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뢰비용
written by. 나찰
사이퍼즈 루드빅 와일드x킴 레이블
우리 사이에 거짓은 없었다. 그녀가 언젠가 지나가듯이 툭 했던 말이었다. 그게 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이유는, 역시 그녀가 그 말과 한 치의 오차 없이 행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무서운 이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 앞에서는 그 누구보다 진실된 언행을 보였다. 나는 그것이 우리 사이의 규율이자 사실이며 그것 자체가 곧 우리의 애정이라고 여겼다. 그녀 역시 그렇다고 믿어왔다.
"가져왔어요?"
"당신이 필요하다는데 설마 잊을 리가요."
"알잖아요, 난... 일은 확실하게 해야 하는 성격이라."
"그걸 제가 모르겠습니까."
웃으며, 그녀가 구해달라던 파일을 건네주었다. 바 안은 우리가 만날 때면 늘 그랬던 것처럼 아무도 없고 어두웠다. 그녀가 있는 카운터 쪽의 작은 오렌지빛 조명만이 이 넓고 낮은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그녀는 파일을 받아들어 내용을 확인했고, 이상이 없는 데이터 전체 원본임을 신중하게 살핀 뒤에 만족스레 웃으면서 파일을 닫았다. 고마워요, 덕분에 일이 잘 끝날 것 같아요. 답례로 키스는 어때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시선이며 턱 끝이 점차 내게로 기울었다. 값은 정확히 치러야죠, 나직하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꿈처럼 황홀했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거기까지만 하는 게 어떻습니까, 킴."
눈부신 금발, 이 바에 드나드는 저런 색의 머리칼이 누구인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루드빅 와일드, 한 때는 그가 그녀와 깊은 관계라던 소문이 돌았는데 다 지난 이야긴 줄도 모르고 밀회에 끼어들다니. 무어라고 한 마디 하려는데 그녀가 바로 지척까지 왔던 몸을 물리며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당신이 늦으니까 장난 좀 친 거죠. 그렇게 화내지 말아요."
"내가 지금 화 안 내게 생겼습니까?"
"이런, 우리 강아지가 왜 이렇게 삐쳤을까."
"아무리 일 때문이라지만 당신이 다른 놈이랑 애인 행세 하고 다니는 걸 나더러 보고만 있으라니,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었습니다."
"일인데 어쩌겠어요. 착하죠, 응?"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내 눈앞에서 금발의 헌터와 다정하게, 정말로 연인인 것처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왜? 그녀의 연인은 나인데. 그녀는 나에게만 밀어를 속삭이고, 나만을 믿고, 내 품에만 안기고, 나에게만 입 맞추고, 그 애정은 정말로 거짓 없는 진실이었는데. 그들은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잊은 양 서로 허리에 팔을 감아 안고 품에 기대어 서로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다가, 내가 앉은 스툴을 밀어 일어나 덜컹이는 소리가 나자 그제서야 이쪽을 바라보았다. 마주친 그녀의 눈은 맨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저 정보상과 고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냉랭한 표정이었다. 나는 분명히, 틀림없이 저 차가운 얼굴이 부드럽게 풀어지며 온전히 나만을 위한 애정을 드러내던 광경을 보았는데. 그것이 전부 한낱 속임수였다고?
"왜, 왜..."
"왜긴, 아직도 모르겠어요? 의외로 눈치가 둔하네. 그러니 이런 연기에 속지."
"날 속였어?"
"네, 속였어요. 뭐 문제 있나요?"
그녀는 태연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는 얼굴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건네준 것은 우리 조직의 핵심적인 사업 데이터가 담긴 파일이었고, 아마도 그녀의 목적은 그것을 이용해 조직을 손에 쥐는 것이었겠지. 아직도 멍하던 머리가 조금씩 식어갔다. 습관적으로 손을 옷 속으로 넣어 권총을 찾았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그녀가 한 손을 뻗었고, 거기에 탄환 5발을 넣어둔 총이 이쪽으로 총구를 향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키스하는 척 할 때, 아.
"괜한 짓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나는 지금 정말 불쾌하니까."
"왜 당신이 불쾌해? 속은 건 난데."
"이 바닥에서는 속는 게 죄라는 말 모르진 않을 테고... 멀쩡한 애인 두고 당신과 원치도 않는 가짜 놀음을 해야 했거든요. 사실 당신과 만날 때마다 루디가 근처에 있어 주었지만, 그래요, 내 귀여운 루디도 그걸 보면서 기분이 좋았을 리가 없지 않겠어요?"
"그게 내 알 바야?"
"알아야 할 텐데, 아."
그녀의 말 한마디마다 이를 으득 가는데, 옆에 선 남자가 그녀의 눈을 가렸다. 표정은 여상스러웠지만 말투는 불쾌하다는 티를 숨기지 않았다.
"자꾸 쳐다보지 마십쇼. 이젠 당신이 1초라도 더 저걸 쳐다보는 걸 못 참아주겠습니다."
"나 대신 당신이 해주려구요?"
"그러게 이렇게 위험한 일은 관두라고 했잖아요. 제가 있는데 도대체 왜 당신이 직접 합니까?"
"미인계가 제일 편한 방법일 때도 있는걸요."
"허이구, 그걸 저한테 쓰셔서 저를 부리시면 될 것을."
"다음엔 생각해볼게요."
그래, 그럼 저걸 깨끗하게 정리해 주면 집에 가서 의뢰비를 정산해드리는 걸로 할까요?
그녀의 입술이 달큰한 웃음을 머금었다. 총구가 거두어지는 대신 남자의 손이 어두운 빛을 품었다.
우리 사이에 거짓은 없었다.
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