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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마린] 너와 나의 거리

 

-14일 기념일 중 '허그데이' 합작글

 

*W. (@amort_Cocho) 마요.

 

*12월 돌아오는 기념. 12월 14일 '허그데이' 따스한 연말 의미를 담아 쓰는 합작글

 

* BGM- Itsudatte Bokura no Koi wa 10 cm Datta. - (Ep 1 BGM)

 

 

 

 

어느새 날씨는 입김이 서릴 정도로 서늘했다. 두꺼운 천을 휙휙 두르는 계절이 다가온 것이었다. 곧 다가오는 연말도 있을뿐더러, 제 사랑하는 사람들과 유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 어두운 거리를 밝게 비추는 불빛들 그 속에서 잭은 서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유익한 시간을 보낸다' 잭은 생각에 잠겼다. 그것은 경험해보지 못했을뿐더러, 사랑한다고 보기엔 볼 수 없고, 끔찍하게 아끼는 이가 있었다.

 

늘 제 옆에 별말 없이 있어줬던 고운 바다와도 같은 시원함을 가진 그녀. 그녀에게만큼은 유익한 시간을 보낸다. 그녀 또한 이런 경험이 없지 않을까. 잭은 품 안을 뒤적거렸다. 안쪽 주머니에 돌돌 말려, 꾸깃 해진 신문 뭉텅이가 손에 잡혀 나왔다. 펼쳐보니 익숙한 글자가 붉게 일렁거리는 그의 눈동자에 비춰보았다. '매년 돌아오는 특별한 날 허그데이! 12월 14일!' 큰 제목을 보곤 아침에 시끄럽게 재잘거리면 말했던 클리브, 그날에 있었던 일들을 잭은 가만히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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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던 런던 거리가 북적북적 소란해질 때가 있었다. 그것은 아침 출근길도 아닌 퇴근길도 아니었으며 한창 무언가를 준비해 바쁜 사람들로 가득했다. 꽤나 정신없는 풍경이로군. 영문을 모르는 잭은 턱을 괴곤 막 내린 뜨거운 모닝커피를 마시며 그런 이들을 창가 너머로, 바라보고 있었다.

 

 

 

"잭, 이거 봐. 오늘이 허그데이라는데?"

 

 

 

크게 펼쳐 열은 신문 한 면에 "매년 돌아오는 특별한 날 허그데이 12월 14일!"라는 큰 제목 글자를 가리키며 클리브가 말했다. 그래서? 무미건조한 말로, 잭이 되묻자 바로 클리브가 볼을 긁적이며, 어버버 말을 얼버무렸다.

 

"아니…모처럼 돌아오는 특별한 기념일인데, 한 번 즐길까 해서?"

 

"그 시끄러운 녀석이랑?"

 

"시끄러운 녀석이라니…! 우리 렌스 씨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아무튼, 잭 너도 마린 씨랑 이참에 즐겨보는 건 어때?"

 

"…쓸데없는 참견이군."

 

 

 

잭은 입가에 커피잔을 가져다 대는 것으로, 더는 말하지 않았다. 힐끔, 자신 앞에 빈자리가 보였다. 메이플 시럽이 뿌려져 따뜻한 팬케이크가 김을 모락모락 풍기며 접시에 담겨있는 곳 자리가 비어있는 걸 보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잭이 입을 열었다.

 

 

"클리브. 마린은?"

 

"아차, 그러네? 지금 이 시간이면 내려올 법한데, 많이 피곤해서 계속 주무시는 걸까?"

 

"하여간, 내가 확인해보고 올게."

 

 

팬케이크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마린인데, 무슨 이유인지 팬케이크가 있으면 쪼르르 와서 복스럽게 입안 가득 넣어 먹던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렌스랑 '허그데이' 보낼 생각에 들뜨며 정신없이 말하는 클리브를 제쳐두고, 잭은 마린이 방문 앞에 서 노크를 해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방에 그녀가 없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잭이 다급하게 달려와 거칠게 헉헉 숨을 내쉬며 클리브한테 말했다.

 

 

 

"클리브…마린이 없어졌어."

 

 

 

같이 덩달아 놀라 클리브도 마린을 허겁지겁 찾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우당탕 소란스러운 하루. 잭이 가쁜 숨을 내쉬며 마린을 발견한 곳은 꽃집이었다.

 

 

 

"아, 잭 어서 와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또랑또랑 아쿠아마린 보석 같은 푸른 맑은 두 눈동자를 반짝거린 여인이 그를 보며 말했다. 한 아름 꽃다발을 만들 것들이 그녀의 품안에 안겨있었다. 그제서야 잭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내었다. 다행이다. 순간 어두컴컴했던 정신과 시야가 점점 사그라지는 듯했다.

