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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가락 사이로 네 모습이 보였다. 잠깐 고개를 돌린 틈이었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긴 앞머리 사이로 비치는 눈동자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깨닫기도 전에 바람이 가라앉고 있었다.

 

   그 사이 활시위를 떠나간 화살은 묵직한 궤도를 따라 날아가 게이저의 동공 한 가운데에 꽂힌다. 검은색의 액체가 사방에 흩날리고 대지가 흔들리는 듯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이후의 공격을 대비하며 다시 한 발을 시위에 거는 손동작은 이미 익숙하다. 마지막까지 꿈틀대던 말단의 움직임이 멈춘 것을 확인한 뒤엔 익숙하게 몸을 낮추고 그늘이 진 위주로 추가된 적이 없는지는 살핀다. 그 짧은 정적이 흐르는 동안 옅은 바람이 앞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더 이상의 적은 나오지 않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라쉬 씨. 이걸로 시뮬레이션 종료입니다.”

“고마워, 마슈. 자세한 보고는 돌아가서 받을게.”

 

 

   그러면 시뮬레이션 전투는 종료였다. 화상과 함께 들리는 마슈의 목소리에 대답하며 아라쉬는 긴 숨을 내뱉었다. 현실보단 전투력을 낮춘 세팅이었으므로 눈에 띄게 너덜너덜해진 부분은 없었으나 전투를 치렀다는 흔적 정도는 남아 있었다. 그래도 인리가 멀쩡한 세계의 생물은 가지고 있지 않을 검은 피가 묻어 있지 않은 점을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정도야 돌아가서 회복한다면 금방 수복되는 것들이었으니.

 

   돌아간 이후엔 보고를 받고, 마스터와 함께 식사라도 할까. 밥도 제대로 못 먹은 채로 데려 와버렸고. 본 시뮬레이션은 마스터와 서번트가 떨어져 있을 때를 대비한 전투였으므로 모든 영상이 꺼진 이후에도 로멜라의 위치는 자신과 꽤나 떨어져 있었다. 주시하고 있지 않더라도 위치 정도는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망설임 없이 그녀가 서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차분히 가라앉은 머리카락 때문에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만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아라쉬 카망거는 이쯤에서 위화감을 느낀다.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로멜라 카스텔로치 아리얀도르에게.

 

   다만 그녀는 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곱씹어 보면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지금 이 곳은 지금 시뮬레이션 전투는 끝났고 가상의 필드를 비추던 영상은 꺼져 살풍경한 회색의 벽만이 남아 있는 공간의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멜라는 단지 벽만이 아닌 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아닌, 어느 먼 곳을. 금방이라도 고개를 돌리고 머리카락으로 가려지지 않은 분홍빛의 눈동자를 자신에게 향하며 웃어 보일 것만 같은데. 바로 옆에 다가가 설 때까지 로멜라는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다.

 

 

“마스터.”

 

 

   말을 멈추면 다시 한 번 정적이 찾아온다. 작은 숨소리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면 꼭 인리가 멸망한 세계에 둘만이 남겨진 것 같았는데.

 

 

“……로멜라.”

 

 

   손을 뻗으면 사라져버릴 것 같기도 해서 아라쉬 카망거는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그녀를 내려다보는 일밖에는 할 수 없었다.

 

   물론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믿음의 근간은 로멜라는 인간의 근간이었다. 갑작스럽게 세계가 멸망할 외부적 요소의 가능성을 제외하면 더더욱. 그녀는 사랑하는 존재들을 남겨두고 도망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싸우기로 마음먹지 않았는가. 아무 것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림자의 뒤에 숨지 않고 그대로 모든 것을 사랑하고자 마음먹은 인간과. 마스터와 서번트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적 갈등은 이 상황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불안해 할 필요 따위는 없다. 그녀가 무엇을 바라보든 그 끝에 옳음이 있는 이상 함께 걸어가면 될 뿐이다.

 

   시선을 조금 더 아래로 내려 내밀지 못 한 손을 바라본다.

 

   그렇다면 아마도…… 자신은…….

 

 

“……돌아가자, 로멜라.”

 

 

   그런 그녀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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