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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무슨 날이게요?”

“…글쎄. 딱히 떠오르는 건 없는데.”

 

무슨 날이야? 레코가 묻자 하루토는 기다렸다는 듯이 등 뒤에 숨기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 짠, 로즈데이예요! 눈앞에 활짝 핀 노란 장미로 만들어진 꽃다발이 들이밀어졌다. 품에 안기에는 조금 모자라고 한 손으로 들기엔 조금 큰, 그런 사이즈였다. 그런데 노란 장미의 꽃말은 질투가 아니었나? 레코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것을 놓치지 않은 하루토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에이, 언니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미간에 주름 좀 펴요.

 

“뭐, 노란색 장미는 질투, 시기를 의미한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 어쩔 수 없죠.”

 

그렇지만 내가 누군가요, 꽃집의 카스이 하루토잖아요! 겨우 그런 지식 가지고 언니에게 이런 걸 주겠어요? 그는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고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웃었다. 그러곤 아직 받지 않은 꽃다발을 제 쪽으로 가져가며 꽃잎들을 조심스레 쓸어내렸다. 화려하지만 아린 냄새가 코를 스쳤다. 그 누구보다 레코에게 잘 어울리는 향기였다. 그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가운데에 있던 노란 장미를 한 송이 빼내어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다듬지 않은 단 하나의 가시가 피부를 짓눌렀다.

 

“그런 것 말고도 기쁨, 우정같은 좋은 뜻도 있다구요. 특히 이렇게 끝이 붉은 노란 장미는요, 우정이나 사랑에 빠졌다는 뜻이에요.”

 

말을 마친 그는 힘없이 손목을 늘어뜨리곤 레코를 바라보았다. 안도하는 것인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조금 전보다는 누그러진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것을 확인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장미는 색 말고도 몇 송이인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한 송이를 빼면 스무 송이가 되죠?”

 

장미 스무 송이의 의미는 ‘열렬히 사랑합니다’예요. 언니, 제가 사랑하는 거 알죠? 하루토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또 그런다, 또.”

 

에이, 뭐 어때요. 마주보며 웃은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일단 이거, 받아 줄 거죠? 당연하지. 레코는 꽃다발을 받아 들어 품에 안았다. 진짜 잘 어울려요. 하루토가 말했다.

 

“언니한텐 빨간색이 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노란색도 나쁘지 않네요. …자, 이것도 받아요.”

 

그러곤 아까 뽑아두었던 끝이 붉은 노란 장미를 건네었다. 21송이에 뭔가 이상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 레코가 미심쩍은 듯 묻자 하루토가 고개를 저었다. 정말, 날 너무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 아니에요? 그제야 꽃을 받아든 레코가 조심스럽게 꽃다발에 장미를 꽂아 넣었다.

 

그에게 어울리는 빨간 장미가 아닌 노란 장미를 준 것도, 이렇게 고백했음에도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가 자랑하는 ‘꽃집의 카스이 하루토’이기 때문이었다. 평생 꽃을 사러 온 손님에게만 알려줄 정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자신의 안위를 위해 써먹을 일이 생기다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하루토는 그저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진지하게 고백했다고 해서 잘 될 관계가 아니라면 이렇게 가볍게 농담으로 치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은 자신이었다. 이제 와서 불만을 토로한다 한들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그저 여태까지 했던 것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사랑을 한낱 가벼운 농담으로 치부해서, 몇 번이고 반복하는 것. 그렇게 우정인지 사랑인지 알아챌 수 없게 점차 스며들어 종국에는 되돌릴 수 없는 관계가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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