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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조 농구부 매니저 맞으시죠? 월간 농구 고교부 담당 기자입니다. 아, 네. 그 잡지요. 인터하이에서 아쉬운 성적을 거두셨지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서요.

그래서 그냥, 그걸 왜 나한테 묻느냐고 말했어요. 길가다 이상한 사람한테 붙잡히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으로요. 당황하더라고요. 하기야 어느 학교는 매니저가 그 일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다던데, 패배로서 인터하이를 마무리 지은 매니저가 서러움에 몸부림친 흔적 하나 없이 남 일 얘기하듯 굴었으니까요. 그거야말로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을 만도 해요.

 

 

여름에게

 

 

사람들은 쉽게도 청춘을 말해요. 온 세상의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학생들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웃고 떠들고 무언가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리라고 감히 생각하던걸요. 그런데 저는요, 그런 건 전혀 믿지 않아요. 그래서 당신들도 믿지 않았어요.

선배는 물론이고요. 부주장도, 요시타카 선배도. 자랑스런 에이스와 동급생 하나 심지어는 벤치에 자리한 신야조차 올해 여름의 전부라는 양 굴었잖아요? 저는 그게 견딜 수 없이 싫었어요. 그런데 사실 누군가 정말로 싫었던 거냐고 묻는다면 고민 없이 끄덕이지는 못할 거예요. 만약 그랬다면 일말의 호기심도 가지지 않았을 테니까요. 저는 그런 사람이거든요. 경멸하는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애당초 나 말고 다른 세상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아요. 그러니 사실은 싫지 않았던 거예요.

당신들 모습을 바라보고 동경하고 또 혼자 저열한 질투 같은 것에 빠지기도 했어요. 혹은 노력이 결과로 돌아온다고 확신할 수 없는 일에 사활을 거는 모습을 한심하게 여기기도 했죠. 그러다가도 매니저, 이것 좀 부탁해. 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면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난 건 사실 제가 성실한 사람이라서가 아니에요. 그냥 그게 내가 책임진 일이었으니까. 사명감도 무언가의 바람도 없어요. 답지 않게 한 순간 치기로 뭔가를 맡아하기로 결정했으니 적어도 그것에 한해서는 억울함을 가지지 않아야죠. 그게 평범한 사람의 태도잖아요. 어떤 방면에서도 뛰어나지 못하고 그렇다고 그걸 상쇄할 의지나 용기도 없으므로 순응하는 사람의 태도요.

그러니 제가 선배 말 한 마디로 교화되었다거나 큰 깨달음을 얻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착각이고 오만이에요. 선배는 과하게 건실한 면이 있으니 제 생각 같은 건 이해하지 못할 테고, 동시에 뜻밖에도 상냥한 사람이므로 저를 이해하려고 굴겠죠. 그런 생각을 하면, 뭐라고 해야 할까…….

 

…… 선배, 저 사실은 감독님께 작년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가 캐물은 거니까 감독님을 탓하지는 마세요.

아실 턱은 없겠지만 사실 매니저가 되기 전에도 경기를 몇 번 보러간 적이 있어요. 당신이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는 그날에도 자리에 있었고요. 아시잖아요. 제 친척도 타교 농구부 소속이니까. 그래서 위원회니 경기에서 몇 번 본 당신 얼굴도 기억하고 있었고 작년 이맘때의 여름날 저녁에 퇴부서를 가지고 체육관으로 향하던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아요. 한참 장마가 끝난 다음날이어서 습하고 눅눅했던 기억이 나요. 그해는 유독 비가 많이 내렸잖아요. 땡볕 아래의 끈적한 여름은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어두컴컴한 하늘의 비만 내리는 시간들을 달가워하지도 않아요. 저는 쉽게 무언가를 싫어하거든요.

익숙한 얼굴인데 어디서 봤더라? 아, 선도부. 그리고 농구부 2학년. 감자같이 생겼던. 실수했다더니 결국 관두나봐. 그럴 만도 하지. 같은 반의 농구부 동급생에게조차 당신의 이름이 들려왔지만 그 정도 감상 이상은 내놓을 턱이 없었죠. 말했잖아요? 아무런 관심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다시 체육관에서 목격한 날에는 조금 놀랐던 것도 같아요. 선배, 저였다면 그대로 도망쳤을 거예요. 정말로 도망치려는 사람은 붙든다고 잡히지 않아요. 그러니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요. 저랑은 반대로요. 처음부터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선배는 모두에게 돌아오는 겨울을 준비하라고 말했지만 이번 여름이 돌아오지 않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어쩐 일인지 언제나의 여름은 선배에게 친절하지 못하네요. 그 여름을 그렇게 소중히 여긴 사람도 드물 텐데 말이에요. 이런 구구절절한 이야기들 선배에게는 한 마디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아직은요.

용서해 주세요, 선배는 늘 제게는 너그럽게 굴곤 했잖아요. 선배를 재어 보려는 거예요. 혹시나 싶어 덧붙이자면 저는 아무에게나 그렇게 굴지 않아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그러니 정말로 내가 믿어도 되는 사람인지. 고작 이런 걸 궁금해 하는 건 정말로 드문 일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답지 않은 고민을 하는 건 가을이 다가오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여름이 끝나가는 탓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오늘 날씨가 좋아요, 주장. 이번 장마는 끝났고 기상청에서는 여름이 끝나는 날까지 푸른 하늘과 맑은 햇볕이 지속되리라고 했어요. 적어도 체육관이 기분 나쁜 습기로 가득 찰 일은 없을 거예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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