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슈아 레비턴스에게 있어서 생일은 지나가는 하루 중 하나일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축하받은 적도, 자신의 생일이라고 말한 적도 없던 그였기에 축하를 받는다는 일은 상당히 낯선 일이었다.
…그래도 루시아에게는 꼭 받고 싶으니까. 분에 넘치는 욕심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일을 자행한 자가 사랑하는 이의 축복을 받는 것이 우습고 다른 이를 기만하는 행위라는 걸 알고 있었으나 감정이라는 건 본인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법이었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눈을 가리고 감정 탓이라고 돌리는 것일지도 모르지.
문득 시선을 돌려 옆을 보니 늘 있던 이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휴가였지. 벌써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업무를 끝내고 방에 돌아가면 볼 수 있을 텐데도 떨어진 찰나의 순간이 아쉽고 길게만 느껴졌다.
펜촉이 사각거리며 종이에 스치는 소리, 칸나의 웃음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카를 3세의 목소리, 둘을 잠시 지켜본 루인이 작게 웃는 소리. 거기에 루시아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만 없었다. 몰래 잡아 오는 손도, 옆에서 은은하게 퍼지던 수국과 홍차의 향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았다.
루시아가 들었다면 자기가 죽기라도 했냐면서 조금 핀잔줬을 것 같은 생각이었다. 조슈아는 픽 웃고서 아직 쌓여있는 서류들을 바라보았다. 저 일들을 끝내고 보고를 마친 후 나인과 캐치볼을 적당히 해주면 자정 무렵에 침실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장 먼저 생일 축하를 받고 싶으니 그 시간에 맞춰서 들어가고 싶었다. 루시아도 먼저 축하해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멋대로 생각하며 느긋하던 조슈아의 손이 조금 바삐 움직였고 그에 비례하여 처리하는 서류의 양이 늘어갔다.
“기분이 좋아 보이네. 역시 루시아를 생각하고 있는 거지?”
칸나의 명랑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자 조슈아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연인 사이라고 해도 막상 누군가에게 이렇게 들으니 아직도 쑥스럽긴 했다. 조슈아는 그렇다고 대답하고선 서류에 눈을 떼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확실히 처음 왔을 때보다 표정이 밝아 보여. 루시아도 그런걸. 칸나의 말에 조슈아는 잠시 펜을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자신이 아발론에 오기 전의 루시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로드나 다른 사람 역시 알려주지 않았고 루시아도 딱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물론 조슈아 역시 루시아의 과거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루시아가 언젠가는 이야기해주리라 생각했고 지금도 변함없었다. 그래도 조금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건가. 조슈아가 눈을 내리깔지 칸나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잉크병 옆에 털썩 앉아 미소를 지었다.
“네 덕분이야.”
여러 의미가 담긴 말에 조슈아는 결국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걸 바라보던 칸나는 까르르 웃더니 다시금 카를 3세에게 날아갔다. 치약 머리, 이제 다 쉬었지? 다시금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카를 3세가 칸나를 쫓아내려고 팔을 휘저었고 조슈아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정말 네가 달라진 것이 나로 인한 일이었으면 좋겠어, 루시아. 자신의 세계는 루시아로 인해 변하였고 루시아 역시 그랬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그리며 조슈아는 빨리 제 생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 * *
“시간 계산이 완전히 꼬여버렸어. 프라우, 이 배신자…….”
나인과의 캐치볼을 이 정도로 오래 할 생각은 없었다. 중간에 프라우가 와서 바람만 넣지 않았어도 적당히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조슈아는 시간을 대충 가늠해보았다. 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자정이 지날 시간이었다. 그사이에 누군가를 만나지 않길 바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복도는 고요했다. 급한 마음을 대변하듯이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생일이라는 날이 이토록 기대되는 날이었던가. 자신을 평생 누군가에게 축하를 받거나 사랑을 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모퉁이를 돌아서 앞으로 열 걸음만 더 걸으면 자신의 방이 나온다. 루시아는 방에 있을까? 혹시 기다리다 지쳐서 잠들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다고 화내지는 않을까.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정신없이 헤집었다.
‘조슈아 레비턴스’라는 이름이 멋들어지게 새겨진 문패가 눈앞에 보였다. 마른침을 삼키며 떨리는 손으로 문손잡이를 잡아 돌리자 문이 힘없이 열렸다. 어두운 방에는 누가 있는지 알 수 없어 조슈아는 긴장 반, 설렘 반이 섞인 마음으로 안에 들어섰다.
한 걸음, 두 걸음. 방 안에서는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루시아는 역시 없는 건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던 찰나, 뒤에서 누군가가 조슈아의 눈을 가렸다. 익숙한 향과 함께 따스한 온기가 느껴져 조슈아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늦었어, 조슈아. 한참 기다렸다고.”
“…미안해. 중간에 일이 생겨서 늦었어. 오래 기다리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뭐, 어쩔 수 없지.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어.”
이건 거짓말일 것이다. 조슈아가 알고 있는 루시아는 오래 기다려도 상대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손을 떼어낼까 말까 고민하던 조슈아의 마음을 읽은 듯이 루시아가 손을 내렸다. 어둠에 어느 정도 눈이 익은 조슈아는 뒤를 돌아 루시아를 보았다.
때마침 창 너머로 쏟아져 들어온 달빛에 보인 루시아의 목에는 리본이 매여 있었다. 정확한 색을 알 수는 없었지만 아마 자신의 머리카락 색을 닮은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두근거리다 못해 터질 듯이 뛰는 심장 소리에 조슈아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 깔았다.
볼과 귀가 후끈거렸다. 확인하지 않아도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게 익었으리라. 소란스러운 소리에도 루시아의 작은 웃음소리는 묻히지 않고 잘 들려왔다. 부끄럽지만 그래도 네가 웃는다면 그걸로 되었다.
“조슈아, 생일 축하해. 올해의 선물은 나인데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없잖아. 목소리는 가라앉은 채로 떨려와서 형편없었다. 최악이다. 루시아 앞에서는 멋있는 모습만 보이고 싶었는데 이래서야 한심하지 않은가. 조슈아는 주먹을 쥐었다 피더니, 루시아의 어깨를 살포시 감싸 쥐었다.
“최고의 선물이야. 그리고……. 뜬금없지만 역시 결혼해줘, 루시아.”
예상외의 말에 루시아의 눈동자가 살짝 크게 떠졌다. 혹시라도 루시아가 거절하면 어쩌지. 그런 고민하던 것도 잠시, 조슈아의 입술에 루시아의 입술이 가만히 맞닿았다 떨어졌다. 조금 붉어진 얼굴과 애정이 가득 담긴 눈동자에 조슈아는 제 고민이 바보 같게만 느껴졌다.
아아, 너도 나를 그렇게나 사랑하는데 왜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걸까. 이번에는 조슈아가 먼저 입을 맞추더니 그대로 이마를 툭 맞대었다. 사랑해, 루시아. 최고의 생일 선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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