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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가락 사이로 네 모습이 보였다.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호연의 여름은 언제나 햇빛이 쏟아지는 나날이었으므로 그를 피해 눈을 가리고 싶은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 * *

 

 

 

“그래도 말이지, 너무할 정도로 비가 안 오네.”

 

 

   간만에 머리를 올려 묶은 미유키가 커튼을 걷으면 불이 꺼진 방 안으로는 밝게 빛이 퍼졌다. 구름이라곤 한 점도 끼지 않은 맑은 날씨였다. 하늘이 투명한 나머지 꼭 다른 세계로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동시에 햇빛에 비해 차가운 공기가 불쑥 방 안으로 밀려들어온다. 내가 처음 여행을 떠났을 때가 딱 이런 날씨였는데. 미쿠릿치는 처음 여행을 떠났을 때의 날씨가 어땠는지 기억해? 즐겁다는 듯이 말을 꺼내는 목소리는 어쩐지 허전함을 느끼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미유가 비를 좋아하는 줄은 몰랐는데.”

“좋아한다기보다는…… 그렇지, 가끔은 그런 날도 있는 게 좋잖아.”

 

 

   가이오가가 내려오던 날만큼은 아니더라도. 익숙한 손짓으로 창문의 걸쇠를 풀고 바깥을 향해 여는 행동에 망설임이라곤 존재하지 않아 미쿠리는 옅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것만은 다이고가 모르는 그녀의 일면이었다. 그러게. 그 날은 정말 세계가 멸망해버리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해피 엔딩으로 끝났으니까. 시선이 향하는 저 먼 곳에선 어렴풋하게 바다 냄새가 나고 있었다. 곧 여름이 오리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온 거야?”

“미쿠릿치는 의외로 외로움을 타니까.”

“처음 듣는 소리인 걸.”

“원래 본인은 잘 모르는 법이지.”

“그것뿐이야?”

“그럴 리가. 단지.”

 

 

   미리 말하러 온 거야. 자신을 향해 말하고 있으면서도 미유키의 시선은 바다의 너머를 향해 있었다. 파도가 치는 저편에는 세계가 있다. 말하지 않아도 자리에 있는 두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미쿠릿치, 그러니까.

 

   그제야 미유키는 뒤를 돌아보았는데, 가뿐하게 들렸다 가라앉는 붉은 빛의 머리카락이 빛을 반사해 내 루비처럼 반짝였다. 바람이 불면 베일처럼 펼쳐져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흔들린다. 역광의 아래에서도 홀로 본래의 색을 잃지 않은 ―아니, 그녀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눈동자로 자신을 응시하고서.

 

 

“말리지 않을 거지.”

 

 

   그 때처럼.

 

   미쿠리는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 카와카미 미유키는 그 때의 츠와부키 다이고와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푸른빛의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며 웃던 때를 기억한다. 한 치의 후회도 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던 남자의 뒷모습을 잡지 않았던 사람은 자신이 아닌가.

 

   그러니 자신에게 그녀의 말을 거절할 권리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한다. 해를 쏟아내 부은 것만 같았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미쿠릿치.”

 

 

   자신을 향해 천천히 내밀어진 손이 부드럽게 눈을 덮는다. 울면 어떡해. 이젠 나도 없을 텐데. 그제야 자신이 울고 있음을 깨달았다. 작은 틈새로 빛이 번져 눈앞은 온통 붉은 빛이었다. 바람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므로 파도 또한 멈추지 않는다. 너는 그가 있는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들이쉬었던 숨을 천천히 내쉬고,

 

   천천히 눌러 감은 눈을 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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