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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의뢰라던지. 사이타마에 관한 일 같은 건 전부 보류하고 집중하고 있는 일이 생겼다. 바로 아카이 소라, 너에 관한 것. 신경이 쓰여서 한참을 수행에 집중 할 수가 없었기에 너의 뒷모습을 계속 뒤쫒았다. 닌자는 잡념이 무서운 것이니까, 너에 대한 잡념을 떨쳐내기 위해서. 항상 보면서 느낀 게 있었는데, 너는 가끔 사람을 겁내는 면이 없지않아 있었다. 나한테는 보여주지 않은, 겁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치 한 송이의 꽃이 움츠러드는 것처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답답한 마음에 너에게 다가가 손을 살짝 잡았는데, 너는 순간 무서운 것이라도 본 듯이 엄청난 겁을 먹었지만, 나인걸 확인하고는 안심한 표정으로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때 내가 본 너의 미소에 가려진 눈가에 고인 작은 보석 같았던 눈물이 이 일의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에 관한 궁금증만 늘어서 결국 자리를 피해주고는 수련을 하던 숲의 나무 위로 올라가 잠을 청했다. 누워서도 네 생각이 들어서 얼굴을 찡그리곤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때는 모르고 있었다. 이 숲이 어떤 곳인지.

 

 

. . . . .

 

 

“살려, 주...세요....”

 

“아.....?”

 

어린 여자아이의 가느다랗고 여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고 미세한 속삭임같은 그런 크기의 소리였으나, 어릴 때부터 키워온 닌자의 예민한 감 때문에 잠에서 깨어버렸다. 이 예민한 감이 방해될 때가 있는데, 바로 지금같은 상황이다.

멀리서 어린 여자아이가 힘겹게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복사꽃, 벚꽃을 연상시키는 붉은 빛의 분홍색 머리카락...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 여자아이는 내게로 다가오더니 날 붙잡고는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는 게 아닌가. 잘 보니 온 몸 구석구석에 상처는 기본이었고, 다리는 어떻게 된 건지 피가 많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애원을 하던 아이는 갑자기 내 얼굴을 보더니 엄청나게 두려운 표정으로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살려주세요...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계속 저 말만을 반복하더니 결국은 쓰러져 버렸다. 갑자기 쓰러져버려서 놀란 나는 그 녀석을 눕혀주고는 얼굴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았다.

 

아, 그래. 기억났다.

이 아이, 소라, 그 계집이랑 많이 닮아있었다. 소라와 처음 만났을때도 이렇게 상처투성이였다.

그치만 다른 게 있다면, 그때는 살려달라기는커녕, 그저...

 

‘날 죽여줘.....’

 

아, 상상도 하기 싫다. 미간이 저절로 좁혀지며 잊어보려고 고개를 저으며 안간힘을 썼다. 쓰러진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악몽이라도 꾸는 듯이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그녀와 닮은 아이의 상처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여간 심각한 게 아니었다. 이렇게 아팠을텐데, 혼자서 이곳까지 걸어왔다니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일단 내 목에 둘러져있던 스카프로 다리의 상처를 감아주었고, 내 나름대로의 간호라는 걸 해보앗다. 이렇게까지 이 녀석을 신경쓰는 이유라면, 일단 적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무엇보다 그 녀석을 닮은 구석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벚꽃같은 분홍빛 머리카락도, 그 두려워하는 표정마저 닮아버린 이 녀석을 그냥 냅둘 수 없었다.

 

아이는 금방 깨어났다. 아마, 무의식의 불안감이 이 아이를 쉬게 냅두지 않는 거 겠지. 얼마나 괴로우면 기절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금방 깨어나겠냐.

정신을 차린 아이는 일어나서는 죄송하다던가, 살려달라던가, 고맙단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스카프로 감긴 자신의 다리의 상처를 보고있을 뿐이었다. 그러더니 나를 하늘,아니 깊은 바다같이 푸르지만 생기없는 눈으로 날 슬쩍 흘겨보았다. 마치 조금의 경계심과 감사한 마음이 담긴 혼란스러운 눈빛. 그렇겠지. 모르는 사람이 도와주는 건 경계할 만 하겠지.

그렇지만 이 아이, 보면 볼수록 그 계집과 너무 닮았다.

 

“어이, 꼬맹이, 혹시 몇 살이냐?”

