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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 와인데이.

프로젝트의 마무리를 기념해 사장님께 약 3박 4일의 포상 휴가를 받아내고 날짜를 정한 우리는 어디를 가야할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어디였어도 좋았겠지만, 간다면 더 나은 곳을 가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니까. 

 

"우리 남쪽 섬에 갈까요? 그 날의 바다와…."

"그것도 나쁘진 않겠어요! 가을 밤엔 어느 별자리가 보일까요?"

 

하지만 그런 고민은 며칠 뒤 바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츠키의 부모님이 보내신 선물이 있었거든요.

 

< 낫쨩과 나루쨩에게. >

 

"편지?"

"어라, 본가에서?"

 

- 낫쨩, 나루쨩. 잘 지내니? 그때 전화를 받고 고민을 살짝 했단다. 도쿄에서 쉬게 하는 쪽이 나을지, 아니면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여기서 쉬다 가라고 할까 말이야. 그래도 낫쨩도 집에 가끔씩 가고 싶어하는 눈치라 둘을 우리 집에 초대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봤단다! 둘만 괜찮다면 오지 않을래? 나루쨩에겐 목장 구경도 시켜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여주고 싶고…. 여러 가지 해주고 싶은 게 많아.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고. 편히 본가에 들렸다가는 것처럼 오렴! 

 

그렇게 편지는 마무리가 되었어요. 맞아, 때마침 부모님께 전화가 와서 휴가 이야기를 꺼냈었더랬죠.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이것저것 뭐할지 구상중이라고 신나게 자랑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부모님은 그런 우리를 엄청 귀여워해주셨어요. 나츠키랑 저는 아직 나츠키 부모님께는 어린 아이인가봐요. 그리고 뒤에 보이는 종이 두 장.

 

"홋카이도 행…. 비행기 티켓?"

"며칠 전에 부모님께 휴가 받아서 쉴 예정이라고 자랑했을 때, 우리를 초대하려고 준비해두셨나봐요!"

 

그렇게 저희는 가을의 홋카이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잘 다녀올게요!

 

"나루쨩~!"

"오랜만에 봬요! 그간 잘 지내셨나요?"

"우리야 늘 잘 지내지. 오히려 너희가 늘 더 걱정된단다. 늘 바쁘게 지내느라 고생이 많지?"

"아냐, 조금 바쁘긴 했지만 잘 끝내고 이렇게 엄마도 보러 왔는걸!"

"기다리고 있었다, 나루 양도 어서 와. 천천히 쉬다 가."

 

`거리가 멀다 보니 와 본 적이 정말 손에 꼽지만, 늘 정감 넘치고 포근한 곳이에요. 목장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갈비 군이 울음소리로 맞아주고, 치쿠와부가 총총 뛰어와서 같이 집에 가자! 하고 귀를 쫑긋 세워주기도 하고, 귀엽게 꿀꿀, 하고 인사하는 포크쨩도 있고 말이에요.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땐, 음…. 소에게 갈비라고 이름지어 줬다고…? 했지만, 그것도 나츠키의 매력이겠죠…? 아무리 생각해도 특이한 네이밍 센스를 가졌어요.

그렇게 부모님과 함께 대화하다 즐겁게 식사를 한 뒤 둘이 같이 얘기 좀 나누라고, 부모님은 함께 산책을 나가셨어요. 그리고 나츠키가 잠시 주방에 가더니 잔 두 개와 병 하나, 비스킷과 치즈를 챙겨 다시 돌아왔어요. 그가 소파 옆 자리에 바짝 붙고는 저를 빤히 쳐다보더니 병을 살짝 집어들었어요.

 

"나루쨩, 오늘…. 와인데이래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같이 와인을 마시는 날이라네요~!"

"응? 그런 날도 있었구나…."

"그래서…. 와인 같이 마시면 어떨까 하고!"

그 말을 꺼내들고는 와인병을 살살 흔들며 해맑게 미소를 짓는다. 근데 너…. 와인…. 조금만 마셔도 잠들어버리잖아. 괜찮을까…?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나츠키가 마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어요.

 

"이전에 이야기했었죠? 부모님이 이전에 프랑스에서 포도 농사를 하면서 와인을 제조하셨다구요. 이게 그 와인이래요. 사랑하는 사람이 집에 놀러오면 같이 마시라고. 후후,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다들 마시길래 저도 마시고 싶다고 했다가 '아직 어린 아이는 안 돼.' 하고는 포도주스를 받은 기억이 있네요. 이제는 와인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기도 했고, 같이 마시고 싶은 소중한 사람도 생겼으니까. 나루쨩과 함께 마시면 더욱 의미 있는 와인이 될 거예요."

 

자신의 잔에 먼저 와인을 따른 뒤, 제 잔에 와인을 따르고, '그러니 함께 마실까요?' 하고 나긋나긋 이야기를 꺼내는 나츠키를 보며, 왠지 모를 행복감을 느꼈어요. 지금의 나츠키를 위해 그 긴 시간동안 와인을 보관해 준 부모님의 마음도 느껴지고, 저와 이 와인을 같이 마시고 싶다고 이야기해 준 나츠키의 마음도 느껴져서일까요? 내가 나츠키에게 이만큼 소중한 사람이구나, 를 느낄 수 있어서 더더욱 그럴 거예요.

 

"응, 그 어떠한 값도 매길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와인이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루쨩…. 나루쨔앙…."

"나츠키…?"

