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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응?”

“생일 축하해요.”

 

 

몇 시간 전부터 뭐 마려운 강아지 마냥 안절부절 못한다 싶었더니 자정이 지나자마자 슬그머니 카오루의 옆에 붙어 앉아 하는 말이다. 카오루는 놀란 듯한 표정으로 아키라를 봤다. 자신을 빤히 보는 맑은 눈동자에 아키라는 어색하게 웃어 보인다.

 

 

“내가 말해준 적이 있던가? 내 생일.”

“지난 번에.”

 

 

아키라는 말끝을 흐리며 웃었다. 전혀 설득력 없는 표정이었지만, 카오루는 또 그렇게 생각한다. 토우야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카오루가 더 캐묻지 않자 아키라는 이번엔 안도의 미소를 내비치며 일어난다. 쭈뼛쭈뼛 망설이며 조금씩 뒷걸음질치다가 이내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방에 들어간다. 카오루의 눈동자가 아키라의 등을 쫓았다. 아키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등뒤에 손을 숨긴 채로 나타났다. 고작 내 생일이 뭐라고 준비까지 했대. 카오루는 생각을 말로 꺼내지 않았다. 아키라가 싫어하는 말이다.

아키라는 카오루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쇼파에 앉아있던 카오루는 이전보다 더 놀라며 자신도 바닥으로 내려가려고 몸을 일으켰지만 했지만 아키라의 눈빛의 기세에 밀려 도로 아키라의 대접은 아직은 버겁다. 아키라를 내려다보는 것은 언제부터 자신의 일이었던가. 카오루가 불편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없는 아키라는 바로 등뒤의 물건을 건넬 준비한다. 아키라는 카오루의 손에 등에 감추고 있던 물건을 쥐어주곤 카오루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카오루는 손에 올라간 낯선 물건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그것은, 작고 하얀 휴대용 전화기였다.

 

 

“이게 뭐야?”

“전화기예요. 휴대전화.”

“으응, 웅. 그건 아는데.”

 

 

아무리 카오루가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고는 해도 신문이나, 잡지나, 텔레비전은 즐겨보곤 했으므로, 세상 돌아가는 일은 오히려 바둑밖에 모르는 아키라보다도 더 잘 알 것이다. 언제부턴가, 그 속의 주인공들이 연락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광고로도 종종 마주쳤다. 이것이 얼마나 편리하고 획기적인 물건인지 설명하는 광고를 수없이 보면서도, 카오루는 관심 한 번 가지지 않았다. 이유는 확실하고 간단했다.

카오루가 그다지 흥미가 없는 눈빛으로 손에 들린 물건을 살피자 아키라는 살짝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그런 이유로 선물을 거절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받는 사람이 기뻐할 만한 것을 주고 싶은 것은 당연했다.

 

 

“제 것도 있어요. 요즘엔 다 이걸로 연락해요.”

“다?”

 

 

아키라가 눈에 힘을 주곤 카오루를 바라봤지만, 카오루는 그저 웃고 만다. 이상한 곳에서 꼬투리를 잡는 것은 원하지 않은 물건을 선물로 받았다거나, 그런 하찮은 이유가 아니었다. 아키라도 그것을 알았기에 더 이상 재촉하지 않는다.

 

 

“난 별로 필요없는데.”

“선배.”

“난 이런 게 필요할 만큼 밖에 나가지도 않잖아. 어차피 나한테 전화할 사람도 토우야밖에 없고.”

 

 

일부러 이러는 건가? 그렇다기엔 너무나도 순수한 얼굴이었다. 카오루에게 손을 내밀었던 이유는,

 

 

“선배, 저는,”

“고마워. 토우야라면 분명, 뭐라도 준비할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던 건데. 생일에 선물을 받는다는 건 기쁜 일이구나.”

 

 

카오루는 꼭 난생 처음으로 선물을 받은 사람처럼 이야기했지만, 아키라는 이전에도 카오루에게 종종 선물을 주곤 했다. 책, 날짜가 조금 지난 잡지, DVD 등등. 텔레비전과 라디오도 아키라가 가져온 것이고, (카오루는 그때도 딱 이런 반응이었다. 난 그런 거 필요없는데.) 최근에는 컴퓨터를 설치해 인터넷을 하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카오루는 거의 쓰지 않는 듯 하지만.) 카오루가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세상을 알 수 있도록.

전화기는 여태까지의 ‘선물’과는 결이 달랐다. 선배는 세상을 좀 알 필요가 있어요 그렇게 말은 해도, 속으로는 하지만 세상은 선배를 몰랐으면 좋겠네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전화기는 결국 세상과의 소통 창구가 될 것이다. 그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전화기를 준 것은, 그만큼 과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긴의 것만이 아니라 카오루의 것도 준비한 것은, 카오루를 더 묶어두고 싶었기 때문에.

 

 

“…… 고마워요. 선배의 스무 살 생일을 축하하게 해줘서.”

 

 

스무 살 생일은, 성인이 되는 해이기에 누구나 특별하게 챙길 터였다. 하지만 카오루에게는 그보다 더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오늘을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고마운 일이었다. 카오루의 유효기간은 스무 살 생일 다음날까지이긴 하지만, 오늘의 태도를 봐서는 그 유효기간은 무효(혹은 연장)가 된 모양이다.

아키라는 어떻게든 카오루의 스무 번쨰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었다. 카오루와 함께 지내는 몇 해 동안 알 수가 없었다. 알려달라는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아키라가 그러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 카오루는 분명 부담을 느낄 것이다. 적당한 부담은 관계에 도움이 된다는 말도 있지. 분명 그럴지도 모르지만, 카오루에게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독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로 알아듣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몰래 알아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토우야 아키라’라는 것과 상대가 ‘츠즈라누키 카오루’라는 것만 이용한다면, 의외로 몇 다리만 건너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것을 카오루의 스무 번째 생일이 지나기 전에 알게 되어 다행이었다.

