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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사이로 네 모습이 보였다.

 

   잔뜩 볼을 부풀린, 불만스러운 얼굴. 물론……. 이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신녀는 슬쩍 들었던 손을 그의 뺨에 가져다 댔다. 그가 잠시 임무를 나간 사이 대신관의 부름을 받고 그의 몸을 수복시킨 것이 대략 1시간 전, 그와 싸웠을 것으로 짐작되는 누군가의 허물을 아주 조금 수복시키고 꽃을 내려놓은 게 30분 전이었다. 대신관의 육체를 창조의 힘으로 수복시키는 것에도 큰 무리가 있었음에도, 모르는 척 신의 허물을 수복시킨 것까지 그가 전부 알고 온 것이 분명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에 대한 변명보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옳다.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오길 성격이 온화하고 상냥한 사람이 화를 내면 더욱 무섭다고……. 그의 경우가 딱 그랬다.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는 새우처럼 사이에 있기도 했고, 그들의 싸움이 하루 이틀도 아니었다는 점과 그 뒷수습은 언제나 눈앞의 신관이 도맡아 했기에 그 분노는 마땅했다. 그런 탓에 언제나 상냥했던 눈은 분명 웃고 있었지만, 입이 웃지 않고 있었다.

 

“신관님.”

“예비 신녀씨.”

 

저는 괜찮아요.

그 둘은 지금 어디 있나요?

 

   동시에 겹친 말, 다른 의미. 신녀는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그가 굳이 자신에게 물어보는 건 자신의 탓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와 같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흉흉한 붉은 빛으로 물든 아이트로 그의 기분을 어림짐작했을 때, 지금 그들의 위치를 알리기엔 때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이 강하게 외치고 있었지만….

 

“에브루헨.”

“로즈, 정말 말하지 않을 거예요?”

“에브루헨에게 거짓말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조금 진정할 필요가 있는 것 같네요. 화나셨잖아요.”

 

   그의 뺨에 손을 댄 채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았다. 창조의 힘과 공허의 힘. 길이 갈렸을 적부터 그렇게 싸우는 것조차 필연이자 운명이 되어버린 그들을 감쌀 이유는 신녀에게 있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그 분노에 휩쓸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고, 그걸 위해서라면 신념에 반하지 않는 선에서 필요한 거짓말은 기꺼이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해도 결론적으로는 거짓말이나 변명이 아니라 그를 위한 진심이었지만, 굳이 그것을 입 밖으로 뱉진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신녀의 마음은 전해질 것이고, 신관은 잠깐의 분노를 다스릴 수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겠어요, 그 둘을 찾는 건 조금 있다가 할게요. 대신.”

“대신?”

“나를 안 부르고 무모하게 혼자 치료한 거에 대한 잔소리는 로즈가 듣는 거로 할까요.”

“…….”

 

   다만, 그녀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신관 역시 그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녀를 아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신관의 상냥한 녹색 눈이 빤히 바라보는 것을 피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승낙한 신녀가 해가 지기 전까지 여신의 이름 아래 신관의 잔소리를 들은 것은 덤으로,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망설임 없이 나한테 먼저 말하기, 약속이에요.”

“그 이야기 벌써……. 알겠어요, 에브루헨. 약속할게요.”

 

   정말로, 이런 일이 생기면 숨기지 말고 그한테 말해야겠다. 그런 다짐을 하던 중, 문득 자신을 안아주는 신관의 온기에 신녀는 눈을 크게 떴다. 새삼스러운 포옹도 아니었지만, 매번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는 이렇게 놀라고 말았다.

 

“내 힘을 쓰는 건 내게 큰 무리가 가지 않지만, 네 힘은 지금도 네 생명을 소모해야만 하니까요. ……나는, 네가. 우리가, 여신님께서 허락하신 시간 동안 만큼은 함께 걷고 싶어요.”

“……죄송해요, 미리 말하지 않아서.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는데, 저도 당신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했어요.”

 

   안 그래도 불안정한 관계이건만, 자신의 힘 때문에 생길 불안함에 대해 그가 느꼈을 것을 전혀 배려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신녀는 조심스럽게 신관의 등을 끌어안고 토닥였다. 영원하지 않을 관계, 그와 자신. 둘 중 하나가 갑작스럽게 여신의 곁으로 돌아가면 끝나버리는 이 관계에 대해 자신만큼이나 그도 불안했을 텐데.

 

“에브루헨, 이제 더는 무리하지 않을게요. ……. 창조신 엘리아와 여신 이스마엘의 이름, 그들께 받은 이 창조의 권능 전부를 걸고, 그들의 대리인이자 인도자인 당신 앞에서 맹세할게요.”

 

   그제야 안심한 듯 떨어져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붉은빛으로 물들었던 아이트는 어느새 따스한 빛으로 물들어 있어서, 안심하고서 그의 옆에 앉아 어깨에 기댔다. 불꽃을 닮은 붉은 노을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잠드는 고요한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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