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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란게 말이야, 돌고 돌아서 결국 만나는게 진짜 운명인거야"

 

"애냐? 그런 걸 믿어?"

 

"지금 너랑 다자이씨 얘기하는 거잖아."

 

"나? 아니 무엇보다 다자이 얘기는 또 왜 나와 곧 헤어질 거 아니었어?"

 

"뒤질래?"

 

"네, 카토다 아카리씨 남자친구 최대 일주일-"

 

"그건 걔네가 이상했던거고."

 

"근데 나는 왜?"

 

"나 너 어렸을 때 봤다니까. 그 땐 너랑 몇 년 후에 이딴 짓 하고 있을 줄 몰랐지."

 

"뭐라고? 이딴지잇?"

 

"응-이딴 짓-"

 

"죽일 수도 없고, 이걸 진짜......"

 

"어, 눈 온다!"

 

"어, 진짜네. 미끄러워지기 전에 빨리 가자-."

 

 

 

 

 

진짜 운명은, 돌고 돌아서 결국 만나게 되는게, 그게 악연이든 인연이든, 그런 걸 말하는 거다. 나의 운명은 이 두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우리의 끝이 어떨지는 그 운명이 써내려갈 미래에 맡겨두고, 지금만큼은, 이 두 사람을 사랑하기로 했다.

 

쌀쌀했다. 춥다기보단 쌀쌀했다. 츄야와 아카리가 향한 곳은 공동 묘지였고, 아카리의 품에는 꽃다발이, 츄야의 손에는 종이 가방이 들려 있었다. 둘이 발걸음을 멈춘 곳에는 두 사람의 묘비가 세워져있었다.

 

'카토다 아이와 카토다 유. 두 사람은 포트 마피아의 자랑스러운 조직원으로서 이곳에 잠들었습니다.'

 

아카리는 꽃다발을 묘비 옆에 내려두고 츄야에게 종이 가방을 달라고 손짓하여 그 안에서 액자에 담긴 작은 사진을 하나 꺼냈다.아카리는 한참동안 묘비를 쳐다보았다. 츄야는 아카리가 작년, 재작년, 그리고 매 해 그랬던 것 처럼 결국 울어버릴까봐 노심초사했다. 잘 울지 않는 아이였는데, 한 번 울면, 특히나 제 부모님이 그리워 울면, 멈추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도 아카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에 들려 있는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다자이와 츄아, 그리고 아카리가 최근에 함께 찍은 사진. 보기 드문 광경이었으나 이제는 할 수 있었다. 마침내 아카리는 사진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 나 왔어요. 그 때 그 간부 얘기를 좀 들어서, 그 얘기 좀 해주려고 이렇게 빨리 왔어. 그 간부 때문에, 엄마랑 아빠가...지금 하늘에서 쉬고 있는...거니까..."

 

 

 

아카리의 목소리가 떨리자 츄야는 애를 일으켜 세워야하나 싶어 한 발 다가갔다. 아카리는 잠시 몸을 부르르 떨더니 말을 이어갔다.

 

 

 

"무장 탐정사 알아? 거기 들어가서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대. 왜 자기 부하들은 안 구했는지 몰라. 그래서 올해 초에 보스가 시켜서 내가 그 사람을 암살하러 갔어. 위장 입사했어. 나카하라도 몰랐어. 그래서 갔는데, 못 죽였어. 내가 그 사람 좋아해버려서, 내 이능력이 무슨 짓이라도 할까봐 너무 미안해서, 그냥 나왔어. 그리고 그 사람을 마츠리에서 다시 만났는데, 엄마랑 아빠 얘기를 하더라고. 미안하대. 그걸로 엄마랑 아빠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멍청한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어린 나이에 간부 시켰는지 몰라..."

 

 

 

아카리가 말끝을 다시 흐렸다. 그리고는 사진을 다시 집어 들고서 말을 이어나갔다. 사진을 소중하다는 듯 계속 문지르면서, 사진 속 한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 다자이겠지, 츄야는 생각했다.

