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에서 히루마의 명칭은 ‘선배’나 ‘씨’가 아니라 일본식 표현인 ‘상’으로 합니다.
-작에서 마모리와 드림주는 언니 동생 하는 사이입니다.
-데스마치/히루마x밤비니
여름, 파란 하늘, 뜨거운 햇살, 습기 가득한 공기, 그 가운데서 열심히 땀 흘리며 훈련하는 멤버들. 밤비니는 정수리에 내리 쬐는 햇볕을 느끼며 트럭을 미는 이들과 앞서 달리고 있는 멤버들을 바라보다 트럭을 밀고 있는 쿠리타들에게 소리친다.
“이러다가 후위조 보다 한참 뒤떨어져요!”
그 말에 쿠리타들을 용을 쓰며 트럭을 민다. 바로 옆에 있는 도부로쿠가 그들을 채찍질하자 밤비니는 그 채찍질에 하하, 약간 얼기설기 웃으며 그들을 약간이나마 응원하며 물을 뿌려준다. 그 물줄기에 죽어가던 이상들이 잠시나마 승천하는 것을 본 밤비니는 안쓰러운 마음에 속으로 염불을 외우며 물을 조금 더 뿌린다.
“물을 아껴라! 그렇게 마구 뿌려대면 앞으로 어쩌려고 그래!?”
“첫날이잖아요. 원래 첫날은 테스트라 뭘 해도 마이너스예요.”
맞는 말이긴 했는지 도부로쿠는 더 이상 말이 없다. 그저 혀만 한번 차고 물과 땀으로 온 몸이 흠뻑 젖은 라인조를 타박 할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해가 거의 지기 시작하자 결국 도부로쿠는 그들을 차에 실었다. 후위조의 반도 못 갔다며 투덜거리는 소리에 쿠리타들이 헐떡 거리는 것을 보며 밤비니는 점점 늘어 날 것이다. 라며 그들을 토닥인다. 부르릉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리고 트럭이 움직인다. 라인조가 밀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에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밤비니는 바람을 느끼며 트럭 머리 쪽에 매달린 채 후위조가 보이길 기다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위에 걸터앉아 그들을 기다리는 후위조가 보인다. 마모리와 밤비니는 곧장 식사와 휴식을 준비한다. 얼음팩을 찾는 마모리에게 밤비니는 아직 쓸 때가 아니라며 식사를 준비하자 이야기한다.
“하지만 지금 근육이 부었을 텐데…”
“물론 잠깐이라도 해주는 편이 좋긴 하지만 저희 훈련이 아직 안 끝났어요.”
“응? 오늘 치 훈련은 이미 끝난 거 아니니?”
마모리가 의아하다는 듯이 말하자 밤비니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설명한다.
“저희는 오늘부터 이틀 치의 훈련을 밤새워서 할 거예요.”
“뭐?”
“언니도 아시죠? 찢어진 근섬유를 푹 쉬게 해주면 회복하면서 근섬유가 더 많아지는 거요.”
“그렇지.”
“하지만 그건 최저 24시간 동안 쉬면서 회복시키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어… 그러니?”
“네, 하지만 가을 대회까지는 40일. 매일같이 쉬다간 라스베가스에 도착 할 수가 없어요. 그렇기에 밤을 새워 이틀을 훈련하고 하루를 내리 쉬는 식으로 두 배로 근육을 사용 회복시키기로 한 거죠.”
“세상에……”
“이래서 히루마상이 데스마치라고 이름을 붙인 거예요. 진짜 죽기 아니면 살기인거죠.”
밤비니는 하하 실없는 웃음소리를 내며 식재료를 두 손으로 든다.
“아, 이건 아직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이에요. 벌써부터 텐션이 죽어버리면 곤란하니까요. 잠깐이라도 휴식을 만끽 시켜줘야죠.”
“가끔 보면 밤비니도 히루마랑 비슷하다니까.”
“지시한 게 히루마상 이니까요.”
