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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하쿠는 막내였다. 물론 손위 형제가 어려지는 일 따위 일어나지 않을 테니 코하쿠는 여전히 막내이다. 어린 시절 초등학생들이 하는 호구조사 같은 것이 문득 떠올랐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을 하시니? 형제는 몇이니? 나이가 들고 난 뒤 그 질문은 조금 진화하여 추측으로 변했다. 너, 막내지? 혹은 너 외동이니? 와 같은 것으로 말이다.
묘하게 차분한 언동으로 코하쿠는 어른 대접을 퍽 일찍부터 받아왔다. 하지만 그녀의 가족 내서열에 대한 추측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코하쿠쨩은 막내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에도 나중엔 지쳤다. 그렇게 어린애처럼 보이는 건가 고민하기를 여러 번, 하지만 뭐. 그녀의 생김새가 어린아이 같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거기에 더해, 코하쿠의 십 대가 끝나갈 때까지도 가족의 눈에 그녀는 집안의 천덕꾸러기 막내였다. 어머니, 스미레에게 둘째 딸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그러면 그녀는 날카로운 눈매를 더 뾰족하게 세우며 온갖 일화를 쏟아낼 것이다. 당사자가 바로 앞에 있다면 더더욱 신나 추억을 늘어놓겠지, 덜할 인물은 아니었다. 십중팔구, 그 추억 중에는 동생을 낳아줄까? 물어보면 목놓아 울며 동생을 낳지 말라고 애걸하는 막내딸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하여튼, 코하쿠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저 자신이 막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흐느껴 우는 어린 소년을 품에 어색하게 안고 달래야 하는 이 순간에 말이다. 어머니는 동생 하나쯤은 낳아도 괜찮았을 텐데. 이제 와서 빌어도 이미 너무 늦은 소망이었다.

 

 

 


그날따라 샤이닝 사무소는 조용했다. 평소에는 오가는 사람도 많고, 일하는 사람도 많은데. 기묘할 정도의 정적에 코하쿠는 약간의 의문을 품었으나 굳이 의심하지는 않았다. 잠깐 다들 점심 먹으러 나갔나 보지. 그 정도가 그녀의 적당한 추측이었다. 전 날밤 연인과 쓸모없는 말씨름을 하다가 늦게 잔 탓에 판단력이 더 흐려지기도 했다. 그 샤이닝 사오토메의 사장실에 들어서며 긴장을 풀다니.

“실례하겠습니다… 어라.”

평소의 소파는 어디로 간 건지 사장실의 가운데에는 위아래로 기다란 거울이 하나 서 있었다. 좀 묘한 부분이 있다면 그 거울에 테가 없다는 정도, 그 외에는 평범한 전신 거울. 아니, 너무 거대하다는 사실도 특이사항이 될까? 사무실의 재정을 담당하는 휴우가 선생님이 언젠가는 혈압으로 쓰러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휴우가 선생님의 안부가 가볍게 넘길 우스갯소리가 아닌 것이, 휴우가 선생님의 얼굴빛만 잘 살핀다면 그 날 하루 사무소에서 봉변을 당할 확률은 확 떨어진다는 것이 사무소에서의 정설 중 하나였다. 살아있는 컴퓨터에 가까운 평판의 미카제 아이가 확언한 일이니 샤이닝 사무소의 신참 아이돌들은 그 충고를 귀담아들었다. 사오토메 학원을 졸업한 졸업생들은 물론 그들의 사장 앞에서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학교의 곳곳에 심어 둔 부비트랩이나 시련이라면서 작곡가 파트너가 납치당하는 등, 여러모로 화려한 학창 시절을 견뎌낸 동창들이기에 더더욱.

