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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척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드림캐 X 후천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드림주

*원작 7권의 시점

*원작의 내용상 열악한 인권문제가 여기저기에 녹아있습니다.

*짧은 폭력묘사가 있습니다.

 

 

 

 

 

달콤한 냄새.

잊으려 해도 꿈에서조차 잊히지 않던 냄새가 더러운 뒷골목에 가득 퍼진다. 저를 사로잡는, 깔끔하게 단 냄새. 그 후로 단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러와 저를 부른다. 생각은 몸의 움직임을 따라오지 못했다. 의문이 들었을 때는 이미 몸이 냄새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깨달은 후에도 다리는 멈추지 않고 생각은 쫓아오지를 못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결론 내리는 것조차 포기하고 남자는 본능에 모든 것을 맡겼다. 우선은 향취를 쫓는다. 그 뿐이었다.

발을 이토록 놀렸는데도 주위만 빙빙 도는 느낌이다. 제가 달리고 있음에도 가까워지지 않는 것이 저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작게 혀를 찬 남자는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는 손을 바라보다 그 자리에서 지면을 박차고 위로 튀어 올랐다. 한 번에 이쪽 건물 위로 올라가기에는 높이가 있어 창밖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용도의 난간을 한 번 더 밟아서야 남자는 바라던 바를 이룰 수 있었다. 높은 곳에 올라 주변을 훑어보던 남자의 눈에 한 사람이 잡혔다. 검은 옷차림에 검은 모자까지 깊게 눌러써 얼굴 전체가 보이지 않는 남자 하나. 자리를 옮기는 모양새가 자연스러웠음에도 남자는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는 남자를 향해 다리를 뻗었다. 한 걸음에 냄새가 미세하게 짙어진다. 정답이다. 온몸을 검은색으로 둘러싼 남자가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복잡한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위로 오른 것 또한 정답이다. 이곳에서 제가 그를 놓칠 리 없다. 제 행동을 모두 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우지 못한 채로 남자는 건물 사이를 뛰어넘어 바라던 대로 쫓던 향의 주인 앞에 내려섰다. 깔끔하게 단 냄새가 어지럽다. 남자는 더욱 짙어진 향을 들이쉬며 제가 쫓던 이를 눈에 담았다. 양손은 여전히 주머니 속에 꽂혀서 나올 기미가 없고 그늘에 가려진 눈은 그때와 같이 반쯤 감겼어도 날카롭게 벼려져 저를 내려다본다. 찾았다. 그럼에도 남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를 가만히 올려다보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었다.

 

“무슨 용건이지.”

 

붕대가 꼼꼼히 감긴 목이 울리며 그의 입이 정확한 문장을 그렸다. 짧았지만 배려해주는 건가, 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또박또박한 문장이었다. 모를 사람. 얼마간의 시간을 함께 보내더라도 저에게 그는 영원히 알 수 없을 사람일 것 같았다. 눈에 확연히 보여야 할 하나가 보이지 않는, 여러모로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고 뒤늦은 답을 하려다 손을 떨어뜨렸다. 저조차도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는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다리를 움직였다. 답은 찾을 수 없다. 찾지 않아도 상관없다. 남자는 떨어뜨린 손으로 저를 지나쳐가려던 그를 막았다. 그의 고개가 틀어졌다.

 

“시가…늘 내, 주…시겠, 습니까.”

 

소리를 내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는 턱을 안쪽으로 살짝 당기더니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삐딱하게 선 고개를 바로하며 그늘 아래로 눈을 마주했지만 남자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작게 한숨을 내쉰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 몸을 돌렸다. 남자를 두고 몇 발자국 나아가던 그는 걸음을 멈추고 뒤의 제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다시 한 번 느리고 정확하게 목소리가 그려진다. 깔끔한 소리가 흩어지기 전에 남자는 꾹꾹 눌러 담은 걸음을 옮겼다.

 

 

* * *

 

 

걸음을 멈춘 그는 벽에 등을 기대었다. 아까보다는 깨끗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더러운 뒷골목이었음에도 그는 괘념치 않는 듯했다. 남자가 맞은편에 서서 그를 바라보자 그는 주머니 속에서 드디어 손을 꺼냈다. 하얗고 큰 손이었다. 매끈하게 잘 뻗어서 작은 움직임에도 유려하게 선을 그리는 손은 눈을 사로잡기에 제격이었다.

 

“수화는 할 줄 아나?”

 

말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그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손을 보면서 남자는 굳이 손을 들어 길게 문장을 그려냈다. 그는 고개를 짧게 끄덕이고 사선으로 틀어서 잿빛 하늘을 눈에 담았다. 아무런 말도 않고 남자를 기다린다. 그것이 마치 저보다도 저를 잘 알고 있는 듯해서 남자는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답은 여전히 찾아지지 않는다. 흉내만 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신경이 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답지 않다. 그가 지나치게 저를 신경 써주고 있다고 착각할 법한 행동을 계속 취하고 있기 때문인지, 그로부터 짙게 풍겨져 나오는 특유의 단 냄새에 홀린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는 그의 앞에서 유독 자신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여기저기서 밀려들어오는 생각에 걸려 넘어질 것 같다고 생각할 즘 그는 남자에게로 팔을 뻗어 제 쪽으로 부드럽게 잡아끌었다.