그렇게 대답한 밤비니는 바로 밖으로 나가 식사를 기다리며 쓰러진 멤버들을 한번 훑어본다. 쓰러지지 않은 인물은 단 한명. 히루마 뿐이었다. 멍청이들이라며 모두를 싸잡아 욕하고 있는 히루마의 모습에 밤비니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발걸음을 옮긴다. 밤비니의 직책은 감독. 하지만 굳이 따지면 허울뿐인 감독이다. 뛰어난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의 신체를 보자마자 신체 능력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엄청난 아이디어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히루마가 멋대로 감독으로 임명해 감독이 된 허울뿐인 감독. 밤비니는 카레에 넣을 당근을 썰기 위해 칼을 꺼내들며 생각한다. 가끔씩 느껴지는 무게에 허울뿐이라면 차라리 자잘한 일이라도 뚜렷하게 할 수 있는 매니저라던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총무자리가 좋았을 텐데. 라고.
“어이.”
낯설지만 익숙한. 근 3년간 들은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깜짝 놀린 밤비니가 화들짝 몸을 떨자 길고 가는 손가락을 지닌 손이 칼을 쥔 밤비니의 손을 잡는다.
“손이라도 자를 생각이냐?”
옆을 보니 히루마가 밤비니의 손을 잡은 채 인상을 쓰고 있다. 밤비니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어색하게 답변한다.
“아, 아니요.”
“……”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밤비니는 위아래로 훑어 본 뒤 밤비니의 손을 놓는다. 아무말없이 자리를 뜨는 히루마에 밤비니는 다시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나 얼굴 괜찮았을까. 잠깐 그렇게 생각하며 밤비니는 숨을 내쉬며 칼을 바로 잡는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트럭에 벌러덩 누워 또 다시 휴식을 취한다. 그들 가운데에서 도부로쿠가 일어서 초회복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에 밤비니는 몇 번 고개를 끄덕이고 마모리는 그런 밤비니를 바라보며 이야기에 집중한다.
“가을 대회까지는 고작 40일. 매일 쉬다간 라스베가스에 도착할 수 없지.”
그러면 어떻게 하냐는 모두의 물음에 밤비니는 슥 자리에서 일어나 헤드라이트가 들어 있는 상자를 꺼내 들고 간다. 그 행동에 세나들이 의아하다는 듯이 밤비니를 바라보고 밤비니는 말없이 자비롭게 웃으며 헤드라이트를 한명한명에게 나눠준다. 마지막으로 헤드라이트를 받은 히루마가 자연스럽게 그것을 머리에 쓰자 나머지도 머뭇거리며 헤드라이트를 따라 쓴다.
“밤을 새워 이틀 치 트레이닝이다!!”
그렇게 외치며 총을 난사하기 시작하는 히루마의 행동에 후위조는 허겁지겁 달려 나가고 라인조는 다시 트럭을 밀기 시작한다. 밤비니는 일부러 마모리가 세나를 보지 못하게 살짝 늦게 트럭 전등을 키며 길을 밝힌다. 미친 거 아니냐는 쥬몬지들의 외침에 밤비니는 허허로이 웃는다. 그래도 사흘 새는 것보다는 낫겠지…. 위로 아닌 위로에 쥬몬지들이 그건 그렇지만! 이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이틀 후. 모두가 완전히 나가떨어졌을 때 여태까지 잘 보관해 잘 얼어잇는 얼음팩을 꺼내 모두에게 아이싱을 해준다.
“확실하게 아이싱해둬 안 그러면 붓기 안 빠진다.”
“흐야, 차가워서 기분 좋다!”
모두가 흐물흐물 할 때 히루마 혼자 고고히 움직이며 통보한다.
“정확하게 24시간 후에 출발한다.”
다른 이들에게 아이싱을 하며 밤비니는 슬쩍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본다. 그래도 아이싱을 해주는 편이 좋을 텐데. 총기와 화약을 든 채 쇼트 연습을 하면서 지시를 내렸을 그를 생각하며 밤비니는 하던 일을 마무리 하고 잠깐 주변을 슥 살폈다. 토가노와 쿠로키가 낌새가 이상하다. 이를 본 밤비니는 잠깐 도부로쿠를 바라본다. 그러자 고개를 젓는 도부로쿠. 나서지 말라는 말이다. 밤비니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얼음팩을 하나 챙겨 자리에서 일어난다.
