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몬 베니마루는 아직도 그 여름의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햇살이 따가운 8월이었다. 평소처럼 소방대에 돌아온 영감탱이의 손에, 평소와는 다른 것이 들려 있었다. 영감은 콘로를 부르고선 품에 안고 있던 것을 마루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그제야 그 아이의 얼굴이 베니마루에게도 보였다. 저와 또래거나, 아니면 조금 더 어린 정도일까. 새하얀 머리카락과 하얗게 질린 것처럼 하얀 뺨. 그리고 그 가운데에 유일하게 색이 어린 것 같은 옅은 붉은색의 입술.
“누구야?”
베니마루가 물으면, 영감은 마뜩찮다는 듯 혀를 쯧 하며 찬다. 언짢다는 표정 아래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그러나 베니마루는 그것을 알아차리기에 너무 어렸으므로, 그 안타까움을 눈치챈 것은 콘로 뿐이었으리라.
“마을 밖에서 화염인간과 싸우고 있더군. 약을 먹은 채 비틀비틀하면서.”
“약?”
“오늘 아침에 편지를 받았다. 혹시나 해서 가 봤다만...”
히바치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를 꺼내어 콘로에게 던지듯이 건네었다. 히바치가 격정에 못 이겨 쥐어 구겨버렸는지, 엉망으로 구겨진 편지였다. 콘로보다 훨씬 키가 작은 베니마루는 자신 역시 편지를 보여달라는 듯이 콘로의 팔을 잡아당겼다. 둘의 시선이 닿은 편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이 아이는 귀신이 들렸다. 흰 머리와 푸른 불꽃, 약한 몸이 그 증거다. 그러니 더 이상 이 아이를 기를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귀신의 나라인 아사쿠사에 맡긴다. 약으로 재워둘테니, 어서 데려가길 바란다. 그런 내용을 구구절절 풀어놓은 것 뿐이었다. 히바치 대장이 화를 내며 편지를 구긴 것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 베니마루는 시선을 돌려 소녀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는 자신의 상황을 알고 있을까. 살짝 흐트러진 흰 머리카락을, 손 뻗어 정리해주었다. 어쩌면, 동질감일지도 모르는 감정이었다.
눈을 뜬 아이의 눈동자는 봄 하늘처럼 푸르렀다. 아마도 처음 볼 것이 분명한 주변을 한 번 둘러보는 낯에서는 당황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담담히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선, 작게 한 번 웃어보였다. 세이레이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잠깐이나마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하며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는 것을 누가 막았던가. 좁은 소방대의 문 앞에 사내 셋이-사실 베니마루는 그다지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지만-나란히 서서 문을 막은 것도 제법 우스운 볼거리였다.
그들은 그녀에게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 아사쿠사 전체가 그녀의 새 가족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들이 그녀를 만난 그 여름날을 그녀의 새로운 생일로 정했다. 베니마루는 자기 생일은 종종 잊어버리곤 했지만, 세이레이의 생일을 잊는 일은 없었다. 콘로 역시 자신의 생일을 챙기는 것은 낯부끄럽다며 점잖은 말로 사양하곤 했지만, 세이레이의 생일을 그냥 넘어가는 일은 없었다.
편지에 써진 것 중 유일하게 진실인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세이레이의 몸이 약하다는 것이었다. 세이레이는 가끔씩, 비주기적이나 정기적으로 한 번씩 발작적으로 기침을 토해내곤 했다. 화염인간의 재가 많은 날이면 유독 그랬으니, 그들이 과잉보호라고 할 정도로 세이레이를 아끼게 된 것도 별난 일은 아니었다.
아사쿠사의 의원은 그녀의 병이 천식이라고 결론내렸고, 기침이 심한 날에는 몸을 차게 하지 말라는 말을 붙였다. 세이레이는 별을 보는 것을 가장 좋아했었기에 그녀의 생일에는 다같이 별을 보곤 했다. 그러나 그 무언의 약속이 취소되는 일도 있었는데, 당연하겠지만 세이레이의 몸이 좋지 않을 때였다. 그럴 때, 세이레이가 먼저 별이 보고 싶다고 하는 일은 없었지만, 베니마루는 그 푸른 눈동자 안에서 작은 소원을 읽어낼 수 있었다.
히바치 대장이나 콘로가 눈치채지 못할리는 없다. 분명 내일 아침이 되면 혼나게 되겠지. 그럼에도 베니마루는 밤에 몰래 세이레이의 창문을 열고 그녀를 불러내었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둘이 나란히 앉아서, 그 자신의 외투로 그녀를 감싸고, 그 위에 이불까지 꽁꽁 덮어준 채 같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날의 밤하늘은 유독 더 찬란하였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세이레이의 눈을 바라보면, 평소에는 봄 하늘처럼 밝던 눈동자 안에 온통 밤하늘이 가득 차서, 그녀의 눈이 밤하늘처럼 변한 것 같았다. 그런 눈을 보면, 내일 빌어먹을 영감에게 혼나든 말든 하는 것은 하나도 중요한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베니마루는 매번 세이레이의 손을 잡고 밤하늘을 보러 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나이를 먹은 지금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이 알게 된지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다. 그들의 관계도, 생김새도,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은 것 없이 전부 변했음에도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마님의 생일이라며 떠들썩하게 구는 소방대원들과 아사쿠사 사람들이 모두 잠에 들고 나면, 베니마루는 언제나처럼 세이레이의 창문을 똑똑 두드린다. 이제는 둘 다 창문으로 숨어나가지 못할 만큼 커졌음에도 언제나. 콘로는 깨어 있고, 그들이 나가는 것도 알고 있지만, 세이레이는 언제나 예전처럼. 잠든 콘로와 히나타, 히카게를 깨우지 않겠다는 듯 살금살금 나온다. 그러면 다시, 둘은 야트막한 동산에 함께 오른다. 그리고 베니마루는 오늘도 세이레이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아아, 역시 그녀를 이곳에 데려오길 잘했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다시, 언제나처럼. 돌아가는 길에 베니마루는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채 생일 축하해, 라며 그녀의 생일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세이레이 역시 옅게 웃으며 고마워, 라고 그날의 마지막 미소를 그에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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