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짜 KNIFE 세명과 드림주는 유사가족 관계라는 설정입니다.
언젠가 본 적이 있었다. 지금보다 눈높이가 한참 낮았던 때 바쁜 부모님 대신 좋아하는 할아버지를 따라갔던 곳. 저택과는 다르게 구석에 조그마한 곳. 동화책에서만 봤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생긴 두 남자가 사는 곳에서 제 나이대인 친구 오수와 함께였었다. 그날도 오수는 긴 옷 때문에 불편해하고 있었고 어린 그는 이호에게 가위를 달래서 직접 잘라준다. 아무도 없을 때 잘랐다가 혼난 이후로는 가위 같은 날카로운 건 어른들 앞에서만 사용했던 때였다.
편안해진 옷에 어린 그는 억지로 오수를 끌고 마당 쪽으로 나왔다. 근처에 있는 벚나무로 뛰어가다 어린 그는 혼자 넘어지지만 금방 일어나며 유치원에서 배운 춤을 오수와 함께 춘다. 오수는 배운 적이 없지만 단순한 동작에 어린 그를 따라 했었다. 마주보고 발맞춰 추던 춤에 신이 난 그는 손을 그대로 마주 잡은 상태에서 갑자기 옆으로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수도 따라 돌았다. 재미있는지 웃음소리가 점점 커지고 지켜보던 두 사람도 둘을 보며 어린아이들의 봄을 함께 즐기고 있었다. 그 즐거움은 너무 돈 탓에 어지러워진 두 아이의 다리가 서로 얽히고 바닥으로 쓰러지면서 끝이 났지만. 당시 일호의 품에 안겨 다친 곳을 치료받으면서도 큰 소리로 울던 어린 자신이 보인 것 같아 그는 웃음이 났다. 그가 쓰고 있던 파란 나뭇잎 가면도 그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왜 웃냐.”
“어렸을 때 일이 생각나서.”
“정신 차려. 일하러 왔거든.”
“내가 염호 넌 줄 알아?”
그러고선 염호의 등을 소리 나게 때린다. 순간 강한 힘 때문에 몸이 앞으로 휘청이자 그는 빠르게 앞질러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제 먼 후배가 될만한 직원에게 인사를 하며 들어가는 데 상대의 반응은 좋지만은 않았다. 그럴 수밖에. 과거 서장과 함께했다는 이유만으로 제멋대로 행동하던 사람이니. 저를 보며 불편해 피하거나 그는 그런 반응에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인사를 하며 스푼의 서장실 문을 연다. 뒤에서 빠르게 매서운 눈으로 저를 쳐다보며 다가오는 자신의 서장을 위해서.
평소와 다르게 어째서인지 조용했다. 그가 오면 조용한 적이 없었는데 어째서일까. 라고 지나가던 직원들의 생각은 잠시, 곧 큰 웃음소리가 안에서 밖으로 새어 나왔다. 얼마나 큰지 멀리 있던 직원이 놀라 뛰어올 정도로. 걱정하는 직원이 안으로 들어가보지 못하고 안절부절 할 때였다. 빠르게 문이 열리고 염호가 벗어놨던 것인지 트렌치코트를 입으며 혼자 밖으로 걸어 나왔다. 직원의 시선을 받으며 바로 오라며 그에게 한마디를 한뒤 한숨을 푹 쉬면서 출구 쪽으로 향한다. 그렇다는 건… 시선이 서장실로 향했지만 이미 문이 닫힌 뒤였다. 이어지는 큰소리와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 안에서 싸우기라도 하는 걸까. 직원들은 급히 귀능에게 연락을 하며 빨리 들어오라며 상황을 전달한다. 그냥 냅두세요. 라는 평화로운 목소리에 직원은 빨리 오라 소리친 후에야 오겠다는 답을 들었다. 웃음소리가 너무나 상황을 더 불안하게 만들어 몇 번이고 귀능에게 연락을 하던 차에 나가의 안내를 받으며 세 명이 서장실로 찾아간다.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는 나가를 말리려 했지만 이미 문은 열렸고 안에서 들리던 웃음소리는 뚝 그쳤다.
“안녕, 나가.”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다나씨. 어…”
“오수야! 일호쌤, 이호쌤도 있네요!”
안에서 밖에 있던 오수를 향해 달려가 확 끌어안자 오수는 놀라 쿨럭이며 그를 토닥여준다. 그 모습에 다나가 오수에게서 그의 팔을 잡아떼어내자 순간 조용해진 상황. 짝사랑하는 사람과 사람에게……. 상황이 흥미진진해 직원들은 저도 모르게 눈을 반짝이고 급히 뛰어오던 귀능은 직원들의 반응에 왜 자길 불렀냐며 투덜인다.
“우리 계속 여기에 서 있을 거야?”
“아. 네. 들어와요, 이호 쌤. 오수야 어서 와.”
“…여기 내 사무실이거든.”
“그래서?”
날이 선 그의 반응에 다나는 붙잡은 그의 팔을 놓는다. 옆에 있던 나가는 왜 그런지 몰라도 그를 보고 있고 다나와 그는 표정 변화 없이 서로를 쳐다보고 그사이에 낀 오수만 당황해하고 있다. 먼저 들어가 있는 이호는 소파에 앉아 어떡하나 하고 있으니 한숨만 푹 쉬는 일호 뒤로 귀능이 웃으면서 등을 민다.
“자자. 들어가요.”
“너 왜 여깄냐.”
“왜냐니… 정말 몰라서 묻는 거계요? 서장님 때문에 왔잖아요.”
“맞다. 나가야 잠깐만. 아… 오수랑 쌤들은 들어가요. 나가한테 말해줄 거 있어서.”