 

 

 

"어디 간다면 말을 하지. 여기에는 왜 온 거야?"

 

"미안해요…하지만 정말 급한 일이었거든요."

 

"아침은 먹고 가지. 네가 좋아하는 팬케이크 해놨는데."

 

"그럴 틈이 없었어요…"

 

 

 

아침부터 제법 다사다난하게 만드는 걸 꼬마 아가씨. 잭이 픽 흘러가는 말을 했다. 추욱 시무룩해지는 마린을 그저 다가가 투박한 거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일하는 중인데, 내가 방해하는 거 아닌가."

 

"아뇨! 그렇게 방해라고 할 것 까지는…"

 

"그럼 일 봐. 난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게. 도와줄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고."

 

 

 

마린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부지런히 품 안 가득 안고 있던 꽃다발을 정성스럽게 꽃병에 꽂아놓는다. 느릿한 시선으로 천천히 보고 있던 잭이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아 그리고, 이따 집에 가서는 클리브한테도 연락 없이 나가서 미안하다고 해. 내가 연락을 남기긴 했는데… 그 녀석도 아침에 널 걱정하며 찾는 걸 도와줬거든."

 

"ㅋ, 클리브씨가…. 그랬군요. 클리브 씨도, 잭도…, 걱정 끼쳐드린 것 같아 죄송해요. 가면 죄송하다고 해야겠어요."

 

 

 

옅은 웃음을 띠곤 마린은 자신이 열심히 가꾼 소중한 것들을 정리했다. 한 땀 한 땀, 그녀가 한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손길을 다루는 모습에 잭은 턱을 괴곤 소리 없는 웃음을 지었다. 흠뻑 주는 물을 적시고, 서투르지만 상냥한 그녀의 손길을 받아 무럭무럭 자라나 곱게 피어있는 것들이겠지. 그녀도 할 수 있는 게 있잖아? 잭의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감돌았다. 눈동자에 식물들이 담겼다. 괜스레 식물한테 질투 나는 걸까? 갑자기 심장이 울렁거리는 감정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놀라 다가오는 마린에게 웃어 보이며, 나가서 그곳에 기다리고 있겠다고. 천천히 정리하고 나오라는 말만 남기고 꽃집에서 나왔다. 그제서야 울렁거리는 감정이 추스르는 듯했다.

 

이 끝으로 시점은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지금의 그는 마린이 정리 다 할 때까지 혼자 약속 장소 거리로 나와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거리의 가로등 불빛들, 점점 북적인 사람들. 오늘이 '허그데이'라서 그런지 시간이 지날수록 연인들이 늘어났다. 찬바람이 계속해서 불어오나, 잭은 마린과 약속한 장소 거리에서 꿈쩍하지 않았다. 그대로 가만히 서서 , 한곳만 오롯이 응시하는 걸 보면 푸른 머리칼이 보일 때까지 기다릴 작정이었다.

 

 

 

"잭! 미안해요…! 제가 많이 늦었죠? 많이 기다렸을 것 같은데…!!"

 

 

 

익숙하고도, 맑고 투명한 목소리에 잭은 몸을 틀어 바라보았다. 꽃집에 있던 차림새와 색다른 그녀의 모습이 그를 맞이했다. 날이 추워 껴입은 흰 목폴라에, 남색 계열 스커트, 검은 레깅스, 베이지색코트를 입은 그녀. 이 옷을 입고 나간 건가. 평소에 남색 계열 스커트를 즐겨 입는 건 알고 있었지만, 바꿔 입어가는 마린의 옷 스타일은 매번 새롭게만 느껴졌다. 푸른 바다와도 같은 머리칼, 아쿠아마린 보석 같은 동그란 눈동자.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사람이 색다른 모습으로 자신 앞에 있다. 그래도 옷이 그렇게 두껍지 않은 차림에 추울 것 같아 잭은 겉옷을 주섬주섬 벗어 마린이 어깨에 걸쳐주었다.

 

"날 추울 테니 걸치고 있어."

 

"잭, 당신은…안 춥겠어요?"

 

"난 추위에 익숙하니 괜찮아. 마린 네가 우선이지."

