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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아

안예은 - 창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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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

조로이아

“조로, 너는 죄를 너무 많이 저질렀구나. 그 족쇄는 절대 너 혼자서는 풀어낼 수 없을 것이며 그 족쇄가 풀어질 때까지 너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배고픔을 느끼게 될 것이다.”

 

투명한 영체의 말이 끝나는 순간. 그의 머리엔 둥글고 끝은 뾰족한 호랑이 귀가 달리고 싱그러운 풀밭 같은 초록색 머리가 사라지며 남자의 목에 두꺼운 족쇄가 채워졌다.

 

“어흐흐응!!!”

 

목을 졸라오는 족쇄의 느낌에 소리를 질렀지만 산천을 떠나갈 듯한 호랑이의 울음소리만이 산을 가득 채울 따름이었다. 그 이후로 그의 삶은 처참했다.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배고픔에 숲의 토끼, 사슴, 그리고 맷돼지 까지... 씨가 마를 정도로 먹고 또 먹었지만 그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

 

그는 본래 산골짝의 호랑이 모습을 한 도깨비였다. 사람의 말도 할 줄 알았으며, 본래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은 신성한 산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리가 희고 눈이 붉은 소년이 산으로 올라와 산신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모습이 남들과 달라 부모에게도 버림받고 친구도 없던 소년은 산신과 친구가 되었다. 산신은 소년을 아끼며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하지만 마을에서 불길한 존재로 알려지던 소년은 마을 사람들에게 살해 당하게 되고... 분노한 도깨비는 마을에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모두 몰살한다. 그렇게 죄인이 된 그는 벌을 받아 수십년을 호랑이 모습을 한 채 살아갔다. 조로가 벌을 받는 사이, 재건된 마을에는 벌을 받은 산신이 검은 호랑이로 변하여 산의 동물을 잡아먹고 있는다는 흉흉한 소문이 퍼졌다.

 

‘배가 고파. 이제 더는 먹을 것이 없어.’

 

도저히 배고픔을 참지 못한 그는 밤마다 마을로 내려와 소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마을의 소가 한 두 마리씩 사라지니 마을 사람들은 신문고로 달려가 북을 두드렸다. 그렇게 파견된 착호갑사 선발부대, 그리고 그를 이끄는 여장군. 맑은 햇빛을 받아 살짝 푸르게 빛나는 흑단 같은 머릿결, 바다를 닮은 눈동자, 길게 올라간 눈꺼풀을 닮은 날렵한 콧대를 가지고 말랐지만 단단하게 쭉 빠진 몸매를 자랑하는 여장군, 로이아. 어린 나이에 무과에 합격한 그는 크고 작은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며 그의 무공에 임금도 감탄하여 무신이라는 칭호를 붙여 그를 착호갑사 부대를 이끄는 장군에 임명했더란다.

 

“마을에 도착했으니 일단 짐을 풀고 밤에 산을 오르도록 한다!”

 

밤마다 산을 내려온다는 호랑이니 낮에는 힘을 보충하고 밤에 그를 잡으러 가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로이아는 주막에 딸린 작은 방에서 잠이 들었다.

 

“로이아. 그는 본래 산신이다. 네가 그를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야. 이것을 받아라.”

 

투명한 영체가 그에게 곧게 뻗어 잘 벼려진 검을 내민다. 로이아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검을 받아 들어 곧게 휘둘렀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울리며 순간 채찍처럼 길게 늘어났다가 금새 제 자리를 되찾는 검, 희미하게 백호의 형상을 띄는 검상을 보며 로이아는 미소 지었다.

 

“내 힘이 투영된 검이다. 이 검이면 어렵지 않게 그를 이길 수 있겠지. 나는 그의 죄에 비해 너무 큰 죄를 내렸어. 네가 그의 족쇄를 풀어주고 대신 그를 사하도록 하여라.”

 

부스스 눈을 뜬 로이아의 곁에는 ‘어흥!!’ 작게 호랑이 소리가 울리는 새하얀 백검이 놓여져 있었으며 아직 꿈을 구분하지 못한 그는 검집에서 검을 뽑아 곧게 바람을 갈랐다. 우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검신이 곧게 늘어났다 제자리를 되찾는다. 로이아는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고 옷매무새를 다졌다. 그리고 횃불을 들고 주막을 나섰다.

