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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사이로 네 모습이 보였다.

 

햇살에 시야를 가리자 흐릿하던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칠흑 같은 머리카락이 뺨을 간지럽히길 이내 달을 머금은듯한 눈동자가 예쁘게 휘어졌다.

 

"긴토키, 일어났어?"

 

코끝에 머무는 꽃내음, 배경 가득 들어찬 푸른 하늘에 흩날리는 벚꽃잎에 긴토키는 이내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꿈이구나. 자신도 모르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었다. 가슴께에서 흔들리는 부적도, 맞잡은 따뜻한 손도 어릴 적 기억 그대로였기에 더욱 이질감이 들었다. 앞에 있는 밤을 닮은 소녀는 기억 속에 있는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어디로 가는 거야?"

 

꿈인걸 깨달았음에도 입에서는 멋대로 말이 흘러나왔다. 과거의 앳된 목소리가 아닌 지금의 목소리였다. 자신은 어릴 적의 목소리를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니 당연한 것이겠지.

 

" - "

 

입은 움직이는데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너는 그때 무어라 답했더라. 마치 주위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듯이 상냥하고 부드러운 눈동자와 벙긋이는 입만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더 듣고 싶어 손을 뻗자 손이 얼굴에 닿기 전에 풍경이 바뀌었다. 제법 시원하다고 느껴지는 바람이 블고, 터져버릴 듯한 달이 손에 그러쥘 듯이 가까웠다. 푸른 하늘 아래는 아니었지만 밤을 밝히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코끝에 맡아지는 피비린내는 지독하리만큼 익숙했다. 감싼 손에 무심코 힘이 들어가자 평소와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긴토키가 살아만 있으면 돼.”

 

너무나도 평온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듯한 말에 바라본 얼굴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부하가 치밀었다. 언제부터일까, 늘 짓는 웃음은 어릴 적에 보던 것과 닮았음에도 블구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웃고 있지 않다는 걸 알기에 덤덤하게 뱉은 이 말이 진심이란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너는?”

“ - ”

 

이어진 대답은 마찬가지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긴토키는 이때 시즈카가 무슨말을 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흉내 내듯 짓는 웃음도 태연하게 뱉는 말들도 전부 자신을 위한 것이겠지만 그 행위들을 보고 있자면 결코 웃을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이 무슨말을 하던 시즈카에게는 닿지 않을 것이라는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안타까워 주먹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또다시 바뀐 풍경은 익숙한 사무소였다. 사다하루와 산책하러 나간다는 카구라와 차를 내와 마시는 신파치,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시즈카가 보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시끌벅적하고 귀찮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편안하고 소중한, 이제는 일상이라 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긴토키, 행복해?"

 

시즈카는 평소와 똑같이 웃는 얼굴로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읽고 있던 점프의 페이지를 넘기려다 멈추곤 고개를 들자 아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답을 기다리는 듯이 보는 얼굴에 코를 파며 심드렁하게 대답했었지.

 

“-”

 

원하던 대답이였는지 아니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츳코미를 거는 신파치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앞을 가로막고 얼굴을 들이미는 카구라에 금방 소란스러워졌으니까. 하지만 그런 아이들 사이에서 시즈카는 홀로 미소지었다. 사랑스럽다고 말하는듯한 상냥하고 부드러운 눈동자에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감정이 들었다. 행복이라는 감정이 표정으로 나타난다면 저런 표정이겠지. 그 얼굴에 나도 모르게 따라 웃음을 지었었다. 시즈카는 위태롭지도 쓸쓸하게도 보이지 않았다.

 

저 녀석들을 만나고 이런 시끄러운 일상이 앞으로도 이어진다면 분에 넘치게 행복하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 . .

 

무거운 머리가 기분 나쁘게 흔들렸다. 고개를 흔들 때마다 부스스한 머리칼이 흔들려 몇 번 머리를 쓸어넘긴 긴토키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흐린 시야가 깨끗해지자 비로소 긴토키는 깨달았다. 침묵만이 흐르던 방안에 이내 탁하고 갈라진 목소리가 흘렀다.

 

"….젠장"

 

시즈카는 떠났다. 그리고 자신은 시즈카를 붙잡지 못 했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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