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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의 왕자님 All Star 미카제 아이 루트 네타 있습니다.

 

 

10년 전, 비파는 한국에 있었다. 18살 고등학생으로 대학교를 준비하는 나이였다. 남색 체크무늬 치마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그 위에 치마와 같은 무늬의 조끼를 걸쳤다. 등에는 책으로 가득한 가방을 지고 나무 기둥을 어깨에 짊어진 노예처럼 학교로 향했다. 28살이 되어서 그 뒷모습을 보니 더 작았다. 구부정한 등과 가방 끈을 쥔 양손, 종아리에만 근육이 붙은 마른 다리는 도저히 봐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목에 줄을 매여 끌려가는 개처럼 그녀는 기어가듯 학교로 향했다. 교문으로 들어서던 그녀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얼른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건조한 눈이 진득하게 비파를 에워쌌다. 세번 깜박인 눈은 금세 교문을 보았다. 18살에 그녀는 한국의 교육 체계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저항은 하지 못했고 하루하루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녀는 좋은 대학을 가면 이 고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했고 그로 인해 나온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누군가 그 태도가 소설을 쓰고 싶다는 꿈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면 쉽게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그녀는 한 번도 학교를 벗어나지 않았고 지금 비파가 보고 있는 뒷모습도 학교 안으로 사라졌다.

비파의 손을 딱딱한 손이 맞잡았다. 고개를 들어 옆을 보니 아이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동자는 파도처럼 불안에 일렁였다. 비파는 다시 교문을 보았다. 아홉시가 지나서 교문은 굳게 닫혔다. 그 앞에 선 학생주임 선생님이 지각생들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비파는 아이를 이끌고 건너편으로 가서 버스를 탔다. 버스는 언덕을 올라가서 왼쪽으로 꺾었다.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맡긴 채 창문을 내다보았다. 노랗게 변색된 세계가 출렁거렸다.

"이대로 타고 가면 내가 살던 집이 나와. 아파트였는데 단독이거든. 사방이 훤히 뚫려있어서 바람이 무척 잘 들었어. 7층에 살았는데 주변 건물이 모두 낮았거든."

"그럼 이때에는 아직 그 집에 있겠네."

"엄마랑 아빠가 돌아가신 건 스물 한 살의 12월이니까."

"집에 가보려고?"

"지금 들어가면 불법 침입이 되지."

비파는 웃으며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여전히 비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파가 아이의 뺨을 쓰다듬었다. 아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집 근처에 종합운동장이 있었거든."

"종합운동장?"

"그 앞에 벚꽃나무를 가득 심어둬서 무척 예뻤어. 같이 보러 가자.“

“지금이 4월인 거야?”

“학교 근처 가로수가 잎이 푸르렀고 18살의 내가 춘추복을 입고 있었으니 얼추 4월일 거야.”

“5월일 가능성도 있잖아?” “배제할 순 없지. 그래도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좋아. 비파의 과거를 볼 수 있게 됐으니 이보다 좋을 것도 없으니까.”

“그런 거야?”

“응.”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건물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가다가 멈춰서길 반복했다. 버스는 30분을 달려서 종합운동장 정류장에 도착했다. 길가에서부터 보이는 하얀 벚꽃이 바람에 흩날렸다. 비파는 아이의 손을 놓지 않았다. 아이는 하얀 벚꽃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일본의 벚꽃과는 다르네.”

“일본은 분홍색이잖아? 한국은 하얀색이야.”

“그렇구나.”

 

아이는 떨어지는 꽃잎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위로 떨어진 벚꽃은 그림처럼 손 위에 머물렀다. 아이는 꽃잎을 조심히 들어서 샅샅이 살펴보았다. 비파는 아이의 어깨 위에 떨어진 꽃잎을 집었다. 이쪽을 돌아보는 호기심 어린 눈동자에 꽃잎을 보여줬다. 한국을 떠나온 지 5년 만에 처음 보는 벚꽃은 줄기에 가까운 부분을 제외하고 모두 새하얗게 물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완전히 하얗다고는 할 수 없었다. 비파는 그렇기에 더욱 눈물이 났다. 이 색은 18살의 그녀의 기억엔 없다.

아이가 허리를 숙여서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긴 손가락이 비파의 눈물을 훔쳤다.

“비파, 왜 그래? 무언가 안 좋은 일이라도 생각난 거야?”

“18살의 내가 생각났어.”

“무척 무거운 가방을 지고 있던데.”

“오래 짊어지고 있으면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았어.”

 

 

비파는 아직 잡지 않고 있던 손으로 아이의 다른 손을 잡았다. 딱딱하고 매끄러운 손은 혼란 때문인지 열이 순식간에 올랐다. 오버히트를 일으킬 것만 같은 뜨거움을 비파는 피하지 않았다. 살짝 일그러진 미간을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친구들이랑 같이 벚꽃을 보러 가자고 약속했었어.”

“금방 오는 곳이니까?”

“응. 서로 공부 때문에 바빠서 지켜지지 못했지만.”

“그 친구들과는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거야?”

“스물두 살에 일본으로 건너갈 때 연락을 끊었어.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몰라.”

 

 

비파는 마른 침을 삼켰다. 눈물은 이제 멈췄지만 아이의 눈은 여전히 흔들렸다. 손을 놓고 팔을 뻗어서 아이를 끌어안았다. 아이의 팔이 비파의 몸을 껴안았다. 품에 얼굴을 묻고 비파는 눈을 감았다.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그럴 거야.”

“나 같은 건 잊었겠지?”

“인간의 기억력은 짧다고 말하지만, 그건 상황에 따라 달라. 함께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자고 약속할 정도였다면 기억할 거야.”

“……이제 돌아가자.”

“응.”

 

비파는 다시 아이의 손을 잡았다. 10년 전으로 돌아오던 때와 같이 벚꽃 길을 걸어갔다.

꽃잎이 머리 위에 쌓이고 바람이 어깨 위에 쌓였다.

 

눈앞에 빛이 수놓아지고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땐 익숙한 일본어 간판과 함께 분홍색 벚꽃이 보였다. 하늘하늘 쏟아지는 분홍색 벚꽃과 물빛 눈동자가 비파의 현실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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