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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사이로 네 모습이 보였다. 이것은 이미 지나 버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그런 아이가 있었지 하고 떠올릴 너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태을은 생각했다. 펼친 손바닥을 오므려 주먹을 쥐었다.
날아가던 나타의 몸이 점점 무거워져 간다. 제대로 고쳐지지 않을 탓이다. 나타는 제 스승을 떠올리며 무거워지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그러자 크게 덜렁이며 그대로 푹 아래로 떨어진다. 제법 큰소리가 나면서 나무가 흔들리고 나무 위에 앉아있던 새가 놀라 하늘 위로 날아간다. 날아가는 새를 향해 손을 뻗으려던 나타는 힘이 풀려 팔을 바닥에 떨구고 눈을 감는다. 몸이 안 움직이니 뭘 할 수 있을까. 멀리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집중된다. 적이라면 공격해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이라도 떠져야 누군지 알 수 있을 텐데. 몇 번의 시도 끝에 눈이 번쩍 떠진다. 그리고 그 앞엔 처음 보는 여자가 저를 빤히 보고 있었다.
“괜찮아요?”
“적이냐.”
“적이냐니… 다치셨어요? 아, 어떡해… 일단 저희 집으로 갈래요? 바로 앞인데.”
“신경꺼. 강한 사람 외엔”
제 몸이 쑥 들리니 나타는 그를 빤히 쳐다본다. 알 수 없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웃는 얼굴이 오랫동안 봐왔던 그리움을 떠올리게 했다. 그 그리움은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낑낑대며 저를 끌며 걸었다. 몇 발짝 걷다 힘들었는지 숨을 내쉬다 다시 힘을 주어 걸었다. 땅이 끌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나타는 하늘을 보았다. 푸르른 하늘 제 머리색과 상반되는 것이 집중을 하라는 듯 눈에 쏙 들어온다.
발꿈치에서 느껴지는 둔탁함에 땅의 재질이 달라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고개를 돌리니 아주 작은 집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제집이에요.”
“작아.”
“혼자서 사는 집이니 작을 수 밖에요.”
“혼자서… 가족이 없나?”
여전히 자신을 끌고 가던 그의 움직임이 멈췄다.
“저만 두고 먼 곳으로 갔어요.”
“먼 곳…….”
“미안해요. 불편했죠? 마저 들어갈까요?”
그 말과 함께 고쳐 잡아 들어 끌었다. 안쪽으로 끌고 들어와 마지막 힘을 주어 끙끙 이며 끌어올린다. 침대 위로 몸이 올라오자 푹신함과 이불의 포근함에 나타의 눈은 점점 감긴다. 이마 위로 올려지는 감촉. 따듯한 손이 이마를 두어 번 툭툭 치다 마지막엔 얹었다. 무엇을 하려는 행동인 걸까. 그리움의 한쪽에서도 느껴진 행동이었다. 분명…….
열이 있어서 쓰러진 것은 아닐까 이마에 얹었지만 열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런 행동은 가족이 없어진 이후론 하지 않았던 행동이었다. 나타가 눈을 뜨지 않자 그는 저보다 어린 제 동생을 떠올렸다. 무뚝뚝하지만 저를 챙겨주었던 착한 동생이. 가족이 없나? 직설적인 그의 말이 마음을 찔려왔다. 잊고 살아야지 했었는데. 밖에서 들리는 날카로운 소리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작은 새가 제 부리로 창문을 두드렸다. 가끔 찾아오기에 밥을 조금씩 나눠줬던 작은 새였다. 밥하니 저녁 준비를 해야겠다며 몸을 일으켰다. 들고 온 재료로 저녁을 해야지. 그가 식탁 위를 보자 매일 챙겨왔던 재료가 든 바구니가 보이지 않았다. 설마… 나타가 깨지 않게 조심하며,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빠르게 뛰었다.
얼마 안 가 제 바구니가 눈에 들어왔다. 다행이다. 안도의 숨을 뱉어내며 바구니를 잡으려 몸을 숙였다. 그 옆에 떨어진 무언가의 조각. 바구니와 챙겨 들었다. 무엇일까. 하늘 위로 올리며 확인하니 반짝이는 이것이.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 다른 조각이 있지 않을까 확인을 했다. 바로 옆에 조금 더 큰 조각이. 그러다 점점 자잘한 조각들이 같은 곳을 향해 있었다. 조금 전 뛰어왔던 제 집 쪽으로. 그러고 보니 제 집에서 자고 있던 그의 팔과 다리에 족쇄 같은 것이 채워져 있었다. 그것의 조각일까. 그는 작은 천을 꺼내 바구니 한쪽에 펼쳐두고선 제 집 쪽으로 걸어가면서 그 조각을 빠짐없이 주웠다. 주워만 해야할 것 같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제자가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어딘가에 잡힐만한 성격도 아니고. 다른 도사에게 분명 어딘가로 갔다며 아래쪽을 가리키는 것이 다였다. 설마 집으로 돌아간 걸까? 그럴 리가 없었다.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태을이 도착한 곳엔 무언가 높은 곳에서 떨어진 흔적만이 남은 땅이었다. 이 근처에 있을 만한 곳…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이는 연기. 이런 숲속에 누군가 야영을 하는 걸까. 걸어가면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 가까워지면서 보이는 건 작은 집. 누군가는 살고 있다는걸 알리듯이 맛있는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노크를 할 새도 없이 문을 벌컥 열었다.