 

“....10살”

 

그 계집은 현재 20살일 터, 설마, 그럴 리는 없겟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왔다던가,,,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날 리가...

잠깐, 10년 전이면 이 몸은 이제 15세인가... 초등학생과 중학생... 중학생과 성인....... 나이차이가 확 느껴져 버렸다... 5살 차이, 평소엔 별거 아닌 듯 대수롭게 여겼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별거가 확 느껴졌다.

 

“이름이 뭐냐”

 

“.......”

 

녀석은 조용히 하늘만을 가리켰다.

역시 인석, 소라 그 계집이 확실하다. 하늘(소라)이니까.

자세히보니 바다같이 깊은 푸른색 눈동자도 그 녀석과 똑같다. 생기없는 것 조차도. 말도 안 되는일이지만, 아마도 자다가 어떻게 해서 10년 전의 과거로 온 것 같다. 어떻게해서 온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믿는수밖에.

 

“아저씨는 누구야? 여기서 뭐해..?”

 

“아저씨 아니다, 꼬맹이”

 

“꼬맹이 아냐, 나도 이름 있단 말이야...”

 

“소라?”

 

“난, 아카이, 소라.. 라고 해...”

 

“나는 암살부터 경호까지 뭐든지 해내는 음속의 소닉.”

 

어느때든, 너는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한결같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원래의 너도, 계집보다는 이름으로 불러주었을 때 좀 더 얼굴에 생기가 돌았으니까. 조금은 귀엽다, 라고 생각했다. 어린 너는 손을 꼼지락대더니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 사람도 죽여줄 수 있냐고. 너와의 첫만남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때의 너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죽여주라고 했었지. 만약 그때 죽였더라면... 많은 어두운 생각에 어린 녀석에게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물었는데, 너는 눈을 살짝 감고 괜찮다고 말했다. 힘든건 너인데 왜 네가 죽고싶어해, 죽고 싶은만큼 죽여버리고 싶을텐데. 어릴때부터 힘든 일을 겪고, 정신적으로 성숙한 너를 보면서 생각이 든 건, 넌 원래부터 착한 본성이 있었다는 것.

자각한 순간, 조금이라도 너의 상처를 아프지 않게 덮어주려고 머리를 살짝만 쓰다듬었다.

 

“..아저씨, 어린 여자아이를 좋아하는 건 병이래.....”

 

“..........난 너니까 좋은거다 바보 꼬맹아”

 

“나니까...? 그건 무슨 뜻이야..? 우리 만난 지도 얼마 안되었는데....”

 

“그런가... 그렇겠지. ‘지금의 넌‘”

 

과연 이 몸이 미래의 너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면 어떤반응을 보일지, 상상이 되어 속으로 킥킥, 웃었다. 그리고 내 몸짓 하나하나에 움찔하는 너를 들키지 않게 관찰했다. 그 녀석에 비해 훨씬 더 조그마한 손, 조그마한 몸. 마치 조금이라도 닿으면 부셔져 버릴 것 같은, 그렇지만 같은 빛깔을 가진 소라, 너 그 자체였다.

 

“아저씨, 아저씨는 특볗하니까 아저씨한테만 말해줄게. 나... 병 있어.”

 

“병?”

 

“안 이상해? 안 피하는 거야?”

 

“내가 왜 피하냐.. 안 이상해. 안 피할거니까 말해봐. 괜찮으니까.”

 

순간 너의 눈에 생기가 돋더니 바닥에 떨어져있던 작은 나무조각을 줍고는 내게 보여주면서 물었다. 이 나무조각이 뭘로 보이는지. 너는 이 나무조각이 바퀴벌레가 무서운 사람에겐 바퀴벌레로, 거미가 무서운 사람에겐 거미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며 말을 이었다.

자신의 병은 어른들만 보면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로 보이는 무서운 병이라고 한다.그래서 아까 정신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날 봤을 때 죄송하다, 살려달라는 말을 한 것이었다. 너를 보고는 조금 안쓰러워져서 너의 기분을 살피기 위해 너를 살짝 내려다보았다. 아까 괜찮다고 말해줬지만, 여전히 불안한 지 초조한 눈빛으로 날 살짝 흘깃흘깃, 올려다보는 너이다.

 

“이런 병 가지고 널 그리 간단하게 싫어하지 않는다. 딱히 신경쓰지도 않고.”

 

“그럼 좋아해?”

