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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소재, 약간의 유혈 표현이 있습니다.

*7일이 아닌 것 같지만 그냥 재미로 봐 주세요.

 

 

 

 

 

 

 

 

 

   손가락 사이로 네 모습이 보였다.

 

   울고 있었나. 아마 그런 것 같다. 손에 맺힌 물기는 자신이 울고 있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었다.

   지독한 꿈을 꿨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지독한 꿈이었다. 너무나도 생생해 당장이라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끔찍한 감각이 머릿속에 따라붙어 아직까지도 선명한 고통을 그려내고 있었다. 제 앞에서 빛 어린 가호를 말하던 사람이 붉은 핏방울을 날리며 쓰러지는 모습은 모든 생을 통틀어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었으므로. 부드러운 갈색의 머리칼이 검붉은 빛에 물들고 새하얗기만 하던 옷가지가 섬뜩한 색으로 변하는 광경. 눈을 떠도, 감아도 계속해서 남는 잔상을 지워내려는 듯 눈가를 세게 비볐다.

 

“……셀리아.”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늘 여유롭던 음성에 어두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 슬픈 건지, 아니면 무언가가 안타까운 건지. 드리운 그림자가 무엇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소리를 내는 눈앞의 남자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터질 것만 같은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본다. 중앙청 구급센터인가. 임무 수행 중 쓰러졌던 듯하다. 무리도 아니었다. 자신은 요 며칠 새 무언가에 쫓기는 양 수면도 마다하고 계속 앞으로만 달려 나가고 있었으니. 현기증이 심하다 했더니 여지없이 이런 꼴이다. 인간이 가진 육체의 한계를 원망하고 싶은 심정이다.

 

“셀리아.”

“……세츠.”

 

   그의 목소리에 한없이 눈물만 쏟아내려는 마음을 다잡으며 숨을 뱉었다. 이런 시간마저 자신의 감정으로 망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시간이 무엇인가 하는 판단은 설 겨를이 없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소중해서, 일어날 리 없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해서, 단 한 순간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필요하지 않았다. 꿈에서 눈을 뜬 순간부터 자신을 사로잡은 하나의 생각이었다.

 

“무슨 꿈을 꿨기에 그렇게 울어. 안 좋은 꿈이면 날 부르라고 했잖아?”

“……네가.”

“내가?”

“……아니야. 그냥, 좀 안 좋은 꿈이었을 뿐이야. 다음에는 부를게.”

“그래…….”

 

   세츠의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런 그에게 네가 죽기 직전까지 상처를 입어 치료조차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는 꿈을 꿨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이 미치자 다시금 차오르는 절망감에 세실이 자리를 박차듯 일어났다.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일어나게 둘 수 없다. 애초에 자신이 지금 의식을 잃을 정도로 과로하던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얼마나 기절해 있던 거지. 시계를 보려 눈을 들었으나 그를 반기는 것은 온통 새하얗기만 한 벽이었다.

   의문이 일었지만 그런 데에 낭비할 시간조차 없었다.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향하려 했지만, 신체는 이미 한계점을 넘어, 발을 바닥에 딛는 순간 극도의 현기증과 함께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바닥에 또다시 쓰러지기 직전, 세츠가 그를 잡았다. 세츠의 팔을 지지대 삼아 일어서며 세실이 놓으라는 듯 그를 밀어냈다. 하지만 세츠는 그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밖으로 나가려는 세실을 제지하며 다시 베드에 앉혔다.

 

“그만, 셀리아. 이제 됐어.”

 

   무슨 짓이냐며 따져 물을 시간도 없이 가라앉은 목소리가 퍼졌다. 마주한 푸른빛은 예의 그 맑은 하늘색이 아니었다.

   마치 비라도 내릴 듯 그림자가 드리운 빛. 세실이 입을 닫았다.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탓이다. 다음에 이어질 말은, 상황은, 신의 힘이라도 빌리지 않는 한 막을 수 없다.

 

   신의 의지를 거스르겠다며 달린 꼴이네. 제 눈앞에 선 이는 신의 대리자다. 환상을 끝내는 사도였다. 이 짧은 순간은 기적 같은 것이 아니었다. 현실에서 도망치는 자의 낙원은 억지로 덧그린 지옥에 불과하다. 신이란 자는, 신을 말하는 자는 이래서.

 

“넌 충분히 했어. 그러니까…….”

 

   이것은 꿈이다. 순간 선명한 자각이 의식으로 뛰어든다. 세츠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알았냐는 듯한 작은 책망이 깃든 은은함이다. 그가 제 머리에 손을 올렸다. 단순히 쓰다듬는 것이 아니다. 풀어 늘어뜨린 머리칼이 세츠의 손에서 하나로 모여, 검은 리본으로 묶였다. 얼마 전 있었던 전투에서 손상된 리본이었다. 아니, 그것과 같지만 조금 더 오래 사용한 감이 있는 리본이다.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 그의 머리칼을 살폈다. 시선을 느꼈는지, 그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진다.

