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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우스 드라코니아는 사람을 사귀기에 특화된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그런 것이 특기라고 한다면, 하츠라뷸 기숙사의 다이아몬드나, 옥타비넬의 아솅그롯-필요에 따라서-, 스카라비아의 알 아짐이나, 폼퓌오레의 헌트-흥미가 있을 경우에-정도가 그럴까. 말레우스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애시당초 그가 먼저 친해지고 싶다, 라고 생각하는 존재도 극히 드물었다. 그런 의미에서 라그나르 발테리는 그에게 있어 유의미한 예외였다.

 

라그나르 발테리. 이름만 들었을때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밤에 정원 옆을 걷는 그녀를 보고서야 말레우스도 깨달을 수 있었다. 저주받은 꽃의 공주. 가시나무 골짜기에도 그 이명은 유명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눈 하나 깜짝 않는다는,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도, 탄생 앞에서도 언제나 똑같이, 차가운 눈으로 좌중을 쏘아본다던 그 공주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떤가. 어둠을 틈타 정원 옆을 살금살금 걷는 그녀는, 조금은 불안한 듯 장갑 낀 손을 꼭 마주 잡고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을 저도 모르게 시선으로 좇던 말레우스는, 그녀가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랄 때에야 그녀도 자신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허둥거리며 긴 치맛자락을 정돈하고, 살짝 느슨하게 묶은 머리를 넘기며 가방을 들고 뛰어 달아나버린 뒷모습이, 그 다음날에 마주한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라서 그렇게 기억에 남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학원장이 이야기 한 것을 전해들은 적은 있다. 더스크 갤리온 칼리지에서 학생들이 교류를 통해 넘어온다고. 그러나 저주받은 꽃의 공주가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에, 그것도 이 디아솜니아 기숙사에 머무르게 된다는 사실까지는 듣지 못했다. 아침의 기숙사에서 마주친 그녀는 어제의 당황하던 모습이 거짓말이라는 것처럼, 완벽한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단정하게 묶어올린 진녹색 머리카락은 모자 안으로 완벽하게 숨겨져 있었다. 새하얀 낯 위에는 표정이 없었고, 갈색의 드레스는 턱 아래부터 발 끝까지 가릴 정도로 길었으며, 그나마 짧은 소매의 아래는 긴 장갑이 맨살을 가리고 있었다. 담담한 남빛 눈동자가 말레우스를 향했다. 놀랄까, 당황할까. 말레우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해보일 뿐이었다.

 

 

“가시나무의 차기 왕을 뵙습니다.”

 

 

담담하게 흘러나온 말에는 감정이 결여되어 있었다.

말레우스에게는 다행이게도, 그녀의 친구이자 함께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에 온 카스페르 스티안은 훨씬 더 사교적인 편이었다. 물론 그녀 역시 앞에서 방심하다간 옆구리를 찔릴 것 같이 잘 벼려진 사람이었지만, 사교적이라는 점에서는 카림 알 아짐과 비견할만한 정도였다. 말레우스는 스티안을 통해 라그나르에 대해서 아주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물론 스티안 역시 생각없이 제 친우의 치부에 대해 떠들어대는 얼간이는 아니었기에, 아주 조금뿐이었지만.

 

라그나르 발테리는 모국에서 퀴로타-스티안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퀴로타는 저주하다, 스티안은 방랑자라는 뜻이다. 바보같지. 그 말을 하며 카스페르 스티안은 웃었다. 저주받은 방랑자라니, 라그나르가 원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닌데 말야. 말하며 어깨를 으쓱이는 모습에, 말레우스 역시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저주라고 하면 저주겠고, 축복이라고 하면 축복이겠다. 라그나르는 태생부터 자연의 보살핌을 받았다. 모든 꽃들이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고, 모든 나무가 그녀에게 기대도록 등을 내주었다. 바람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햇살은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으며, 강물은 그녀를 태운 채 몇 시간이고 함께 놀아주었다. 그러나 그녀가 나이가 들고, 마력이 점차 커지며 문제가 시작되었다. 그녀의 감정 기복에 따라 자연이 멋대로 감응하여 반응하는 것이다. 웃을 때 꽃이 핀다고 하면 듣기야 낭만적이지. 스티안은 이죽거렸다. 문제는 어디에서 피느냐야. 물론 어디에서부터 피어나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라그나르의 마력에 반응한 꽃은 필 곳을 가리지 않거든. 사람의 머리 위에서 피어나는 꽃을 상상해봐. 물론 한 송이로는 안 끝나고. 그러니까 어설프게 다가가지 마. 내가 너랑 굳이 척지는 건 여러모로 귀찮잖아, 안 그래. 왕자 폐하? 낄낄대며 웃는 스티안에게, 말레우스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말레우스의 질문이 길어질수록, 스티안은 라그나르에게 가서 말해도 되는 이야기의 범위를 듣고 왔다. 그리고 그녀가 말해도 된다, 라고 허락받은 것은 저 이야기까지였다. 그러나 저 정도 들었으면 알 만한 일이다. 모두에게 배척받으면서도, 혹시 누군가를 해칠까봐 필사적으로 자신을 감추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말레우스 드라코니아는 사교성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라그나르를 마주했을 때는 더욱 그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발 내디뎠다. 아직은 알지 못하는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고자 했다. 태어나서는 안 되었던 저주받은 공주님. 그런 말을 들었을 그녀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 적어도 누군가는 당신의 생일을, 당신의 탄생을 축하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운 감색의 포장지로 감싼, 조금 짧은 백색 장갑을, 그녀의 방 창가에 얹어두고 걸어나오는 말레우스는, 오늘따라 유독 붉은 반딧불의 탓에 상기된 듯 보이는 뺨을 감추려는 듯 서둘러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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