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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추워!!!!!”

“그렇게 얇게 입으니까 춥지, 멍청아!!!”

 

 

 

르네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 위에 웅크려서 온 이불을 죄다 끌어모으고 있었다. 간간히 ‘너무 추워!’ ‘으아앙.’ ‘추워~!’ 같은 자그마한 투정이 들려왔다. 매그너스는 자연스럽게 빼앗긴 제 침대를 바라보곤 잠깐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혀를 차곤 고개를 돌렸다.

 

“밖에 너무 추워, 너무 추워요. 왜 눈은 그렇게 차갑지? 너무 추워!”

“닥쳐, 조용히 좀 해. 시끄러워. 입을 좀 다물어 봐.”

“너무해! 매그너스 님 완전 눈만큼 차가워!”

 

...진짜 시선을 뗄 시간을 안 주네.

매그너스는 속으로 투덜거림을 삼키며 침대 위에서 동그랗게 말려 있는 르네를 홱 끌어안았다. 얼어붙은 손에 닿는 이불은 그리 따듯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았다.

 

“으앙, 싫어! 이불 르네 거야! 르네 거 할래!”

“내 성채 안에 있는 내 방 안에 있는 내 침대 위에서 내 이불 덮고 있으면서 무슨 헛소리야.”

 

이불 안으로 속을 쑥 집어넣자 손끝에 언뜻 부드러운 것이 스친다. 매그너스는 연신 몸을 숨기는 르네의 목덜미를 더듬으려 심혈을 기울였다. 딱히 만지고 싶다기보다는, 작은 복수 비슷한 것이었다. 춥다고 우는 소리를 내는 것은 르네의 쪽이었지만 이 엄동설한에 얇은 천 하나만 걸치고 눈을 맞고 있던 쪽은 매그너스였기 때문이었다. 르네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 일이젰지만 졸지에 우산 대용이 된 그의 날개는 이미 얼어붙어 감각도 없었다.

 

“싫어~! 잘못했어요! 차가워! 싫어~~!”

“으, 손 시려. 목 좀 줘 봐. 너 때문에 눈사람 만든다고 손 다 얼었잖아.”

“장갑 없이 나오라고 한 건 르네가 아니잖아요!”

“네가 맘대로 뛰쳐나가니까 내가 준비할 시간도 없이 따라나간 거 아니냐.”

“그게 무슨 논리예요! 완전 헬리시움 짱먹네!”

“헛소리 말고 목 내놔. 아니면 배 만진다.”

“그냥 이불 드리면 안 돼요...?”

“안 돼. 네가 더 따뜻해.”

 

매그너스는 우는 소리를 내는 르네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손을 녹였다. 달달 떨리는 자그마한 하얀 목이 물어뜯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느꼈다.

 

“너무 추워... 너무 쟈가워......”

“조용히.”

 

눈밭만큼 새하얀 목덜미가 아이러니하게도 눈에 얼어붙은 손을 녹인다. 매그너스는 달달 떨고 있는 새까만 머리통을 내려다보다가 손을 떼었다.

 

“너머해여어어.”

“이리 와.”

“넘햬애애애. 르녜를 냔로료 샴댜니이이......”

“조용히 해.”

 

길고 늘씬한 체구가 매그너스의 품에 쏙 들어왔다. 나긋하게 품을 덥히는 온기는 이제는 그에게도 익숙한 것이었다. 밖의 냉기를 잊을만치 따듯하고 말랑말랑했다.

 

매그너스는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제 뻣뻣한 머리카락과는 감촉도 길이도 달랐다. 그의 머리카락은 회색이 도는 청흑빛이었고 르네의 머리카락은 뭉쳐 들면 결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까만 색이었다. 르네의 팔은 그가 쥐면 녹아내릴 정도로 부드럽고 흰 살갗을 했고 그의 팔은 단단한 근육이 들이찬 흙빛이었다. 그가 말라붙은 땅이라면 르네는 깃털처럼 새하얀 구름이었다, 손에 잡히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지는.

 

정말로 이상한 녀석,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구름은 보이는 것만큼 부드러웠다, 폭신폭신했다. 갈가리 찢어도 다시 붙어 그 자리에 새하얗게 떠 있었다. 그리고 말라붙은 땅 위에 물방울을 떨어트렸다.

젖은 땅은 부드러워졌다. 매그너스는 르네의 목덜미에 살짝 고개를 묻었다. 달콤한 향기가 났다. 따듯하고 말랑말랑했다.

 

“이제 안 춥냐.”

“엥... 추워요.”

“......”

“아아파! 아야! 왜요?! 왜?!”

“조용히 해.”

 

......눈치는 없지만.

매그너스는 그냥 르네의 입을 막기로 했다. 이젠 매그너스보다 르네의 몸이 더 차가웠지만 르네는 눈치라고는 정말이지 한 점도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애초에 내내 시렸던 날개는 덥히지도 못한 채였다.

 

“넌 진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냐?”

“에엥... 갑자기 왜요?”

“그냥, 너 멍청해서.”

“너무해!!”

“시끄러워, 조용히 좀 해 봐.”

“너무해애......”

 

르네는 늘 알기 쉬운 반응을 했다. 어린아이 같았고 즉각적이고 솔직했다, 변덕적이고 즉발적이지만 적어도 그에게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좋아했다, 그에게만 주어져 있는 평온함. 소란스럽게 재잘거리는 휴식처.

 

메마르고 고요한 겨울의 땅에 봄볕이 아릇하게 비쳤다. 그의 겨울은 끝났다, 언 손은 녹았고 품은 뜨듯해졌다. 푹신해진 땅에는 꽃도 피었다. 우스운 일이지만, 참으로 우습게도 그는 제법 행복했다. 그게 웃기지 않다는 점이 가장 우스웠다.

 

“......따뜻하네.”

“으음.”

 

르네는 그를 아프게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가 그녀를 죽이더라도, 그 피는 그의 땅에 스며들어 양분이 될 뿐이었다. 언젠가 그것을 우습게 여겼다. 증오했고, 지독하게 끔찍이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제 안 추워요?”

“......응.”

 

매그너스는 그 작은 목덜미에 이마를 기댔다. 따뜻했다. 뛰는 맥이 자그맣게 들렸다.

 

“그럼......”

“...그래.”

“르네는 다시 눈사람 만들러 갈래요!!!”

“?”

 

순식간에 품에서 온기가 빠져나갔다. 매그너스는 잠시 황망하게 빈 자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창밖으로 펑펑 눈이 내리고 있었다.

 

“......”

 

......그러고 보니 아까도 이랬나.

르네는 신이 나서 창틀을 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매그너스는 손을 내려다본 그대로 잠시 멈춰 있다가, 이내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갔다.

 

“신난다! 눈사람 르네 친구야!”

“야!!! 옷 제대로 입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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