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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온다!!"

 

 

학교를 가지 않는 한가한 주말 오후, 바깥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하얗고 자그마한 눈이 세상을 덮어가고 있었다.

원래 이런 한가한 주말에 너의 집에 놀러와 너와 함께 있는 것은 나에겐 평범한 일상이었기 때문에 딱히 상관은 없었지만, 어느 새인가 내리고 있는 눈을 보면서 창문에 딱 달라붙은 너. 네 그 모습에 나는 강아지가 바깥에 내리는 눈을 보며 활발히 뛰어다니는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바깥은 추울텐데. 나갈거야?'

 

"응!! 우리 같이 나가자! 사이키는 뭐.. 파이로 키네시스 능력으로 몸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내가 말한 건 쿄카, 네가 춥지 않겠느냐고 묻는거라고.'

 

"괜찮아 괜찮아~"

 

'추위도 잘 타면서 괜찮은 척은..'

 

 

그래도 그런 쿄카가 꽤나 귀엽다고 생각했던 건, 눈을 깜빡일때마다 짧은 순간 살짝씩 보이는 쿄카의 웃는 얼굴이 눈에 비춰졌을 때마다였다.

어쩌다가 나는 이렇게나 바뀌게 된 것일까, 하고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네가 날 변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일평생 살아오면서 사랑이나 연애같은 건 관심없었다. 그리고 사귀고 싶다거나 그런 적도 한번도 없었다.

그랬을 터였는데.

그런 내가 너에게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된 건... 언제였지?

눈치채고 보니 이미 가지고 있던 이 마음은 아직까지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리고 끝까지 부정해왔다. 아니라고, 아닐거라고.

그런데도 그런 나에게 스스럼없이 따뜻한 손을 잡아와준 너에게 나는 조금이지만, 자각하고야 말았다.

 

바보같게도, 내 마음속에 피어난 이 짝사랑을.

 

 

"짜잔~ 목도리 둘렀다~"

 

'그정도로 과연 괜찮을까..'

 

"사이키도 두를래? 하나 더 있는데."

 

'그런 거 없이도 나는 상관 없, 야..!!'

 

"안 두르고 있으면 괜히 내가 더 추워져!"

 

 

게다가 커플 목도리라고?

그렇게 말하며 장난스레 웃는 너의 얼굴에 져버렸네, 라고 하며 태연히 둘러진 목도리를 냅두었다.

네가 걱정해주며 둘러준 거니까.

추위에 조금 약한 너는 무장을 하듯 옷을 더 껴입고 바깥을 향해 뛰어나갔다. 눈 때문에 미끄러지는 건 아니겠지..

약한 바람이 불어오며 살짝씩 내리는 눈은 수수한 마을의 경치를 더욱 아름답게 꾸며주었다.

그러던 와중, 너는 문 앞을 살피고는 집 앞에 쌓인 눈을 보더니, 눈 좀 쓸어야겠다며 빗자루를 들고 눈을 쓸어내는 너의 모습에 조금 기분이 묘해졌다.

왜냐하면 네가 방금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던 사소하지만 쓸쓸한 말 한마디가 텔레파시로 생생하게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톨이 집이지만, 비록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해도 눈은 제대로 쓸어놓자. 쿠스오가 놀러올때 불편하지 않도록.'

 

..아무도 오지 않는다, 라...

처음에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쿄카는 집에서 혼자 살고있다. 자기가 자취하도록 마련한 집이라고 했었나, 그 덕분에 집이 다른 가족들 집보다는 작은 편이다.

가정사, 때문이라고 했었던가.

그런 집에 혼자 살면서 아무도 이곳에 찾아와주지 않는다.

 

나 이외에는.

 

 

"다 쓸었다-"

 

'나한테 부탁해도 상관은 없었는데. 부모님은 나한테 다른 여러가지를 맡기기도 하니까.'

 

"내 집인데 어떻게 그래~ 자 끝났으니 우리 같이 걸을까?"

 

'...,..'

 

"왜 그래? 안 올거야? 걷는 거 싫어?"

 

'아니, 싫지 않아.'

 

 

애써 힘을 내며 앞장서서 걷는 너의 뒷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단점은 근육까지 투시해서 보인다는 거지만.

하지만 눈을 깜빡일때마다 살짝씩 보이는 너의 진짜 뒷모습은 조금 외로워 보였다.

나는, 혼자 걷는 너의 길의 끝이 어둡지 않기를, 행복한 길만 걷기를 바란다.

그만큼의 어둠을, 고통을 걸어왔으면 됐잖아.