"무릎베개하고 잘래…."

 

그렇게 제 품에 고개를 묻고 몇 번 부비적대고는 자세를 고쳐잡고 본격적으로 무릎베개를 하는 나츠키…. 그럴 줄 알았어. 술에 약해 조금만 마셔도 곧장 잠들어 버리는 이 사람은 오늘도 어김없이 무릎베개를 하고 눈을 감아버렸어요. 가끔씩 분위기를 잡는 것도 나쁘진 않았을텐데…. 그래도 이미 잠들었으니 소용 없겠지. 자고 있는 나츠키의 안경을 살짝 벗기고 머리를 살살 쓰다듬자 이내 '헤헤.' 하는 소리와 함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게 보여요. 잠시 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나츠키의 부모님이 들어오셨어요.

 

"아니, 벌써 잠들어버렸어?"

"잘 다녀오셨어요? 앗, 아뇨…. 그게, 잠깐 와인을 마시다가 그만…."

"나츠키, 이렇게 술이 약해서야…. 나루 양을 챙겨주지는 못할 망정."

"아니에요~ 괜찮아요. 잘 자고 있다면 그걸로 된 거잖아요."

 

제 말을 듣고 살짝 웃으면서 그것도 그렇네. 하시던 아버님은 어머님과 함께 맞은 자리 소파에 나란히 앉으셨어요. 

 

"그나저나, 이 와인. 그거네."

"그러네요~ 나츠키에게 소중한 사람이 생겼을 때, 같이 마시라고 소중히 보관해준 와인이죠."

"…. 나츠키한테 이야기는 들었어요. 뭔가 모두의 따뜻한 느낌이 느껴져서 너무 좋았어요. 맛도 있었구요."

"그럼 당연하지. 내가 가장 정성스럽게 만든 와인인데. 소중한 아들과 그 아들의 소중한 사람이 마실 와인인데. 그 어느 때보다 정성을 쏟았지. 그리고 그걸 네가 마시고 있구나. 나츠키에게 네가 어떤 존재인지 더욱 와닿는구나."

"…."

"그래, 낫쨩이랑은 잘 지내고? 낫쨩이랑 너랑 둘 다 요즘 힘들지는 않고?"

"네. 정말로 잘 지내고 있어요. 물론 제가 조금 더 노력해야겠지만요."

"그럼 그 아이는 봤나?"

 

아버님의 짧은 물음에 저는 쉽사리 대답을 꺼내지 못했어요. 아마 사츠키에 대한 질문이었겠죠. 그리고 이 상황을 사츠키도 함께 지켜보고 있을텐데. 잠깐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어요.

 

"봤냐고 여쭈신다면…. 네. 봤어요. 그리고 얘기도 나눠봤고, 같이 지내보기도 했어요. 다른 건 아직 더 알아야 할 것이 많지만, 하나 확실한 건…. 그 또한 나츠키고 둘은 하나라는 것이었어요. 아버님, 어머님께서 그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일단 제가 내리는 결론은 그래요."

"그 아이도 함께 아껴주고 있다는 이야기구나."

"네."

 

아버님은 잠시 한숨을 내쉬시더니, 조용히 말을 꺼내셨어요.

 

"그 아이를 처음 본 건 아마 그 아이가 태어난 뒤 한참 뒤의 일이었겠지만, 나루 양이 생각하는 게 나랑 생각이 비슷해서 다행이야. 그 아이 또한 우리의 아이라고. 다만 그 아이가 잠들면 나츠키는 그 이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 할 뿐이라고. 와인은 가져 가서, 그 아이와 만나게 되거든 그 아이에게도 한 잔 나눠주도록 해라. 나츠키는 그 아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그 아이도 매우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려주고 싶구나. 비록 그 아이가 경계심을 강하게 드러낸다고 해도 말이다."

 

그 말을 듣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뻗어 나츠키의 손을 꼭 잡았어요. 그러자 들려오는 나츠키의 웃음소리. 아마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걸까요? 제가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웃자, 어머님도 같이 후후, 하고 웃으셨어요.

 

"그와중에 누가 손잡는지는 아나보군."

 

그렇게 약간의 이야기를 더 하다, 부모님은 나중에 혹시 나츠키가 잠에서 깨거든 방에 데려가서 같이 자라는 말씀과 함께 먼저 방으로 들어가셨어요. 잠시 뒤 주변이 조용해지자 저는 탁자 위에 있던 와인을 조심스레 집어들어 라벨에 적힌 글자를 조심스레 입 밖으로 꺼냈어요.

 

"미래의 나츠키에게 주는 선물이야.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함께 마시도록 해라. 단, 우리는 제외다. 우린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거니까. 언제나 사랑한다, 나츠키. 현재의 너도, 미래의 너도 행복하길 바라며."

 

나중에 사츠키와 만나게 될 때, 같이 한 잔 나눠마셔야겠어요. 가능하면 그게 지금 여기 머물러있을 때라면 좋을텐데. 아주 잠깐이라도 말이에요.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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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듣고 있었지? 다시 돌아가기 전에 여기서 한 잔 할까? 부모님과 함께 식사도 하고 말이야.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이 너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걸…. 너도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괜찮다면. 여기 있는 나와 모두에게 잠시나마 시간을 내어주는 건 어때…?"

 

사츠키, 대답은 나중에 들을게. 일단 오늘은 모두 행복한 꿈을 꾸며 잠들자.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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