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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사이로 네 모습이 보였다. 늘 그늘이 질 정도로 푹 눌러 쓴 후드를 벗고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나누어주고 있는 너는 신전에서 호통을 치는 그 별지기와 동일인물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다정해 보여서, 나는 순간 내가 환각이라도 본 것이 아닐까 고민해야 했다.

 

“왜 그러십니까? 부단장 님. 어디 아프신가요?”

 

이마를 문지르다 말고 가만히 멈춰버린 내가 이상해 보였는지 부하 중 한명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간단히 답한 후 손을 거두었다. 약간의 두통이 있긴 했지만, 잠을 못 자서 그런 것이니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내가 걸음을 멈춘 건 믿기지 않는 꼴을 봐서 그런 것뿐이었지. 하지만 그것을 부하에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이에게는, 아니, 민간인 에게는 저렇게 대하는 건가.’

 

너는 신전 안에서는 언제나 벽 하나를 쌓아놓고 다니는, 친근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예의가 없다거나 경우를 모르는 사람은 아니지만 결코 친해지는 게 쉽지는 않은. 비밀이 많고 다소 능청스러운 사람이었지. 게다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너는 귀족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지위가 높을수록, 자신의 가문에 대한 긍지가 높을수록, 네 비아냥거림은 거침없이 날카로워졌지.

그렇다. 평소 너는 나에게는 그다지 다정하지 않았고, 쓸데없을 정도로 눈에 힘을 주고 나를 대하기 일쑤였다. 대체 무슨 배짱으로 야니크 가의 차남인 나에게 그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떻게든 눈치를 보는 타인들과 달리 너는 나나 다른 귀족들에게 고개 한번 숙이는 일이 없었다.

 

“베논!”

 

신전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나를 부른 건 부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나를 저렇게 부르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나는 저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어느 샌가 후드를 쓰고 내게 다가오고 있는 너의 표정은 빈말로도 좋다고 하기엔 너무 어두워 보였다.

 

“별지기 님, 부단장 님을 너무 편하게 부르시는 건….”

“됐다, 신경 쓰지 말도록. 무슨 일이지, 메로스?”

“아무래도 마물이 나타난 거 같은데, 확인 좀 해줄 수 있어? 애들이 이상한 동물을 봤다고 하는데.”

 

아, 그래서 표정이 어두웠던 것인가. 여전히 지끈거리는 머리의 고통을 지압으로 억누른 나는 부하에게 명령했다.

 

“나 혼자 가보도록 하겠다. 먼저 돌아가서 오늘 일에 대한 보고서부터 쓰도록.”

“네, 알겠습니다!”

 

아이들이 발견하고도 무사히 돌아올 정도의 마물이라면 둘씩이나 갈 필요도 없다. 가뜩이나 단장이 농땡이를 피워 바쁜데 일손을 줄일 수는 없다. 여러 가지 효율적인 측면을 생각해 홀로 가는 걸 결정한 나는 너에게 자세한 행선지를 물었다.

 

“어디로 가면 되는 거지?”

“따라와. 안내해 줄게. 말로 설명하긴 좀 복잡한데 난 가본 적 있어서 아는 곳이거든.”

“같이 가겠다고?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위험해 지면 알아서 튀거나 기절한 척 하거나 하지 뭐. 얼른 가자!”

 

역시나 무모하다. 나는 한 번 더 너를 말릴까 생각했다가 네가 꽤 황소고집인 것을 떠올리고 조용히 뒤를 따랐다.

‘자꾸 마물이 나오니 큰일이네.’ ‘기사단이 발견해서 해치우기 전에, 우리가 해치워야지.’ ‘넌 강하니까 좀 큰 마물이라도 해치울 거 같긴 하네.’ 내가 대답하지 않는데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너는 숲 속으로 나를 안내한다. 큰 길을 지나 좁은 길로 들어서고, 이윽고 인공적으로 닦아놓은 길이 완전히 사라진 외진 곳으로 들어갈 때 쯤.

 

“끼이이!”

“아, 찾았다!”