평소의 빛나던 너의 웃는 얼굴만을 보고싶었고, 네가 슬퍼하는 모습은 가능하다면 평생 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또 가능하다면... 힘들고 어두운 그 길이라도 난 너와 함께 걷고싶다고, 나는 그렇게 바랐다.

네가 가는 길에 내가 과연 새겨져 있을까?

그건 나조차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게 바라니까, 너 혼자 힘들게 걷게 두지 않으려고 조금 빠르게 걸어 너의 옆에서 걸었다.

 

나와 함께하는 너의 길은 조금 부드러워 졌을까.

 

 

"나는 눈이 참 좋아."

 

'그런가.. 단순한 얼음 결정일 뿐인데.'

 

"그렇지만 아름답잖아?"

 

'결국은 물이지.'

 

"여러가지의 개성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는거야."

 

 

이런 긍정적인 모습도.

 

 

"차갑다.."

 

'눈을 만지면 어떻게 해.'

 

"푹신푹신하니까-"

 

 

이렇게나 단순한 모습도.

 

 

"사이키랑 걷는 길, 정말 좋아!"

'쿠스오랑 걷는 길, 정말 좋아!'

 

'....나도 싫지 않아.'

 

 

단순하기에 겉과 속이 같은 마음도

전부, 싫지 않아.

 

 

"그러고보니 이제 겨울이네. 우리가 이렇게 같이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을까.. 졸업하면 흩어질 수도 있는데말이야."

 

'아니, 흩어지지 않아.'

 

"과연 그럴까-..."

 

 

쿄카의 꿈은 놀랍게도 운동선수가 아닌 만화가이다.

매번 운동하며 여러가지 격투 기술을 배우는 것은 취미이고, 진짜 꿈은 만화가라고 한다.

다들 모르는 사실이지만, 그녀는 언제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엄청 잘 그린다.

나에게만 특별히 그림 그린 것을 보여주거나, 그림을 그려주기도 한다.

만화가 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멀리 있는 대학교로 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순간이동이 괜히 있는 것만은 아니니까.

지망 대학도 없었으니, 같은 대학교를 가도 상관은 없고.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사이키는 소중한 친구니까 괜한 쓸데없는 걱정까지 하게 되는걸."

 

'...친구라....'

 

 

내가 쿄카를 향해 짝사랑을 하고 있다고 깨달은 그 순간부터, 어느새 나는 쿄카의 '친구'라는 말이 조금은 불편해졌다.

그럼 나는 대체 너에게 무슨 말을 원했던 건가?

무엇을 원했던 건가?

....말로 하게 되면, 이 마음이 바람을 통해서 너에게 닿을것만 같다.

그래서 더 두렵다.

내 마음이 너에게 전해진다면... 너에게 그저 친구인 나는 점점 멀어지고 결국 남이 되겠지.

 

역시, 말하지 못해.

말할 수 없어.

 

 

"사이키, 그거 알아? 첫눈이 내릴 때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첫눈을 맞으면, 그 사랑이 이루어진대."

 

'그런거 미신이야. 나는 믿지 않아.'

 

"....그렇구나. 나만 믿었나보네! 내가 좀 순진한가!"

 

'순진한 게 도가 지나치겠지.'

 

 

순간 안 좋은 표정을 한 것만 같았는데, 착각, 이었나?

나는 걸음을 멈추고 걸어가는 너의 스쳐가는 얼굴을 살짝 보았다.

..내 눈을 피했다?

그 느낌을 받자, 좋지 않은 느낌까지 갑자기 한번에 몰려왔다.

 

..너의 귀가 많이 붉다. 추운 곳에 너무 오래 있었나.

 

 

'쿠스오는 바보.'

 

'...누가 바보야. 더 바보가.'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던거야, 나는?'

 

'...무슨 말을 하는거야, 쿄카.'

 

'미신이니까, 믿지 않겠지. 나도 그냥 믿지 않을래.. 이런 추운 날에 바깥에서 뜬금없이..

 

좋아한다고 말하는건....

바보같아 보이잖아.'

 

 

쿄카의 약한 마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춰서있을 수 밖에 없었고, 쿄카는 그런 나를 내버려둔 채 흩날리는 눈 속으로 홀연히 사라져갔다.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그런 말을 해버렸다.

 

사라져가는 너를 붙잡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타이밍에 나는 그저 그 자리에서 멍 할 뿐이었다.

 

 

 

 

.

 

 

 

 

 

.

 

 

 

 

.

