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굴다리에 청춘은 없다.
청춘이니 뭐니 하는 것에 매달릴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당장 그 날을 살아남기 위해 뭐라도 먹어야만 했고, 어깨 너머로 본 것들을 하나씩 해보았다. 실수하고, 실패하고, 매일같이 좌절하면서도 다음날 다시 도전했다. 죽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어제 보았던 얼굴들이 사라지기도 했고, 분위기에는 잔뜩 날이 섰으며, 눈만 마주쳐도 서로를 씹어먹을 듯 날카롭게 굴었다.
하지만 결국 일은 조금씩이나마 익숙해졌고, 겨우라고는 해도, 최소한이라고는 해도 생존이 보장되는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어렸던 아이들은 자랐고, 새로운 아이들이 흘러들어왔다. 그러고서야 조금 숨통이 트였다. 주변에 있는 친구들을 보며 웃을 수 있었고, 어릴 때의 이야기를 하며 웃을 수 있었다.
동근혁의 눈에 금나비가 들어온 것도 그 즈음이었다. 키가 멀쑥하게 크고, 마른데다가, 늘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를, 당장 눈 앞에 있는 이 곳이 아닌 더 먼 곳을 보고 있는 듯한 눈빛이 인상적인 아이였다. 늘 붙어다니는 유바다와는 여러모로 대비가 되어서 더 눈에 띄었을까. 새까만 머리카락이 새하얀 얼굴 위로 늘어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시선을 떼기가 어려웠다. 시간이 제법 흐르고 난 뒤에야 금나비가 시선을 천천히 들어 자신을 바라보면, 그 때 겨우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뗄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날은 무심한 듯 그 애의 옆에 앉아보았다. 금나비는 근혁의 얼굴을 잠시 올려다보다가, 다시 시선을 먼 곳으로 돌렸다. 결국 동근혁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디를 그렇게 보고 있어?”
시선이 잠시 돌아왔다. 근혁은 잠시 이유 모를 만족감을 느꼈다. 그녀의 시선에 이제야 자신이 온전히 담겼다 느꼈다. 금나비는 잠시 입술을 우물거리고, 살짝 입을 열었다.
“바깥은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어. 학교에 다니는 애들은 어떨지, 매일 집에 돌아가면 반겨주는 가족이 있는 생활은 어떨지...”
“... 여기에도 가족은 있잖아.”
“그렇지. 응.”
금나비는 작게 웃었다. 마치 그림을 한 폭 보는 것 같았다. 자신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었다면, 방금 그 모습을 남기고 싶었으리라. 동근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금나비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금나비는 입술을 조금 더 우물거리다가, 근혁의 시선이 떨어질 생각을 않자 다시 입을 열었다.
“바다에, 가보고 싶어. 어제 바다랑 읽었거든. 그곳에 가면, 내가 느끼지 못한 청춘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러면 나도 청춘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아아. 그 말을, 그 기분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호걸은 언제나 자신들도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고, 언젠가는 그럴 때가 올 거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과연 어떨까. 바깥에 자신들의 자리가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자신들은 싸우고, 공장을 돌리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으니까. 특히 지금까지는 계속 그랬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거나 빈틈을 보였다가 어떻게 될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삶이었다. 청춘을 구가할 틈이 없음이 당연했다. 그래서 그 아득한 눈빛이 더욱 애처롭게 와닿았을까.
그 날의 대화는 여기에서 끝났다. 근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건성으로 인사를 건넸고, 금나비도 굳이 그를 더 붙잡지 않았다. 그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그녀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근혁은 그 모습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곤, 서둘러 아지트로 향했다.
다음날은 휴일이었다. 금나비는 평소의 주말처럼 조금 느직하게 일어났다. 묘하게도 아지트의 안이 조용해, 시간을 한 번 확인하곤 비어있는 제 친구의 침상을 한 번 바라본다. 다들 어디 나갔나. 하며 문을 열고 나가면, 새파란 색이 시야를 한가득 메운다. 놀라서 주변을 바라보고 있으면, 저 멀리에서 머쓱한 듯 서 있는 동근혁이 보인다.
“... 네가 한 거야?”
가만히 물으며, 아지트 벽을 가득 채운 바다의 그림을 가르킨다. 근혁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제 더벅머리를 가볍게 헝클었다. 나비는 한번 더 아지트의 안을 돌아보았다. 시원한 푸른 색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한 쪽에 남은 앙금들을 쓸어내는 것 같았다.
“지금은... 바다에 갈 수가 없으니까. 다음에는 꼭 가자.”
“... 같이?”
나비는 작게 되물었다. 같이 가 줄 거야? 시선으로 물으며 그를 가만 바라보았다. 그렇게 특별한 사이도, 무엇도 아니건만, 그와 함께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탓이다. 근혁은 잠시 놀란 듯 나비를 바라보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짧게 되돌아온 답에 나비는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아직 온전히 청춘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위해 제철공단을 전부 밖으로 쫓아낸 근혁의 행동은, 어쩌면 청춘의 일부분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면 되었다고. 그 감정의 일부를 아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은 먼 곳을 마냥 그릴 필요가 없으리라는. 그런 생각이 문득 들어, 금나비는 작게 웃었다.
굴다리에 청춘은 없었다. 그러나 그 일부는 제철공단의 아지트에 피어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