨 생각을 하며 돌아왔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시화는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다. 원인 모를 감정들이 시화의 머릿속에 꽉꽉 들어찼다. 이 감정은 뭘까, 초빈을 다신 볼 수 없다는 슬픔? 그를 잃었다는 상실감? 아니면, 거짓을 만든 너를 향한 분노? 애증? 모르겠다. 지금은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 시화는 그대로 집을 나서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시화는 계절이 바뀌도록 그런 상태였다. 황룡이라는 책임감, 그 위치, 그에 따른 책임을 겨우겨우 붙잡고 정신을 차렸지만,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초빈을 잊지 못했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은 그 당시의 감정을 정의 내릴 수 있다는 점이리라. 그때에 느꼈던 감정이 분노였건, 상실감이었건, 슬픔이었건, 그것은 모두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고. 그만큼 나는 너를 사랑했고, 그렇기에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우리 사이에 거짓은 없었다.

 

 

 

 

 

 

 

 

우리 사이에 비밀은 있었다.

 

 

 

 

 

 

 

 

나는 그런 너를 사랑했고,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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