 

“곧 새벽이 올 거야.”

 

   영원히 멈춘 시간을 바라고 싶게 만들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가지는 미소를.

 

“그게, 내 소원이야.”

 

 

 

 

 

***

 

 

 

 

 

“지휘사님!”

 

   세실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언제 잠들었더라? 지독하다 못해 숨이 막히는 꿈에 시달리다 시간 감각마저 잃어버렸다. 눈을 돌려 시계가 있어야 할 자리를 본다. 이번에는 다행히 제대로 달려 있는 걸 보니 정말 현실이긴 한 모양이다. 간호사의 걱정스런 표정에 괜찮다며 살짝 웃어 보인 세실이 안경을 벗어들고 마른세수를 했다. 꿈 안의 꿈. 몽중몽이라고 하던가. 잔인하네. 삶에서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을 한 번 더 마주하는 기분은 딱히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중앙청 구급센터 안 병실. 푸르게 빛나던 눈은 감겨 뜰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창백하기 그지없는 혈색은 그가 소생할 희망이 그만큼 희미함을 보이는 듯했다. 제 스스로 숨을 쉬는 것도 곤란한지, 입가에 놓인 호흡기에 연신 김이 서렸다 사라졌다. 몇 개의 파형만이 그가 완전히 사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본래 그의 장점이자 능력은 회복력에 있었는데, 무슨 연유인지 그마저 나타나지 않아 손을 쓸 방도가 없었다.

   그의 신기사는 불멸의 성질을 가진 이다. 불사는 아니었다. 분명히 사망한 후 되살아나는 것이 특징이었으므로. 끔찍한 이야기였지만, 그것을 이용해 정말 위험한 상태다 싶으면 치료를 마다한 채 그 수순을 밟아 멀쩡한 상태로 돌아오기도 했다. 지금 이렇게 구급센터에서 연명이나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수준까지 몰렸다면 당연히…….

   하지만 기본적인 치유력조차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 섣불리 행동을 취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정말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으니. 생각해보면 그의 불멸을 너무 과신하지 않았었나. 당연히 사람이기에 이렇게 잃어버릴 수 있다는 가정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 역시 인간에 불과한데. 불멸이라는 속성은 영속하는 게 아닌데. 손을 떼는 순간 영영 사라질 것만 같은 모습은 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안일함의 죄업은 돌고 돌아 여기까지 이르는가. 신은 참으로 잔혹한 자다.

 

“……세츠.”

 

   입장이 반대가 됐다. 꿈속에서 일어나지 않는 자신을 기다린 그의 앙갚음인가. 이런 사소한 복수는 다 용서할 테니 일어나 줬으면 좋겠는데. 한 치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그의 머리카락을 매만진다. 어떠한 애정과 애절함이 한데 뒤섞인 손길이었다.

   세츠가 이렇게 된 후, 세실은 며칠 째 이곳에 틀어박혀 있었다. 지휘사의 업무에서도 손을 놓은 지 오래였다. 그저 세츠의 옆에서, 한없는 시간을 보내며,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나 올릴 뿐이다. 세계가 혼란한 지금, 무슨 짓이냐며 일갈을 들을 만도 했지만, 아무도 그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세츠가 세실에게 갖는 의미를 대부분 이해하는 탓이다. 의욕이라고는 없는 사람에게 지휘사라는 이름을 받아들이게 한 것이 세츠였으니, 그가 이런 상태가 된 이상 그 이름을 내려놓아도 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실제로, 세실은 세계 자체를 포기했다. 소생시킬 방법이 없다면, 정말 이대로 그를 잃어야 한다면, 그런 세계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고 단정했다. 이대로 같이 있다 멸망을 맞아 버리자. 홀로 남은 세계는 제게 필요하지 않았다. 의미 없는 인생에 빛으로 들어온 이가 사라진다면 남는 것은 끝없는 어둠에 잠식된 밤이다. 아침은 오지 않는다. 끝없는 극야(極夜). 희미한 별빛조차 없는 칠흑의 밤에 갇히는 것은 사양이었다.

 

“내가, 당신 진짜 싫다고 말했지?”

 

   그래, 포기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짜증난다는 이야기다. 며칠 동안이나 의식불명 상태로 누워있는 주제에 제 속내를 읽은 듯 꿈에 찾아와 말을 건넨다. 의미심장한 발언이었으나 세실만은 의미를 이해했다. 진짜 열 받는다. 헛웃음을 뱉으며 의자에 기대어 앉는다. 당신은 도대체 언제까지 나를 이끌 셈인가. 이렇게까지 된 후에도 빛을 거두지 않을 셈인가.

