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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진심인가요, 선배?”
“물론이야, 아이렌.”
“…이렇게 갑자기?”
“Oui!”
선배의 표정은 마치 한여름의 햇살처럼 눈에 부셨다. 나는 그 티 없는 미소에 그가 지금 진심으로 내게 제안한 것이라는 걸 확신하고 이마를 짚었다.
하여간 저 선배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방과 후, 도서관에서 자습 하고 있는데 갑자기 찾아오셨길래 뭔가 급한 일이 있는 걸까 싶었는데 대뜸 사진을 찍자고 하다니. 오늘이 포토데이니 뭐니 하는 설명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겨우 그 이유만으로 내 사진을 찍을 이유는 없지 않던가.
“죄송한데, 저 사진 찍는 거 싫어해요.”
“음? 어째서?”
“어째서, 라니. 전 그렇게 예쁘지도 않고… 저는 제 얼굴 보는 게 싫어서 거울도 잘 안 본다고요.”
참고로 지금의 이야기는 거짓말도 허풍도 아니었다. 내가 거울을 보는 건 씻을 때랑 옷을 갈아입을 때, 딱 그 정도뿐이었으니까. 거울도 이렇게 필요할 때만 보는데, 내가 왜 사진을 찍겠는가.
내 단호한 대답에 선배는 의외라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턱을 매만지며 대화를 이어나가셨다.
“아름답지 않으면 사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게까지 비약할 필요는…. 말 그대로 제 얼굴이 싫은 거예요. 그래도 요즘은 거울 정도는 보지만, 사진은 싫어요.”
‘전 제 영정사진도 안 찍을 거라고요.’ 그렇게 확실하게 말해 못을 박자, 루크 선배의 얼굴도 조금은 더 심각해졌다. 마치 못 들은 걸 들은 사람처럼 한참을 팔짱만 낀 채 가만히 있던 선배는, 작게 앓는 소릴 내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아까운걸. 그래서야 만약 네가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누구도 네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거야말로 제가 바라는 거예요. 저는 이 세상에 없는데 제 모습은 자그마한 액정과 종이 속에 갇혀 있다면, 그건 박제하고 다를 게 뭐겠어요.”
물론 박제 당하는 것 같아 사진을 찍지 않겠다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사진을 찍는 게 싫었다. 내 모습 같은 걸 남겨둬서 어디 쓴단 말인가. 굳이 남을 거라면, 나는 내 겉모습에 대한 것보다는 내가 생각한 것들이나 내가 써 내려간 문장들이 이 세상에 남길 원했다. 애초에, 육신이라는 것은 죽어서 썩어 없어지면 그만이지 않은가. 무의미해질 것을 기록하는 것은, 역시 내 성미와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이 극렬한 거부감은 루크 선배에겐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걸까. 선배는 잠깐 고민하다가, 내게 다시 제안해왔다.
“그럼 나와 같이 찍는 건 어때?”
“아니, 저는 단체 사진도 안 찍어요. 둘이서 찍는다고 괜찮은 게….”
“음. 음. 그렇게 바로 거절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들어봐.”
그래. 그 루크 헌터니 무언가 생각이 있다 이거겠지.
나는 나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몸을 숙이는 선배에게서 도망치지도 못하고, 얌전히 그의 아름다운 녹음(綠陰) 빛의 눈동자와 대면해야 했다.
“딱 한 장. 딱 한 장이면 돼. 나와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는 바로 사진을 지우겠어. 그러니 한 장만 찍어 본 후 결정하는 건 어떻겠어?”
선배가 내민 조건은 내겐 나쁠 것이 없는, 그야말로 밑지는 장사 그 자체였다.
어째서 나를 위해서 저렇게까지 양보하는 걸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지만, 나는 생각보다 훨씬 무른 사람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래. 나는 나에게 져주는 사람에게 이를 드러내는 짓은 할 수 없다. 어지간히도 밉고 증오스럽지 않은 이상, 말이다.
“좋아요.”
“잘 생각했어. 자, 따라와.”
누가 져주는 건지 알 수 없는 합의 후. 나는 도서관에 책과 필기구를 그대로 둔 채 루크 선배를 따라 중원으로 향하게 되었다.
“좋아, 여기서 찍을까?”
무언가 찍고 싶은 풍경이라도 있었던 걸까. 선배는 여기저기를 살펴보다가 볕이 좋은 화단 근처에 멈춰서더니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삼각대를 설치한 후 카메라를 고정했다.
그나저나 저 카메라, 굉장히 좋고 비싼 거로 보이는데. 대충 핸드폰으로 찍을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본격적이시구나.
내게는 꽤 과분해 보이는 카메라의 자태에 나도 모르게 몸이 굳어버렸던 걸까. 촬영 준비를 마치고 온 선배는 내 어깨를 가볍게 감싸 쥐고 웃었다.
“포즈는 따로 잡을 필요 없어. 자연스럽게, 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렴.”
“정말 그래도 되나요?”
“물론. 빌이라면 말도 안 된다며 역정을 내겠지만, 나는 그와 미의 가치관이 완전히 같진 않으니까.”
‘민얼굴로 촬영이라니!’ 루크 선배는 빌 선배를 떠올리게 하는 표정을 지으며 성대모사 아닌 성대모사를 했고, 나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익살스럽게 느껴져서, 무심코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풋.”
그때였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서, 카메라의 셔터 음이 들린 것은.
맙소사, 방심했다. 그야말로 ‘당했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은 나는 놀라서 루크 선배를 보았고, 선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로 다가갔다.
“아, 찍혔나?”
“예? 대체 어떻게?!”
“아아, 네가 웃으면 셔터를 누르도록 마법을 걸어두었거든.”
세상에, 그런 마법이 있다니. 그야말로 흑마법이다. 적어도 내게 있어선, 8천 년짜리 저주의 흑마법이다!
내가 솜사탕을 물에 씻어버린 라쿤 같은 표정으로 선배를 바라보아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너무 절망하지는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게, 어차피 사진은 내가 싫다고 하며 지워줄 거니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자, 보렴. 너의 사진을.”
볼 것도 없다. 어떤 사진이라도 지우라고 말할 거니까. 물론 루크 선배가 예쁘게 나온 사진이라면 조금 아까워서 망설일지도 몰라도, 그래도, 나는 내 사진 같은 건 남기고 싶지 않으니 결국은 지우라고 할 거다.
그래, 분명 그럴 예정이었는데.
“어때, 지울까?”
선배가 보여주는 카메라 화면 속 내 모습을 본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혀, 대답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 숨을 죽였다.
이게, 정말 내 모습이 맞는 걸까?
루크 선배와 함께 찍힌 나는 분명 내가 알고 있던 나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마치 다른 사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한 번도 거울에서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단지 웃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사람이 달라 보일 수 있는 걸까?
이래서야 도무지 지우라고 할 수가 없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고개를 저은 나는 목소리를 쥐어짜서 답했다.
“…아뇨….”
“음. 현명한 결정이야, 르나르.”
‘이렇게 아름다운데, 지우면 아깝지.’ 그렇게 말하는 루크 선배의 말에, 나는 우습게도, 정말 사진 속 내가 너무나도 고와 보여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아아. 큰일 났다. 내 사진 같은 건 한 장도 가지고 싶지 않았는데, 이러다간 사진 찍는 게 좋아져 버릴 것만 같다.
내 마음의 변화를 눈치채기라도 한 것인지, 선배는 한 건 했다는 듯 뿌듯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