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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말(paling word)

 

w. by ludinadia

 

 

찬바람이 그의 뺨을 스쳐지나갔다. 신무영은 눈을 느리게 깜박거리며 지금 그의 상황을 인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분명 얼마 전까진 가을이었는데 어느새 눈이 내린 마을이 되어 있는지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더욱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의 눈앞에 있는 그녀였다.

 

"신무영…? 너 왜 이렇게 머리카락이 길었어?"

 

당황하는 목소리에 그녀는 분명 10년 전의 이리가 분명했다. 눈이 시릴 듯이 푸른 머리칼, 보석을 박은 듯한 도홍색 눈동자. 그는 저의 눈을 의심했다. 몇 번이나 기억하려, 눈에 다시 담으려 그렇게도 노력한 그녀가 자신의 눈앞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분명 그녀는 10년 후에도 살아있지만 그가 진정으로 그리워 한 것은 지금 그 눈 앞에 있는 이리였다.

 

“신무영 맞는 거야…?”

 

그녀는 그의 곁으로 총총 걸어와 그를 빤히 보았다. 그는 목이 막힌 듯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그녀는 당황하며 빠져나가려 했지만 그의 품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그저 그는 창백한 표정으로 그녀의 이름을 조용히 부를 뿐이었다.

 

*

 

“그러니까 10년 후의 신무영이라는 이야기?”

그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떨떠름한 목소리의 이리는 고개를 돌렸다. 공원 벤치에 그들은 나란히 앉아있지만 심리적 거리감은 차마 셀 수 없을 정도 인 듯 했다. 그녀는 무거운 침묵이 어색하고 거북하여 별 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

 

“그럼 10년 후의 난 어떻게 살고 있어?”

 

아직도 네 옆에 있으려나? 가볍게 조잘거린 말이 차마 그의 치부이자 후회인지도 모른 채 그녀는 말을 내뱉었다. 그는 마치 명치를 세게 맞은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창백해진 표정으로 그녀는 불안해하며 말을 이었다.

 

“나 죽기라도 했어…?”

 

그는 그녀의 오해를 막기 위해 다급히 말을 하려 했지만 그녀와 눈동자를 마주치자마자 다시 입을 다물었다. 경악으로 퍼져가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10년 후의 그녀의 허무한 눈동자가 떠오른 것이다.

 

“아니야, 그저…”

 

그는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매일 지옥에서 살아가듯, 사라지고 싶어 한다고,]창백한 말(paling word) 걸 과거의 그녀에게 사실대로 말해줄 순 없었다. 고민하는 그의 모습을 빤히 바라본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괜찮아, 말 하지 않아도 돼. 안다고 해도 미래의 내가 바뀔 것 같진 않고.”

 

괜한 걸 물었다는 듯 한 태도에 그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녀에게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곁에 있어주란 말을 해봤자 그녀가 바뀌지 않을 거란 것을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다. 고개를 숙인 그의 모습을 흘깃 본 그녀는 피식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미래의 신무영은 많이 변해버렸구나. 나도 많이 변했겠네.”

 

어, 변했지 엄청 부정적이고 절망적으로.

 

그녀의 말의 답변을 애써 목 너머로 삼킨 그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지금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머리카락이, 그렇게 어두운 색으로 변해버리고, 이렇게 반짝이는 눈은 한 치의 빛도 보이지 않는 절망을 담고 있고…

 

“이리.”

 

“왜?”

 

그는 점점 앞이 흐릿해지는 걸 느꼈다. 마치 시간이 다 된 듯. 달콤한 면회 시간은 이제 끝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어."

 

"뭔데?"

 

거짓말이라도 좋아.

 

그가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녀는 비슷한 색채의 그와 마주했다. 훅 끼치는 스킨향이 그녀의 코를 간질였다.

 

나한테 좋아한다고 해줘…….

 

들었던 순간 심장이 정지할 것만 같았던 부탁은 들어줄 수 없었다. 그녀가 입을 연 순간에는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느릿하게 눈을 떴다. 마치 잠시 잠을 잔 것 같이 몽롱했다. 그리고 그런 그가 다시 마주한 것은 빛나는 그녀가 아닌 마치 고인 핏물이 썩은 것과 같은 눈빛을 한 그녀였다. 모순적이지만 지금의 그녀는 그녀가 아니었다.

 

그는 마른세수를 하며 그녀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다렸나?"

 

"아니, 별로."

 

아까까지 들었던 선명하고 밝은 목소리는 마치 깊은 구덩이처럼 어두운 목소리와 너무나도 달라서, 괴리감이 느껴졌다.

 

“아, 오늘 좀 이상한 꿈을 꿨어.”

 

“뭐지?”

“그냥, 10년 전의 너와 만나는 꿈.”

개인적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을 그녀가 스스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와 비슷한 꿈을 꾸었다, 말했다.

 

“거기서 넌, 날…”

 

-안쓰러워했어.

 

창백한 말이 그의 귓가를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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