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10년 전의 어느 하루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아, 그건 꿈인 줄 알았는데.
잠에서 깬 것처럼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고 나니 평소에 보던 내 손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꼭 10년 전 11살쯤이면 이런 사이즈의 손일 것 같았다. 상황이 이해되질 않아 멍하니 눈만 깜빡이고 있는데 갑자기 귓가에 훅 바람이 들어왔다.
“꺅!”
“무슨 생각하냥?”
“어?”
거짓말. 진짜로 12살 키쿠마루 에이지가 내 눈앞에 있다고?
내 손도 몸도 작아졌으니 물론 앞에 있는 사람도 작아졌어야 맞는 거겠지만 여전히 실감이 나질 않았다. 농담처럼 ‘그럼 열두 살인 내 남자친구를 만나고 싶어요!’고 했을 뿐인데 이루어지다니,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까부터 불렀는데 대답도 없고, 호, 혹시 귀신이라도 봤냥?”
고양이 같은 얼굴이 금세 흙빛으로 물들었다. 아, 몇 살이든 내 남친의 귀여움은 변하질 않는 모양이다. 지금의 우리처럼 에이지와 내 키가 약간 차이가 나는 게 괜히 두근거렸다.
“아니야, 나 귀신 같은 거 못 봐.”
고개를 내저었더니 안심한 듯 다시 표정이 밝아졌다. 자연스럽게 내 손을 꼭 잡은 에이지는 성큼성큼 날 데리고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린데도 여전히―이런 표현을 써도 된다면 말이지만― 나보다 손도 컸다. 내 손이 작아진 탓에 그렇게 느껴지는 거라고 하기엔, 평소 손을 잡던 딱 그 느낌 그대로였다. 가슴이 간지러웠다.
“츠바사 그네 좋아하니까 그네 밀어줄게!”
원래대로라면 이때의 우리는 아는 사이가 아니다. 내가 에이지를 처음 알게 된 건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하물며 2학년 때 모모와 같은 반이 되면서였다. 그런데 어쩜 이렇게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있는지, 나에 대해 왜 이렇게 잘 알고 있는지, 궁금한 게 산더미 같았지만 입을 떼진 않았다. 정말 무언가의 마법이라면 새로 생긴 소중하고 특별한 추억으로, 혹은 꿈이라면 그거 나름대로 행복한 꿈으로 안고 살아가면 되는 법이다.
나를 그네에 앉혀놓고 에이지는 양쪽 줄을 붙잡았다. 천천히 그네 줄을 따라 몸이 뒤로 움직였다. 그리고 탁 앞으로 그네가 나아갔다. 움직임에 맞춰 다리를 뻗었다가 굽혔다. 그네가 뒤로 돌아올 때마다 등에 에이지의 양손이 느껴졌다. 힘 있게 나를 밀어내고 다시 받아주는 손이 든든해서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그만, 그만! 너무 높아!”
“냥? 한 바퀴도 돌릴 수 있는데!”
“무서워!”
예나 지금이나 높은 건 쥐약이라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앞뒤로 움직이는 사이로 바람이 느껴졌다. 다리를 꼭 붙인 채로 있었더니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덜컥 줄이 붙잡히는 느낌이 들어 슬며시 눈을 떴다.
장난스런 미소를 띤 에이지의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이번엔 다른 의미로 눈을 감고 싶었지만, 슬며시 고개를 뒤로 당겼다.
“괜찮다냥, 나랑 같이 있으면 하나도 안 무서워해도 돼!”
에이지는 쫙 편 손바닥으로 자기 가슴을 탁탁 두드렸다. 열두 살 소년의 귀여운 허세에 풋 웃음이 났다. 그러자 에이지도 환하게 웃었다. 세상이 더없이 행복해지는, 아, 이 정도면 세상을 다 가졌구나 싶어지는 그런 웃음이었다. 내게 내민 손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한층 가까워져 오는 거리가 두근거렸다. 거리를 조금 벌리려고 다리를 뒤로 빼는데 갑자기 몸이 앞으로 끌어당겨졌다.
“츠바사는 내 공주님이니까 내가 지켜줄 거다냥!”
신이시여, 열두 살의 애정표현이 이렇게 파괴력이 세군요.
물론 에이지를 내 왕자님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술 취해서 말한 적도 있지만, 역으로 ‘공주님’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아플 만큼 심장이 뛴다. 부끄럽고, 설레고, 두근거려서,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린 것만 같아서 그대로 에이지의 어깨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부끄러워…….”
“어, 왜? 여자애들은 다 누군가의 공주님이랬는 걸. 그러니까 츠바사는 내 공주님이야.”
“응……. 에이지는 평생 내 왕자님이야.”
그야 10년이 지난 나의 현재에 당신이 내 왕자님이니까, 당연한 걸.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소리를 가만히 가슴에 묻어두고 에이지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열두 살 키쿠마루 에이지의 체온은 열한 살 내 체온보다 좀 높은 것 같다.
“츠바사!”
고양이처럼 올라간 입매와 눈꼬리가 나를 반겼다. 10년 전과 많이 다르지 않은, 하지만 좀 더 멋있어진 얼굴, 현재의 키쿠마루 에이지, 내 남자친구다.
“피곤하냥?”
“나 잤어?”
“응, 아까 한 시간 뒤에 깨워달랬잖아.”
그랬던 것도 같았다. 한참 먼 예전 일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잠시 뿐이었다.
“엄청 좋은 꿈 꿨어.”
“무슨 꿈인데?”
“안 가르쳐 줄 거야.”
“뭐냥, 가르쳐 줘!”
불룩하게 부풀어 오른 볼을 찌르는 대신에 에이지의 품을 파고들었다. 단단하게 잡힌 근육이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 안고 있었던 따뜻한 품을 떠올렸다. 여전히 약간 높은 체온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에이지는 평생 내 왕자님이야.”
꿈속인지, 진짜인지 모를 시간에서 열두 살의 에이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자신감을 불어넣어 새삼스럽게 고백했다. 에이지의 볼이 조금 붉게 물드는 게 귀여웠다. 배시시 웃으니 따라서 웃어주는 에이지가 좋았다.
“응, 츠바사도 평생 내 공주님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