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사보아라_바단물님.PNG
​바단물님 커미션

로이아

호우 - 친구는 이제 끝내기로 해

01:23
04:56
- (2).png
-.png
- (2).png

원피스

사보아라

“오빠! 나 초콜릿 만드는 거 도와줘!!”

“우리 아라, 발렌타인데이라고 오빠 초콜릿 만들어주는 거야~?”

“오빠 걸 왜 오빠한테 도와달라고 해? 사보 거야. 수능도 끝났겠다. 이번엔 진짜 고백하려고.”

 

단호하디 단호한 아라의 목소리에 상디는 샐쭉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동생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몸 불사질러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 이 오빠가 도와주지!”

 

두 팔을 걷어부친 상디와 아라는 그렇게 사보에게 줄 초콜릿을 만들기 시작했다. 주방에는 달달한 초콜릿 냄새가 진동했고 그 향기 속에 파묻힌 둘은 커다란 하트 위에 역시 커다란 리본이 달린 초콜릿을 완성해 냈다.

 

“완성!”

“꽤 그럴싸한 걸?”

 

하얀 판 위에 놓인 초콜릿을 붉은 상자에 넣고 딸기우유 빛깔의 리본으로 단정하게 묶은 아라는 초콜릿을 방으로 가지고 들어가 가방에 챙기고는 가방에서 또 하나의 작은 초콜릿을 꺼내들었다.

 

“자, 이건 오빠 거.”

 

상디는 아라가 내민 초콜릿을 들고 눈꼬리는 길게 휘고 입술은 헤벌쭉 벌어져 아라를 꼭 끌어안았다.

 

“아유, 예뻐!! 오빠 안 주면 서운해 할까봐 이렇게 챙겨주는거야??”

“그냥 성의 표시니까 좀 떨어져!”

 

기어이 다 큰 동생에게 뽀뽀를 하려는 입술을 겨우 밀어낸 아라는 상디를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가 작은 하트가 여러 개 그려진 흰 편지지에 사보를 위한 편지를 썼다. 옆집에 사는 삼형제 중 둘째인 사보. 아니, 그와 동갑인 남자 둘에 8살 짜리 꼬맹이 하나가 사는 집이니 누가 둘째고 첫째인지는 애매한 집이었지만 그들이 이사 온 그날부터 아라의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해군이라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빠는 상관인 가프가 후원하는 아이들이 아라의 옆집으로 이사 오게 되었으니 잘 챙겨주라는 말을 전하고는 다시 바다로 나섰다. 이후 두 집은 자연스레 오가며 인연이 이어졌고 아라는 어느새 사보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감정은 사보도 마찬가지. 하지만 아직 어려 좋아함의 감정을 몰랐던 아라는 사보를 소개 시켜 달라는 친구의 말에 아라는 소개팅을 주선했고 소개팅 후 사보는 아라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고 친구와 잠시 사귀어 버린다. 그렇게 둘은 마음을 잠시 접어두게 되었다. 사보는 얼마 안가 친구와 헤어지고 이후에야 마음을 깨달은 아라는 드디어 수능도 끝난 발렌타인 직후 사보에게 고백할 결심을 했다.

그렇게 봄방학 직전의 학교로 등교한 아라는 평소보다도 일찍 나와 일찍 교실에 도착했지만 사보는 그보다도 먼저 학교에 나와 있었다.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그의 이름을 부르려는 순간,

 

“사보, 좋아해.”

 

사보의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여학생의 목소리. 그 고백을 뒤로하고 자신의 초콜릿을 전해줄 생각도 못한 아라는 그대로 돌아서 도망쳐버렸다. 전할 수 없다, 전할 수 없어, 나는 그럴 수 없어, 그의 대답도 듣지 못했지만 나는 아닐거야.

수업이 끝나자 마자 가방을 챙긴 그는 그대로 학교를 빠져나와 사보와 인사도 하지 않고 집으로 가 침대에 누웠다. 상디는 그를 보며 가방을 힐끗 보고는 전하지 못했군. 들리지 않게 중얼거리며 방을 나가 사보를 옥상으로 불러내었다.