 

 

 

어둑해진 거리 사이로 새어 나오는 가로등 불빛들. 그 틈으로 사람들이 북적 해진다. 안 그래도 잭은 사람들이 많은 장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은 장소도 마린 그녀가 찾아오기 쉬운 곳이었으며 나름 눈에 띄게 잘 보였기에 별 수없이 그 장소에서 기다린 셈이었다. 이쯤이면 되었다 생각한 그는 자리를 옮기자며, 마린 귓가에 속삭여 말했다. 갑작스러운 낮은 중저음, 뜨거운 숨결이 귓가에 닿자 화들짝 놀라 마린은 어버버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말 하나, 행동 하나조차에도 곧바로, 반응해버린다. 부끄러우면서도 차마 숨길 수가 없어 바로 행동으로 튀어나와버리는 그녀이다. 그는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마린의 손을 겹쳐 잡았다. 깍지까지 꼭 끼곤 그녀가 떨어지지 않게 뒤를 보며 천천히 사람들 틈 사이로 빠져나왔다.

 

사람이 없는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들어서야 잭은 꼭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따뜻한 체온이 있는 손길이 떨어져 나가니 마린이 아쉬운 눈을 했다. 마린을 바라보는 잭의 붉은 눈동자가 올곧다.

 

 

 

"추운데, 여기서 만나자고 해서 사과하지."

 

"아니예요. 잭, 당신이 만나자고 하면 와야죠. 그런데 무슨 일인가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는 마린의 모습은 아무것도 전혀 모르는 표정이었다. 잭은 머리를 긁적이곤 뜸들이다가 입을 마침내 열어 말했다.

 

"…마린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겠나?"

 

"에, 그러니까…오늘이 무슨 날이 있던가요?"

 

"클리브가 말해줬어. 오늘이 허그데이라고 하더군."

 

"아, 12월 14일! 신문에서 본 것 같아요. 그러니까 '허그데이'인데…잭 당신이 왜…"

 

 

 

마린은 입을 꾹 다물게 되었다. 그러니까…마린은 떨리는 눈으로 조심스럽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날이 많이 추웠는지 하늘에서는 눈송이가 하늘하늘 떨어지고 있었다. 더운 입김이 나오면서 그녀는 눈을 깜빡 깜빡거렸다. 잭의 말뜻을 이해하려는 듯 올곧게 붉은 동그란 눈동자를 바라본다. 잭은 그런 그녀를 언제나 그랬듯이 기다려주었다. 마침내 이해한 듯 그녀는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간 토마토처럼 물들여졌다.

 

 

 

"ㄱ, 그러니까…, 잭의 말 뜻은! 오늘이 '허그데이'이니까…허그를 하자. …! 이런 건가요?! 여기서…?"

 

"못할 것도 없잖아. 처음 해보는 것도 아니고. 마린 네가 능력 불안정할 때도 진정시키려고 안아줬던 거 잊은 건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마린 앞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깔끔한 검은색 코트 자락이 흔들리고, 제법 잘 어울리는 빨간색 넥타이를 고쳐올리며, 육중한 그의 몸이 성큼 가깝게 다가온다. 부드럽게 올리는 입꼬리 끝으로, 잭은 스윽 숙여 얼굴을 들이내민다. 순식간에 코앞, 입술이 닿을락 말락 너무 가까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마린은 더 당황하면서 뒤로 물러나갈 뻔한 걸 잭이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아 확 끌어 제 품에 가두듯이 끌어안았다. 마린은 그의 품 안에 얼굴을 묻은 채 그대로 부동자세가 되었다. 어떡해… 어떡해해야…...., 소리 없는 아우성을 콩콩 속으로 부르짖으며 마린은 덜덜 떨리는 몸으로 팔로 그의 허리를 감싸 끌어안아 중심을 잡는다.

 

 

 

"어이쿠, 여기서는 허그 한 번 더 했다가는 기절하겠군."

 

"사람들 지나가는 거리에서 이게 무슨 짓이냐고요.."

 

"걱정마. 인적이 드문 거 확인하고 여기로 온 거니까. 그리고, 사람들이 있든 없든 허그를 못할 게 뭐가 있어. '허그데이'라는 합법적인 날짜가 있는데 말이지."

 

 

 

그 말 끝으로 잭은 다시 마린을 끌어안았다. 놀라서 어쩔 줄 몰라 떨어지라는 말을 하며 마린이 손으로 팡팡 등을 두드린대도 못 들은 척 잭은 가만히 있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은 차가운 찬바람에도 식을 줄 몰랐으며, 그런 그녀의 모습을 그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허그데이' 기념일도 나쁘지 않군. 좀 더 그녀와 가깝게 거리 좁혀준 계기를 만들어 준 뜻깊은 기념일. 잭은 클리브에게 또 빚을 졌다 생각하며 감사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거리 속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 계속 끌어안고 있었다. 서로의 체온, 식지 않은 따스한 온기를 느끼면서 추위를 식히는 이들의 모습 위로 함박눈이 계속해서 쏟아져내렸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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