히루마가 갔던 방향으로 가자 히루마와 마모리가 함께 있었다. 밤비니는 죄를 지은 것도 없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숨어 그들이 하는 행동을 바라보았다. 마모리는 히루마의 다리에 아이싱을 해주는 듯 보였고 히루마는 심통이 나서 그걸 방해하는 상황인 것 같았다. 아, 어차피 필요 없었구나. 밤비니는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다. 마침 도망을 치려던 토가노와 쿠로키가 도부로쿠에게 걸린 참이었다. 이런…. 여러 의미로 오도가도 못하게 된 밤비니는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길 기다렸다. 절대 포기 하지 않는다. 모두 힘을 합쳐 우승하자. 그 말에 밤비니는 조용히 발끝으로 땅을 팠다.
자신만 붕 뜬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지. 아곤과 사귈 적에는 아곤이 해서, 지금은 히루마가 끌고 다니니까. 그렇게 이유 없이 뜻 없이 흘러가듯이 접하고 있는 게 미식축구였다. 나 빼고 다 청춘이네. 밤비니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꼭 혼자 표류하는 것만 같았다. 비슷하긴 했다. 다들 저마다의 목표로 미국에 남겠다 선택 했었다. 하지만 자신은….
다른 이들이 하나 둘 트럭에 올라 휴식을 취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 자야지. 생각없이, 인형 마냥 밤비니는 설렁설렁 몸을 움직였고, 그런 밤비니의 손을 뒤에서 누군가 잡았다.
“어이, 감독.”
“……히루마상.”
“따라와.”
앞뒤 설명 없이 히루마는 밤비니를 이끌고 마모리와 함께 있던 그 자리로 밤비니를 데려왔다. 밤비니는 어리둥절해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세요?”
“아.”
태평히 대답하는 히루마의 대답에 밤비니는 무슨 일이세요? 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가 분명 마모리가 아이싱을 해주었던 다리의 바짓단을 걷었다. 퉁퉁 부은 무릎에 밤비니는 분명 마모리가 아이싱을 해주지 않았나 다시 생각해 보았다. 분명 히루마가 방해 했었지만 마모리 성격상 제대로 아이싱을 해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아이싱.”
“아까 마모리 언니가…”
“……”
히루마는 이번에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밤비니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더 이상 무어라 말 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아 그의 다리에 아이싱을 해주기 시작했다.
“……쓸데없이 생각만 많기는.”
그렇게 말하며 히루마는 혀를 찼다. 밤비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아이싱을 할 뿐이었다. 히루마는 마모리 때처럼 다리를 휘적거리거나 밤비니를 방해하지 않았다. 아이싱이 끝날 때 까지 그냥 가만히 밤비니를 바라 볼 뿐이었다. 아이싱을 끝낸 밤비니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히루마는 자신의 옆을 툭툭 쳤다. 앉으라는 것이다. 밤비니는 머뭇머뭇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히루마는 몇 장의 카드들을 꺼냈다.
“작전 카드다.”
“아, 네.”
“외워둬. 넌 감독이니까. 만약의 사태에는 네 녀석이 지시를 할 줄 알아야해.”
“……만약의 사태요?”
“그래.”
밤비니는 묻고 싶었다. 그 만약의 사태는 무엇인가요?라고. 하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 만약은, 히루마가 없는 사태라는 것을. 밤비니는 입을 달싹 거리다가 말했다.
“하지만 전…”
“네 녀석은 누가 무어라 해도 데빌 배츠의 감독이다. 그 어떠한 사태가 와도 그건 달라지지 않아.”
그 단호한 소리에 밤비니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마주하던 히루마는 곧 고개를 돌려 카드 한 장을 뒤집는다.
“이 카드에 적힌 작전은…”
“히루마상이… 알려주시는 건가요?”
“그럼 다른 누가 알려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냐. 앞으로 휴식 때 마다 내가 널 가르칠 거다. 알겠냐?”
“하지만 그렇게 되면 히루마상의 휴식시간이…”
“시끄러.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그렇게 말한 히루마는 밤비니에게 눈길하나 주지 않은 채 말한다.
“그딴 얼굴 하고 있을 시간에 작전 하나라도 더 머릿속에 집어넣어라. 네 녀석은. 내가 선택한 감독이야.”
그 말에 밤비니는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가 소리 없이 웃었다. 그리고 작전 카드를 손에 들고 먼저 질문하기 시작한다. 히루마는 이에 하나하나 대답한다. 그의 입에는 미약한 미소가 알 듯 모르게 지어져있다. 밤비니는 끝까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