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 징크스 키쿠치 토우마 x 요시다 나에미
아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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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알게 된 것이 많았다. 가장 놀랐던 건 그가 의외로 질투가 굉장히 많다는 점이었다. 요시오카에게 마부치라는 친한 남자가 있는데, 자신이 아닌 그와 사귄다는 소문이 돌 정도라고 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미간을 찡그리기도 하고 주먹을 꼭 쥐기도 하는 것을 보니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상대인 듯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의외인 점은 토우마가 순한 인상과는 다르게 할 말은 다 하고 화도 그때그때 잘 표현하는 편이라는 거였다. 근데 왜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는 지. 내가 다 답답하다. 너는 불만이 있으면서도 자꾸만 참는다. 너는 내게 찾아와 전부 쏟아내 버린다. 그 불만을 쏟아내야 하는 사람은 그녀라는 것을 알면서도. 질투가 나. 요시오카를 향한 말들이 내게 닿는다. 나는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아졌다. 그리고 또 한 편으로는 불안해졌다. 이게 네 겨울징크스라면 어떡하지. 자꾸만 욱신거린다. 요시오카를 잃을까봐 무섭다고 말하는 네 모습만큼 견디기 힘든 건 없다.
네가 그녀로 인해 행복하다면 너의 겨울징크스 마저 내가 몽땅 가져가 버릴 순 없을까.
“어때?”
“좋은데? 네가 직접 쓴 가사지?”
근데 토우마, 이거 가사의 느낌이.
“요시오카를 이미지 해서 썼어.”
아.
“크리스마스 때 라이브 공연해. 올 거지?”
자꾸만 마음이 이상하게 기운다. 당장이라도 이 징크스를 끝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녀를 향해 읊는 그 가사를 들어야 하는 내 기분을 좀 헤아려 달라고 애원이라도 해야 네가 알아챌까. 그렇게 불안감에 젖은 얼굴로 그녀와 만나면서 행복한 게 맞니. 내가 어떻게 해야 네 겨울이 행복할 수 있겠니.
겨울 징크스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헤어졌어. 말 한 마디로 간단하게 끝나버리는 관계에 너는 지쳐있었다. 힘없이 문을 두드리는 네 모습에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마주하니 더 괴롭다. 여러 번 겪어온 헤어짐들 중 네가 태연하게 받아드린 이별은 없었다. 너는 언제나 상처받고 또 힘에 겨워했다. 네 귀에 박힌 피어스가 그걸 증명했다.
“크리스마스 라이브에 못 온대. 내가 쓴 노래를 들을 자격이 없대.”
기어이 운다. 네가 두 손으로 눈물을 받아낸다.
그 사람의 어디가 좋아? 그 사람의 어디가 너를 이렇게 울리니. 묻고 싶지만 입을 꾹 다무는 것 외에는 할 수가 없다. 그 정도의 관계. 만족해야 하는 건 여기까지. 나는 손을 들어 토우마의 등을 쓸어내렸다. 토닥. 토닥. 토닥. 소리에 맞춰서 네가 코를 훌쩍인다. 훌쩍. 훌쩍. 훌쩍. 짧은 만남이어도 미련이 남는 것을 겪어봐서 안다. 내가 조금 더 잘했더라면 더 오래갔을까 하는 후회가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를 않겠지. 토우마의 마음은 이해한다. 이 와중에도 토우마의 눈물이 향하는 대상이 내가 아닌 것이 화가 나는 것을 보면 나는 네게 그다지 좋은 친구가 아닌가 보다.
“라이브. 내가 그 애 몫까지 확실하게 들어줄게.”
그 노래 가사가 나를 위해 쓰인 거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속으로 삼킨 말들이 흩어진다. 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조금만 선을 넘어도 되나. 오늘만 용기를 내도되나. 어차피 내일이면 사라져 버릴 용기. 이건 그저 분위기에 휩쓸린 못된 손이다. 그렇게 세뇌하며 나는 네 머리칼을 조금씩 매만졌다. 노란 빛이 스며든 갈색 머리칼이 손 안에 들어온다. 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너는 작게 웃으며 천천히 내 어깨로 머리를 기댄다. 징크스가 얼마나 무서운 지 알거 같아. 당연히 무섭지. 너도 그래? 응. 한숨을 푹 내쉬는 네 등을 토닥이며 두 눈을 감았다.
토우마, 겨울 징크스는 끝났어.
올해의 겨울이 끝나간다. 봄이 오면, 너는 다시 웃을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