 

“너, 뭐냐?! 너도 아라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무, 무슨 소리이십니까, 형님?!”

 

상디는 두 남녀의 마음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라야 동생이니 저에게 사보에 대한 고민 상담을 해올 때가 많았고, 사보는 직접 이야기한 적은 없었지만 뭐, 절대 숨길 수 없는 것이 재채기, 그리고 사랑이 아니라던가. 그리고 상디는 그런면에선 꽤나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그러니 사보가 조금 맘에 들지 않아도 둘이 알아서 잘하겠지 하고 그대로 두었지만 둘은 지구 내핵까지 들어갈 정도로 서로 삽질을 하고 있었더란다.

 

“분명히 말해. 너 아라 좋아해, 안 좋아해?”

“조, 좋아합니다!”

“아오... 이걸 대신 전할 수도 없고...”

“알아듣게 말하세요, 형님!!”

“됐어!! 난 여기까지니까 둘이 삽질을 하든 뭘 하든 알아서 해!!!”

 

상디는 벙 쪄서 멍한 표정을 짓는 사보에게 등을 돌려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신경질적으로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아라의 마음을 알게 된 사보, 사보는 애초에 아침의 그 고백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고 다음 화이트데이엔 자신이 고백하리라, 마음먹으며 타이밍을 기다렸다.

하지만 화이트데이.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사보가 고백하려던 그 날, 아라는 다른 선배에게 사탕을 받고 있었다. 아라는 당연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며 고백을 받지 않았지만 사보 역시나 다음을 노리자며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험기간은 시험기간이라 미루고 시험이 끝나면 과제가 쌓여 미루고 도저히 타이밍이 잡히지 않던 그 해 봄이 지나가고 어느새 여름이 되어 여름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번 방학엔 꼭 고백을 하고 말리라.

학교에서 주최한 농촌 체험에 참가하게 된 둘은 서로 고백에 대해 생각 할 새도 없이 뙤약볕 아래서 부려지고 있었다. 그렇게 밤이 되고.. 캠프파이어를 하며 술판을 벌인 대학생들 사이로 사보는 아라를 쿡쿡 찔렀다.

 

“아라, 아이스크림 사러갈래?”

“응? 응!”

 

왠지 모르게 서먹한 분위기.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땅이 식은 밤은 살짝 차기까지 했다. 달빛이 거스러들고 뚝, 뚝...쏴아아아.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소나기에 주위를 살피던 둘은 근처의 원두막으로 들어가 잠시 비를 피했다.

 

“다 젖었네..”

 

아라는 짧은 단발머리를 쓸어넘기며 물기를 쭈욱 짜내었다. 또옥, 똑 물기가 떨어지는 갈색의 단발머리, 물에 젖어 살짝 빛이 나는 희고 투명한 피부, 둥글둥글한 눈동자에 맺힌 빗물은 살며시 다시 들어나는 달빛에 빛을 받아 빛나기 시작했다. 그런 아라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던 사보는 의도치 않게 말을 뱉었다.

 

“좋아해.”

“으,응?”

 

의도치 않은 고백이었지만 이제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숨을 수도 없었다. 조용해진 원두막, 후우- 한번 심호흡을 뱉은 사보는 다시 아라를 눈에 담았다.

 

“아라, 좋아해.”

 

이번엔 또렷이 들었다. 좋아해. 이 얼마나 기다려왔던 말이었던가.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하면서도 항상 떠올렸던 말이었다. 좋아해, 이 세글자를 뱉은 그의 입술은 혼자 떨리고 있었다. 달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젖은 금발머리, 그리고 살짝 빛이 바랜 보라색 눈동자 가득 내가 담겨있다. 그런 그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던 아라는 살짝 웃음이 나왔다. 이런 눈동자를 그동안 알아채지 못했다니 나도 참 바보 같네.

 

“나도 좋아해. 사보”

 

 

비가 그치고 구름이 맑게 개인 하늘, 빛나는 별빛과 달빛 사이로 둘은 서로를 눈동자에 담고 또 담았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