 


사장실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딱히 갈 곳도 없었다. 손님 접대용으로 놓인 가죽 의자의 끄트머리에 앉아 코하쿠는 멍하니 방 안을 둘러보았다. 벽에는 사장님이 과거에 취득했다는 의사자격증과 과거의 포스터 같은 것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본인이 입는 것과는 별개로 인테리어는 정상적인 모습으로 해두는 편이다. 평범하게 멋있다. 좀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책상 위의 장식품에서 창문의 커튼까지, 꽤나 세련된 디자인으로 골랐다. 아무도 오지 않아 지루함을 이기지 못한 코하쿠는 이것저것 구경하기 시작했다.

 


의사 자격증에 쓰인 이름은 아마 샤이닝 사오토메의 본명. 사오토메 다음의 첫 글자 미, 까지는 읽을 수 있지만 그다음부터는 해독하기가 어렵다. 미 다음의 글자가 과연 츠인지, 아니면 글자가 더 있긴 했던 건지 고민하며 의사 자격증을 관찰한 지 20여 분째, 코하쿠는 지겨움에 항복했다. 책이라도 읽던지 인터넷을 보고 싶지만 조금 급하게 나오느라 책은 챙기지 못했고, 핸드폰의 배터리는 5% 정도 남아 얼마나 버텨줄지조차 알 수 없다. 시간만 되면 토키야한테 메일이라도 보낼 텐데. 평소보다 더 뻗친 옆머리를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며 코하쿠는 이번엔 거울 앞에 서 보았다.

 


거대한 전면 거울은 공을 들여 청소한 모양인지 무척 깨끗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이는 먼지나 손자국 같은 건 하나도 없이 거진 완벽하게 그녀의 모습을 담아낸다. 깨끗한 게 있다면 만져보고 싶은 법. 어딘가의 이치노세 씨라면 기가 차다는 얼굴로 그녀의 행동을 막았겠지만, 코하쿠는 현재 홀로 있었다. 잠깐 만져보고 손자국은 소매로 닦아내면 되겠지, 하고 집게손가락을 표면에 댄 순간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거울의 표면은 자석처럼 그녀를 빨아들였고, 코하쿠는 마지막으로 사장이 큰소리로 뭔가를 외치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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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 누나?”

조심스레 어깨를 흔드는 손길에 느리게 눈을 떴다. 요즘 일이 많아서 잠이 부족하다 싶었더니, 잠들었던 걸까. 으응, 5분만 더… 중얼거리자 어깨를 흔들던 사람은 그녀에게서 손을 거두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손의 주인은 이번엔 볼을 톡, 톡 건드리는 것이었다. 아직 5분 안 지났는데, 잠에 취한 사람 특유의 멍청한 생각을 주워섬기며 눈은 여전히 감은 채 손을 내저었다. 쉬이 쉬이, 자게 놔둬라. 저리 가주세요.

“5분만 더 잘래…아직 5분 안 지났고…”


“제발 일어나주세요!”

어린 소년의 미성이 반쯤 울먹거리는 소리에 미적미적 눈을 떴다. 일단 일어나라는 말이 간절하게 들렸고, 혹여 저가 방송 대기시간 도중에 잠든 건 아닌가 싶어 잠이 싹 달아나기도 했다. 그런데 스태프라기엔 너무 어린데. 코하쿠는 잠이 덜 깬 눈을 손으로 몇 번 눌렀다. 눈앞의 소년은 열살조차 안 된 것 같았다. 아니, 애초에 초등학교는 들어간 나이인가? 친척 중에 가장 어린 사람은 작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사촌 동생뿐이다. 그 아이도 어느새 키가 170 센티는 훌쩍 넘겼던데. 소년은 머리가 코하쿠의 허리께에나 간신히 닿을 것 같다. 눈대중으로 추측한 바이다. 아무래도 코하쿠는 어느 새엔가 공원 구석에 놓인 긴 의자에 웅크리고 누워 잠들어 있었으니까.