 

 

 

"근데 그래서, 어쩌다보니 이 사람이랑 사귀게 됐어. 나 안 미워할거지? 다자이씨, 괜찮은 것 같아? 나도 알았겠어, 다자이씨가 나카하라 파트너였다는 걸. 둘이 좀 자주 싸우기 하는데, 꽤 재밌어. 그러니까 엄마랑 아빠도, 나 걱정하지 말고, 알았지?"

 

 

 

참 한결같다, 츄야는 중얼거렸다. 결국 제 말을 듣지 못하는 부모님에게도 힘들다는 내색 한 번 하지 못하네, 하는 생각에, 점점 날카로워지는 바람에 츄야는 아카리 곁으로 가 섰다. 형님, 누님, 아카리는 늘 잘해왔으니 뭘 해도 잘 할 거에요, 걱정 마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저도 안부를 전했다. 아카리는 끝까지 말을 더 하지 않았다. 사진을 내려놓고 허벅지를 짚으며 괴상한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무릎이 아프다는 둥 분위기를 무마해보려고 했다. 이 곳에 오면 당연히 숙연해지는 걸, 아직 어린 아카리는 적응하지 못했다.

 

공동묘지의 입구로 발길을 돌렸다. 겨울이어서 앙상한 나무들을 지나치며 올해 일년 간 정말 힘들긴 했다, 하고 아카리가 말을 꺼냈다. 진짜로 그랬다. 아카리가 무장탐정사에 위장 입사한 것이 올해 봄, 돌아온 것이 여름이 끝날 때 쯤, 아카리의 생일쯤이었던 9월 마츠리에서 다자이를 다시 만나 그 때 부터 교제를 시작했다. 그 때 말렸어야 했어, 하는 츄야를 아카리가 한 대 때렸다. 좀 하루만이라도 곱게 살아주면 안되는거니, 아카리의 목소리엔 불만이 가득했지만 얼굴에는 안도의 웃음이 존재했다. 곁에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이, 츄야가 있다는 사실에 안심한 것이었다.,돌아가기 전에 새해 선물 좀 사자며 시내로 향하기로 마침 정한 참이었다.

 

 

 

"어어, 츄야!"

 

 

 

익숙한 목소리, 츄야와 아카리 둘 다 왠지 모르게 못마땅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예상대로 그들 뒤엔 츄야의 전 파트너이자 아카리의 현 애인, 다자이 오사무가 서 있었다. 왜 이 사람이 공동 묘지 한 구석에서 나왔는지는 모르겠다만은, 츄야는 다자이가 자신을 불러서, 아카리는 다자이가 자신을 부르지 않아서 부담스럽게도 째려봤다. 다자이는 둘을 보고 환하게 웃다가 아카리의 뾰루퉁한 표정을 보고 사태를 그제서야 이해했고, 츄야에게는 손짓 하나로 무마한 후 아카리에게 엉겨붙었다.

 

 

 

"아카리이-"

 

"꺼져주시죠."

 

"내가 많이 보고싶었다네-"

 

"아 예 뭐, 전 별로."

 

"상처받았다네ㅠㅜ"

 

"그렇게 우셔도 소용 없는 거 알잖슴까."

 

"아, 아카리 말투 딱딱해졌다네, 그러지 말게나아-"

 

"근데 넌 왜 여기 있냐?"

 

투닥거리다가 결국 아카리의 손을 잡는데에 성공한 다자이에게 츄야가 말을 걸었다. 다자이는 츄야를 보더니 입모양으로 '오다사쿠' 라고 말해보였다. 그리고는 다시 아카리의 마음을 돌리려 아카리의 볼을 잡고 늘어지기도 하고, 코트로 아카리를 감싸안기도 했다. 결국 제가 졌다는 표정으로 아카리가 다자이의 허리를 끌어안자 다자이가 위에서 아카리를 내려다보며 그럼 아카리와 츄야는 왜 둘이서 여기 왔는가, 좀 의심되는 걸, 하고 장난스레 말했다. 아무리 장난이었지만 아닌 건 아니라며 아카리에게는 따가운 눈초리를, 츄야에게는 한 대 맞은 다자이였다.

 

 

 

"우리 엄마랑 아빠 보러 왔죠."