 

“모두 일어나!! 지금부터 뒷산을 포위한다!!! 내가 뒷산을 올라갈 터이니 남은 자들은 횃불을 들고 산과 주민들을 지킨다!! 알아들었나!”

“네!!!”

 

개미 한 마리도 나올 틈 없이 포위된 산 사이로 로이아가 들어갔다.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산을 에워싼 불빛은 어두워지고 산 중턱쯤 올라갔을까.. 드디어 산에는 로이아가 든 횃불만이 남게 되었다.

 

“거, 사람입니까?”

 

불빛에 비추어 희끄무리하게 빛나는 사람의 형체가 로이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머리는 눈처럼 새하얀 것이, 눈동자는 또 피같이 붉고, 형체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투명했다. 목소리도 감은 멀었고 작았으나 로이아에게 만큼은 또렷이 들려왔다. 사람이 아니구나.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에게는 귀신이 붙는다. 그리고 귀신는 자신이 성불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호랑이에게로 이끄는 귀신, 창귀. 눈앞의 형체가 창귀임을 눈치챈 로이아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조용히 창귀의 뒤를 따랐다.

 

“겁도 없는 처자구만. 호랑이가 나오는 산에 혼자 들어오다니.. 나는 올해로 스물하나가 된 청년인데 범을 잡는다고 거드럭대다가 목숨을 잃었소만 이대로는 달상하여 황천을 건널 수 없어. 옳다구나. 당신이 나를 도와주시게!!”

 

창귀는 흰자를 보이며 눈을 뒤집어, 피가 섞인 눈물을 흘리며 로이아에게 얼굴을 들이대었다. 8월임에도 불구하고 서늘해지는 산 속의 날씨, 눈 앞의 괴이한 형체에 로이아는 식은 땀을 흘리며 백검을 꾸욱 쥐었다.

 

“네가 그 파견 되었다는 착호갑사로구나!!! 아무리 뛰어난 무사라도 호랑이님은 이기지 못해! 그 얄팍한 재주를 부려보거라!! 내 특별히 무꾸리를 쳐주지!!”

 

창귀는 나무 토막 위에 보자기를 펼치고 쌀알을 흐뜨렸다. 쌀알은 이리저리 흩어지며 로이아를 향했고, 창귀는 찢어져라 웃던 입을 거두며 고개를 갸우뚱 흔든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그리고 다시 한 번 쌀을 뿌렸고 역시나 쌀은 로이아를 향해서 잔뜩 뿌려진다. 창귀가 고개 저으며 몇 번의 무꾸리를 치는 사이, 귀신들이 하나 둘 구경을 오기 시작했다. 벌을 받는 산신과 무신이라 불리우는 인간 착호갑사의 대결이라니 이 얼마나 재미있는 구경거리 이겠는가!. 나무 사이 웅신, 연못 바닥에는 수살귀가, 로이아의 뒤로는 무꾸리를 치던 창귀가 와 떡 버티고 섰다.

 

“그래, 무꾸리 따위가 무슨 소용이겠어, 우리 호랑이님이 저렇게 버티고 서 계신데! 교교하다. 만월이구나!!!! 얼씨구, 좋다!!”

 

드디어 눈 앞에 커다랗고 검은 호랑이가 저벅저벅 걸어와 섰고 로이아는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려 웃으며 검을 빼들었다. 새하얀 검신이 우웅... 웅... 울며 떨었고 검을 든 로이아는 승수를 읽었다. 그래, 어렵지 않아, 검을 쥐고 땅을 박차 뛰어오른 로이아는 그대로 호랑이의 머리를 밟고 그의 뒤로 넘어갔다. 물러설 곳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바로 등 뒤에 적을 두는 것은 너무나 위험했으니까. 검을 뻗어 호랑이의 몸을 감싼 로이아는 흡, 한번 기합을 주더니 검을 늘리고는 호랑이를 감아 들어 올려 땅에 쳐박았다. 쿵! 커다란 소리를 내며 호랑이의 몸은 땅을 울렸고, 그 반동에 풀려난 호랑이는 “어흐으으응!!!!!” 산천을 울리는 목소리로 로이아를 위협하며 달려들었고 로이아는 빠르게 호랑이가 달려오는 방향의 반대로 몸을 틀었다.