 


이것이야말로 꿈인 걸까, 아니면 누가 대충 쓴 각본을 연기하는 도중인 걸까? 이상한 나라의 코하쿠, 같은 뻔한 제목의 연극이라든지. 샤이닝 사오토메라면 그런 짓을 뻔히 하고도 남는다. 몰래카메라, 혹은 비밀 기획이라 그래도 놀랍지 않다. 코하쿠는 남자아이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며 머리를 굴렸다. 그렇지만, 이 아이는 샤이닝 사무소의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그 거울도 속임수라기엔 너무 실감 났다. 정신을 잃기 직전, 허공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감각을 닮아 있었다. 정점으로 올라가 쑥 떨어지는 느낌. 조금 미심쩍은 기분으로 코하쿠는 소년을 보았다. 소년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키가 작은 아이는 눈초리가 조금 새침하게 생긴 것을 제하면 특별히 뭔가 꾸미는 얼굴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똘똘하게 생겼다고 해야 하나. 이제 갓 이십 대에 접어든 소녀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아이의 얼굴 자체도 뭐.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이 장래가 유망해 보인다. 자신의 안목에 내심 만족하며 아이를 관찰하고 있자 아이는 애써 침착하게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추우니까 이런 곳에서 자면 안 돼요, 감기 걸려요.”
“아… 고마워.”

목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살짝 쉬어 있어 코하쿠는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한 건지 약간 가여운 것을 보는 눈길로 그녀를 보았다.

“혹시 가출한 거예요? 잘 곳이 없는 건가요?”
“아니. 애초에 나는 성인이고. 걱정은 고마워.”

그래, 애가 보기에는 이상한 일이겠지. 여자가 혼자서 공원의 벤치에 웅크리고 누워 자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집이 없는 사람을 연상하게 된다. 지나가던 애가 깨워주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이게 바로 어른들이 말하는 딱 부러지는 아이인건가. 코하쿠는 벤치에 똑바로 앉은 채 몇 번 고개를 주억거렸다.

“해도 지는데, 아직 안 들어가도 되니? 엄마아빠가 찾을 거야.”

그 말을 입에 담자마자 아이는 눈썹을 찡그리고는 입술을 꾹 물었다. 정확히는 엄마아빠, 에 반응한 것 같은데. 새침한 눈꼬리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바닥으로 시선을 떨궜다. 대체 무슨 실수를 한 거지, 생각하기도 전에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아 하고 우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황급히 벤치에서 일어나 아이를 끌어안았다.

 


품에 안자 마자 안긴 쪽도, 안은 쪽도 놀란 게 느껴졌으나 일단 안은 쪽은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아이가 우는 걸 보는 건 당황스럽고, 어렵고, 솔직히 어떻게 다뤄야 좋을지 영 알 수가 없었다. 동생이라도 하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동생이 있었다면 적어도 이렇게 섧게 우는 아이를 달랠 방법은 알았을지도 모른다. 아니었다면, 아이가 언제까지 울지 정도는 알았을 거다. 스물이 되도록 막내로 자란 코하쿠에게는 품에서 갑자기 목 놓아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게 낯선 무대에 오르는 것보다 몇 배는 힘겨웠다. 등은 얼마나 부드럽게 두드려주면 좋지? 무슨 말을 해주면 되지? 토키야, 토키야라면 이 상황을 타개할 줄 알았을 텐데. 지금은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연인의 이름만 머릿속에서 한참 부르고 있자 아이는 느리게 울음을 그치기 시작했다.

 


이제 좀 괜찮아? 더 울래?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금은 어색하게 속삭이자 아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괜찮아요, 잔뜩 쉰 목소리로 답하며 작은 아이는 금방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울어서인지 아이의 몸이 따끈했단 사실은 뒤늦게 눈치챘다. 몸이 싸늘하게 식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쯤, 아이는 고맙다며 그녀에게 꾸벅 인사하였다. 코하쿠는 아이가 고개를 들자 손을 뻗어 눈물을 부드러운 소매로 닦아냈다.