 

"....아"

 

 

 

다자이는 순간 입을 닫았다. 그 부분은 자신이 평생을 미안해해도 풀 수 없는 슬픈 감정이었음을 알아서 다른 말은 않았다. 아카리는 다자이에게 괜찮아요, 뭐 다자이씨 얘기 하고 온 거니까, 하고 살짝 웃어보였다. 우리 새해 선물 사러 갈건데 같이 갈래요? 하고 묻는 아카리에게 다자이는 괜히 미안했는지 당연하지, 아카리랑은 어디든 좋은 걸, 하고 오글거리게 말했다가 츄야에게 한 대 더 맞을 뻔 했다.

 

츄야는 자연스레 커플에게서 떨어져 걷고 있었다. 이제 사귄지 3개월 쯤 되었나, 어느새 츄야가 이런 걸 다 신경 써주고 있었다. 아카리가 워낙에 연애에 있어서는 이능력 때문에 제대로 마음 써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다자이가 나타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제 앞에 있는 둘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으나, 정작 저 둘은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듯 했다. 아까 아카리가 운명이라고 한 것을 믿어도 되야할 지 고민이 되었던 츄야였다. 이 고민을 내가 굳이 해야할까, 하다가도 그래도 저렇게 꽁냥거리는 둘을 보니 괜한 고민인가 싶기도 했다.

 

 

 

"누구 선물 사려고?"

 

"누님이랑, 엘리스랑, 히구치랑, 보스랑......아 요사노 센세요!"

 

"...?보스...?대체....그것보다 요사노 센세랑은 연락 아직도 하나보네."

 

"요사노 센세 진짜 너무 좋아요. 말 안 해도 다 알고 막 그렇다니까요."

 

"에에, 그럼 내가 더 좋은가, 요사노 센세가 더 좋은가?"

 

"그걸 말이라고 해요 당연히 요사노 센세죠"

 

"아, 상처 받았다네..."

 

"아 뻥인거 알잖아요 당연히 다자이씨가 더 좋죠-"

 

"아아, 아카리가 날 안 좋아한다하니 미뤄두었던 자살을 해야겠네."

 

"거 참, 이 양반이. 따라 죽을거니까 알아서 하세요."

 

'"가끔 아카리 보면 너무 대담한 것 같다네."

 

"다자이씨가 표현을 안 하는거라고요"

 

 

 

별 거 아닌 것 가지고 잘도 노는게 과거 츄야와 다자이, 또는 지금의 츄야와 아카리 같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이 셋은 비슷한 사람들이었나보다.

 

셋은 아카리가 엘리스를 위해 쿠키를 살 거라는 말에 빵집에 들렀다. 엘리스가 좋아할만한 설탕 쿠키를 한 봉지 집어들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패스츄리도 있다며 쟁반에 담았다. 아카리는 잠시 멈칫하다가 혹시 배고프지 않냐며 츄야를 향해 물었고, 츄야는 기다렸다는 듯이 치즈타르트를 골랐다. 다자이는 순간 갸웃했다.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들어서 어찌 운을 떼야할지 막막했다. 다행히도 아카리가 마지막으로 다자이에게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사 줄테니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말을 걸기에 다자이는 괜찮다고 하며 아카리의 머리를 쓰담았다.

 

아카리가 패스츄리를 반으로 나누어서 다자이 입에 쑤셔 넣는 바람에 빵을 하나씩 물고 다음 선물을 사기 위해 악세사리 가게에 들렸다. 코요, 히구치, 요사노가 제발 다른 악세사리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츄야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누님에게 이건 어떻겠냐면서 비녀를 하나 들었다. 꽤나 고급져 보이는 비녀였다. 아카리는 머리를 늘 올리고 다니는 코요에게 제격이라며 다른 비녀를 더 둘러보다가 검은색 바탕에 영롱한 분홍색으로 꾸며져있는 것을 골랐다. 히구치를 위해서는 새로운 선글라스를, 요사노를 위해서는 귀걸이를 샀다. 보스 선물을 굳이 사야 하는 건가, 하며 싫은 티를 팍팍 내는 다자이에게 아카리는 단호하게 그렇다고 대답하고서는 장갑을 하나 골랐다. 어찌 되었든 모리는 아카리를 키워준 사람 중 하나였으니.

