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절이 얼마든지 바뀌어도, 계절 하나 바뀌는 것도 모른 채 바삐 수련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던 것은, 몸이 살짝 지쳤을 때 습관적으로 보던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송이 하나가 얼굴에 닿았을 때였다.
벌써 겨울인가.. 하며 자각하기엔 이미 너무 늦었는지, 날짜는 벌써 1월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이 1년이라는 시간 동안에 내가 정진한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강해지는 것도, 사이타마를 쓰러뜨리겠다는 목표도, 너와의 거리도.
조금만 더, 라고만 생각하면 눈 앞에서 멀어져있다. 그리고 또 다시 조금만 더.. 라고 생각하면 또 멀어진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걸 반복하고 있던 나는 슬슬 지쳐갈 만도 했지만, 그만두게 되면 내가 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 근성 하나는 자신이 있었기에 제자리를 걷는다고 해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갔다.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불안함을 애써 무시하고.
"....소라."
너를 이만치리나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알지 못했다.
사랑을 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너를 사랑한지 얼마나 된거지? 언제부터였고 얼마나 지난거지? 그리고 언제쯤에야 끝나는거야?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다고 하더니, 짝사랑에는 그런것도 없는건가?
쌓이고, 쌓이기만 해서, 나를 천천히 죽여가는 건가.
...정말 괴롭군.
경험해 본 적 있는가?
여태까지 철저하게 부정해왔던 간지러운 감정이, 사랑이 맞았음을 알게 되었을 그 때의 부끄러움을.
사랑을 알고나서 묘하게 기뻤던 그런 바보같은 감정을.
그런데 이 사랑이 짝사랑임을 알았을 때의 말로 할 수 없는 엄청난 아픔을.
나는 있다.
뼈저리게 알고 있는 사실들이다.
그런데도 너에게서 멀어지면, 심장께가 저릿, 하고 아파왔다.
나는 너에게 다가가는 것도, 멀어지는 것도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넌 대체 이 몸에게 무엇을 원하는 거냐?
내 심장을 원하는지, 너덜너덜해서 남아있는지도 모르는 내 마음을 원하는지, 아니면....
나 자체가 망가지길 원하는지.
이젠 나도 모르겠다.
"기분 더럽게 눈이나 내리다니.. 제길."
이런 거친 말에서도, 결국은 하늘을 쳐다보며 너를 떠올리는 나는 어쩔 수 없는 녀석인 모양이다.
네가 이런 날에는 춥다고 해도 괜히 들떠서는 바깥에 놀러나가는 것이 다반사였으니까.
자연스럽게 일어나 너를 찾는 날이면, 나는 너의 향기가 느껴지는 느낌에 눈 앞이 아찔해졌고, 어지러운 기분에 취한 듯 끝내 나는 너를 찾아내고 만다.
그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마찬가지다.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해왔던 너를 찾는 행동에 나는 이미 생각을 그만둔지도 오래였다.
더 생각해봤자 결과는 마찬가지였으니까.
더 짜증내봤자 어차피 널 단념할 수 없었으니까.
전과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
네가 있을만한 곳을 괜히 지나다니며 눈길로 너를 찾는다.
네가 보이지 않으면 괜히 눈살을 찌푸려버리지만, 네가 보이면 그건 그거대로 눈이 찌푸려진다.
왜냐고?
넌 성격이 좋은만큼 주변에 인기도 많았으니까.
심지어 모르는 사람까지도 너에게 다가간다.
그럴때 드는 생각은 항상 같았다.
못 봐주겠네.
그때마다 드는 느낌.. 짜증나.
짜증난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불편하다.
....이건.. 질투, 인가?
너랑 아무 사이도 아닌 내가, 질투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엔 헛웃음만 터져나온다.
우습기도 하지. 이 음속의 소닉이 하찮은 질투라니.
너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닐텐데. 나는 왜 이렇게 심술을 부리고 있는걸까.
괜스리 짜증이 북받쳐 길가에 떨어져있는 돌멩이한테 화풀이하듯이 발로 찼다.
멀리 날아간 돌멩이가 바닥에 부딪치며 나는 소리가 마치 내 마음을 강하게 때려서 나는 소리마냥 차갑고 날카롭게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애인이 생기든지 말든지, 내가 알 바도 아닌데.
그런데도 나란 녀석은, 자꾸만 심술이 난다.
"한번만 저와 같이 따뜻한 커피 마시지 않겠습니까!!"
"그게.. 저기.. 저는..."
"부탁드립니다!! 추운데 들어가실까요?!"
네가 누군가에게 붙잡혀서 곤란해하고 있다.
너는 모르는 사람은 무서워할텐데, 저렇게 억지로 강요하는 녀석이 아직도 있었나.
촌스럽다.
적어도 이 몸이었다면, 그렇게는 안했을텐데.
..나였다면?
이 말이 왜 나왔지?