   짧은 정적을 깨며 세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론은 하나였다.

 

“……갔다 올게. 신관님.”

 

   별은 보이지 않을 뿐, 늘 그 자리에 있다. 이것은 극야가 아니다. 별이 자신을 불태우며 이끌어낸 백야(白夜)였다.

   그렇다면 나는 그걸 이어갈 수밖에 없겠지.

   너는, 나의 신이니, 나는 당신의 바람을 이룰 뿐.

 

 

 

 

 

***

 

 

 

 

 

   하늘에 흑문이 열렸다. 이제 남은 것은 세계의 절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마지막 날 아침, 중앙청 구급센터에 한동안 보이지 않던 이가 나타났다. 익숙하게 통제구역을 뚫고 지나가 병실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이전과 다르게 꽤 가벼워 보였다. 이전과 달라진 게 없는 광경에 세실이 씁쓸한 안도감을 곱씹었다.

 

“세츠, 나 왔어.”

 

   자신의 자리인 양 놓인 의자에 자연스레 걸터앉았다. 금방 나가려는 듯 가볍게 앉은 모습이다.

   마지막 방문, 그러니까 그 꿈 이후로 며칠만이다. 그 동안 세실은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일을 처리했다. 물론 중앙청에 지휘사라고는 둘밖에 없었지만, 다른 지휘사가 들어온다고 해도 미치지 못할 정도의 업무였다. 지금껏 비워뒀던 시간을 보상하기라도 하려는 양 미친 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 결과가 지금 눈앞에 내리려 하고 있었다. 저 흑문만 처리하면 한시름 덜 수 있다. 비록 그 후에 자신이 바라던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즉, 그 동기를 준 사람이 끝내 생명을 부지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분명, 그가 바란 새벽의 광경일 테니. 아침임에도 태양이 보이지 않는 지금은 밤이었으니까.

   세실이 세츠의 머리를 다시금 쓰다듬었다. 평소에는 좋아하지 않는다며 손사래를 쳤을 텐데. 반응이 돌아오지 않아 마음껏 쓰다듬을 수 있는 것을 기쁘게 여겨야 하는지. 그것조차 이제 마지막이다. 세계의 분수령.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생명의 끝을 맞이해야만 하는 순간. 할 수 있다면, 그 주인공은…….

   그리고 손길이 문득 그의 뒷머리에 가닿아 멈춘다. 본래 검은색의 리본이 자리하고 있어야 할 곳이었다. 세실과 똑같은 모양의 리본. 다만 그는 자신보다 오래 썼는지 사용한 감이 훨씬 느껴지는 것. 하지만 지금은 비어있었다. 그의 리본이 제 머리에 있는 탓이다. 사고가 일어나기 이전 임무를 맡을 때 일에 휩쓸려 제 것을 잃었었다. 그 때 세츠가 자신은 딱히 묶을 필요가 없다며 손수 묶어 준 검은 끈. 지금에 와서는 마치 유품이라도 된 듯 제게 의지를 주고 있는 존재.

   세실의 손이 세츠의 머리에서 떨어져 제 머리카락을 향했다. 왼쪽 머리에 고정해 놓은 리본을 조심스레 풀어낸다. 부드럽게 풀리는 리본이 손에 떨어지자 그와 정반대의 빛을 가진 머리칼도 풀어져 내린다.

 

“돌려줄게. 고마웠어.”

 

   꿈에서 그가 저한테 그랬듯, 세실이 세츠의 머리를 가볍게 쥐고 리본을 묶었다. 애초에 제 것이 아니었다. 본래 있던 자리에 돌아간 듯 자연스러운 모습에 잔잔한 미소가 퍼진다. 돌려줄게. 리본뿐만이 아니라, 네가 내게 준 모든 것을 다. 희망으로 시작하는 수많은 말을 너에게.

짧은 방문이 목적을 다한다. 세실이 망설임 없이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문을 나서기 직전, 마치 기원이라도 하듯 중얼거림이 울린다.

 

“이 밤을 끝낼 수 있게 해 줘.”

 

 

 

 

 

   어둠이 드리운 하늘 끝에 순백의 빛이 부서진다.

   어떠한 색의 방해도 없는 그저 새하얀 머리칼이 어둠 속에 날린다.

 

   밤은 끝나, 다시 시계의 추를 돌린다.

   세계는 한 번 더 아침을 맞고, 다시금 새벽을 바라겠지.

 

   그리고, 백색에 다시 밤의 칠흑이 물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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