 

“이 싸움, 어렵지 않겠는걸?”

 

산신이 변한 호랑이는 지금껏 로이아가 잡아왔던 그 여느 호랑이 보다도 큰 덩치를 자랑했다. 하지만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승기를 잡은 것은 로이아. 그리고 그의 목에 달린 족쇄가 들어왔다. 저것은 약점일 것인가, 아니면 힘을 봉인한 족쇄인가. 생각에 잠겼던 로이아는 그래 ‘뭐든 부셔버리면 되지’ 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는 검을 휘둘러 길게 늘려진 검신으로 족쇄를 깔끔하게 두 동강 내었다. 그 순간, 호랑이의 몸은 빛에 휩싸이며 사람으로 변했고 주변을 둘러싼 귀신들은 하늘로 승천했다. 로이아를 이끌고 온 창귀 또한 희미하게 웃으며 조로를 향해 손을 흔들며 하늘에 떠올랐다. 빛이 걷히고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로이아는 칼을 거두고 조로를 빤히 바라보았다.

 

“사람...? 도깨비...?”

“도깨비다. 네가 죄에 갇힌 나를 풀어주었지. 이제 배고픔을 느껴지지 않아. 이 영원한 속죄가 너로 인해 끝난 것이다.”

 

따아아아악!!!!

 

조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로이아의 주먹이 그의 후두부를 강타했고 그의 머리에는 커다란 혹이 돋아났다. 조로는 엄청난 아픔에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두 손으로 혹을 감싸 쥐었다.

 

“죄를 지었으면 얌전히 벌을 받아야지, 사람들에게 해를 끼쳐?! 너 이리와, 내려가서 사죄해.”

“그를 죽였던 사람들은 죄가 없는가?”

“물론 그들도 죄를 지었지. 하지만 너는 그들에게 과하게 복수를 했고 이제 관련 없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해를 끼쳤잖아.”

 

로이아는 조로의 귀를 잡아끌고 하산하여 마을 사람들 앞에 섰다.

 

“이 자가 그동안 여러분들을 괴롭혔던 호랑이입니다.”

“미, 미안하다”

 

조로는 마을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사죄했다. 마을 사람들도 산신의 전설을 생각하며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했다. 로이아는 희끄무레하고 붉었던 소년과 희생되었던 동물들의 제령제를 준비하여 상을 올렸다. 창귀라 불렸던 소년은 사실 오래 전 조로와 인연을 맺었던 그 소년이었다. 조로가 죄를 지은 것이 자신 때문이라 생각했는지 조로가 벌을 받는 동안 그의 곁에서 창귀행세를 하며 그를 지켜보았던 것 이다.

 

재단 앞에 선 조로와 로이아.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제령제에 절을 하며 다시는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다, 그리고 제가 끝나고 로이아는 마을을 떠날 채비를 했다.

 

“조로 이제 어쩔셈이지?”

“신의 힘은 이제 잃었어. 그리고 족쇄를 풀어준 건 너이니, 영원히 네가 죽을 때까지 너를 따를 것이다.”

“좋아.”

 

그렇게 마을엔 평화가 찾아왔고 로이아에겐 든든한 호랑이 도깨비 하인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둘이 수많은 전장을 누빈지도 5년.. 연이은 전투에 지친 로이아는 조로를 잡았던 마을로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제 다시 산으로 떠날거냐고 묻는 로이아에게 조로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옥가락지를 로이아의 손에 끼웠다.

 

“로이아, 너와 인연을 맺은지도 5년.. 이제 너에게 마음을 전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네가 날 구원한 그 날부터 내 눈엔 너밖에 보이지 않았다. 남은 생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영원히 너의 곁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싶다. 은애한다. 결혼해줘, 로이아.”

“좋아. 너 같은 천방지축을 나 아니면 누가 받아주겠어.”

 

 

로이아는 자신의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보며 씩 웃었고 조로는 일어나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이제 평화가 찾아온 마을에서 둘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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