 

양손 가득히 종이 가방을 들고 아카리는 가게를 나섰다. 츄야가 별 말 없이 같이 걷기 시작하자 다자이는 츄야에게 글러먹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런 것은 숙녀가 드는 것이 아니라네, 하며 아카리의 손에 있는 짐을 들었다.아카리는 츄야를 향해 보고 배우라고 했고, 츄야는 세상 짜증나는 표정을 지으며 둘을 무시했다. 탐정사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츄야는 이곳은 자신이 있을 곳은 못 되는 것 같다며 안 들어가려고 한 걸 아카리가 사무실 앞에라도 있으라며 츄야를 끌고 들어갔다. 아카리가 탐정사에 들어가고 한 15분간 기다렸을까, 전해준다고 들고 간 선물 보다 더 많은 걸 받아 나왔다. 아카리는 그 어느 때 보다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츄야도 나중이 되어서야 알았지만 코요가 말한 사랑을 받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자신이 아카리에게 저만큼의 의미가 있는 사람이었을지 고민되다가도 아카리의 부름에 뒤를 따라갔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추위를 잘 타던 츄야를 보더니 아카리가 하고 있던 목도리를 벗어주었고, 다자이는 그러는 아카리에게 조금 뭐라하는 듯 하더니 자신의 코트 안에 아카리를 넣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셋은 원래 다자이네 집에서 만나기로 했던 걸 공동묘지에서 미리 만난 것이었으니 자동적으로 다자이네로 향했다. 가는 길에 항구를 지나쳤다.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고 걷던 츄야 앞에서 아카리와 다자이가 갑자기 멈춰서 츄야는 깜짝 놀라며 멈췄다. 둘만의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지 그 앞에서 한참 서있었다.

 

 

 

"무슨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냐"

 

"아, 처음 만난 날에, 내가 다자이씨가 그 내가 찾아야하는 간부인 줄 모르고, 이능력이 먹혔을까봐 해제시키러 갔었어"

 

"나는 그 때 미인이 동반 자살 해준다는 줄 알았네"

 

"그 때도 안 해준다고 했었거든요"

 

"...그래 너네 잘났다."

 

츄야가 목도리 안으로 얼굴을 더 파묻자 아카리가 말했다.

 

"그치만 나 여기 너랑도 임무 왔었는데?"

 

"...엥?"

 

"그 왜, 이능력이 자기 부하 조종하는 거였던 멍청이 있잖아."

 

"아, 너 저기 빠진 날?"

 

"그래...아 나 지금 생각해도 좀 화나네."

 

"그 때 이미 화 내서 다 처리했잖아."

 

"하나하나씩 주먹으로 팼어야 했어."

 

 

 

그 때를 떠올리며 아카리는 주먹을 쥐었다. 아카리의 작은 손을 다자이가 제 큰 손으로 덮었다. 그 손으로는 사람 때리는 게 아니라, 나랑 손을 잡아야 한다네, 하는 다자이를 보며 아카리는 웃었다. 다자이씨, 아까 이후로 좀 능글맞아졌어요? 하는 아카리의 말에 다자이가 멈칫하면서 아니라네, 하고 시치미를 뗐다.

 

드디어 다자이네 집에 도착했다. 셋은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거실로 달려갔고 반갑게도 코타츠가 놓여있었다. 데워져있지는 않았지만 밖에 나와있는 것 보단 따뜻할 것 같아서 아카리는 코타츠 안으로 들어갔다. 다자이는 짐을 문 앞에 내려두고 부엌으로 가서 주전자를 불 위에 올렸고, 츄야는 코타츠를 데우는 스위치를 키고서 코타츠 안으로 들어갔다. 아카리는 피곤했는지 누워서 몇 마디 하더니 눈을 감았다. 마침 코타츠도 따뜻해지던 참이라 아카리는 잠들어버렸다. 핫초코 두 잔을 타온 다자이를 보고 츄야는 아카리 자는데, 라고 말했으나 다자이는 한 번 으쓱 하고서는 그럴 것 같았다며, 그리고 이 핫초코는 츄야 것이라네, 하고 말했다. 둘 다 아카리가 초콜릿을 별로 안 좋아하고 녹차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단번에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쇼파에 있던 쿠션을 아카리 머리 아래에 놓아주고, 다자이는 츄야 옆에 자리했다. 이런 광경이 오랜만이면서도 어색했다. 물론 아카리를 이유로 함께 있는 것이었지만 다자이와 나란히 앉아 핫초코를 홀짝이고 있을 거란 상상은 과거에도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예전엔 파트너로서, 벗으로서 보냈던 시간이었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아카리의 두 개의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 간의 만남이었다. 아카리가 츄야에게 지겨울 정도로 많이 해주었던 이야기였지만 다자이의 입장에서 들어보고 싶었는지 츄야가 먼저 말을 꺼냈다.