나였다면, 뭐 어쨌을건데? 고백을 할 용기는 있고?
그런것도 없는데,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했나.
"..네놈은 뭐냐?"
"...!"
..아, 젠장할. 저질러버렸다.
머릿속은 비록 어지럽고 혼란스러웠지만, 몸만은 저절로 너를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 몸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소라는 강한 대인기피증과 인간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마음을 연 사람 외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피해버리고 마는.. 그런 녀석에게 그렇게 억지로 강요한다면, 이쪽이 더 짜증나서 참을 수 없다고.
특히나 네가, 그렇게 곤란한 표정을 하고 있다면 더욱.
"그러는 당신은 뭐죠?"
"이 녀석 애인."
"애인? 그럼 소중한 애인씨를 두고 어딜 가셨던거죠?"
"모르는 사람과 마주치는 걸 '정말 싫어하는' 소중한 애인님을 위해 따뜻한 마실 거라도 사오려고 했는데, 바깥에서 녀석을 곤란하게 하는 '그 모르는 사람'이 있길래 다 팽개치고 와버렸다만."
"골키퍼 있다고 골 안들어가는 건 아니라고요."
"고작 네놈 정도로 골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는게 웃긴 발상 아니냐? 착각도 유분수라는 말이 이럴때 쓰는거다."
나는 자신있게 말하며 너를 내 곁으로 끌어왔지만, 손이 계속 떨리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심장은 아무것도 모르고 너를 향해서 강하게 뛴다.
너에게 이 소리가 들릴까봐 불안해져.
멋대로 너의 애인을 자칭하고, 아는 척하고.
미움받을지도 모르지.
내리는 듯, 내리지 않는 듯 살짝만 내려오는 눈이 원망러워진다.
이 애매한 분위기 속, 소라에게 다가섰던 남자는 나를 보고는 도망치듯이 물러났다.
그 남자가 사라지고 나서, 나는 바로 너에게서 떨어졌다.
손만 뻗으면 닿을거리.
ㅡ하지만 내가 뻗으면 절대 닿지 않을 거리.
"..괜찮냐?"
"도와줘서 고마워."
"바보야?"
"......"
"혼자 그렇게 돌아다니면,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녀석이, 왜 나와서는..."
"오늘, 눈 온다고 했으니까..."
넌 항상 그랬지.
그렇게 말하는 나는 정말 못났다.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아주 잘 알고있다. 그런데 자꾸 너에게 화살이 간다.
네가 누군가에게 호감을 사서 심술부리는 것이 아니다.
네가 아무 사이도 아닌 나에게 선을 긋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더 친하다고 해도, 이럴 때엔 조금 화도 내고 해야하는데, 너는 선을 긋지 않는다.
오해해버리면, 착각해서 내가 너에게 무심코 내 마음을 말해버린다면..
지금 불어오는 이 겨울 바람보다도 차가운 사이가 되어버릴지도 모르니까.
너와 남이 되는것이, 지금의 나는 가장 두려운 일이니까.
"이렇게 자그마한 눈 하나 때문에?"
"그래도 나는 기뻤는걸... 계절이 지나가면, 자연이 바뀌어 가. 그것을 보고 있으면, 나의 시간도 같이 흘러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
'누구는 계절 바뀌는 줄 모르고 수련중이었다만.'
"내 안의 시계는 말야, 10년도 더 전에 멈춘지 오래였어. 고장날 법도 했고, 먼지도 많이 쌓였었어.
당신을 만나기 전 까지는.. 시간이 흐르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어."
자그마하게 내리고 있던 눈송이가 점점 커다래지며, 너를 감싸듯이 너에게 눈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다.
여태까지 쌓아두었던 내 애석한 마음처럼, 눈이 너의 온기에 닿아 녹아내리며, 옷이 젖어가는 줄 모르고 쌓여간다.
그것조차도 신경쓰지 않고, 너는 너의 할 말을 이어간다.
"그런데, 당신을 만나고, 당신을 알고, 당신이 날 알아주면서.. 내 안에서 고장났던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어.
신경쓰지 않았던 시간의 흐름을, 나는 의식하게 되었어."
"...결론은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건데."
"우리, 이렇게나 계절이 바뀌는데도 여전히 같이 있을 수 있구나. 라고 느낄 수 있어서, 그래서 기뻐.
봄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날 때도.
여름에 바다를 가서 바람을 쐴 때도.
가을에 낙엽이 떨어질 때도.
겨울에 이렇게 눈이 내릴때도.
당신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구나.. 하며 안도해."
추운 바람이 불어온 탓에, 네가 말할 때마다 하얀 입김이 흩어졌고, 너의 얼굴이 점점 붉어져간다.
이제..
...이제 그만둬.
네가 그렇게 말해오면....
"나는 당신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아."
'나도.'
"그런데?"
나는 멋대로 들떠서, 기대하고 마니까.
"아까처럼, 나에게 가까이 와줘."