“자아, 이제 괜찮니?”

아이는 입을 꾹 다물고는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대로 놔두면 또 울 게 뻔하여 그녀는 황급히 주머니를 뒤져 간식거리를 찾아냈다. 다행히, 어젯밤 비상용으로 챙겨 뒀던 막대사탕이 가방 안에 들어있어 코하쿠는 그걸 꺼내 아이에게 쥐여주었다. 아이는 고맙다는 말을 다시 웅얼거리며 사탕을 입안 가득 물었다.

 


사탕을 입안에서 한참 굴리는 소리를 들으며 코하쿠는 멍하니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어주었다. 어쩐지 아주 낯선 상황은 아니다. 아이가 추운 듯 어깨를 떨며 그녀에게 기대오자 코하쿠는 황급히 소매가 젖은 자신의 가디건을 벗어 아이에게 입혀주었다. 여성용이라 해도 성인을 위한 옷은 그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아 코하쿠는 푸핫 웃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이는 잔뜩 뚱한 얼굴을 하면서도 가디건을 꽉 쥐었다. 어째서 처음 본 어른인 자신을 그렇게 믿는 건가, 고민하자 어쩐지 불퉁한 목소리의 이치노세 토키야가 머릿속에서 한마디로 일축했다.

 


당신은 무해해 보이는 편이죠. 물론 얼굴만.


어젯밤에는 토키야를 귀엽고 순진하다며 놀리다가 입을 아프게 꼬집혔다. 예능 방송에서 놀라 벙 찐 얼굴이 나온 걸 보고 코하쿠가 크게 웃었더니 툴툴거리는 얼굴이 귀여워서 그랬던 것뿐인데. 좋아하는 애를 놀리는 초등학교 남학생의 심리를 그대로 드러내 버린 코하쿠는 그게 아프다고 투덜거리다가 간만에 둘은 긴 말씨름을 하게 됐고, 그리하여 둘은 사이좋게 늦게 잠들어버린 것이었다. 그래, 토키야는 아침형 인간이니 아무런 문제 없었을 테지. 문제는 늦게 자면 늦게 일어나게 되는 습성의 코하쿠였다. 늦게 일어나서 지각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새벽같이 깨워놓고는 스케쥴을 위해 냉정하게 떠나 버리다니. 정말이지 그 사람다운 행동이다.

 


웃는 건지, 짜증 내는 건지 알 수 없는 웃음소리를 킬킬, 낮게 내던 코하쿠는 이제는 옆에 달라붙은 아이가 손을 톡톡 건드리는 것에 현실로 돌아왔다.

“…누나, 이 근처에 파출소 어디인지 알아요?”
“글쎄, 나도 이 근방은 처음이라서. 우선 같이 찾으러 다녀볼까?”
“알았어요, 누나. 그러면 같이 가요.”

아이가 먼저 일어나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코하쿠는 기분 좋게 웃으며 에스코트를 받아들였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모른다. 계속 너, 아이, 라고 부르는 것도 웃기는 일인데. 허리를 숙여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며 혹시 이름표 같은 게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아이는 금방 눈치를 챈 건지, 그런 건 안 해요. 어린애 아니고. 라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면 몇 살인데? 참고로 나는 스무 살. 이름은 나이토 코하쿠.”
“모르는 사람한테 이름 가르쳐주는 거 아니랬어요.”

모르는 사람한테 안겨서 운 건 어디의 누구였을까? 금방 새초롬한 얼굴을 하는 게 토키야를 떠올리게 해 습관적으로 골려 주고 싶었지만, 아이가 또 울면 상대하기 힘들 걸 알기에 코하쿠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이미 가르쳐줬는데. 너는 안 가르쳐주는구나.”

그 정도 말만으로도 아이의 눈은 휘둥그레져 이리저리 불안하게 시선을 옮겼다. 코하쿠는 별말 없이 아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너무 못되게 구는 걸까, 한편으로 걱정스러웠으나 아이는 믿는다는 듯 수줍게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아주었다.