 

 

 

"뭐, 아카리가 너한테 잘 해주더냐?"

 

 

"대게 그런 질문은 남자가 여자에게 잘 해준다고 하지 않나?"

 

"니가 뭐 해 준게 있긴 하냐, 그리고 아카리는 지가 챙기면 챙겼지 받을 줄 모르는 애야."

 

 

 

츄야가 그런 건 편견이라며 다자이에게 아카리에 대해 말했다. 부모님을 그런 사고로 일찍 잃은 것 때문에, 너를 엄청나게 원망하면서도 너를 좋아해서 탐정사에서 나올 수 밖에 없던게 아카리라고, 그런 애를 니가 많이 사랑해줘야지 다른 사람들로는 역부족이야. 더군다나 아카리는 행복할 줄을 몰라. 너무 열악한 것에 만족해버리니 지금까지의 삶이 슬픔으로 가득한 거지.

 

다자이는 츄야의 엄청난 토로에 조금 과부하가 걸렸다. 자신이 보는 아카리는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사람이 어찌나 긍정으로 가득 찰 수 있을까, 에 대한 의문이 들 정도로 기쁨을 주는 사람이었는데.

 

 

 

"그러는 츄야는, 아카리와 얼마나 잘 알길래 그런 소리를 하는가?"

 

"이게 사람을 뭘로 보나, 니가 마피아 나가자마자 만났어. 실제로는 더 오래 전에 만났고. 파트너 역할 톡톡히 잘 한다고? 누구처럼 나가지도 않고."

 

다자이는 말이 없었다. 제가 그렇게 아카리에게 역부족이었던 사람이었던가. 여태껏 만났단 많은 - 마음을 주진 않았지만 - 여자들에게 보다도 잘 해주었는데.

 

잠에서 깰 생각을 않는 아카리를 쳐다보았다. 생각해보니 아카리는 자신 앞에서 자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자면 저절로 긴장이 풀려서, 그리고 자면은 절 앞에 두고 사람들이 뭐라 할 지 모르니까 안 자요, 그러니까 제 욕 함부로 하시면 안돼요-? 하던 아카리가 생각났다. 츄야도, 나도 믿으니 이렇게 편하게 있는 거겠지, 하면서 다자이는 아카리의 머리를 생각 없이 쓰담았다. 제법 길어서 어깨에 닿았다. 자꾸 뒤집혀서 그런지 오늘은 양갈래로 땋았나보다. 양갈래가 어울리는 사람도 잘 없고, 굳이 하는 사람도 잘 없다보니, 언젠가 본 양갈래 여자아이가 있었다, 쿄카는 아니고, 쿄카와 비슷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마피아에 있을 때, 고참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였다. 자질구리한 심부름도 하길래 하녀인 줄 알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또 아닌 것 같았다. 코요 누님이 아이를 데리고 놀아주는 것도 몇 번 본 것 같았다. 기억이 안 나는 건 아니지만 어릴적, 한 16살 쯤 기억이라 굳이 마음에 두고 살진 않았는데 지금 생각이 났다. 그리고 다시 아카리를 보았다. 그냥 아카리가 그 아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얼굴을 몰라서 정확한 판단은 못하겠다만은, 양갈래를 보니 그 생각이 났다.

 

츄야는 아카리의 머리를 만지다 말고 멍을 때리는 듯 한 다자이를 계속 쳐다봤다. 아무리 쳐다봐도 돌아보지 않길래 말을 걸었다.

 

 

 

"너는, 아카리 무장 탐정사에서 처음 본 거야? 아카리 되게 오래 전 부터 있었는데."