 

특이한 모양의 바위 아래, 몸을 웅크리고 있던 마물이 요란하게 울며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토끼와 다람쥐를 합쳐놓은 것 같은 기묘한 생김새를 한 마물은 경계하듯이 꼬리를 흔들고 있었지만, 먼저 공격해 올 생각은 없는지 덤벼들지는 않았다.

 

“물러서라, 휘말릴 수 있으니.”

“처리할 거야? 바로?”

“물론.”

“속전속결이네. 알았어, 난 저~기 멀리 떨어져 있을 테니 다 되면 불러.”

 

‘다치는 건 사양이야.’ 그렇게 덧붙인 너는 내 뒤로 한참을 걸어갔다.

그렇게 까지 물러설 필요는 없는데, 일부러 저러는 것인지, 정말로 다치는 게 죽도록 싫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어느 쪽이던 네가 다치지만 않는다면 나는 상관없다. 너는 퍼디난드가 추천한 별지기. 가디언의 중요 인물들의 케어를 담당하고 있으니, 부상이라도 입었다간 큰 손해가 되고 만다.

 

“끼익!”

 

중력으로 간단히 제압한 후, 근처의 돌을 무너뜨려 깔아 뭉게자 마물은 순식간에 소멸해 버린다. 날카로운 단말마와 돌무더기가 무너지는 소리에 ‘어우!’ 라는 감탄사를 내뱉은 너는, 슬그머니 내 뒤로 다가왔다.

 

“해치웠어?”

“그래. 돌아가지.”

“수고했어, 베논. 별일 아니라 다행이네.”

 

저 다행이라는 것은 내가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는 것일까, 아니면 이스델라의 사람들이 무사할 것 같아 다행이라는 것일까.

이런 걸 생각하는 건 이상하지만, 오늘은 문득 그런 의문이 든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아까 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정한 얼굴을 한 너를 보았기 때문일까.

 

‘…그런 얼굴은 처음 봤던가?’

 

그건 아니다. 나는 너의 다정한 얼굴을 신전에서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피스메이커의 대원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할 때나 디디에와 함께 있을 때면, 너는 아까 전처럼 살가운 얼굴을 하곤 했으니까. 다만 차이가 있다면 신전에서는 언제나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그 따뜻한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지.

그래, 그렇게 치면 처음 보았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보았기에, 이토록 잊히지 않는 거겠지.

 

“메로스여!”

 

우리가 막 신전에 발을 들이자, 디디에가 너의 이름을 부르며 요란하게 뛰어왔다.

정말로, 기뻐 보이는 얼굴이다. 가까워지는 디디에의 표정에서 마을 아이들에게서 보았던 천진난만함을 느낀 나는 무의식적으로 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이드!”

 

아, 역시나.

너는 아까 전과 똑같이 다정한 얼굴로 디디에를 맞이해 주었다.

 

“늦어서 걱정했도다! 오늘은 같이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기로 하지 않았느냐!”

“미안, 미안~. 갑자기 일이 생겨서 처리하고 오느라 늦었어.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남매처럼, 혹은 연인처럼 사이가 좋은 너와 디디에의 눈에는 마치 내 존재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식의 무시는 처음이라 황당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존재감을 드러낼 생각도 없다.

소리죽여 한숨을 내뱉은 나는 쌓인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먼저 자리를 떴다.

 

“잠깐, 베논.”

 

최대한 기척을 내지 않고 걸어가던 나는 갑자기 네가 부르는 바람에 고개를 돌려버렸다.

한 팔은 제이드와 팔짱을 낀 채, 나를 비스듬하게 바라보고 있는 네 얼굴은…, 무슨 일인지 날 향하고 있음에도 그다지 매섭거나 딱딱하지 않았다.

 

“말하는 걸 잊었네, 도와줘서 고마워.”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하여간 되게 재미없게 대답한다니까. 딱딱하기는….”

 

나에게 재미는 찾아서 무얼 하려고 그러는 걸까. 애초에, 너는 내가 재미있기를 바라는 걸까. 재미는 디디에에게서 충분히 보고 있지 않은가. 하여간 알 수 없는 녀석이다.

더 이상 뭐라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어진 나는 얼른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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