 

“...싫지 않다.”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는지 조금 뾰루퉁해졌다. 언제는 어린 여자아이를 좋아하는 건 병이라 하더니. 그래도 다행히 지금은 내가 괴롭히는 그 어른들로 보이진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 녀석, 20살의 너도 완치는 안 되었던지, 자주 어른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겁먹은 모습을 보였었다. 트라우마란 게 그런 것 같다. 알고 있는데도, 자각하고 있는데도 흠칫하게 되는... 얼마 전 까지 나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에, 어린 네가 자꾸 신경이 쓰였다. 너는 이런 내 생각도 모르고 말을 이었다.

 

“나, 이상한 연구소? 같은 곳에 갇혀있으면서 다정하게 대해주던 언니가 한명 있었다? 그 언니가 말해줬는데, 끝없는 어둠에도 빛이 한가닥 있듯이, 눈을 감았을 때 어둠의 끝에 보이는 그 사람이 내 빛일거래.”

 

“그러냐. 그럼, 지금은 어떤데?”

 

“...어둠속에서... 아저씨가 보여. 이거, 아저씨가 내 빛이라는 걸까? 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어....”

 

“지금은 아냐”

 

그 말에 슬픈 눈빛을 하는 녀석에게 이어 말해주었다.

조금 먼, 그렇지만 얼마 안 남은 미래에서, 이 음속의 소닉이 너의 가장 환한 빛이 되어 주겠다고, 빛나는 너를 위해 어둠도 되어 보이겠다고.

너는 그저 그 뿐인 말에도 활짝, 웃음꽃을 피워주었다. 어린 너와 계속 있으면서 네가 처음으로 웃어준 순간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원하는대로 되게 냅두지 않는 잔혹한 세계였다.

돌아갈 때가 된 건지 내 몸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이라도 네 녀석의 웃는 얼굴을 보게 된 건 다행이지만, 지금 네가 놀라버리면 어쩌냐, 위로할 말도 생각이 안나고, 이제 너의 머리도 쓰다듬을수도 없는데. 난 10년 전의 너나, 지금의 너에게나, 울리는 일만 해주는구나. 미안해서 어쩌지, 미안하다.

 

“꼬맹아, 약속해. 만약 언제 어디서라도 이 몸을 보게 된다면, 아까처럼 밝고 예쁘게, 웃어주지 않겠냐”

 

“그럼 소닉도 약속해, 만약 그때가 온다면, 날 소라라고... 이름으로 불러준다고...”

 

“그래, 약속하지. 소라.”

 

만약, 내가 사라진 이후, 나 때문에 20살까지 살아온 거라면... 기뻐지겠는데.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손을 흔들엇을 때 너는 내게 무언가를 던졋고, 이별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어린 너의 표정은 눈물을 흘리지만, 씩씩하게 웃어주는 너였다.

다행이다. 마지막에 본 너의 표정이 웃는 표정이어서.

 

 

 

. . . .

 

 

“....아....”

 

눈이 떠졌다. 내가 잠이 들었던 그 장소 그대로. 여태까지 꿈을 꿨던 건가? 여태까지의 모든 일이 꿈이었단 말인가? 너무 생생했기에 볼을 꼬집으려고 몸을 일으켜 손을 들어올렸을 때, 손 안에 무슨 이믈감이 들어 이상하게 꼭 쥐고있던 손을 펴보았다.

손에 쥐여진 건 사탕이었다. 그것도 딸기맛. 자기 전엔 없었는데. 설마, 마지막으로 나한테 던진 게 이거였던건가. 끝까지 너 답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다. 꿈이 아니었어. 네가 준 사탕을 까서 입에 넣었다. 입에서 녹아드는 달달함에 또 다시 마음 속 깊이 너를 다시 새길 수 있었다.

내가 몰랐던 너

내가 알고 있었던 너

내가 사랑하는 너

만약 네가 내 곁에서 사라졌을 때, 너를 추억하면 아프도록, 너를 떠올리면 슬프도록.

너와 끝까지 같이가고 싶으니까.

 

가벼운 발걸음으로, 너를 찾아 나섰다. 20살의 너를.

 

 

“어이, 소라”

 

“소닉..? 날 이름으로 불러주고.. 웬일이야?”

 

자신의 이름을 듣고 미소라는 꽃을 피우는 너를 보며 생각했다.

 

너도, 약속을 지켰으니까,

나도 이걸로 약속은 지킨거다, 꼬맹이 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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