“자, 경찰 아저씨 찾으러 가야지, 애기야?”
“애기가 아니에요! 이제 곧 9살이라고요!”

핫, 그녀의 손을 안 잡은 쪽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으려 하는 게 귀여워 웃음이 튀어나오려고 한다. 코하쿠는 표지판을 찾는 척,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시늉을 하였다. 운이 좋게도 공원을 빠져나와 큰 도로로 나오자 파출소라고 쓰인 표지판이 퍽 선명하게 보였다. 코하쿠는 잠시 잊고 있었던 이 상황에 대한 의구심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디테일이 훌륭한데. 역시 사장님의 장난인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표지판은 여전히 파출소 라고 쓰인 하얀 글씨를 뽐내고 있다. 나이토 씨, 왜 그래요? 손을 잡아 당기는 아이에 의해 표지판과의 눈싸움을 그만두었다. 코하쿠는 부러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면 도련님이 좋아?”

아이는 대답 없이 그녀를 향해 눈을 흘겼다. 어이쿠. 차갑네. 이 어린 소년은 나이가 들면 더 재미있는 대화 상대가 될 것만 같다. 코하쿠는 이 당돌한 아이가 힘들지 않도록 발걸음을 느리게 하며 걸었다.

“나이토 씨는 왜 거기에서 그러고 있었어요? 나이토 씨도 미아인가요?”
“음…. 아마 비슷하겠지. 미아라기보단, 이상한 장난을 당한 게 아닐까 생각하지만.”
“미움을 많이 받는 건가요?”

진정으로 걱정해주는 눈길을 받자 코하쿠는 애꿎은 머리칼을 괴롭혔다. 그런 건 아닌데. 순한 얼굴의 아이에게 코하쿠는 유독 약했다. 그녀의 전담 작곡가 하루카나 룸메이트였던 아케미가 그 좋은 예였다. 괴롭히면 진짜로 울 것 같은 사람에게 코하쿠는 장난을 걸지 않았다. 약한 사람에게는 약하고 강한 사람에게는 강한 것이 바로 그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졸지에 집도 없고 괴롭힘당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코하쿠는 친절히 그의 오해를 풀어주기로 했다.

“그건 전혀 아니야. 우리 사장님이 좀…. 특이한 분이라서 변덕이 심해. 이상한 사람은 아닌데 이상한 일은 자주 벌이네.”
“힘들겠네요, 나이토 씨.”

제법 어른스러운 얼굴로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힘들다마다. 호기심에 한 번 거울을 만져본 것으로 어떤 일에 처하게 된 건지. 역시 이건 정말 꿈인 걸까. 자그마한 아이와 손을 잡고 걷는 저녁의 거리는 완연한 봄, 아직 길가에 심은 나무는 앙상하게 말랐지만, 곧 꽃을 피울 테다. 코하쿠는 아이의 손을 이끌어 꽃망울을 가리켰다. 저건 말이야, 벚꽃이 될 거야.

“몇 주만 기다려보면 여긴 벚꽃이 잔뜩 피겠네, 그치?”

아이는 아직 부풀어 오르기 전의 꽃망울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얼마나 용을 썼는지, 자그마한 눈썹 사이에 주름 같은 것이 잡혔다. 애써 웃음을 참으며 아이의 부드러운 머리통을 내려다보았다. 눈을 반짝이며 아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이토 씨, 벚꽃은 며칠 뒤에 필까요?”
“어?”
“벚꽃, 벚꽃 말이에요!”

나, 나, 이거 엄마아빠한테 보여주고 싶어요. 해맑게 웃는 얼굴을 봐서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니, 라고 말하면 아이가 제대로 토라지겠다. 코하쿠는 하하, 웃다가 잠시 머리를 굴렸다.

