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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에유입니다.

*시간여행 설정이 있습니다. (…)

 

계속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풍경이 있다. 나는 적막으로 가득한 우주 한복판에 있었다. 마치 공기가 없는 것처럼 답답하게 숨이 꽉 막혀오고, 보이는 것마다 온통 깜깜했다. 원초적인 두려움을 느끼며 팔과 다리를 버둥거렸다. 더 이상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느낄 때, 어떤 사람이 뒤에서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내가 억지로 숨을 내뱉고 나면 내 얼굴에 씌워진 투명한 막 위로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 안돼. 죽지 마, 벨라. 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무거운 단어들이 들려왔다. 그리고 정적. 끝없이 들려오는, 내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 ... ...나, 아직 안 죽었는데.

 

하늘이 회색으로 물들었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헉, 하는 소리와 함께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시야가 하얗게 번지고, 속이 메슥거려서 나는 결국 다시 누웠다. 몸살이 난지 벌써 3주 째였다. 같은 꿈을 꾸는 것은 한 달이 다되어갔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쓰리고, 온 몸이 괴롭다고 비명을 질렀다. 귀가 멍하게 울려서 다시금 되묻고 또 되물어야지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있었다.

 

아프면 제발 좀 병원에 가보라는 친구의 독촉에 여러 번 가봤지만 내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결과만 계속 들어야 했다. 이젠 저 말도 아주 지긋지긋하다고 투덜거린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친구는 내게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마지막으로 툭 내뱉으며 짐을 싸서 같이 살던 집을 떠났다.

 

- 너 되게 창백해. 꼭 금방이라도 죽을 사람 같다고.

 

나도 알아, 하고 대답해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내가 곧 죽을 것처럼 앓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그 뒤로 친구는 더 이상 연락이 없었다.

 

핸드폰 알림창에 부재중 표시가 10개였다. 어제는 아무런 연락도 없더니.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며칠 째 누워지낸 탓에 엉킨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외투를 걸쳤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낯설었다. 집을 나서자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맞닿았다. 아까는 몰랐는데, 이제 보니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회색이던 하늘의 색이 점차 어둠으로 물들고 있었다. 언뜻 동생의 말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 있잖아, 언니. 나는 저게 꼭 우주 같아.

 

동생은 언제나 눈이 내리는 밤하늘을 우주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냥 밤하늘은 절대 우주가 아니라고 했다. 어차피 별들이 잘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 눈이 내리면, 눈이 곧 별이라고 말했다.

 

- 낭만 가득해서 좋겠어.

 

동생은 핀잔을 주는 듯한 내 말에 언제나 환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그 아이가 웃으면 내 눈에는 그 웃음만 들어찼다. 더 이상 다른 웃음은 보지 못할 것만 같았다.

 

- 그러니까 나는 죽으면, 꼭 눈이 될 거야.

 

눈으로 다시 태어나 온 세상을 구경하겠다고, 그렇게 말했었다.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를 않아서 온 몸으로 눈을 맞았다. 나는 현관에서 대충 눈을 털어내고 조용히 들어섰다. 엄마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작은 주택을 두고 살았다. 방은 좁았고, 엄마는 방 한가운데에 작은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앙상해져서 뼈만 남은 엄마. 한숨조차 내쉬지도 못하고, 말을 내뱉으면 가래가 섞여서 나오는 우리 엄마.

 

엄마에게서는 냄새가 났다. 그것이 죽음으로 비롯된 냄새라는 것은 아주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익숙하고 친근했다. 그 익숙함은 무척 찝찝한 것이었다. 내게 자꾸만 풍기는 냄새가 싫지만 그럼에도 엄마를 외면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엄마와 닮았기 때문이다.

 

- 벨라.

 

이윽고 단어 대신에 기침이 터져 나왔다. 나는 엄마 옆에 웅크리고 앉았다. 바닥에 내려놓은 가방이 혼자서 쓰러지며 쿵 소리를 냈다.

 

- 왜 전화를 안 받아, 응?

 

- ... ...미안.

 

- 걱정했잖아.

 

또다시 기침. 엄마의 기침이 꼭 지금 내 기침과 닮아서 무서웠다. 나는 무릎을 감싸 안고 조용히 웅얼거렸다.

 

- 미안해, 내가.

 

- 넌 왜 자꾸 사과만 하니?

 

날이 잔뜩 선 물음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침묵. 한참 후, 나는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한숨을 푹 내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난방도 안 되는 낡은 집에 굳이 남아있겠다며 고집을 부리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 걱정 마, 종종 찾아올게. 그러니까 밥은 꼭 챙겨먹어. 힘들어도 약도 잘 먹고.

 

엄마는 답이 없었다. 다만 대답처럼 들리는 한숨을 내쉬었을 뿐이었다. 깊게 패인 홀쭉한 볼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저게 바로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현관에 걸린 거울에 내 모습을 비추다가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웃고 있는 내 모습이 앙상했다. 평생을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바로 엄마를 닮는 것인데, 나는 엄마를 닮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곧 엄마처럼 죽음의 냄새를 풍길지도 몰랐다. 아니면 이미 그러고 있을지도 모른다. 거울 속 나와 한참 눈을 마주치다가 걸음을 돌렸다.

 

요즘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이상하게 달았다. 원래는 쓴 맛이 지독하게 났는데 이제는 마냥 달았다. 설탕을 넣지도, 시럽을 넣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다 마신 커피잔에 눈이 소복하게 내려앉았다. 나는 그 눈들을 응시하면서 종이컵을 구겼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건드렸다.

 

- 벨라?

 

낮은 목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쿵,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 목소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뒤돌아보니 어쩐지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 진짜로, 한번도 보지 못한 얼굴인데. 왜 익숙하게 느껴지지. 내 이름을 어떻게 아냐고 묻고 싶었지만, 목이 메여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눈이 내리는 와중에도 나름 단정한 까만 머리카락, 무뚝뚝한 표정, 나보다 훨씬 큰 키, 뚜렷한 이목구비들이 모두 선명하게 보였다. 내내 지끈거리던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 ...빨간 목도리, 잘 어울리네요.

 

겨우 내뱉은 말이 고작 칭찬이었다. 그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웃었다. 아주 많이 보고 싶었어, 조용히 중얼거리는 단어마다 그리움이 뚝뚝 흘렀다. 내게 보여주는 그 웃음에 심장이 다시금 내려앉았다.

 

눈이 아주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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