 

 

“토우야는 나한테 받고 싶은 거 없어?”

“그렇지만 오늘은…….”

“응. 내 생일이잖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줘.”

 

 

아키라는 카오루의 미소를 보곤 입을 다물었다. 기회였다. 카오루가 먼저 뭔가를 하고 싶다고 드물었다. 그렇다면 고민할 것도 없었다. 카오루에게 바라는 것은, 이것 하나로 전부 설명이 가능했다.

 

 

“스물한 살 생일도, 스물두 살 생일도 그 다음 생일도, 계속, 계속 축하하게 해주세요.”

 

 

아키라의 바람을 들은 카오루의 표정은 어쩐지, 당혹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혀 예상하고 있지 못한 내용은 아니었는지 그다지 놀란 표정은 아니었다. 카오루는 아키라 쪽으로 몸을 조금 돌렸다. 평소처럼 차분한 음성이 그의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토우야는 앞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거잖아. 그러면 중요한 사람도 많이 만나게 되겠지. 어쩌면 애인이 생길지도 모르고.”

“…….”

“나는 손에 넣은 건 닳고 해져도 버리지 않아. 토우야도 알잖아.”

 

 

선배는 참 쓸데없는 것을 걱정하는 버릇이 있다니까.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모든 일에 자신의 확신을 구하는 선배는 사랑스러웠다. 아키라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오루는 아직 아키라의 마음을 다 받아들이지 못한 듯 염려가 담긴 눈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키라를 따라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그래도 아키라의 바람을 밀어낼 사람은 못 되지. 아키라는 그것을 알았다.

카오루는 말없이 아키라를 바라봤다. 저건 걱정이 있을 때의 표정인가? 비밀이 있을 때의 표졍? 부탁을 할 때의? 무엇과도 비슷하면서도 무엇과도 완전히 같지 않았다.

 

 

“네게서 하나만 더 받아도 될까?”

“얼마든지요.”

 

 

아키라의 즉답에 카오루는 머뭇거리다가 털어놓는다.

 

 

“그럼 눈을 감아줄래?”

 

 

아키라는 의아한 듯 눈썹을 까딱이다가 곧 그 말을 따라 눈을 감는다. 이거 받아가는 사람이 할 대사는 아니지 않아?

카오루는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는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뭐 필요한 게 없냐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라고는 수도에서 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거나, 전구가 나갔다거나, 하는 것들을 답하곤 했다. 카오루가 신경쓰는 이유는 하나였다. 토우야 아키라. 선배라면 아마 혼자 살았으면 그냥 그런대로 살았을지도, 아키라는 항상 생각했다. 진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네게서’ 받고 싶은 것이 있다는 말을 하고. 이게 일부러가 아니면 뭐냐고. 아키라는 카오루를 더욱 알 수 없어졌다.

 

눈을 감은지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카오루는 아키라에게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눈을 뜨라는 말도 없다. 뭘 하려는 생각이길래 이렇게 준비가 오래 걸리지? 상황을 예상할 수도 없어 아키라는 결국 실눈을 뜨고 상황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래도 10초만 더 기다려볼까. 무엇인지는 몰라도 공들여 준비해주는 카오루가 기특하기도 했고, 그것을 마주했을 때의 기분을 빼앗기기는 아쉬웠다. 아키라가 속으로 다섯을 셋을 무렵을까, 아키라의 입술에 뜨겁고 말캉한 것이 와닿는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지만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아키라는 눈을 떴다. 눈앞에는, 두 눈을 꼭 감고 제게 닿을 만큼 가까이 붙어있는 카오루의 얼굴이 보인다. 아니, 실제로 닿아있다. 입술이.

키스, 라고 하기도 애매한 단순한 입맞춤이었다. 아키라가 입을 벌리고 잡아삼킬 듯 카오루의 입술을 물자 카오루는 눈을 뜨곤 뒤로 물러난다. 입술에 온기는 사라졌지만 감각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렇기에 갑자기 떠나버린 카오루의 입술이 더 아쉽게만 느껴진다.

 

 

“선배, 왜,”

“내가 받아가는 거니까.”

 

 

이게 무슨 받아가는 거야. 받은 것은 오히려 아키라다. 카오루의 받아간다는 결국 주는 것이나 다름 없나. 카오루의 행동은 기뻤지만…… 역시 카오루는 진짜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이 뭔지 모른다는 것을 확인한 것뿐이다. 언젠가는 알게 해줘야지. 그 때까지 함께였으면 좋겠네. 아키라는 쑥스러운 듯 조금 붉어진 얼굴을 하곤 웃는 카오루를 보며 생각했다.

 

 

아직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가진 카오루가 방금 전까지 깨어있었다는 것은 꽤 오래 버틴 것이다. 잠든 카오루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다가 책상 위에 있을, 쓰다 만 편지가 생각났다. 글재주가 그리 좋지 못했던 것인지, 카오루에게 쓰는 편지라 그런 것인지. 단어마다 막혀 자정이 되기 전에 완성하지 못한 편지. 지금 마저 적고 아침이 되면 전해줘야지. 아키라는 카오루의 이마에 가볍에 입을 맞추었다. 생일 축하해요, 선배.

 

 

 

선배.

생일 축하해요.

내년 생일에도 선배의 얼굴을 보고 이 말을 하고 싶어요. 내년 뿐만이 아니에요. 평생 그렇게 하고 싶어요.

그리고 더 많이 받아가도 돼요. 오늘은 선배 생일이잖아요. 내년 생일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스무 해나 살아줘서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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