 

"근데 사실, 아카리의 부모님이 내 임무에 함께했다는 것만 알고, 누구인지를 모른다네."

 

"멍청아, 아이 누님이랑 유 형님이잖아. 성이 카토다인 거 보면 몰라?"

 

"아......? 잊고 있었는데....."

 

"가끔 중요한 순간에 멍청하더라, 넌."

 

"...그 분들 이었다니..."

 

"대단한 분들의 따님이신데 그렇게 해서 되겠냐."

 

"그럼, 어릴 적에 남색 기모노에 양갈래가 혹시...?"

 

"어, 맞아. 이제 깨달았다니, 원."

 

"그치만 그건 우리가 16살 때잖나, 츄야."

 

 

 

다자이의 조심스러운 예상이 맞았다. 그 뒤를 따라다니던 건 아카리였다. 유 형님과 아이 누님이 딸이 있다는 건 들었지만, 누구도 이 아이가 그 분들의 딸이다, 라고 하지 않아 딱히 궁금해하지 않았다. 딱 한 번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다자이가 느낀 아카리의 인상과 지금은 확실히 달랐다.

 

 

 

 

 

***

 

 

 

 

 

16살의 다자이 오사무는 포트 마피아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말고 왠지 츄야가 코요의 방에 있을 듯 하여 그리로 향하는 중이었다. 분명 임무를 같이 갔다가 로비에서 잠깐 헤어졌는데 어느새 사라졌길래 혹시 코요에게 인사를 전하러 간 것은 아닌가 싶었다. 의외로 코요의 방의 문이 열려있었다. 그래도 매너는 매너이니 문을 살짝 두드리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겨울이라 그런지 방 안은 따뜻했다.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난방을 한 것 같았다. 코요에게 인사를 하고 츄야에 대해 물어야했을 것을 얼떨결에 방이 많이 덥네요, 하고 말해버렸다.

 

코요는 살짝 웃었다. 방 안에 아이가 있어서 말이지, 라고 했다. 코요의 주변에 보이지 않아 의문을 품고 있던 다자이는 방 안 쪽 책장들 사이로 여자아이가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다자이는 아이를 관찰했다. 책 한 권을 드디어 골랐는지 아이는 손에 책을 꼭 쥐고서는 불빛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12살 남짓 되어보였다. 아이는 남색 기모노에, 양갈래를 하고 있었고, 순간 다자이와 눈이 마주쳤다. 눈은 아이를 쫓는 상태에서 코요에게 츄야에 대해 물었다. 아직 올라오지 않았지만 다자이 네가 오누것을 보니 곧 올 것 같구나. 조금만 기다리거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서류들을 모아놓은 책장으로 향했다. 시야가 조금 더 트였다. 그 아이도 다자이를 관찰하고 있는 듯 했다. 마피아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순수한 어린이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아이의 손에 들려있는 책은 누구나 읽어봤을 법한, 물론 다자이는 그렇지 않은, 동화책이었고, 아이의 웃음은 예뻤다. 다만 다자이가 그 예쁜 웃음을 마음 속으로 느끼지 못 해 그저 지나가는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던 것 뿐이었다.

 

 

 

 

 

***

 

 

 

 

 

아 그 때?, 하고 츄야가 기억난다는 듯 무릎을 쳤다. 자신도 코요에게 인사를 하러 간 참에, 아카리를 봤다고 했다. 아침부터 쭉 있었던데, 하면서 핫초코를 한 모금 마셨다. 아마 그 날 형님이랑 누님이 큰 임무가 있으셔서 그랬을거라며 츄야는 뒤에 덧붙였다. 그랬었구나, 하며 다자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츄야는, 언제 처음 봤는데? 하고 다자이가 묻자 츄야는 생각에 빠졌다. 자신도 생각보다 훨씬 오래 전 부터 알고 있어서였다.