".....내가 왜?"
"부탁이야.."
내 진심을 감추기 위해 생각했던 의도와는 다른 차가운 말이 나갔다.
진심은 말하지 못해?
그래. 말 못해.
나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은.. 있어봤자 필요도 없으니까.
하지만 마음은 전하지 못해도, 너의 부탁만큼은 거절할 수 없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너는 내게 부드럽게 안겨온다.
네가 안겨왔을 때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너에게서 거리를 두려고 했지만, 눈이 내려와 쌓여서 그런지, 몸이 얼음장이라서 그러지도 못하고 한숨만을 내쉬었다.
알면서 이러는 건가?
너는...
...아니다.
바보도 이런 바보가 있을 수 없다.
"겨울엔 바깥에 오래있지 마라."
"이러고 있으면, 따뜻하니까 괜찮아."
"집에 데려다 줄테니까."
"같이 있고 싶어.
연인이니까."
"...?? 무슨 소리를..."
"그거야, 소닉이 말한 거잖아. 내가 소닉의 연인이라고.."
...그걸 꼭 지금 이 상황에서 말해야 하나...
추위 때문인지, 그 말에 쪽팔려서인지 얼굴이 변명할 수 없을 정도로 붉어진 탓에,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건.. 그저 변명일 뿐이었다. 그 이상의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 처지를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래.
"그건... 너를 도와주려고..."
"그래서, 싫어?"
"...어?"
"그래서, 싫은거야?"
"그건...."
나, 좋아하잖아.
세상 어느 무엇보다도 바보같은 그 녀석은 내게 그렇게 말해왔다.
내 품에 얼굴을 묻고있던 네가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바라보았다.
너의 얼굴이, 나만큼 붉어진다.
이 몸은 너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은거냐?
그것보다 알고 있었던 거냐?
어떻게?
철저하게 숨겼을 터.
"어떻게 알고있냐는 눈빛이네..."
"남의 생각을 멋대로 읽지 마!!! 아..!!!"
뒤늦게 내가 했던 말을 자각하고 입을 막았을때엔 이미 늦어있었다.
너는 그런 나를 향해서 입에 예쁘게 미소를 머금고는 말해왔다.
"같아서."
"뭐?"
"나도, 당신과 같은 마음이라서."
그래.. 같은 마음이라서 알 수 있었어.
아까 나를 도와줬었던 때, 가까이 붙어있던 덕분에 강하게 뛰는 내 심장도, 당신의 심장도 느낄 수 있었어.
당신의 온기가 따스해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는데, 당신은 내게서 떨어졌지.
조금은 서운했지만, 그 찰나를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을 정도로 내게는 소중했다?
나한테, 왜 사람을 무서워하면서 이 추운 날에 나오냐고 물었지?
사실, 내가 날씨가 좋은 날에 밖으로 나오는 이유는, 그 전부터, 당신과 있는 것이 좋아서 나는 언제나 당신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어.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당신과 내가 함께 했던 곳을 찾아서 걷는거야.
내 시간이 흐르고, 지나갔던 시간을 되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당신과 우연히 만나 같이 걸으면, 되돌아보면서 또 우리의 시간이 같이 흘러갔지.
당신과 함께했던 모든 나날이 정말 즐거웠고, 앞으로도 즐거울거야.
나는 그렇게 확신할 수 있어.
"내가 소닉을 좋아하니까, 알 수 있어.."
"그걸 알았으면, 좀 더 일찍 말해주지 그랬냐..."
"그걸 안 지 얼마 안되었으니까."
"여태까지 여러가지로 마음고생했던 나는 대체...."
"미안해.. 그 전까지는 확신하지 못했어.. 당신의 마음도, 내 마음도.. 그런데 오늘 제대로 확신했어."
"...그렇다면 제대로 고백할 타이밍 좀 주라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얼굴을 식혔다.
여러가지로 주저하지만 않았으면 분명히 닿았을텐데.
이게 뭐냐, 부끄럽게..
하지만, 확실히 너에게 전해지도록, 나는 말한다.
좋아한다.
나도 좋아해.
눈이 아름답게 내려오며 빛을 내고 있었다.
.
.
.
"...겨울이 왔네..."
"그렇군. '또' 우리의 겨울이 온건가."
"오늘, 눈이 내린다고 하더라."
"우리들이 이렇게 사랑하기 시작한 때도, 얼마 지나지 않은 겨울, 눈이 내렸을 때였을 터... 무언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만 같다."
"누가 나를 연인이라고 하면서 지켜준 덕분에 엄청 신기한 고백을 받았-"
"그만!!!! 거기서 더는 말하지 마라."
"부끄러운거야?"
"시끄러워..."
..그래도 많이 사랑해.
나도 많이 사랑해.
우리의 계절은, 끝없이 지나가고
우리들의 시간은, 같이 흘러간다.
또, 겨울은 우리를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