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날짜. 11월 7일.
지금 시각. 저녁 6시 50분.
저녁 7시가 되려면 아직 10분의 시작이 남았는데도, 윤정선은 초조해졌다. 혹시라도 와야 할 사람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싶어서. 전날, 윤정선은 도정우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내일 밤 7시. 내 사무실로 와.’
답장은 기대도 안 했고, 역시 아무런 답도 윤정선에게 오지 않았다. 하지만 윤정선은 모든 준비를 마쳤다. 도정우가 사무실에 들어올 것이라는 가능성을 무시하지 못한 탓이다. 그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해도, 윤정선은 믿고 싶었다. 원래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존재 아니던가.
그렇지만 막상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니, 긴장되는 것 역시 어쩔 수 없었다. 차라리 재판 시작 직전이 덜 떨릴 거라고 윤정선은 생각했다. 도정우가 올 것인지, 그의 반응은 어떨 것인지, 윤정선은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었으니까.
사무실 테이블 위에는 케이크 상자가 놓여 있었다. 윤정선이 방금 사왔다. 딸기 생크림 케이크. 지극히 윤정선의 취향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도정우는 자기 취향을 쉽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윤정선은 자신이 먹고 싶은 케이크를 골라야 했다.
‘여차하면 케이크는 내가 다 먹어 버려야지.’
이미 사온 걸 버릴 수는 없어서 하는 생각이었다. 불만이야? 그러면 나한테 뭐가 좋다 싫다, 오늘 올 거다 말 거다, 답을 해주든가. 그러나 윤정선의 이런 꿍얼댐을 들어야 할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어쨌든 시계 바늘은 평소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정각 직전의 초침이 윤정선의 눈에 들어왔다.
5. 4. 3. 2…
1.
“딸랑.”
문에 달려 있던 종이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누군가가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밤 7시 정각. 윤정선의 사무실에.
“윤정선 씨.”
빨간 사탕을 입에 물고 들어오는 사람. 낡은 검은색 가죽재킷을 걸치고 들어오는 머리 짧은 남자.
윤정선이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사석에서는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윤정선은 그동안 담아놨던 감정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답도 없이 사람을 불안하게 하더니 아무렇지 않은 척 들어와?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하지만 그런 윤정선의 말에, 이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여기가 사석이야? 윤정선 씨 사무실인데?”
하, 그래, 참자, 참아. 오늘의 주인공에게 화를 내어서 무엇 하리.
“앉기나 해, 도정우 씨.”
이번에도 자기가 이겨서 뿌듯한 건지, 도정우는 윤정선을 향해 능글맞게 웃어보이고 자리에 앉았다. 부글거리는 마음을 잠재우며 윤정선도 자리에 앉았다.
“가만 보면 참 순수해, 윤정선 씨.”
준비된 케이크를 보며 도정우가 말했다.
“도정우 씨 생일이잖아. 순수한 게 아니라, 이 사회의 문화에 적응된 것뿐인데.”
“그 생일이 정말로 내 생일일까?”
그렇게 묻는 도정우의 눈빛을 윤정선은 가만히 들여다봤다. 그는 아직까지도 사탕을 입에 물고 있었다.
“도정우 씨의 진짜 생일이 아니어도 상관없어. 태어난 것을 기념할 수 있다면.”
“태어난 것을 ‘기념’한다.”
피식 웃는 도정우의 표정은 다른 사람이 한 번에 읽어내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윤정선 씨라면, 조금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여기 온 당신이 할 말은 아니지? 도정우 씨는 나보다 훨씬 똑똑한데다, 여기에 안 와도 된다는 선택지도 있었어.”
도정우는 말이 없었다. 윤정선은 상자에서 케이크를 꺼냈고, 초를 하나씩 케이크 위에 꽂기 시작했다.
“아직도 ‘내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같은 생각을 하는 거라면 넣어둬. 나도, 당신도 우리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거 아닌데, 그런 생각해서 뭐할 거야? 스스로가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일이잖아.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려고?”
윤정선이 이렇게 말하는 동안, 어느새 불이 붙은 성냥이 초를 하나씩 밝히고 있었다.
“정 그렇다면, 말을 좀 수정할게. 태어난 걸 기념하는 게 아니라.”
윤정선은 모든 초에 불을 밝히기 전까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곧, 윤정선은 도정우 앞에, 촛불이 가득한 딸기 케이크를 들이밀었다.
“도정우 씨, 당신에게 잘못이 없다는 걸 증명하는 날이라고.”
도정우는 여전히 말없이 윤정선만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동의하면 얼른 불어. 촛농 떨어지면 케이크 못 먹어.”
올라오는 화를 누르고 윤정선이 말했다. 도정우는 그제야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말 잘하네, 윤정선 변호사.”
그리고 촛불은 도정우의 입김에 한순간에 꺼졌다.
“생일 축하해, 도정우 씨.
이제 다 내려놔. 28년 전의 불길은 이걸로 꺼졌어.”
.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