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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가 눈을 떴을 때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얇은 커튼으로 은은하게 비쳐오는 창백한 햇빛이 방 안을 주황색으로 물들였다. 끄응, 올가는 기지개를 쭈욱 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바네사가 옆에서 새근새근 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올가는 그가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이불에서 빠져나온 뒤, 다시 한번 기지개를 펴며 온몸의 찌뿌둥한 근육들을 잠 깨웠다.

조용히 방에서 나와 문을 조심스럽게 닫던 올가는 거실에서 입을 크게 쩍 벌리고 하품하던 앨리스와 눈이 마주쳤다. 앨리스는 바네사가 언젠가 데려온 하얀 대형견이었다. 군견이었는데, 전역을 앞두고 군에서 앨리스를 맡아줄 주인을 찾던 중에 바네사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바네사 말로는 보자마자 올가 생각나서 데려왔다고.

올가와 앨리스는 그 자리에서 서로 말없이 마주보았다.

어색한 공기가 둘 사이를 맴돌았다. 째깍, 째깍,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날카롭게 느껴졌다. 곧 먼저 자리를 떠난 건 앨리스였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신의 방석 위로 엉금엉금 기어가 몸을 웅크리고 다시 눈을 붙였다 올가도 그제야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직 올가와 앨리스는 서로 어색한 사이였다. 올가와 닮았으니 앨리스와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라고 바네사는 말했었지만, 솔직히 올가는 자신이 앨리스와 닮은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올가는 거실을 지나 현관으로 향했다. 옷걸이에 걸려있던 외투를 걸친 뒤, 올가는 문을 열고 쌀쌀한 새벽 공기를 맞이했다. 이제 막 해가 솟아난 하늘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몽환적인 색으로 물들어있었다. 하늘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 같다고 올가는 생각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책하는 것이 올가의 일과였다. 그곳은 산 중턱에 위치한 조그마한 마을, 그 살짝 위에 위치한 집이었다. 아침 안개가 옷을 촉촉하게 적셔왔다. 산을 따라 크게 한 바퀴 빙 둘러가다 보면 저 아래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집마다 하나둘 불이 켜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축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무들 사이로 가자 구욱, 구욱, 멧비둘기 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해가 꽤 높게 떠서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어왔다. 이슬을 머금고 풍겨오는 은은한 나무 냄새가 기분 좋았다. 몸도 정신도 맑아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깅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올가는 외투를 옷걸이에 걸고 거실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또 다시 앨리스와 눈이 마주치고 멈칫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앨리스가 곧바로 다른 복도로 걸어갔기 때문에 올가는 무사히 거실을 지나 부엌으로 향할 수 있었다.

오늘 아침은 베이컨에 에그 스크램블.

물론, 바네사가 좋아하는 올리브도 곁들여서.

올가는 앞치마를 입은 뒤 매듭을 꽁꽁 동여맸다. 프라이팬이 적당히 달궈지자 올가는 준비해둔 베이컨을 한 줄씩 프라이팬 위에 올려놓았다. 뜨거운 프라이팬과 닿는 순간 베이컨이 치익 소리를 내면서 지글지글 구워지기 시작했다.

냄새를 맡고 앨리스가 킁킁거리며 다가왔다. 올가는 앨리스를 내려다보았다. 앨리스는 지글지글 소리를 내는 프라이팬을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개도 베이컨 먹어도 괜찮습니까?”

올가는 긴가민가했다. 그냥 고기라면 상관없겠지만, 베이컨은 특히나 짜고 기름진 음식이었기 때문에 올가는 신중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앨리스의 끼잉 소리를 듣는 순간 올가는 고민을 포기했다.

“아주 조금은 괜찮겠죠......”

올가는 다 익은 베이컨을 가위로 싹둑 자른 뒤, 사분의 일 정도 되는 조각을 앨리스에게 내밀었다.

“이번만입니다. 바네사 경에게 들키면 혼날 지도 모릅니다.”

올가의 말을 알아듣긴 한 걸까. 앨리스는 올가의 손바닥 위의 베이컨에 코를 들이밀고 킁킁 냄새를 맡더니, 입을 크게 벌려 그대로 베이컨을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베이컨 조각을 잘근잘근 씹으며 앨리스는 만족했단 듯이 다시 거실로 총총 걸어갔다.

올가는 다 익은 베이컨을 접시 위에 옮기고 새로운 베이컨을 프라이팬 위에 올려놓았다. 아까 구운 베이컨에서 나온 엄청난 양의 기름이 차가운 물체와 만나 부글부글 거품을 냈다. 이렇게 나온 베이컨 기름은 나중에 체로 걸러서 모아놓으면 소스 만들 때 유용하다. 아니면 지금처럼 에그 스크램블을 만들 때도 쓸 만하다. 올가는 베이컨 기름 위에 계란 두 개를 깨고 주걱으로 마구 으깨기 시작했다.

터벅터벅 발소리에 올가가 뒤를 돌아보자, 이번에는 바네사가 덜 깬 눈을 비비며 걸어오고 있었다. 고소한 베이컨 냄새에 잠이 깬 걸까, 바네사의 머리는 마치 화려한 까치집처럼 보였다. 아직도 졸린 건지 바네사는 우웅 신음소리를 내며 요리 중이던 올가의 뒤에서 껴안았다.

올가의 등 뒤에 얼굴을 기대며 바네사가 말했다.

“저 일어났어요, 올가 경......”

“좋은 아침입니다, 바네사 경.”

올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올가의 두 손은 달걀을 마구 휘젓느라 바빴기 때문에, 대신 올가는 고개만 돌려 바네사 볼에 가볍게 키스했다. 그러자 바네사는 헤헤 웃으며 올가 볼에 답례했다.

올가가 말했다.

“졸리시면 다시 주무셔도 괜찮아요. 완성하면 깨워드리겠습니다.”

“아뇨, 전 이대로가 좋아요.”

바네사는 하암 하품하며 대답했다. 바네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이 올가 등 뒤의 감촉으로 전해졌다. 올가는 후후 웃으며 따끈따끈하고 포슬포슬한 에그 스크램블을 숟가락으로 떠서 덜 깬 바네사의 입 안에 쏘옥 집어넣었다.

바네사는 볼 안에서 오물오물 맛 보더니 히히 웃었다.

“맛있어요.”

“다행이네요.”

“고마워요.”

바네사는 다시 한번 올가 볼에 키스했다. 그러자 올가는 뒤돌아 이번엔 바네사 입술에 자신의 것을 포갰다. 바네사 역시 올가의 허리를 양팔로 감싸며 그에 응답했다.

두 사람이 한창 사랑을 나누기 바쁠 때, 갑자기 앨리스가 다가오더니 올가의 다리에 얼굴을 비비기 시작했다. 올가와 바네사는 입술을 떼고 앨리스를 내려다보았다. 앨리스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올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앨리스가 마침내 올가 경이 좋아졌나 봐요.”

“그런가요?”

“거봐요, 둘이 친해질 거라고 했잖아요.”

바네사는 후후 웃으며 앨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둘이 사이가 좋아진 것 같아서 전 너무 기뻐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으음. 다음에 산책 갈 때 앨리스도 데리고 나가는 건 어때요? 분명 앨리스도 좋아할 거예요.”

“그런가요?”

올가는 자신을 올려다보며 혀를 내밀고 헥헥거리는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렇습니까? 당신도 아침 산책을 좋아합니까?

올가는 후후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보여줄 게 정말 많겠군요. 내일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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