 

 

 

 

 

그 상태로 얼마나 지났을까, 점점 거세져오는 눈이 내 뺨을 치는 듯이 내리자, 나는 어느 새에 놓고있었던 정신을 차렸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것인가, 아니면 찾아낼 것인가..

답은 하나 뿐이잖아.

난 빚 지는 걸 가장 싫어하니까.

나는 눈을 한가운데로 모아 천리안을 사용해서 네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았다.

네가 가는 곳은 언제나 똑같았으니까.

너를 찾아 헤멘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새 찾을 수 있었다.

역시 너는 단순해. 나와 같이 가던 커피젤리 카페라니.

 

그렇다 해도..

 

여전히 좋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는 너.

 

내가, 너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맙다고 말하는 것조차도 서툰 내가?

너에 대한 마음을 자각하고도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했던 내가?

좋아한다고.

너를 좋아한다고.

언제나 생각하고 있었어.

생각만 하고 있었어.

 

하지만..

 

이번엔 꼭 말할거야.

 

거칠게 내리는 눈 속에서 걷고있는 네가 서서히 보이고 있다.

 

너를..

 

부르지 않으면..!!

 

 

ㅡ쿄카!!!!

 

 

너의 이름을, 처음으로 크게 외쳤다.

나의 목소리에 흠칫, 하고 돌아보는 너의 얼굴이 보였고, 나를 발견한 넌 평소처럼 미소지었다.

애써 웃는 얼굴이 눈에 맞아 엉망진창이라도..

그래도 너는 언제나처럼, 참 예쁘다.

 

솔직하게.

 

내 진심을, 너에게 전하기 위해, 텔레파시만 사용했던었 내가 너에게 처음으로 입을 떼어 진짜 목소리로 전했다.

 

 

"미안, 해."

 

"에? 어 아냐..!! 사이키가 미안할게 뭐가 있다고 사과를 해..! 뭔가 오해한 거 아냐..?"

 

"오해를 한건 너야. 그냥, 다 미안하다. 괜히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해서.. 너도 알다시피, 나는 솔직하지 못한 녀석이라 너에게 괜히 차갑게 말하고, 진심을 말하지 못하고.."

 

"딱히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 않은데-"

 

"그리고 그 말, 미신 아니야."

 

"응?"

 

 

처음으로 말로 전하는 진심은, 꼭 내 진짜 목소리로 전하고 싶었다.

너를 제대로 볼 수 없어서 고개가 저절로 떨어진다.

하지만 진심이란 걸 전하고 싶어서, 너의 소매를 살짝 잡았다.

그리고, 드디어 전한다.

 

너에게.

 

 

ㅡ좋아한다.

 

 

"....어?"

 

"좋아한다, 좋아한다, 많이 좋아한다. 정말 많이좋아한다, 라고 꼭 말해야 했었는데, 이제서야 말해서 미안하다. 평생 느끼지 못할거라 생각했고.. 그리고 이런 마음을 하나도 몰랐던 탓에 여태까지 부정해왔어. 그리고 결국 알았어."

 

"사이ㅋ-"

 

"네가 정말 좋아, 쿄카."

 

"....."

 

 

조금 목소리가 떨렸나. 진심을 전하는 건 나한텐 서툰 일이었으니까.

너의 목소리도, 너의 마음속 소리도 전부 들리지 않는다.

결국 예상했었던대로였나.

 

이런 괴물같은 초능력자를 받아줄리가.

 

 

"쿠스오."

 

"....."

 

 

마음 속 소리가 아닌 진짜 목소리로, 부드럽게 네가 내 이름을 불렀다.

 

 

"해가 점점 져가고 있어."

 

"......"

 

"노을이 졌고."

 

"........."

 

"노을이 질 때 이루어지면, 그 커플은 굉장히 오래간다는 미신이 있다?

 

미신을 못 믿겠다면, 믿게 만들면 되지 않겠어?"

 

 

고개를 떨궈 땅을 보고있던 나는 놀라서 천천히 고개를 들어 너를 쳐다보았다.

너는 어느때보다도 행복히 웃으면서 말해온다.

 

 

"나도 정말 좋아해, 쿠스오."

 

 

거세게 내리던 눈이 점점 약해져서 우리 두 사람을 빛내주고 있다.

나는 눈에 눈송이가 들어가는 바람에, 눈을 깜빡이고는 너와 눈을 마주했다.

나의 눈에 네가 새겨졌고, 너의 눈에도 내가 새겨져 태양보다도 빛났다.

 

하얗게 내리던 눈이, 드디어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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