 

 

 

 

 

***

 

 

 

 

 

코요가 카토다 부부와 친했기 때문에, 코요 아래에서 키워진 츄야는 카토다 부부를 자주 만났고, 또 코요 다음으로 따르게 되었다. 카토다 아이가 유독 츄야를 좋아했었다. 늘 츄야에게 오늘도 멋지구나, 츄야, 하면서 츄야를 아들처럼 사랑했고, 실제로 내 조카하지 않으련? 하는 장난도 가끔 쳤었다. 명칭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카토다 부부도, 츄야도 서로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츄야가 14살 쯤이었던 겨울, 코요의 방으로 올라간 츄야는 카토다 부부가 한 여자아이와 함께 와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유의 품 안에 안겨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여자아이가 츄야와 눈이 마주쳤다. 츄야는 순간, 질투심을 느꼈다. 누구길래 저 품 안에 있는 것인지. 아직 어렸던 츄야였기에 당연히 딸일거라는 가능성은 생각도 않고 있었다. 츄야를 발견한 코요가 츄야를 불렀고, 조금 뾰루퉁한 얼굴로 다가간 츄야에게 그 여자아이를 소개시켜주었다. 츄야, 이 아이는 우리 딸이란다. 아카리라고 해. 자 아카리, 어서 인사해야지? 얼떨결에 츄야는 안녕하세요, 나카하라씨라는 인사를 들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못마땅했는지 ,또 그 이후로 아카리를 볼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츄야의 기억 속에서 아카리는 저절로 지워졌다, 다자이가 마피아를 나가기 전 까지는.

 

다자이가 마피아를 나가고, 다자이의 빈 자리를 채우다가 완벽 방어를 하지 못 해 카토다 부부는 이능력에 당해 죽었다고 전해왔다. 츄야는 울었다, 다자이도, 제가 따르던 형님과 누님 마저 사라졌으므로.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을까, 코요의 부름으로 다시 아카리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 아카리의 긴 양갈래는 온데간데 없고 삐뚤하게 자른 숏컷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충격에 제 손으로 머리를 자른 것 같다고, 코요는 츄야에게 따로 말했고, 앞으로 너의 파트너가 될거야. 이능력이 다자이와 비슷하더구나, 하는 말에 아카리를 돌아보았다. 아이와 닮은 눈웃음, 또 유와 닮은 입을 보고 츄야는 동정이었는지, 알 수 없을 감정을 느끼고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나카하라씨, 라고 하던 기쁨에 가득찬 10살의 아카리는, 14살의 아카리 안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

 

 

 

 

 

생각보다 진득한 인연이네, 츄야가 어느새 바닥을 보이는 핫초코를 마지막으로 마시고선 입을 닦으며 말했다. 다자이도 동의했다. 이 아이와 각자의 첫만남이 있었고, 지금 이렇게 한 방에 자리하고 있었으니. 생각보다 그들 셋은 오래 전 부터 알고 지낼 수 있었던 사이였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떠나고, 다시 돌아왔을지라도 결국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라고 했던 아카리의 말은 이런 뜻이 아니었을까. 돌고 돌아서 그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되어도 서로가 종착점이 될 것 같다는 느낌, 아니 확신을 아카리에게서 받았다. 그 겨울은, 그들이 공유했던 언젠가의 겨울과 드디어 만나 다시 여정을 시작했다.

 

 

 

"둘이서 얘기 참 잘 한다-"

 

"엥? 듣고 있었냐?"

 

"내가 누구 앞에서 마음 편히 자는거 보셨어?"

 

"하긴, 혼자 자면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더만...악! 야!"

 

"니 옆에 내 남자친구 있는데 체면 좀 생각해줄래?"

 

"아카리 자는 모습도 예쁘다네-"

 

"하하, 부끄럽게시리..."

 

"쟤 침 흘리면서....야!"

 

"즈블즘득쳐라?"

 

"아아, 추워, 난 아카리 옆에 들어갈거라네-"

 

"헤헤 어서 들어와요 다자이씨, 나카하라 너도 들어와, 추워."

 

"둘이 그냥 쌍으로 내 뒷목을 잡게 만든다, 진짜."

 

 

 

츄야, 아카리, 다자이, 이렇게 셋이 가만히 누워있었다. 잠시 다른데에 다자이가 정신 팔린 사이에 아카리는 츄야에게 이렇게 말했다.

 

 

 

"겨울에 시작된 운명, 멋지지? 돌고 돌아서 우리 모두 여기에 있잖아?"

 

 

 

츄야는 역시 넌 아직 애야, 하면서 속으로는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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