“그건… …네가 벚꽃 님, 벚꽃 님 어서 와주세요~ 하면 벚꽃 님이 서둘러서 다음 주말까지 피어나실 거야.”
“…진짜?”
“그러엄. 진짜.”

벚꽃 님, 벚꽃 님, 입으로 중얼거리며 아이가 엉터리 기도를 따라 했다. 정말로 꽃이 빨리 펴야 할 텐데. 순진하게 믿은 아이가 귀여운 것과 거짓말을 해버린 것은 다른 문제이다. 코하쿠는 어서 날이 따스해져 꽃이 만개하길 빌었다. 벚꽃 님께는 말고, 글쎄. 아이는 한참 벚꽃 나무를 아쉬운 듯 보다가 어서 가자며 손을 잡아끌었다.

 


조금 더 걸었을까, 저 앞에 촌스럽고 커다란 글자로 파출소라 쓰인 건물이 나타나자 아이는 발걸음이 조금 더 조급해지다가는 코하쿠의 손을 놓았다. 아이는 금방 달려나가 파출소 앞의 두 남녀에게 달려갔다. 아버지, 어머니! 외치며 안기는 모양새를 멍하니, 보았다. 근처에 있었구나. 부모님을 오래 기다리게 될까, 걱정했는데 아무래도 그럴 일은 없겠다. 아이와 신기할 정도로 닮은 어머니가 소년의 손짓을 따라 이쪽을 보았다. 그쪽에서 고개를 푹 숙여 보여, 코하쿠도 엉겁결에 숙여야 했다.

 


소년의 아버지라는 이치노세 씨가 그녀에게 깊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저희 아이가 폐를 끼쳤군요. 폐라니, 그럴 리가 없다. 코하쿠는 고개를 작게 저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저희는 그러면,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저희 아이, 돌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이토 씨.
“네, 잘 들어가세요. 잘 가렴.”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자, 아이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주저하는 듯하다, 큰 결심을 한 얼굴을 하였다.

“누나, 저는 이치노세 토키야라고 해요.”

응?

“나중에 같이 벚꽃, 여기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잘 가요, 나이토 누나!”

자그마한 체구의 아이가 돌아서서 떠나는 걸 보며, 코하쿠는 멍청한 얼굴만 하다가는 푹 주저앉아버렸다. 이치노세 토키야. 이치노세 토키야?

 


원체 특이한 이름이라 동명이인일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생김새가 그녀의 토키야와 꼭 닮았는 걸. 뭐야, 뭐야. 이거 혹시 시간을 거슬러 온 걸까? 웜홀에라도 빠진 건가? 설마 그 거울이 타임머신?! 집에는 어떻게 돌아가지? 나 여기서 살 수는 있어?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을 때 즈음, 누군가가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아차. 파출소 앞에서 바보 같은 짓을 했다. 코하쿠는 천천히 고개를 들며 사과의 말을 웅얼거렸다.

“죄송해요, 경찰 아저씨…”
“예, 미아 아가씨. 꽤 오래 헤맨 것 같군요.”

큰 손바닥이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덮고는 이미 헝클어진 머리칼을 가볍게 헝클어뜨렸다. 가로등의 빛을 등 지고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이치노세 토키야였다.

“…이거, 꿈이지?”
“글쎄요. 그쪽이 더 믿기 쉽겠군요.”
“내가 토키야가 많이 보고 싶었나 봐. 꿈에서 둘이나 보고.”

언제는 안 보고 싶었습니까? 자신만만하게 덧붙이는 말투가 여상하다 느끼며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손은 아이의 것만큼 작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따뜻했다.

“그러면 이상한 꿈에서 깰 시간입니다, 코하쿠. 눈을 감으세요.”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데리러 왔으니까.


남자의 다정한 목소리에 코하쿠는 안심하고 눈을 감았다. 꿈일지도 모르는 세계에서 떠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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