“저도 할 말 있으니까 가지말고 기다려요.”
그의 대답에 일호는 고개를 끄덕인 뒤 오수와 함께 안으로 들어간다. 투덜이던 귀능이 뒤따라 들어가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문을 닫는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직원들도 각자 하던 일을 마저 하러 간다. 그와 남겨질 나가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 창밖에 보이는 벚꽃에 눈을 빼앗겨 봄을 눈에 가득 담는다.
“저… 한테 할 말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없어.”
“그렇구… 네?”
“거짓말 한 거야. 가서 일 봐.”
“정말요?”
불편했던 건지 너무 밝게 웃으며 좋아하던 나가를 보며 가라고 보낸다. 고개를 숙이며 빠르게 사라지는 그를 보며 주변을 둘러보니 여전히 제 시선을 피하고 있자 그는 창밖을 보다 짧게 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간다.
10분 전부터 울리는 벨 소리를 무시하며 내려오는 꽃잎을 빤히 올려다본다. 연분홍빛에 예쁜 색이 그는 히어로였던 시절의 다나를 떠올렸다. 꽃잎과는 다르게 그보다 더 진한 분홍빛의 머리카락이 눈앞에 아른거리자 괜히 하늘에서 떨어진 꽃잎을 잡았다. 구겨지지 않게 조심스레 잡고선 괜히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꽃잎을 나무 아래에 놓아준다. 식물과 혼혈인 그에겐 어쩌면 먼 친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다시 한번 사과를 하다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획 돌린다.
“많이 기다렸어요?”
“아냐. 얼마 안 기다렸어.”
“폰 울리는데 안 받아요?”
“괜찮아요. 안 받아도 되는 전화라서요.”
화면에 보이는 염호라는 단어를 보고도 지겹다는 듯 반응을 하며 폰을 아예 꺼버리고선 이호에게 쥐여주고선 오수에게로 다가간다. 저를 보며 웃는 오수에게 허리를 숙이며 한 손을 내민다.
“오수야 오랜만에 나랑 춤출까?”
“춤이요?”
“응. 예전에도 췄잖아.”
고민하던 오수의 양손을 잡아 마주 선다. 제 손이 아래로 오수의 손을 위로 올려 잡는다. 이호가 이걸 왜 자기한테 주냐며 묻지만 이미 두 사람은 벚꽃 눈 아래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어릴 때 췄던 춤을. 기억도 안 나면서 대충 맞춰가며 그러다 까먹었다며 빠르게 옆으로 돌며 뛰어논다. 쌍둥이 외에 건물 안에서 쳐다보는 것도 모른 체. 일호는 잠깐이지만 두 사람이 지금보다 키가 작았을 때를 떠올린다. 어린 그가 놀러 왔을 때 똑같이 손을 마주 잡고 빙글빙글 돌던 그때를. 지금처럼 멀끔히 차려입은 것과는 다르게 넘어졌는지 그의 옷은 더러웠고 걸음걸이 때문에 강압적으로 입힌 치렁치렁했던 오수의 옷 밑단은 잘려져 있었다. 그런데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그저 웃고 있다.
“쟤네 어릴 때도 저러다 둘다 넘어져서 울었던 거 같은데.”
“그랬었죠.”
이호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 일호는 이호의 말에 답을 한다. 말이 씨가 된 건지 오수의 몸이 뒤로 휘청이자 쌍둥이의 몸이 동시에 들썩이지만, 그가 휘청이던 오수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넘어지지않게 잡아주는 걸 보고 웃으며 넘어간다. 오수가 고맙다며 말하자 그는 남은 한쪽 팔도 오수를 붙잡으며 꼭 안는다. 너무 좋아서. 답답하다며 웃던 오수의 말에 쌍둥이는 다가간다.
너무 돌았던 탓인지 오수의 안색이 안 좋아 보이자 일호의 표정을 파악하고 이호가 오수를 데리고 가고 일호는 왜 애를 막 돌리냐며 등을 찰싹찰싹 소리 나게 때리기 시작한다.
“왜요! 오수도 재밌어했잖아요!”
“어릴 땐 귀엽기라도 했지. 지금은 대들기나 하고!”
“일호쌤은 맨날 때리기만 하잖아요…!”
“매를 벌어요, 매를 벌어!”
일호한테 대들다가 또 맞자 이호는 그를 보더니, 전원을 꾹 눌러 폰을 켠다. 폰이 울리자 그에게 연락이 왔다며 던져주고 일호가 방심한 사이 던져진 휴대전화를 받아 바로 통화버튼을 누른다. 염호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달래는 투로 대화를 하다 길어지자 그는 잠깐 대화를 중단하더니 고개를 돌린다.
“저 여기 근처에 일 있어서 가봐야 해서요. 애들한테 데려다주라 할 테니까 잠깐만 기다렸다 제 차 타고 가세요.”
“괜찮을까요?”
“갈 때 창문 활짝 열어놓고 가라고 할게요. 그럼 조심해서 가요! 오수도 잘 가!”
가볍게 손 인사를 날린 뒤 제 앞에 세워지는 차에 뒷좌석에 탄다.
“아, 나 내려주고 오수랑 쌤들 데려다주고 퇴근해. 오수가 차에 타면 창문 전부 열고 가고.”
“알겠습니다, 아가씨.”
“오늘 너무 날씨 좋다. 일하러 가기 싫어…….”
“집으로 가시겠습니까?”
“아니.”
답을 하며 창밖을 본다. 집으로 가고는 싶었지만 그랬다간 다음날 염호의 싸늘한 시선을 받을 게 뻔했다. 내리는 따스한 온기를 담은 벚꽃잎이 눈처럼 내리는 걸 보며 웃는다. 차는 금방 목적지를 향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