 

“헉, 태그…!”

 

그가 당겨 부딪치는 것을 모면하기는 했지만 지나가던 남자는 저를 향해 눈을 쏘았다. 짤랑거리는 소리에 목에 걸린 인식표를 확인하고 숨을 들이키며 곧바로 골목 뒤로 숨기는 했지만. 익숙한 일이었다. 제 위치를 다시금 알려줄 일이기도 했다. 제 머리를 가볍게 툭 치고 구석진 골목으로 발을 옮기는 그가 아니었다면 확실히 저를 현실로 데리고 왔을 일이었다. 남자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뒤를 쫓았다. 후미진 골목을 돌자 그곳에는 지독히도 익숙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뭐라 짧게 읊조리고는 무리 중 제일 가까이에 있는, 주먹을 높이 치켜든 남자의 팔을 잡아 반대로 꺾었다. 그의 등만 보이는 남자도 그가 불쾌해 하고 있음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느 지점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그 감정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꺾은 팔을 놓은 그는 달려드는 다른 남자의 턱 아래에 날카롭게 주먹을 꽂아 넣었다. 단단히 쥔 주먹을 밀어 넣고 되돌리는 속에 남은 한 남자에게 등을 보이고 말았지만 그는 들썩이는 모자를 한 손으로 누르면서 가볍게 몸을 틀어 피했다. 한 손은 모자를 누르고 다른 손으로는 남자의 얼굴을 잡고 땅으로 내던지는 그는 날카로운 본연의 눈을 흉흉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에게 깔끔하게 한 방씩 먹은 남자 셋은 각자 얻어맞은 부위를 붙잡고 허겁지겁 도망쳤다. 혀를 찬 그는 모자를 고쳐 쓰며 무릎을 굽혀 아까의 무리가 둘러싸고 있던 아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인 아이의 목에는 어김없이 등급이 매겨진 인식표가 달려있었다. 익숙한,

 

“미안하다.”

 

…무엇이?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이도 다르진 않았는지 눈을 키우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처음으로 표정을 누그러뜨려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아픈 웃음이다. 속에서 말로 형용하기 힘든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주먹이 쥐어진다. 알던 것이었다. 뼛속에 스미도록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어딘가 싫었다. 뒤통수를 갑자기 얻어맞은 것 같기도 했고, 분한 것 같기도 했다. 그가 주머니에서 약을 꺼내 아이의 상처에 살살 발라주는 것을 바라보면서 남자는 복잡한 심정을 곱씹었다. 무엇이 미안합니까. 지친 목구멍까지 차오른 소리가 새어나오기 직전에 아이를 배웅한 그는 왼손으로 남자의 눈을 덮었다. 싫다. 몰래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싫다. 남자는 그의 왼손을 쥔 손에 힘을 넣었다. 제가 힘을 주면 어떻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이를 뿌득이며 힘을 주었다. 그가 싫었나? 손가락 틈새로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은 그는 천천히 왼손을 떨어뜨렸다. 그의 새하얀 손에 엉망으로 붉고 시퍼런 자국을 내던 남자의 손에서도 힘이 빠졌다. 남자가 손을 놓자 그는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시원한 웃음을 지었다. 소리 하나 삐져나오지 않는 깔끔한 웃음이었다. 남자는 바닥보다도 더 깊은 곳으로 추락했다. 모르기 때문에 웃을 수 있는 걸까. 알면서도 웃음을 지키는 걸까. 앞에 두고도 모를 사람에 남자는 다시는 올릴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먼 옛날에 버린 웃음을 지었다.

처음 자리를 옮겼던 곳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벽에 다시 등을 기댄 그에게 남자는 끝까지 말을 던지지 않았다. 그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지만 남자에게 굳이 말을 붙이지도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 그가 먼저 고집스레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어 소리를 내면서 손으로 글자를 그렸다. 짧은 문장이 흩어지기도 전에 그는 골목을 돌아 모습을 감추었다. 뒤늦게 뒤를 쫓았지만 그는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진 후였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향도 골목을 떠났다. 끝까지, 작별을 알리는 목소리는 처음과 같이 정확하게 울렸다.

 

 

* * *

 

 

니콜라스는 눈을 감았다 뜨면서 흐린 시야를 바로 했다. 선명해진 시야에 들어온 제 손은 아까보다 더 단단해져 있다. 그는 없다. 니콜라스는 들어 올린 손을 그대로 얼굴로 가져가 마른세수를 했다. 제가 누워서 잠을 청하던 침대 옆으로 니나가 바쁘게 움직이다 저를 보고 활짝 웃었다. 니콜라스가 상체를 일으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화답하자 니나는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녀왔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시리우스다. 어딜 다녀온 모양인지 문을 열고 들어온 시리우스는 니콜라스를 보고 짧게 눈짓을 했다. 눈인사에 숨겨 자연스럽게 왼손을 뒤로 가렸지만 니콜라스의 눈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의 새하얀 손은 강한 힘에 짓눌리고 멍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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