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노래의 왕자님 All Star 미카제 아이 루트 네타 있습니다.

 

비파는 손에 입김을 불며 앞을 보았다. 어젯밤에 눈이 내리더니 집 앞 공원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아이가 작업하는 동안 잠깐만 나갔다 오겠다며 겉옷을 걸쳐 입고는 장갑을 까먹었다. 눈은 만지고 싶은데 동상에라도 걸릴 듯 하여 비파는 아쉽게 손을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아침 일찍 누군가가 공원 입구에 만들어둔 눈사람이 보였다. 코에는 작은 돌, 눈은 동그란 자갈, 입과 양손은 나뭇가지였다. 머리에는 남색에 눈 모양 수가 놓여있는 모자를 씌웠고, 목에는 검은색 목도리가 둘러져 있었다. 나뭇가지를 잘게 잘라서 웃는 모양을 만들어놓았다. 비파는 그 앞에 서서 팔짱을 끼고 계속 쳐다보았다. 무언가 부족한 것 같아서 두리번거리며 보다가 곧 눈사람 손에 장갑이 없음을 깨달았다. 비파는 자신과의 공통점을 보고 웃었다. 너도 장갑이 필요하겠구나. 비파는 집에 있는 장갑을 떠올렸지만 곧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은 작년에 아이가 선물로 준 것이었다. 장갑을 끼지 않고 항상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는 그녀에게 생일 선물로 주었다. 눈사람에게 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새 장갑을 사러 가기엔 시간이 너무 걸렸다. 아이의 작업은 곧 끝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외식을 하러 간다. 비파는 눈사람의 모자를 살짝 두드리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오늘 저녁 외식은 평소에 자주 가는 레스토랑과 그 근처에 새로 생긴 디저트 카페로 가게 되었다. 집에서 간단하게 먹어도 된다고 말했지만 아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모처럼 비파의 생일이니 작년과는 다르게 보내고 싶다고 했다. 비파가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때, 마침 아이가 작업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비파는 얼른 목도리를 풀고 겉옷을 벗었지만 그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아이가 비파의 손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또 장갑 까먹었어?”

“버릇이 아직 안 돼서 그런가봐.”

“그러니까 자꾸 손이 얼잖아.”

아이가 다가와서 비파의 양손을 잡았다. 맞닿은 피부를 통해 전해지는 온기가 조금씩 높아져갔다. 온도를 맞춰주고 있다는 걸 알고 비파가 웃음 지었다. 아이는 항상 비파의 몸을 걱정했다. 지금은 그래도 조금 나아졌지만, 아이를 처음 만났던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건강보다 마감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마감이 끝나면 오랜 시간 잠을 자곤 했는데 개운하게 일어나는 법이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가 결국 나서서 이것저것 챙겨주기 시작한 게 벌써 2년하고도 2달이 되었다. 아이는 잠시 자리를 비웠던 6개월을 제외하고 항상 비파의 식단과 수면시간을 관리하였다. 이쯤 되면 전담 트레이너 같다고 농담처럼 얘기한 적도 있었다. 비파는 거기에 대해 항상 웃으며 답하곤 했다.

잠시 후, 외식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려는데 아이가 방에서 장갑을 들고 나왔다. 손을 앞으로 내밀어보라는 말에 그대로 했더니, 그가 장갑을 끼워주었다. 손을 덮는 털의 감촉이 부드러워서 기분이 좋았다. 비파는 세 번 정도 손을 쥐었다가 폈다.

“역시 아이의 안목은 탁월하다니까. 엄청 부드러워.”

“별로. 그 정도야 비파를 위해서는 당연한 조사야.”

“고마워. 다음에 아이 생일엔 내가 장갑 사줄게.”

“나한텐 필요 없다는 거 알잖아.”

“내가 사주고 싶어서 그래.”

“좋아. 그럼 받을게.”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비파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장갑 너머로 느껴지는 약한 압박감이 기분 좋아서 웃었다.

“그 대신 장갑, 앞으로는 절대 잊지 마.”

“응, 알았어.”

집을 나와서 항상 가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오늘은 레스토랑의 소믈리에에게 부탁해서 와인을 곁들였다. 아이에게는 홍차를 내줄 것을 부탁했다. 에피타이저인 샐러드, 수프, 토마토 크림 파스타, 미디움으로 구운 스테이크를 모두 즐기고 나면 이제 아이가 그토록 기다리던 시간이 온다. 아이는 항상 디저트로 나오는 메뉴에 관심을 가졌다. 카뮤와 함께 디저트 카페를 전전하곤 하는 그를 떠올리며 비파는 웨이터를 불렀다. 그가 말하길 이번에는 몽블랑이 나온다고 한다. 몽블랑과 곁들이기 좋은 홍차를 골라서 이번에는 두 잔을 주문했다. 곧이어 몽블랑이 나오고, 때마침 홍차도 올라왔다. 먼저 향을 즐기고 한 모금 음미하고 나서 디저트를 맛본다. 아이는 몽블랑을 한참동안 관찰했다. 비파가 작은 수저로 한 입씩 먹으면서 말했다.

“저번에 카뮤씨와 먹어본 적 있다고 하지 않았어?”

“응. 그 때와는 선의 모양이 조금 달라.”

“하긴, 밤크림을 짜는 건 기계가 아닌 이상 일정하지 않으니까.”

“다음에 먹을 때도 다를 테니 기록해둬야겠어.”

“홍차 식기 전에 끝내도록 해.”

 

 

 

비파는 한 번 더 몽블랑의 밤크림을 입에 넣고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아이가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면서 관찰하는 걸 보며 이럴 때 참 귀엽다니까, 하고 생각했다.

레스토랑 바로 뒤편에 새로 생겼다는 디저트 카페에 들렀다. 디저트 카페는 테이크아웃 전문점이었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종류가 있었다. 아까 레스토랑에서 먹은 몽블랑은 물론이고, 밀푀유, 쇼콜라 등, 홍차에 곁들이기 좋은 스위츠들이 가득했다. 여기 나중에 카뮤랑 답사를 와야겠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비파는 자신도 친구들과 함께 와야겠다고 답했다. 두 사람은 초콜릿과 애플파이, 밀푀유를 각각 두 개씩 사들고 나왔다. 두 사람 모두 각자 하나씩 디저트 상자를 오른손과 왼손에 잡고 서로의 손을 마주 잡았다. 집에 돌아가면 끌어안아도 될까? 비파가 말했고, 지금도 괜찮아. 아이가 답했다. 걷는 중이잖아. 비파는 웃었고, 그럼 내가 안고 갈까? 아이가 눈을 깜박였다. 이제 난감해진 건 비파였다. 비파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그건 집에 가서 하자고 얘기했다. 아이는 왠지 불만족스러웠지만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할 수 없기에 일단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 앞 공원을 지나가는데 입구에 선 눈사람이 보였다. 아까와 같은 눈코입, 모자, 팔까지 똑같은데 뭔가 하나가 달랐다. 비파는 그 앞을 지나가며 유심히 보다가 눈사람 손에 장갑이 끼워져 있음을 알았다. 산타의 옷과 같은 빨간 장갑이었다. 그 사이 누군가가 눈사람의 손이 시리지 않도록 씌워준 모양이라며 비파는 웃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