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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사이로 그대가 보였다.]
-딸깍
“왜?”
성현제의 품에 안겨 노트북으로 드라마를 보던 윤제희가 갑자기 일시정지를 눌렀다. 그리고 성현제 상체에 기대어 가만히 화면을 바라봤다. 화면에는 녹음이 우거진 곳에서 한 남자가 햇빛을 가리며 머리 위로 손을 올리고 있었다. 윤제희는 이 장면이 그렇게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드라마 엔딩까지 감이 오는 뻔한 장면인데요.”
“그래? 당신은 엔딩이 어떻게 될 거 같아?”
“뻔해요. 손가락 사이로 그대가 보이고 반하고 남자가 여자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여자에게 은근슬쩍 잘해주고 여자가 남자에게 마음이 가고 둘이 썸타면서 잘 지내다가 결국 이어지다가 나중에 싸우고 멀어졌다가 다시 이어지고. 그리고 끝.”
“배우년생 3년의 말을 들어보니 그럴 거 같군.”
윤제희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제 어깨를 감싸고있는 성현제의 손을 만지작 거렸다. 그리고는 깊은 생각에 잠겼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 윤재희 양께서 무슨 고민에 빠졌을까?”
성현제는 윤제희의 미간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자 윤제희는 미간을 푼 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저씨는 어떻게 저에게 반하게 된 거에요? 진짜 막 손가락 사이로 그렇지는 않죠?”
윤제희의 귀여운 질문에 성현제는 웃으며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에 기대며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비슷한 느낌으로 반했지.”
“그런 감성적인 면도 있다고요?”
“나 좀 마음아픈데.”
성현제의 놀라운 대답에 윤제희는 몸을 돌려 그를 바라봤고 진심으로 놀랐다는 눈빛을 마주본 성현제는 그럴 리 없겠지만 마음의 상처를 얻었다는 표정을 지어 보여주었다. 그 얼굴조차 잘생겼다. 하지만 진짜 그렇다니... 윤제희로는 그 성현제가 그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대체 자신의 어떤 모습에서 그런 건지 싶었다.
윤제희는 성현제를 알고 지낸지 3개월, 연애한지 2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그가 처음부터 자신에게 호감을 비췄던 것과 연관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시 질문했다.
“절 언제부터 아신 거에요?”
그 말에 성현제는 그저 눈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가 그녀를 알게 되고 흥미를 갖게 되고 마음을 주게 된 것은 얼마나 되었을까? 거의 4년이 넘었다. 그걸 그녀가 알까? 그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절대 알 수 없도록 그녀의 소속사도 조용히 해왔다. 지금의 윤제희는 성현제가 예전부터 자신을 알아왔고 그게 몇개월 되었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몇 년이 되었을 줄은 예상도 못 했을 거다.
그리고 그게 맞는듯 제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를 바라봤다.
“아저씨는 다른 사람에게 흥미를 그렇게 오랫동안 갖고 있던 적이 있나요? 난 모르겠는데.”
“오랫동안 관심을 가진 적은 있어.”
“얼마나요?”
“4년.”
성현제는 자신에게 안겨오는 윤제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 사람은 좋겠네요. 4년이나 대단하신 성현제씨의 관심을 받고 있다니.”
윤제희는 성현제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그 말이 성현제에게는 꽤 섭섭하게 들렸다. 자신의 마음을 아직도 몰라주는 상대를 처음 보기도 했고 이렇게까지나 그녀가 눈치를 채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기도 했다. 자신이 계속 여지를 줬건만.
“더할나위 없이 행복해하고 있지.”
“지금 내 품에 안겨서 말이야.”
성현제의 말에 윤제희가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그를 바라봤다. 역시나 그가 예상했던대로 윤제희는 몰랐다는 표정을 엄청나게 드러냈다. 흔히 작품에서 자주 묘사되듯이 눈이 동그래지고 입이 살짝 벌려진다는 것이 그녀의 얼굴에 그대로 그려졌다. 거기에 홍조가 뜨는 것은 덤이었다.
성현제는 그 모습이 퍽 귀엽다고 생각했다.
“진짜에요? 제 데뷔때부터 흥미를 가졌단 말이에요?”
성현제는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그제야 퇴근길 중 자신을 본 것을 기억해냈는지 동그란 눈이 휘어지며 반으로 접혔고 입이 귓가에 걸릴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그때 그 사람이 당신이 맞았군요!”
“이제야 알아봐주다니. 영광입니다, My lady.”
“사람이 그럴 수도 있죠!”
“그렇지.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우리 슈퍼스타는 그럴 수 있지.”
우리 귀여운 아가씨는 뭘 해도 좋으니까.
성현제는 윤제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마치 인형같이.
성현제의 손길을 느끼며 윤제희는 무언가 중요한 것이 떠오른 듯 점점 내려가는 상체를 다시 재빠르게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노래 부르는거 기다리고 있어요?”
“물론.”
“어떡해 진짜...”
상상치도 못한 대답에 윤제희는 얼굴을 양 손에 묻었다.
“나 다시는 극장 무대에 오르지 못할 거 같단 말이에요.”
윤제희의 말에 성현제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쥐었다. 그리고 손을 떼어내자 살짝 눈물이 맺힌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는 한쪽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그 눈가에 살며시 입을 맞췄다.
“힘들면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 제희야.”
“하지만,”
“나 뿐 아니라 팬들도 네가 잘 사는걸 더 원하니까.”
말을 마친 성현제는 핸드폰에서 어느 한 사이트를 열었다. 윤제희의 팬사이트였다. 여기에도 가입을 하고 있었나. 윤제희는 당황해했다. 그러는 와중 성현제는 그 사이트의 어느 한 글을 보여줬다. 팬이 제희에게 올리는 편지글이었다.
[윤제희님께.]
로 시작되는
[저는 1년 전에 팬이 된 한 사람 입니다.]
그녀를 응원하는
[비록 그 던전 이후 길드를 세워 길드장이 되셔서 지금은 무대 위의 제희님을 보지 못하지만]
목소리.
[헌터로서의 제희님의 모습을 보며 항상 응원하고 있어요. 이건 저 뿐 아니라 모든 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 목소리는
[무대 위의 모습도 멋지지만, 길드장의 모습도 굉장히 멋져요, 제희님 화이팅!]
윤제희에게 힘을 주기에 충분하고도 넘쳐났다.
"제희야."
성현제는 양 팔을 벌렸다. 윤제희는 그대로 그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자신 안에 쏙 안기는 작은 몸을 성현제는 살며시,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무척이나 다정이 담긴 포근한 팔이었다. 그리고 그는 윤제희의 머리칼에 입을 맞추며 낮은 목소리로 그만 들릴 정도로 말했다.
“난 너가 어떻게 있어도 상관없다.”
“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그냥 너의 그 모습 자체를 보여줘.”
윤제희는 자신을 향한 그의 다정함이 부담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4년동안 자신을 지켜봐왔고 지금도 이렇게까지 사랑을 주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한결같이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팬들의 마음이 너무나도 고마워 윤제희는 그의 품에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언제나 자신을 향해 사랑을 보내주는 사람들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