“나타!”
문이 열리자 눈앞에 보이는 나타는 침대에 앉아 음식이 든 그릇을 들고 있었다. 그 옆엔 숟가락을 들고 있던 여자가 있었다. 상황을 봐선 돌봐주고 있었던 것이라는걸 알아차린다.
“뭐야.”
“뭐냐니, 스승님한테.”
“나타의 스승님… 죄송해요! 나타의 몸이 좋지 않아서 제가 잠시 데리고 있었어요. 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줄 게 있거든요.”
들고 있던 숟가락을 태을에게 넘겨주곤 안쪽으로 들어간다. 멍하게 있다 그가 앉아있던 곳에 앉자 나타는 태을이 아닌 그가 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 대답에 단답을 하면서 시선은 방 쪽으로 향한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물어봐도 대충 대답을 하니 자세한 건 들을 수가 없었다.
“저…”
“아. 무슨 일이지?”
“나타가 가지고 있던 물건인데 깨져서… 일단은 제가 주웠는데…”
“이건…….”
나타의 건곤권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부서진 체였다. 원래도 쉽게 부서지는 편이긴 했지만, 이걸 전부 모았다는 걸까.
“그래, 잘 받을게. 그나저나 나타를 치료해준 것도 그렇고 이걸 모아준 것도 그렇고 고마워서 그런데 원하는 거 없어?”
“아뇨, 없어요!”
“그래도 원하는 거”
“나타가 건강해졌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나타는 일어날 수 있어?”
“어. 그런데 혼자 있어도 괜찮은 거냐?”
나타의 말에 그는 웃었다. 소매를 걷어 괜찮다며 대답하고는 나타의 몸을 일으킨다. 스스로 일어날 수 있지만 나타는 가만히 그 부축을 받았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해줘도 될까. 둘을 쳐다보던 태을은 그제야 집안을 둘러본다. 혼자 살면서 어떻게 고치려고 했지만 어설픈 탓에 곧 다시 부서질 것만 같았다. 본인이 거절했지만 이상하게 보답은 하고 싶었다. 태을은 나타에게 가면서 먹으라며 보따리에 음식을 챙겨주기까지 하는 그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가지 않겠다고 할 줄 알았다. 다른 곳으로 돌아간다던가. 하지만 그가 저를 보내려 인사를 하러 나온 탓에 나타는 태을을 따라갔다. 같은 곳을 가면서 둘은 가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보낸다.
분명 보답을 바라지 않았다. 그런데도 본인은 해주고 싶었다. 어둠이 내리깔린 밤, 달빛을 등 삼아 그 집으로 내려왔다. 본인의 동의 없이 들어가는 건 마음에 찔리지만… 태을은 조용히 들어왔다. 잠을 자는 그를 깨우지 않고 방안을 둘러본다. 부서지려는 천장과 벽, 그가 사용하려는 물건까지 고쳐야 할 건 다 살펴본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일단 가볍게 자주 사용하는 것 같은 물건부터 고쳤다. 저에겐 간단하지만, 그에겐 간단하지 않았을 테지. 끈으로 몇 번 둘러 묶어놓은 걸 보고선 바로 간단히 고쳐준다. 벽이나 천장 같은 경우엔 몇 번을 왔다 갔다 해야할 것 같았다. 안 들키고 가능할까. 태을은 자고있는 그를 쳐다보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 오늘 고칠 건 다 고쳤고 살펴봤으니 내일부턴 좀 바빠지겠지. 조심스럽게 걸어 집 밖으로 나왔다. 얼마 전 저와 나타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왜 떠올린 걸까. 태을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 후로 시작된 행동은 본인에게 들킬 때까지 이어졌다. 집 안에 있던 물건이 고쳐지고 벽과 천장이 튼튼해질 때까지 며칠을 거쳐 빼먹지 않고 찾아갔다. 저를 보며 반갑게 웃어주며 저를 위한 다과를 준비해주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은 그의 외모가 점점 변해가면서 함께 흘러갔다. 자신을 찾아오지 말아 달라고 이미 지나버린 시간에 더는 버티지 못한 그의 한마디를 끝으로 그의 만남은 끝이 났다.
지금도 찾아간다면 그 집은 남아있을 거다. 하지만 그때처럼 저를 기다려 주고 맞이해 주는 사람은 없겠지. 본인은 찾아가지 않지만 나타는 찾아가는 것 같았다. 저를 챙겨준 그를 떠올릴 때마다. 태을은 쥔 주먹을 다시 펼쳤다. 오늘 같은 날이면 몇 번이고 손가락 사이엔 그가 자신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런 건 보고 싶다고 하는 거겠지. 태을은 이미 흘러간 시간을 억지로 잡으려 하지 않고 조용히 흘려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